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교회가 예수 이외의 요소들에 지나치게 치중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신학을 공부하고 하바드에서 동양철학을 공부한 것으로 알고 있는 도올 김용옥씨도 역시
"(지금의) 한국 교회들이 사도 바울(혹은 그의 경험 ; 체험)에 지나치게 치중하고 있다" 라고 언급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안다. 

이러한 양상은 사회에서 물질이 풍부해지고 삶의 비중이 오로지 경제적인 측면(실은 지금의 "교육"도 경제
적 삶의 측면에 부수되는 개념의 것일 뿐이다)으로 쏠리게 되면서, 그와 동시에 사람들의 정신에 절박감과
순수성이 점차 사라지면서 그에 따라서 이처럼 진행되어온 현상인 듯하다.

우리가 어렸을 적 그 때는 교회에서 '예수의 피' 그리고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을 주로 많이 언급했으며,
사도바울에 관해서는 그다지 자주 언급하지 않았었다. 그와 함께 구원에 관한 문제인 천당과 지옥을 참
많이도 언급했었다. 그때는 분명히 그랬었던 것이다.

그런데, 점점 분위기가 바뀌면서 이제는 전반적으로 '예수의 피'의 언급은 거의 사라져버렸거나 아주 생소
하게 들리는 분위기이고, 천당과 지옥에 관한 얘기는 이미 구시대의 설화처럼 되어버린 것 같다. 그 대신
에 사도바울이 주로 조명되거나 혹은 '제사와 축복'에 관한 분위기가 강한 구약적인 테마에 주로 치중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물론, "성서의 모든 장들은 그리스도 예수를 말하기 위해 기록된 것이다"라고 언급한 워치만 니의 관점처럼, 
구약과 신약이 절대로 별개의 것일 수 없는 문제이지만, 어떻든 현실적으로는 본래의 뜻에 반하여 그런 식
으로 편협되게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즉 강단의 설교자가 필요한 부분만 적출해서 아전인수격으로 활용하
고 있는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설교자들이 사도바울을 언급하기를 좋아하는 이유를 생각해 봤다. 아마도, 목사님들이 가장 닮고 싶은
모델이 실은 예수이기보다는 역사상 가장 성공한 선교자인 바울이 아닌가 하고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대체로 구약(혹은 유대교)적인 모습으로 비쳐지는 축복에 관한 문제는, 물질을 삶의 문제 비중에서 제
일로 다루게 되는 요즘 시대, 보다 대중 선호적인 의제 혹은 그러한 테마가 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
되기도 한다. (하기야 지금 그렇게 딱딱한 원론적인 설교를 일삼다가는 재미없다고 교인 다 떠날지도 모를
일이니 이 땅에 그렇게 용감 무식한 목사님이 어디 계실지 ...)
워치만 니는 이러한 양상을 가리켜서  "유대교로의 회귀"라고 비판한바 있는데, 매우 적절하고도 의미 심장
한 지적의 말이라고 생각된다.

비록, '하나님 = 예수님' 이라는 교리상의 등식이 성립되는 것이라 하더라도, 실은 우리의 눈에는 늘상
그리스도 예수 :  예수님의 모습 - 그분의 말씀하시는 모습, 말씀을 선포하고 병든자를 돌보시기 위해 여러
지역들을 열심히 순회하고 계시는 광경, 가련하고 애처로운 민중들로 인해 안타까워 하시는 그분의 사랑의
모습, 육신의 피로로 인하여 지치고 피곤함을 느끼는 그분의 모습, 그분의 영적인 의지와 그에 따라 나타나
는 그분의 표정들, 절망감이 엄습할 때의 그분의 수용자세, 아버지에 대한 순종의 모습, 그리고 그분의 마지
막 십자가 상의 모습, 그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모습 말이다 - 이 이미지 업되어 우리의 뇌리와 눈에 떠오
르는게 정상이고 또한 그것이 지금 이시대 우리의 바람직한 신앙의 모습이 아닐런지를 생각해 본다. 또한,
바로 그것(그러한 모습)에 관해서 조명하고, 말하고, 듣고, 또한 그분을 흠모하고 숭배하는 바로 그것이, 
유대교도 혹은 다른 무엇도 아닌 바로 기독교(그리스도교)가 아닐런지. 이러한 개념은 꽤나 차원높은 신앙
사유 소재의 하나에 해당할 것이다.

'"거룩"은 다름아닌 그리스도 예수의 모습 바로 그것이다' 라고 정의한 워치만 니의 견해는 참으로 놀라운
영적 지각이며, 온전하여 한치의 오류도 없는 것이라고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