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샘터교회 수요성경공부 게시판

49편 녹취록-두려움과 부러움을 넘어서

조회 수 1862 추천 수 0 2009.04.05 09:14:12

시편 49편 강해 -두려움과 부러움을 넘어서

 

시편 49편입니다. 일단 제가 1절에서 20절까지 이 내용을 한번 읽겠습니다.

 

1. 뭇 백성들아 이를 들으라 세상의 거민들아 모두 귀를 기울이라

2. 귀천 빈부를 막론하고 다 들을지어다

3. 내 입은 지혜를 말하겠고 내 마음은 명철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로다

4. 내가 비유에 내 귀를 기울이고 수금으로 나의 오묘한 말을 풀리로다

5. 죄악이 나를 따라다니며 나를 에워싸는 환난의 날을 내가 어찌 두려워하랴

6.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부유함을 자랑하는 자는

7. 아무도 자기의 형제를 구원하지 못하며 그를 위한 속전을 하나님께 바치지도 못할 것은

8. 그들의 생명을 속량하는 값이 너무 엄청나서 영원히 마련하지 못할 것임이니라

9. 그가 영원히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인가

10. 그러나 그는 지혜 있는 자도 죽고 어리석고 무지한 자도 함께 망하며 그들의 재물은 남

에게 남겨 두고 떠나는 것을 보게 되리로다

11. 그러나 그들의 속 생각에 그들의 집은 영원히 있고 그들의 거처는 대대에 이르리라 하 여 그들의 토지를 자기 이름으로 부르도다

12. 사람은 존귀하나 장구하지 못함이여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13. 이것이 바로 어리석은 자들의 길이며 그들의 말을 기뻐하는 자들의 종말 이로다 (셀라)

14. 그들은 양 같이 스올에 두기로 작정되었으니 사망이 그들의 목자일 것이라 정직한 자들 이 아침에 그들을 다스리리니 그들의 아름다움은 소멸하고 스올이 그들의 거처가 되리라

15.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스올의 권세에서 건져내시리로 다 (셀라)

16. 사람이 치부하여 그의 집의 영광이 더할 때에 너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17. 그가 죽으매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의 영광이 그를 따라 내려가지 못 함이로다

18. 그가 비록 생시에 자기를 축하하며 스스로 좋게 함으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지라도

19. 그들은 그들의 역대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영원히 빛을 보지 못 하리로다

