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이다. 

한낮엔 초여름 햇볕이 쨍하고

더위를 피해 보라가 그늘막에 늘어져 있다.

마당엔 작년 가을 심었던 잔디가 제법 파랗게 올라오고 봄에 뿌린 해바라기도 무성하게 잎을 내고있다.

덩쿨장미가 햇살을 받아 빠알갛게 선명하다.

이름 모르는 새가 뒷산 오동나무에서 찍빡 찍빡 규칙적으로 울고있다.

세상은 어쩜 이리도 눈부시게 아름다운지.....! 온통 생명력을 뿜어대고 있다.

20200605_150751.jpg



1591336140238.jpg


그간 

남편은 스물일곱 번의 방사선 치료를 끝냈고

얼마전 항암치료에 들어갔다.

월요일이면 올라가고 주말이면 내려오는 일을 반복하며 서울과 진안을 오갔다.

방사선 치료의 후반부로 들어가면서 입맛을 잃었고 턱 밑이 딱딱해지는 (섬유화라고 했다) 

부작용이 생겼다. 림프절 제거후에 나타나는 근육이 굳는 현상이라는데  

그걸 완화시키는 재활치료도 열심히 받았다.


그런데...

다시 찍은 전신 CT에서 암이 복부로 전이가 됬다는 걸 알았다.

복막과 부신 그리고 골반에 전이가 되었단다!

" 그럼 빨리 죽겠군요!"

남편이 툭 던진 말에

단층 촬영한 영상을 들여다보며 흑색종 전문의인 여의사는

어떤 감정도 내보이지 않고 대답했다.

"사업을 벌이실 단계는 아니구요... 4기가 되거든요.

이 항암치료가 꼭 맞아야 되요."

3세대 항암치료라는 이 면역항암치료가 맞지 않으면 가망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항암치료가 환자에게 맞는 확률이 2~30 %라고 했다.

3주에 한번 씩 항암주사를 맞아가면서 효과를 봐야 할 일이다.


 4기.

생존율 2~30 %

완치율 2~30%

아.. 이런 수치들이란 얼마나 잔인한지....

이 수치들에  롤러 코스터를 타는 것도 따지고 보면 우습다


암진단을 들을 때는 가슴에 바위가 떨어지더니

전이가 됬다니 온몸의 피가 싸악 빠져 나가는 느낌이다. 

손끝 하나 움직일 힘이 없다. 맥이 빠져서 망연자실 진료실 밖 의자에  주저 앉았다.

이렇게 빨리 전이 소식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일년 간 항암을 받아야 한다길레 그것이 끝나고 

일년 후에나 마음 졸이며 지켜보게 될 줄 알았는데...


" 괜찮아, 뭐, 가는데 까지 가보자... " 오히려 남편이 나를 위로한다.


그리고 또 시간이 지났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내가 마주 선 현실이 감이 없어진다.

남편은 식사량이 줄고 기력이 조금 쇠했을 뿐 크게 앓아 눕지도 않고 가벼운 일도 하고 있고

우리 일상에는 큰 변화가 없다.

아니 신기하게도 아주 생생한 현재를 경험하며 산다.

창 밖으로 앞산을 바라보며 밥을 먹는 일.

잔디에 물을 주는 남편 옆에서 잡초를 뽑는 일.

저녁이면 개구리 울음이 요란한 시골길을 걸어 산책을 하는 일.

어제처럼 보름달이 동그란 밤에는  마당에 나와 하늘을 잠시 올려다 보는 일...

이런 게 모두 예사롭지 않다.

코로나 이전과 이후의 세상이 달라졌다면

나에겐 남편의 암진단 전후의 세상이 그렇다.


" 여보, 여기에 작은 평상을 하나 만드는 게 좋겠지?

 나와서 차도 마시고 여름밤 하늘도 보고..."

"그럽시다."


결혼기념일에는 꽃화분 하나를 샀다.

1591336134494.jpg

우리에게 내년이 있을까...

내년에도 결혼기념일을 맞을 수 있을까.


깊은 밤이나 새벽

꺠어 일어나면 기도조차 할 수 없다. 대신 신음에 가까운 깊은 한숨만 나온다.

가슴 한켠엔 두려움과 불안이 자리한다.

나는 도데체 무엇이 두려운 걸까..

남편이 없는 삶?

혼자 남겨진 후의 막막함? 

이 두려움의 실체와 언젠가는 정면으로 마주서야 하리라.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르겠는 이 막막함.

.......

가장 좋은 걸 우리에게 주신다는 하느님의 섭리는 도데체 무엇일까.

하나님은 너무 멀고 의사의 말은 자꾸 되살아나 메아리친다.

"4기입니다."

"사업을 벌이실 단계는 아니구요.."

"이 항암이 꼭 맞아야 해요...,"


기도조차 나오지 않는 기막힘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어느때 보다도 생생하다.


오늘도 남편과 만두를 만들어 먹었고

화분에 물을 주었고 땀을 흘리며 주변의 가시나무와 잡초를 뽑았고

오이 잎사귀에 벌레를 잡아주고

보라에게 진드기 퇴치 약을 발라주었다.

장에 가서 참외랑 아이스크림 요거트를 사왔고

아프셨다는 이웃 할머니에게 참외를 나누어 드렸더니

따뜻한 흑임자 죽을 쑤어 옥수수 튀긴 것과 함께 가져오셨다.

아무리 내일이 불투명해도 오늘 하루는 이렇게 살아있다.

밤이 되면 또 개구리가 요란하게 울어대리라.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