베드로전서 강해(35)

조회 수 933 추천 수 0 2019.10.16 20:11:48

47-11: 만물의 마지막

7.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8.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9.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10.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11.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베드로 사도는 1:5절에서 짚은 종말을 다시 언급한다. 베드로전서를 관통하는 개념은 고난, 나그네, 희망이다. 여기에 종말도 포함될 수 있다. 고난, 나그네, 희망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개념이 종말인 셈이다. 종말 신앙이 있을 때 고난을 뚫고 나갈 수 있고, 나그네라는 실존을 실감하고, 희망의 역동성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베드로 사도는 과감하게 선포한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도대체 만물의 마지막은 무엇을 말하나? 막연하게 세상이 끝날 때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아주 실질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태양계에는 지구를 비롯하여 8개의 행성이 태양을 돈다. 명왕성은 행성에서 퇴출당하였다. 행성에는 위성이 딸려 있다. 지구는 하나의 위성인 달이 있다. 만약 지구에 두 개의 달이 있었다면 지구는 어떻게 되었을까? 태양계에는 행성과 위성만이 아니라 수많은 소행성이 있다. 태양계의 어느 부분에는 이런 소행성이 띠를 이루고 있다. 태양은 은하계에 속해 있다. 은하계에는 천억 개의 별이 있고, 이런 은하계가 우주에는 천억 개 이상이다. 이 모든 우주는 만물에 속한다. 행성 중에서 지구는 특별하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지구에만 생명체가 존재한다. 언젠가 때가 되면 외계인을 만날 수도 있고,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지구에 속한 모든 생명체도 만물에 속한다. 기독교 신앙은 만물의 마지막을 내다본다. 만물이 영원히 그대로 지속한다고 여기지 않는다.

어떤 이는 2천 년 전에 마지막이 가까이 왔다고 했지만, 여전히 마지막이 오지 않은 걸 보니 베드로 사도의 저 말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초기 기독교에서 예수 재림의 지연으로 인한 혼란이 있었다. 그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벧후 3:4). 그들 중에 어떤 이들은 자신들이 살아있을 때 만물의 마지막인 예수의 재림이 발생하리라고 기대했었다. 그들의 생각이 짧았다. 이 대목에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관점이 필요하다. 첫째, 성경이 말하는 시간은 양적이라기보다는 질적인 의미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벧후 3:8). 신학적인 용어로 바꾸면 성경의 시간은 크로노스가 아니라 카이로스다. 둘째, 우주의 마지막만이 마지막이 아니라 개인의 죽음도 역시 이 마지막에 속한다. 그 죽음이 우리에게 가까이 왔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우리말 성경은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며 기도하라는 말씀이 병렬처럼 들리는데, 실제로는 뉘앙스에서 약간 다르다. KJV은 다음과 같다. “But the end of all things is at hand: be ye therefore sober, and watch unto prayer.” 루터 성경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기도할 수 있도록 절제하고 정신을 차리십시오.” 우리의 영혼이 세상의 다른 일에 취하지 말아야만 기도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게 깨어 있는 것이다. 세상에 취한다는 말은 술이나 도박이나 돈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취미생활도 지나치면 우리의 영혼을 취하게 한다. 어떤 기독교인들은 매일 티브이 드라마에 빠져서 산다. 홈쇼핑이 취미인 이들도 있다. 가능한 한 티브이를 거실에서 없애거나 보더라도 시간을 최소화하는 게 기도를 삶의 중심으로 삼아야 할 기독교인들에게 유익하다. 삶의 패턴을 이렇게 바꾸는 게 쉽지 않다. 베드로 사도가 만물의 마지막이 왔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사실을 절감할 때만 그는 지금 자신의 삶이 어디를 가고 있는지를 정신 차리고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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