20.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이 49편은 찬양시도 아니고 제의시도 아니고요. 지혜시라고 보통 이야기를 합니다. 지혜시, 지혜를 가리킨다고 하는 거지요. 이 사람이 유대의 한 지혜로운 사람, 현자라고 그러한 이름이 붙을 만한 사람이겠지요. 그가 어떤 형편에 처해 있는지는 우리가 자세하게 알기는 힘든데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길이 있긴 있습니다. 많은 걸 안다기보다도 그의 어떤 처한 상황 말이지요. 그 이야기는 인제 우리가 내용을 좀 들어가면서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겠습니다. 그게 또 상당히 중요하기도 한 거예요. 이런 시를 쓸 때는 그냥 나오는 건 아니거든요. 어떤 상황이 있는 거예요. 그 상황이 이 사람에게는 권세가 있고 부유한 사람들에게서 받는, 혹은 당하는 두려움 한편으로는 두려움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러움 이러한 것들입니다. 이것이 그에게 굉장히 힘들었던 상황이었을 거구요. 구체적으로는 우리가 잘 모릅니다. 부자가 이 사람을 조롱 했는지 권세 있는 사람이 이 사람을 여러 가지로 힘들게 했는지 구체적인 것은 나오지 않는데 어쨌던 그러한 상황이었습니다. 그 문제를 벗어나기 힘들었거든요. 결국 이 사람이 벗어났지요. 힘든 상황이었지만 벗어났습니다. 그 벗어나는 과정이 이시에 나타나 있고 어떻게 벗어 났는가하는 근본 이유, 설명 그런 것들이 시편 본문에 나와 있습니다. 굉장히 지혜로운 거지요. 지혜로움, 만약에 지혜로움이 없었다면 이 시인은 부러움과 두려움,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겁니다. 1절에서 4절까지 자기의 지혜를 들어 봐라 이렇게 서론적으로 운을 띄우는 그러한 내용이 있습니다. 모두 귀를 기울여라 하면서 2절에 보면 2. 귀천빈부를 막론하고 다 들을 지어다 이미 여기에서 이 사람이 말 하려고 근본들이 나타나 있습니다. 귀천빈부, 빈부귀천 이런 것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데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잖아요. 이것 때문에 우리가 사람같이 살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있구요. 인간관계가 다 허물해지기도 하고요. 비굴해지기도 하고 그러지 않습니까? 귀천빈부, 빈부귀천이요. 그걸 막론하고 다 들을 지어다 하는 거예요. 이미 이 사람은 빈부귀천 이러한 것들이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긴 있지만 그러한 것 하고는 차원이 다른, 어떤 것을 이야기하려고 하는 거지요. 이러한 말들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현실을 몰라서 그렇다 이 땅에서는 여전히 귀천빈부 이런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자식들도 귀하고 그리고 부자가 되기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공부시키고, 내가 고생된다고 하더라도 공부시키고 하는 거 아니냐, 대게 그러한 사람들이 그러한 귀한 사람 부자 권력이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모이게 되고 그게 살만한 인생이 아니냐 그렇게 말 할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그건 지혜가 아니다 거기에 완전히 몰두 되어 있으면 이러한 말들은 들어오지 않을 겁니다. 그래도 반복해서 듣게 되면 자신이 허상을 좇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이라도 알게 되겠지요. 이 사람이 자기 말에 귀를 기울이라고 하면서 조금 겸손하지 못한 그러한 태도를 보이긴 합니다

 

4절에 보면 이래요.4. 내가 비유에 내 귀를 기울이고 수금으로 나의 오묘한 말을 풀리로다 자기의 말을 오묘하다고 이야기하고 있잖아요. 이런 것들은 시인이 직접 썼다기보다도 후대에 첨삭에 의한 보충이 아닐까 하는 이런 생각이 들어요. 여기 시편 전체 나오는 것들이 처음 씌여질 그대로 있는 건 없습니다. 대개가 구전이었었구요. 그리고 문서가 있다고 하더라도 문서가 될 때까지 그 어떤 구전기간이 있었고 문서가 된 다음에도 또 첨삭 이런 것들은 계속 됩니다. 나의 오묘한 말을 풀리로다 정말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의 말을 오묘하다고 말은 잘 하지 않을 거예요. 예, 그거는 여기서 그리 중요하지 않고 후대에 어떤 사람이 이 시가 정말 우리들에게 지혜로운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 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됩니다. 5절에 그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5.죄악이 나를 따라다니며 나를 에워싸는 환난의 날을 내가 어찌 두려워하랴 두려워하랴 그러한 말들이 여기에 여러 번 반복되고 있습니다. 두려워하랴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지요? 그 말은 곧 굉장히 두려웠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자기가 당한 여러 가지 어려운 날들이 있었는데 그땐 두려움이 있긴 있었지만 이제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런 이야기지요. 상황은 비슷해도 두려워 할 수도 있고 두려워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삶이라고 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어떻게 본 다기보다도 우리가 어떻게 그것을 대하느냐에 따라서 똑같은 상황인데도 다르게 받아 드려지는 것 같아요. 뭐 제가 설명을 드릴 필요도 없습니다. 여러분들도 다 알고 있는 것이고 당연한 거기 때문에 말이지요. 간단하게 예를 들면 그렇습니다. 아프잖아요. 똑같이 치통을 앓는다고 합시다 정말 힘들잖아요? 치통을 앓아도 똑같은 건데 어떤 사람은 그래도 그걸 잘 견디고 아, 내가 이렇게 이가 아프다고 하는 걸 느끼는 것 자체가 살아 있다고 하는 것이구나 그렇게 하면서 그걸 사실로 그대로 받아 드리고 또 주어지는 대로 또 치료하고요. 그렇게 하는데 어떤 사람은 그걸 못 견디는 거지요. 내가 왜 이렇게 아픈가 그런 방식으로 자기 삶 전체가 허물어지는 그런 경험들을 합니다. 요즘 젊은 사람일수록 그러한 쪽이 많을 거예요. 작은 것도 크게 느끼는 거지요. 그거는 살아온 과정이 어떠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서로 다 힘든 가운데서 살았다고 한다면 왠 만한 힘든 건 이겨 나갈 수 있어요. 예, 그런데 힘들다 아니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늘 자기가 주인공처럼 생각되는 그러한 상황에 그런데 에 있으면 자기에게 다가오는 어려움들 자기가 작아지는 상황들 그런 것들 도저히 못 받아 드리거든요. 그러니까 이제 자식들도 하나둘 낳고 다 귀하게 키우고, 자기중심적으로 키우고 전부 아이들이 왕자병 공주병 이렇게 된다고 하잖아요? 삶을 참 받아 드리길 힘들 겁니다. 환상 가운데 머물러 있을 수 있지요. 예, 여기 시편기자가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제 자기는 그러한 경지에 도달했다는 걸 말합니다. 이제 그를 힘들게 했던 게 뭐냐 그를 두려워하게 했던 게 뭐냐 그게 6절에 나오는데요. 자기 재물을 의지하고 부유함을 자랑하는 자들 이었습니다. 참 옛날 시 인데요 이게 2천4백년이나 3천년 정도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천4,5백년 5,6백년 이게 수집 되어 가지고 시편이 한 묶음으로 된 거는 조금 후대 이긴 한데 대게 유대인 바벨론 포로 전후, 이후 그때 이러한 시편들이 많이 작성 되었습니다. 그런 것을 2천 4,5백년 5,6백년 전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똑 같은 것 같아요. 자기 재물을 의지하고 부유함을 자랑하는 것, 인간은 똑 같지 않습니까?

