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항암 치료 차 서울을 올라간 김에 

엄마를 뵈러 일산에 갔다가

신촌에 계신 큰 이모댁을 들렸다. 

아주 오랜만에.

큰 이모는 신촌에서 아주 오래 사셨다. 

그래서 우리는 큰 이모를 신촌이모라 불렀다.

엄마가 올해 92세이신데 큰이모는 96세다. 

이모는 3년 전까지만 해도 진안 우리집에도 오실 수 있었는데

이제는 엄마와 이모 두 분 다 침대에서 일어나시지도 못하신다.

이모의 일생을 자세히 열거하자면 소설 한 편이 너끈히 나오지만 

오늘은 그것보다는 이모네 집 얘기를 하고 싶다.

이모네 집은  영화<건축학 개론>이 생각난다.


이모네 집은 서대문구 창천동의 한 귀퉁이에 짱박혀 있다. 

이모는 그 자리에서 60년 가까운 세월을 사셨다.

시골도 아닌 도시 한복판에서 , 저택도 아닌 서민 주택이 그렇게 오랜 시절 버틸 수 있다니!

건평과 대지를 다 합해도 20평이나 될까. 지금은 40년 전에 새로 지은 집이지만 

이모의 옛집은 비좁은 골목을 돌아 들어가면

막다른 골목에 녹슨 철대문이 있었고

그 철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손바닥만한 시멘트 마당으로 들어선다.

오른편에 

장독들이 얹혀있는, 역시 시멘트가 발라진 앝으막한 창고 같은 게 있었고 

왼쪽으론 마당 한 켠에 수도가 있었다. 

수도가에서  나는 수도물과 하수도가 섞인 냄새는 

내가 처음 맡은 서울의 냄새였고 오래도록 서울을 떠올리는 생소한 냄새로 자리했다.

이모네 집은 어린 내가 보기에도 지붕이 낮았고 부엌 옆에 윗방과 아랫방이 장지문 하나로 나뉘어진 방이 있었고 

또 문간방이 있었다.

그 문간 방을 끼고 돌아 들어가면 어둑한 푸세식 화장실이 나왔다.

방문 앞에는 좁은 퇫마루가 있었다. 그 퇫마루에서 이모는 내 팔뚝에 난 종기를 짜내고 

이명래 고약을 발라주셨다. 아가, 월매나 아팠냐... 하시며.

그 덕분으로 곪아서 부어 올랐던 팔이 나았다.


돌아가신 외할머니께서 딸이 서울 변두리에 집을 샀다는 소식을 듣고 

와 보시곤 코딱지만한 초라한 집에 기가 막혀 하셨다는

얘기를 이번에 이모네 언니로부터 들었다.


 그 작은 집에서 이모부가 급작스럽게 돌아가셨고

졸지에 과부가 되신 이모는 혼자 졸망졸망한 아이들 6남매를 키워내셨다.

지금껏 이모를 모시고 그 집에 살고 있는 큰 언니는 올해 칠순인데  6학년 때 이 집으로 이사를 왔다니

한 집에서 거의  60년을 살아오신 거다.


 어릴 때의 이모네 그 옛집은 사라졌고

새로 지은 집도 이제는 40년이 되어 고색 창연했다. 

결혼 직전에 와 본 후 참 오랜만에 들렸는데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내 안의 어떤 것이

건드려지는 느낌이었다.

뭐랄까. 아주 어릴 때의 꿈속의 장소같이 가물한 기억 속의 장소가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남아있는 것을 볼 때,

나는 이미 그 때의 내가 아닌데 그 추억 속의 장소는 그대로일 때 느껴지는 그런 감정 같은 거 말이다.

내 집도 아니지만 이모네 집은 내게 오랜 이미지로 저장되 있었다. 

그 골목길과 그 골목길 집 창문에 설치해있던 방범 쇠창살,

그리고 이모네 집 파란 철대문 ,수돗가 물냄새, 퇫마루, 집 뒤의 높은 축대와 언덕, 

잡초들 속에는 젊으셨던 이모의 고단했던 삶이, 사촌들의 한 때가, 그리고

우리 형제들의 시간까지 스며 있었다.


신촌이모는 강남이 개발되고 아파트 붐이 일어나고 서울이 몇 번이나 천지개벽을 하는 동안

이 코딱지 만한 집을 떠나지 않고 요지부동으로 사시면서

늘 이렇게 큰소리 치셨다. "야야, 공중에 떠 있는 게 , 그게 워디 집이냐?

땅에 붙댕겨 있어야 집이지~!"

이모의 당당함으로 지켜낸 땅에 붙은 코딱지 만한 집은 여태껏 건재하면서 출가한 언니들을 푸근히 맞아주고 있다.

언니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 아아.., 신촌 집에 오면 너무 너무 편안해....!"


그 집에서 이제는 작은 새처럼 잦아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큰 이모를 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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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모네 집 들어가는 길

 큰길 주변은 많이 변했다. 왼쪽 아래 흰 창살이 달린 집은 여전히 건재해서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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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이 골목은 보도블럭만 바뀌고 집들은 약간의 보수만 헀을 뿐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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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축대 위는 잡초가 자라는 언덕이었는데 집이 들어섰다. 앞쪽으로 옛날 집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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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올망졸망한 집들을 지나 왼쪽으로 꺽어 들어가면 막다른 골목 이모네집 대문이 나온다.아직도 남아있는 옛 흔적들.


KakaoTalk_20220929_220232784.jpg같은 서울. 강남이다. 오늘 항암을 마치고 치과에 들리기 위해 간 강남거리를 차 안에서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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