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자기 전에 찬 것을 많이 먹었더니 배가 아파서 새벽에 잠이 깼다.

장실을 다녀오는데 벌써 찬 기운이 스친다.

수탉이 간간히 울어서 새벽 미명의 고요를 깨고 있다. 

풀벌레 소리가 공기처럼 깔리고 사방은 깊이 잠들어있다....

경건함이 스며있는 시간이다. 새벽을 맞는 분들이라면 다 아시겠지만. 


나는 아침잠이 많아서 이런 시간을 자주 맞이하지 못한다. 

오늘은 배가 아픈 탓으로 어쩌다 이 새벽시간의 복을 누리게 됬다.


새벽묵상을 나눈다.


이사야 41:10-13 KRV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 허무한 것 같이 되리니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언제 대해도 매우 힘이 되는 말씀이다,.
그런데 새롭게 다가온 것은
"네게 노하던 자들.."
"너와 다투던 자들..."
"너와 싸우던 자들..."
"너를 치던 자들"... 이다.
이 모두는 다 외부의 적들이 아니라
내 안에서 일어나는 어둔 가라지들이다. 그렇지..!
밖의 누군가가  나를 치고 노하고 다투는 것이 아닌 것을....
따지고 보면 실상이 아닌 실체도 없는 피상성에 압도 당하는 것이다.

다시 반복해서 읽어보니 이번에는 "참으로" 라는 단어가 박힌다.
"참으로" 너를 도와주고 "참으로" 너를 붙들어주리라...
 간절한 반복이다.

남편의 암 진단으로 내 가슴에 돌이 떨어졌고 
그것은 평온한 일상에 지진과도 같은 충격이었다.
몇개월이 흐르는 동안 수술과 치료의 반복, 이 상황이 어찌 전개될지 불안했다.
그러나 결과는 늘 우리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쪽이었고 
그 때마다 불안, 좌절 상심 같은 단어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묵직한 어둠에 짖눌렸다.
나는
이 두렵고 무거움의 실체가 무엇일까를 들여다 보았다.
그의 아픔을 무력하게 지켜볼 수 밖에 없다는 것, 등등도 있겠지만
결국 나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의 안전망이 사라잘 수도 있다는 불확실성이 가장 무서웠다.
아아... 사람은 얼마나 이기적인지...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이 사라졌을 때 말하자면 나를 치장해 주는 장식 같은 것들을 전부 걷어냈을 때
알몸으로 서 있어도, 그래도 나는 견고할 수 있다는 믿음... 그 기반.
아직도 두렵긴 하지만 처음 같이 크진 않다.
그건 내가 노력해서 된 것이 아니라 조금씩 내 안에 스며든 것이었다. 
누군가가 내 안에 물꼬를 터 준 것처럼
아주 가늘게 흘러 들었다는 사실이다.
나에 대한 연민이 걷어지고 나니 
남편의 삶이 눈에 들어오고 그 일생이 눈물겹게 애처롭다.
이  세상엔 내가 다 알 수 없고 내가 어찌할 수 없는 현상들이 일어난다.
그에 저항하지 않고 순응해 같이 흐르기.. 그게 요즘 나의 화두다.
얼만큼 가까이 갈 수 있을진 모르지만.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서,
"너를 치던 자들을 찾아도 만날 수 없고/ 아무 것도 아닌 것"들이 되는...
그 상태에 이르기를 바랄 뿐이다.
"참으로" 나를 견고히 붙들어 줄 의로운 오른 손을
순간순간 상기하는 것. 그 밖에는 도리가 없다. 



20200824_072706.jpg
20200824_072811.jpg
해바라기 꽃이 피다. 그 쬐끄만 씨에서 나온 싹이 장대같이 자라더니
울타리처럼 우거졌고 드디어 꽃이 ...!
이 해바라기 꽃을 보며 나는 부활을 이해한다. 부분적으로나마.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