 

참 재미있어요. 인간이 재미있습니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모두가 다 똑 같은 걸 의지하고 똑 같은 걸 자랑한단 말 이예요. 혹은 그것이 없으면, 재물이 없으면 의지할 데가 없어서 허전해지고요. 또 부유하지 못하면 자랑 할게 없고 자기를 의지시키고 의지하고 자랑할 것을 끊임없이 찾는 동물이 인간이다 이렇게 말 할 수 있습니다.네, 옛날 사람들도 똑 같았군요. 7.아무도 자기의 형제를 구원하지 못하며 그를 위한 속전을 하나님께 바치지도 못할 것은 하나님께 속전을 못 한다 용서함 받는 것 돈을 드려서 하나님에게 용서함을 받지 못한다 그 이유는 8절입니다. 8.그들의 생명을 속량하는 값이 너무 엄청나서 영원히 마련하지 못할 것임이니라 네, 재물과 부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생명을 얻을 수는 없다. 얻기 위해서 치러야될 값이 엄청나기 때문에 평생 벌어도,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불가능하다 하는 말입니다. 재산이 많아봤자 수 십조원 수백조원정도 밖에 더 되겠어요. 예, 지금 다리 하나가 잘라졌다고 한다면 교통사고 나서 잘라졌다고 할 때 1조 들여 갖고 똑 같은 다리를 만들 수 있을까요? 인조다리는 할 수 있지요. 육백만 불 사나이라고 하는 옛날 그 시리즈 영화에서 인조로 더 띄어난 성능의 눈, 팔 이런 것들을 만들 수는 있었던 거 같아요. 그러나 실질적인 그러한 다리, 팔 이런 것들은 만들 수가 없습니다. 부분적인 지체도 그럴 텐데 생명 전체를 이야기 하게 된다면 그건 정말 말이 안 되는 거지요. 9절에 보면 9. 영원히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인가 결국 죽는다 이걸 막을 수가 없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건 안 된다 재물을 의지하고 부유함을 자랑하는 사람들도 여기서는 어쩔 수 없다 그 이야기지요. 그 뒤로 그 설명이 나오고 있습니다. 10절에 이렇습니다.10.그러나 그는 지혜 있는 자도 죽고 어리석고 무지한 자도 함께 망하며 그들의 재물은 남에게 남겨 두고 떠나는 것을 보게 되리로다 예,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가져 갈수 없다고 하는 사실을 보게 된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이거는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이야기인데 듣긴 들었지만 알고 있긴 하지만 인정하고 싶지는 않은 거예요.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인정하긴 하지만 그대로 살기에는 좀 힘든 겁니다. 모두가 다 모든 걸 남겨 두고 가져가지 못한다고 하는 그런 같지요? 11절에 보면 더 재미있는 표현이 나와요.

