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중서간(17)

조회 수 5060 추천 수 1 2010.06.04 23:12:30

     앞에서 나는 열여섯 번에 걸쳐서 본회퍼의 <옥중서간>에 나오는 글을 그대에게 소개했소. 본회퍼는 자신의 신학을 꽃피우기도 전에 젊은 나이에 히틀러에 의해서 사형을 당했소. 신학의 단초는 제시했지만 열매를 맺지는 못했던 거요. <옥중서간>이라는 게 어떤 체계 있는 신학적 논술이 아니라 신학적 착상에 대한 간단한 메모에 불과하오. 그가 오래 살았다면 세계 신학계에 끼친 영향이 아주 컸을 거요. 히틀러를 제거하기 위한 무력 시도가 성공했거나 2차 세계 대전이 몇 달만 일찍 끝났어도 본회퍼는 살았을 거요. 오늘로 <옥중서간> 소개는 마지막이오. 그의 신학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무엇인지 전달되었을 것으로 믿소. 비종교화, 성인이 된 세상,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 세계의 무신성, 삶의 변두리가 아니라 중심부 등이오. 마지막으로 ‘현세성’에 대한 그의 설명을 전하겠소. 현세성은 독일어 Diesseitigkeit의 번역이오. 이와 반대되는 단어는 Jenseitigkeit요. ‘저 세상성’이라고 번역해도 좋을 거요. 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Diesseitigkeit를 차안으로, Jenseitigkeit를 피안으로 번역하오. 차안에 대한 강조는 그의 전체 신학적 구도에서 볼 때 당연한 결과요. 오해는 마시오. 그가 피안을 완전히 제쳐놓는다는 게 아니오. 지금까지 기독교가 피안만을 말하다가 차안을 놓쳤다는 사실을 직시하자는 거요. 피안과 차안은 변증법적인 관계라 할 수 있소. 피안은 차안의 존재론적 근거이고, 차안은 피안의 인식론적 근거요. 피안은 보이지 않는, 그러나 이미 승리한 교회의 자리이오, 차안은 보이는, 그러나 아직 전투 중인 교회의 자리요. 창조의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이라면 아무도 이 차안을 가볍게 여길 수가 없다오. 본회퍼는 그 관점을 훨씬 적극적으로 밀고 나갔소. 아래의 글을 직접 읽어보는 게 내 설명을 듣는 것보다 좋을 것 같소.(2010년 6월4일, 금요일, 쏜살같이 하루가 지나간 날)

 

     나는 지난 수년 동안 기독교의 깊은 현세성(Diesseitigkeit)을 더 깊이 이해하는 것을 배웠다. 마치 예수가, 금욕적으로 광아에서 살았던 세례 요한과는 달리, 순전한 인간이었던 것 같이 그리스도인은 종교적인 인간이 아니라 순전한 인간이다. 내가 말하는 이 현세성은 교양이나 사회활동가, 또는 나태하게 사람이나 호색한 의 천박하고 비속한 현세성이 아니다. 그것은 충분히 어른이 된 현세성이며, 거기서 죽음과 부활의 인식이 항상 현재적인 깊은 현세성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루터는 이러한 현세성에서 살았다고 나는 믿는다.

     13년 전에 나는 젊은 프랑스 목사와 이야기한 적이 있다. 우리는 자기의 삶에 대해서 무엇을 바랄 수 있는지에 대해서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는 “성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때 나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렇지만 나는 그 말에 저항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믿는다는 것을 배우고 싶다.”고 말한 것 같다. 나는 오랫동안 이 두 가지 입장이 얼마나 깊이 대립하는지를 몰랐다. 자기 자신이 무언가 성스러운 삶을 꾀함으로써 믿음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중략>

     그후 나는 삶의 충분한 현세성에서만 비로소 믿음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으며, 지금 이 경험이 계속되고 있다. 성자이건, 회개한 죄인이거, 혹은 그리스도인이건, 목사이건, 의인이건, 불의한 인간이건, 병든 자이건, 건강한 자이건,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서부터 무언가를 만들어 내려는 시도를 단념하는 것이 내가 말하는 현세성이다. 즉 과제와 문제, 성공과 실패, 경험과 무사려로 가득한 이 세상살이이지만, 여기서만 사람은 자기를 오로지 하나님의 손 안에 맡기고, 그리고 그때야말로 자기의 고난이 아니라 이 세계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고난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그때야말로 겟세마네의 그리스도와 함께 깨어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믿음이며, 이것이 바로 회개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인간이 되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지금 이 세상에서의 삶에서 하나님의 고난에 동참할 때 우리는 성공했다고 우쭐하거나 실패했다고 당황하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본회퍼, 옥중서간, 228,9 쪽, 1944년 7월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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