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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 비소리를 들었다. 밤새 내린 비로

앞뜰에 흙을 받아 만든 화단에 과꽃 금송아 봉숭아가 함빡 샤워를 한 얼굴로 싱싱하다.

인철씨가 선물한 블루베리 세 그루도 열매가 맺히더니 보랏빛으로 살풋 물들었다.

성급한 채송화 한두송이도 활짝 피었다.

감자꽃이 피고 푸른 고추가 달렸다. 상치도 연하고 아욱도 제법 올라와 아욱국을 한번 끓여 먹었다.


봄을 지나고 초여름을 맞는 동안 나를 구원해 준 것은 다름 아닌, 흙과 노는 일이었다.

소꿉장난스러운 밭을 일구고 돌을 골라내고

감자랑 고추를 심고 오이씨를 뿌렸다.

잡초를 뽑고 일을 하는 동안은 아무 생각이 없어져서 좋았다.

땀을 흘리고 일을 하고 들어와 샤워를 하고

냉장고에 넣어둔 시원한 대추차를 마시면 속까지 서늘했다.


문득 "노동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문귀가 떠올랐다.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입구에 걸려있던 문장이다.

격심한 노동 속으로 유대인들을 몰아부친 그 잔인한 문구가

암울한 상황에서 이렇게 공감될 줄이야.

그야말로 노동이 구원이고 자연은 무엇보다 큰 위로가 됬다.

치료를 받고 내려오면 힘든 마음을 받아주는 곳도 진안의 집이다.

보라가 뛰어오를 듯 반겨주고 초저녁이면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

아아.. 개구리 울음소리는 늘 아련한 노스탤지어의 세계로 나를 데려다 준다....

푸른 잔디가 번져가는 마당, 튤립이 피고 진 화단에는 이제 해바라기가 자라고 있다.

대추나무랑 매실나무도 고맙게도 잎새를 틔우고...

(요즘 자주 멍 때리고 서서 그것들을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다.)

 꼬박꼬박 유정란을 낳아주는 닭들이 있는 진안의 집은

힘든 우리 부부에게 홈 스위트 홈이 아닐 수 없었다.


어디 자연 뿐이랴... 이웃들이 보이는 관심과 사랑도 분에 넘친다.

" 힘들어서 으째쓰까.. 이것 좀 무쳐 먹어봐, 낮에 해먹어보니 맛나더라고."

노지 미나리며 머위대를 끊어다 주시며 건네는 위로의 말이 친정 어머니처럼 따뜻하다.

도시에선 이웃이 죽어도 모르는데, 한 사람의 아픔에 온 동네가 걱정해 주는 곳...

(물론 이곳도 간혹 자잘한 분쟁이 일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 사는 세상은 이게 맞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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