 

11.그러나 그들의 속 생각에 그들의 집은 영원히 있고 그들의 거처는 대대에 이르리라 그들의 토지를 자기 이름으로 부르는 도다 자기의 이름으로 등기등분을 만들어 놓으면 참 그게 의지할 만하다고 생각이 되는 거거든요. 10만평, 20만평, 그렇게 해서 골프장을 만들 수가 있고 수목원도 만들 수도 있고 자기 자식에게 물려 줄 수도 있고 그러한 생각으로 우리는 자기 이름으로 자기 땅, 자기 예금증서 그러한 것에 흐뭇 해 하고 그걸 의지하고 그걸 자랑하며 삽니다. 그런데 이게 시편 기자의 말에 의하면 어리석은 거지요. 어리석음, 왜 어리석냐 하면 이미 앞에서 나왔고 14절부터 계속 이야기 하고 있는데, 결국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한다고 하는 죽는다고 하는 거지요.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다고 하는 거지요. 14절에서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리석은 사람들이지요? 재물을 의지하고 부유함을 자랑하는 자들이지요? 그들은 양 같이 스올에 두기로 작정되었으니 양 같이 라고 하는, 갑자기 왜 양이 나왔을까요? 이게 소, 염소 양 할 때 그 양을 이야기하겠지요? 제가 요거를 확인하지 못했는데요. 아마 다른 뜻은 없을 것 같습니다. 왜 하필이면 양 같다고 했을까요? 이건 여러분들이 한번, 관심이 있는 분들은 연구해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양같이 스올에 두기를 작정하였으니 사망이 그들의 목자의 것이라 아, 목자라고 하는 표현, 음.. 그것 때문에 양이라고 하는 말을 썼군요. 그러니까 실제적인 그 짐승인 양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사람이 이미 앞에서 4절에 내가 비유에 내 귀를 기울이고 이렇게 이야기 했잖아요? 비유로 말한다고 하는 거니까 이 양도 비유입니다. 목자라고 하는 말을 하기 위해서 양이 스올에 갔다고 하는 그런 표현을 한 거예요.

 

14.그들은 양 같이 스올에 두기로 작정되었으니 사망이 그들의 목자일 것이라 정직한 자들이 아침에 그들을 다스리리니 그들의 아름다움은 소멸하고 스올이 그들의 거처가 되리라 스올, 음부, 지옥 이런 어두운 곳, 그런 걸 가리키는 건데요? 스올에 가게 된 양처럼, 어리석은 자들이 거기에 가서 죽음이 그들의 목자 노릇을 한다고 하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예, 이건 뭐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죽는다고 하는 것, 거기서 아름다움을 모두 잃어버리는 거지요. 어리석은 자들은 그런 거예요. 어리석은 자들은 바로 재물을 의지하고 부유함을 자랑하는 자입니다. 그런데 15절부터 시편 기자가 이제 자신을 이야기 하는 거예요.15.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스올의 권세에서 건져 내시리로다

