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혁 선교사가 들려주는 인도 이야기

첫째 일하며(추억의 네루플레이스)

인도의 길 조회 수 617 추천 수 0 2022.02.18 05:26:46

인도경제상황

수 년전 작고하신 쇠귀 신영복선생이 2020일만에 출옥을 한 후 인도를 여행했다.

 

간디의 물레소리에서 장미꽃과 안개꽃 이야기를 한다.

간디가 그리던 인도는 안개꽃 중심의 꽃꽂이였다.

반면 네루가 그리던 인도는 장미꽃 중심이었다.

 

간디는 인도는 안개꽃같은 민중이 중심이 되어 한다고 생각했다.

네루는 장미꽃같은 근대화된 도시와 엘리트에 주목했다.

 

그러나 상공업자들을 불신한 네루는 사회주의형 통제경제모형을 추구했다.

성장잠재력이 억제되고 결과는 실패였다.

 

지지부진하다 1990년 외환위기를 맞았다.

1991년부터 신경제정책을 펼치게 된다.

 

델리대 경제학과 교수 만모한 싱 (훗날 2차례의 인도 수상을 지냄)을 중심이 되어 일을 추진했다. 

 

마틴(선교명)이 인도에 도착한 93년은 

바로 이 신경제정책이 발동이 걸려 8% 대의 경제성장을 이루던 시점이었다.

 

한국의 현대자동차, 대우자동차, 삼성전자와 엘지전자가 델리와 첸나이에 진출하고 있었다.

 

컴퓨터비즈니스

한국인들이 늘어가고 컴퓨터 일감이 생겨났다.

주재원가족들에게 컴퓨터를 조립해 주었다.

외교관들의 집을 방문하여 컴퓨터 기초와 아래ᄒᆞ글을 가르쳐주었다.

 

그때만 해도 마이크로소프트의 워드나 엑셀이 유명하지 않았다.

차라리 워드퍼펙트나 워드시트, 로터스 123가 유명했다.

 

대사관에서도 일감이 들어왔다. 외신관이 컴퓨터 수리를 부탁했다.

문체부처에서는 인도인들에게 문서를 발송할 메일링 프로그램을 요청해왔다.

마두라이공대를 나와 실리콘 밸리 진출을 준비하고 있던 인도 친구들의 도움을 받았다.

마틴으로서는 몇 달을 걸려도 못할 일을 1주만에 비주얼베이직을 이용해서 만들어 주었다.

 

너 이거 가치를 잘 모를건데 엄청 비싼거야.”

 

당시는 그걸 잘 몰랐다. 무식해서 용감했다.

 

컴퓨터 부속은 주로 네루플레이스에서 조달했다. 한국의 용산전자상가쯤 된다.

대만산 마더보드와 사운드 카드를 비롯한 부속이 벌크로 들어왔다.


처음엔 언어가 잘 소통되지 않아 바가지를 많이 썼다. 특히 가격에서.

오기가 생겼다. 힌디로 숫자를 1에서 1000까지 한 주만에 외웠다.

 

먹고 사는데 필요하니까 그렇게 안되던 힌디가 팍팍 늘었다.

 

경제인협회간사

당시 대만에서 수입된 컴퓨터 부속이 그렇게 신뢰성이 보장되지 않았다.

조립할 때 빵빵 소리나던 사운드카드, 삐이익하고 잘되던 모뎀이 수시로 고장났다.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일이 반복되자 딴 길을 찾아야 했다.

 

회사들이 늘어나가 한인경제인협의회가 생겼다.

현대중공업법인장이 회장이 되고 간사가 필요했다.

회사라고 이름붙은데는 다 돌아다니면서 회비를 걷으러 다녔다.

 

회사 설립되 제대로 하지 않았는네 무슨 회비냐” 


회사 직원들에게 지청구도 많이 먹었다.

1994년 경제인협회 연말 모임이었다.

삼정전자, 한국통신, 선경이 합자를 해서 삐삐사업을 하던 법인장이 눈에 익었다

중학교 동창이었다.

 

집을 방문했다. 당시 단칸방에 살던 마틴의 눈에는 으리으리해보였다.

세계관이 다르니 친해 질수가 없었다. 경제적으로 생긴 열등감도 있었을까?

 

불가촉천민에서 브라만으로

962, 김영삼대통령이 인도를 방문했다.

대통령방문이후 한꾹과 인도와의 교류가  더욱 활발해졌다.

늘어난 민원량을 감당하기엔 대사관 인력이 너무 부족했다.

 

대사관에 근무하던 선교동역자가 이 정보를 알려주었다.

내부거래?

 

담당 영사를 찾아갔다

대통령행사때 함께 일하기도 했고 

열병걸렸을때 감주를 대접했다. 

오토바이에 싣고가다 보니 절반이상 쏟아졌지만. 


월급으로 6백불 주겠다고 했다

알바이트로 컴퓨터 몇 대 조립하면 그 정도는 나온다고 했다

 

머리를 맞대고 방안을 모색했다.

본부에서 파견되면 주택수당이 나왔다.

 

석사를 마치고 한국으로 비자를 위해 일시 귀국했다.

손에는 담당영사와 총무담당서기관의 

추천서가 들려 있었다. 


본부에 요식상의 테스트틀 거쳤다.

199672, 관용여권과 비자를 받아 인도로 재입국했다.

금의환인?

 

학생때는 세를 주지 않던 인도 집주인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쪽방에서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마틴은 이제 브라만 게급의 대우를 받게 되었다. 

블과 3년만에 

마틴에게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났다.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22.02.18 21:12:22
*.182.156.92

마틴 님의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본격 전개되기 시작했네요.

글의 속도감이 장난이 아니에요.

어지러울 정도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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