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암진단을 받았다.

의사말로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흔치 않다는 흑색종이라는 피부암이며

좀 고약한 놈이라고 했다.

 구강에 생겼고 림프절로 전이된 상태며 3기 이상으로 진단했다.

수술이 일차적 치료이고 그 다음 단계로 방사선이나 항암치료가 될 것이라고 했다.

수술은 매우 위험한 수술이고

생존율이나 완치율도 낮은 편이란다. 낙관을 할 수 없는 말들이었다.

검사결과를 기다리고 나오기까지 피가 마르는 것 같더니

의사의 진단을 듣는 순간은  가슴에 돌이 떨어졌다. 

병원을 나오는데 심장이 벌렁거리고 걸음이 훠이 훠이 걸어졌다.

남편은 악몽을 꾸고 있는 것 같다고 했고 나는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었다.

평소 건강해서 병원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기에 그런 진단은 충격이었다.

본능적으로 튀어 나온 기도가  " 사랑할 시간을 주세요!" 였다.


그리고 시간을 함께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일터에 연락을 해서 일을 그만두었고

남편과 시간을 보내는 일에 집중했다.

식사를 준비하는 일, 설겆이를 마치고 함께 차를 마시는 일, 보라와 산책을 하는 일.

병원을 같이 오가는 일, 모두가 갑자기 그렇게 간절해 질 수가 없다

진안에서 서울까지 오가는 긴 드라이브도  

여행을 즐긴다는 심정으로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평범한 일상의 순간 순간이 얼마나 은총이었는지를 절감한다.

아직 건강하게 움직일 수 있는 이 시간이 보석처럼 귀했다.

옆에 있는 사람이 기적이고

삶이란 얼마나 값지고 아름다운 것인가를 잊고 넋놓고 살다가 화들짝 정신이 든 셈이다.


그동안 남편에게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고 살았는데

이젠 내가 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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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진안은 눈이 많이 내렸다.

폭설경보가 내릴만큼.

겨우내내 눈다운 눈을 보지 못하다가

봄이 오는 길목에서 엄청나게 내리는 눈을 집안에서 바라보며 안식을 경험했다. 마치 폭풍 전의 평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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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발이 날리는 길을 남편과 함께 걸었다.

하얗고 고요해진 세상이 처연히 아름답다.

집에 들어오니 따뜻한 집안의 온기가 아늑했다.

밖은 춥고 눈보라가 치는데

벽난로의 불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따뜻했다.


 어찌 전개될지 모르는 불투명하고 불안한 앞날이지만

수술 전까지 남은 며칠의 시간은 이토록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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