스올, 땅 깊숙한 곳, 죽은 자 들이 가야 될 곳, 늘 캄캄한 곳, 그러한 사망, 이 스올도 그러니까 이게 비유지요. 누가 갔다 왔다 왔습니까? 이건 죽음의 상태를 표현하는 거라고 할 수 있어요. 스올의 권세, 사망의 권세지요? 여기로부터 하나님이 나를 건져내신다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들은 여전히 그 스올 에서 사망이 그들의 목자 역할을 하는, 그러한 상태로 머물러 있고 그리고 이 사람, 이 시인은 예, 그 반대지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지요. 왜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냐면 재물을 의지하지 않고 부유함을 자랑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 무슨 말씀인지 잘 전달되지요? 이것에 대해서도 설명을 좀 하고 싶긴 한데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재물과 부유함, 혹은 권세와 더불어서 이러한 묶음들이 앞서 이야기한 대로 고대사회나 지금이나 우리의 삶들을 완전히 딱 틀어잡고 있잖아요? 거기에 완전 묶여 있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고 그럼 지혜로운 사람은 거기에 묶여 있지 않다고 하는 거지요? 여전해 재물도 필요한데 거기에 그걸 의지하는 거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하고의 차이가 있는 거지요? 이 사람, 시인은 아, 예, 그러한.. 이렇게 바꿔서 이야기를 해야 되겠군요. 그러니까 어리석은 사람은 재물과 부유함에 완전히 의존해서 사는 사람이지요? 그러니까 이 땅에 대한 미련이 너무 많은 거지요? 그것을 더 성취해야 되고 더 부풀어 나가야 되겠지요? 지혜로운 사람은 그러한 욕망에 미련이 없는 거지요. 말하자면 지혜로운 사람도 먹고 살아야 되니까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대해 생명을 거는 게 아니지요. 아, 그렇게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거기에서 생명을 확인 하는 게 아니지요. 건강하고 오래살고 재물이 많고 내 이름으로 된 땅 문서들이 많고 그러한 것들에 자기의 생명을 쏟아 붓지 않지 않는 거지요. 그러니까 이게 지혜로운 사람, 그럴 때만 인제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능한 겁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스올의 권세에서 건져 내신다고 하는 그러한 오늘 시편 기자의 진술과 연결 되는 거지요. 두 가지를 비교해서 여태까지 설명을 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과 시편 기자처럼 어리석지 않은 사람이 어떤 차이가 있느냐 하는 거지요. 그러면서 이제 훈계를 더 합니다. 이 사람이 지혜를 주는 거니까요. 사람들이 이렇게 훈계를 합니다.

 

16. 사람이 치부하여 그의 집의 영광이 더할 때에 너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예,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는 그걸 두려워하잖아요? 부러워하기도 두려워하기도 하지요. 부자, 그래서 떵떵 거리는 사람들, 정말 그건 두려울 수도 있습니다. 부러울 수도 있는 거지요. 그런 치부, 부가 많아지게 되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고요. 실제적으로 우리의 삶들을 이렇게 흔드니까 두려워 할 대상이긴 합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라는 거예요. 이게 가능할까요? 가능하지요. 가능하지 않을 리가 있습니까. 가능하지 않다면 기독교 성서신앙은 무의미한 거지요. 하나님을 믿는 다고 하는 아무 명맥이 없는 거지요.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지금 이 시편 기자는 계속해서 죽음의 문제를 이야기 하고 있거든요? 하나님 앞에 바로 선다고 하는 것은 이 죽음에 직면하는 건데요.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지요. 보세요.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음이 가벼운 거지요. 그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보세요. 내일, 나와, 내가 죽는다고 합시다. 그리고 나하고 전혀 다른 사람, 그 사람 아주 열심히 노력해 갖고 돈도 많이 벌고 크게 출세한 사람이라고 합시다. 이제 모든 삶을 거기에 올인 하는 그런 사람이라고 합시다. 나는 그렇지 않고 성실하게 일하지만, 주어지는 대로 살고 하나님의 그런 말씀과 약속, 거기에 내 마음의 무게를 두고 살았다고 합시다, 내일 인제 다 죽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누가 더 안타깝겠어요. 그는 평생 그 권세 돈, 명예 이런 것들에 사생결단하고 매달린 사람들이 더 억울할 겁니다. 그렇게 해 봐야 그것 가져가지 못하니까요. 아예 그런 것은 매달리지 않은 나는 억울할 게 없는 거지요. 이런 차이가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거지요. 이것은 뭐 두렵지만 그것을 두렵지 않은 척 하지 하려고 내 관심을 다른 데 돌리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시편 기자가 이야기 하고 있는 이 이야기는 가장 빼도 박을 수 없는 인간의 실존적인 운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7절에 그렇게 이야기하잖아요.

 

17.죽으매 가져가는 것이 없고 누가요. 치부하고 영광을 가진 사람들이예요. 가져 갈 것이 없고 그의 영광이 그를 따라 내려가지 못 함이로다 예, 이걸 목회 쪽에 연결시켜서 말하면 그렇습니다. 수만 명 목회한 목사나, 몇 십 명 목회한 목사나 사실은 그것 갖고는 하나님 나라에 가서 그걸로 평가 받겠어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게 적당한 비유는 되지 않을 것 같아요. 이거 두 개 다 큰 목회를 하거나 작은 교회를 하거나 이건 다 치부나 재물하고는 상관이 없는 거니까요. 두 개 다 치부, 명예 재물을 의지하는 것 그런 것대로 살지 않아야 된다고 하는 사실로 가는, 하나님 나라의 운동이기 때문에 이게 적당한 비유가 아니긴 합니다마는, 그러나 그냥 현실적인 교회를 두고 말씀 드리는 거예요. 원칙적으로는 이제 비유가 안 되지만 현실적으로는 목회에 매달리는 그러한 목사님들이 제법 있으니까 말이지요. 목회 성공했다 큰 종이다 그런 표현들도 있고 말이지요. 실제적으로 한국교회 안에서 큰 교회를 해야만 발언권이 있고 뭐 그런 걸 놓고 본다면 비유가 될 수 있습니다. 아주 큰 목회를 해서 그게 정말 자기 자랑거리가 되는 목사가 한 사람 있고 그런 것 없이 마음 비우고 성실하게 작은 교회라든지 뭐 그렇게 한 사람과, 두 사람이 가 지금 눈앞에 왔을 때 누가 더 섭섭하겠어요? 큰 교회를 놓고 가야 될 그 사람이 더 섭섭한 겁니다. 이게 영혼이 죽는 길이거든요. 아무것도 우리는 가져가지 못 한다. 18.그가 비록 생시에 자기를 축하하며 스스로 좋게 함으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지라도 덕을 베풀고 좋은 일을 많이 한다 하더라도,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았다 하더라도

 

19. 그들은 그들의 역대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영원히 빛을 보지 못 하리로다 다 역대 조상들에게로 돌아간다. 이 세상에 있는 것에 전적으로 매달린 사람들은 그렇다. 거기까지입니다. 20절은 앞에 있는 이야기가 다시 반복된 거구요. 20.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예, 어리석은 사람들은 짐승과 같다 똑 같이 죽으니까요.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빛 이런 것들을 모르고 그냥 여기서 욕망의 노예처럼 살다가 덜컹하고 모든 것을 손 놓고 죽어야 되니까 마찬가지 아니냐 그런 이야기입니다. 오늘 49편 잠시 우리가 보았습니다. 제목을 제가 따로 잡지 않았는데요. 공부를 끝내면서 문득 떠오릅니다. 시작할 때도 할 말씀 드린 그것이 제목이라고 하면 될 것 같네요.“두려움과 부러움을 넘어서” 이렇게 하면 될지 모르겠군요. 예, 그게 쉽지는 않습니다. 계속 우리는 부러워하고요. 재물을 많이 가진 사람들, 명예를 가진 사람들, 그리고 두려워합니다. 그러한 힘들을 두려워합니다. 오늘 시편 기자는 또 그러한 두려움과 부러움을 겪었어요. 그러나 새로운 영적 시각을 갖게 되니까 이제 내가 왜 두려워하랴, 이렇게 고백하는 단계가 되었습니다. 우리 영적시각을, 이 시인에게서 좀 배워서 그런 정도의 경지로 올라서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예, 고맙습니다.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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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6]사띠아

2009.04.05 11:19:01
*.162.136.252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 운동에 몰두해야할 이유가 분명하군요.
죽음이 두렵지 않고 오히려 기대되고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프지 않는
실존의 변화를 가져오는 군요.

라라집사님.
애쓰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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