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샘터교회 수요성경공부 게시판

64편 녹취록-여호와로 인한 즐거움

조회 수 1538 추천 수 0 2009.08.25 21:43:54

시편 64편 강해-여호와로 인한 즐거움

 

시편 64편입니다. 1절에서 10절까지의 이제 말씀을 제가 받들어 읽겠습니다.

 

1.하나님이여 내가 근심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원수의 두려움에서 나의 생명을 보존하소서

2.주는 악을 꾀하는 자들의 음모에서 나를 숨겨 주시고 악을 행하는 자들의 소동에서 나를 감추어 주소서

3.그들이 칼 같이 자기 혀를 연마하며 화살 같이 독한 말로 겨누고

4.숨은 곳에서 온전한 자를 쏘며 갑자기 쏘고 두려워하지 아니하는도다

5.그들은 악한 목적으로 서로 격려하며 남몰래 올무 놓기를 함께 의논하고 하는 말이 누가 우리를 보리요 하며

6.그들은 죄악을 꾸미며 이르기를 우리가 묘책을 찾았다 하나니 각 사람의 속 뜻과 마음이 깊도다

7.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을 쏘시리니 그들이 갑자기 화살에 상하리로다

8.이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지리니 그들의 혀가 그들을 해함이라 그들을 보는 자가 다 머리를 흔들리로다

9.모든 사람이 두려워하여 하나님의 일을 선포하며 그의 행하심을 깊이 생각하리로다

10.의인은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그에게 피하리니 마음이 정직한 자는 다 자랑하리로다

 

아멘! 성서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이 64편은 제의(祭儀)공동체에서 불려진 그러한 찬양시라고 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64편의 개인적인 성서기자, 이 시편기자의 생각이 들어 있지요. 그러나 이것은 개인기도라기보다도 다 함께 하나님 앞에서 제사 드리는 그 자리에서 낭독된 말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말씀들이 시편에는 곳곳에 있지요. 어쩌면 시편 전체가 그 제의공동체에서 낭독된 그러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부분은 더 전문적인 것이기 때문에 제가 그걸 전공하지 않은 사람으로, 그리고 그것에 대한 충분히 준비를 하지 않은 가운데서 확증적으로 말씀 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상식적인 그러한 차원에서 볼 때 이 시편이 개인의 신앙에서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공동체에 의해서 가감 편집되었다고 볼 때, 결국은 제 2공동체의 성격을 모두 갖고 있다고 말 할 수 있는 거지요. 공동체 전체, 이 공동체라고 하는 것은 유대인들이지요. 네, 이스라엘 사람들이요. 이스라엘의 많은 그러한 역사적 경험을 한, 공동으로 그러한 경험을 한 사람들의 신앙에서 나온 그런 찬양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네, 그런 문제들이 시편을 읽는데 뭐가 중요한가, 그냥 말씀만 읽고 은혜를 받으면 되지 않냐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겠어요. 뭐 크게 틀렸다고 말 할 수 없지만 이 텍스트가요. 성서도 텍스트지 않습니까? 그 텍스트를 형성되는데 역사적 배경이 있는 거거든요. 이게 뭐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니까요. 제가 자주 드리는 말씀이지요? 분명하게 역사적 배경, 성서학에서 말하는 삶의 자리 이런 것들을 놓고, 만들어진 텍스트이기 때문에 그런 배경들을 우리가 아는 게 이 텍스트를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요소인 거예요. 공동제의, 제의공동체, 제의는 공동으로 드리는 거니까요. 공동체, 제의 공동체, 공동적제의, 모두 통하는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말씀이 제의적 공동체에서 낭독되었다는 그 말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전제하는 거예요. 이 내용은 이미 이렇게 기도한 사람의 기도내용이 간구가, 성취된 것이 확인된 그러한 배경을 두고 있다고 하는 거지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냥 하나님께 무조건 기도한다가 아니라 이미 기도한 내용이 확인된 다음에 다 검증을 마친 상태에서 이 공동체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면서 부른 찬송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건 확실한 거지요. 실증이 있는 이야기들인 거지요. 네, 1절 다음과 같습니다.

 

1절과 2절이 같이 연관되는 이야기예요. 다시 말씀 드립니다. 이것을 예배드리는 자리에서 한 사람이 혹은 몇 사람이 혹은 성가대가 아니면 회중 전체가 낭독하고 있다는 느낌으로 읽으시기 바랍니다. 1.하나님이여 내가 근심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원수의 두려움에서 나의 생명을 보존하소서 시편은 늘 그러한 것들을 배경에 두고 있어요. 원수들 말입니다. 원수들에게 당하는 억울한 일들 견딜 수 없는 어떤 두려움들, 그런 것들을 배경에 놓고 있습니다. 이것도 여전히 그렇지요? 원수의 두려움에서 나의 생명을 보존 하소서 이렇게 기도를 합니다. 앞에서 말씀 드렸듯이 이미 그 사람의 생명이 보존된 것을 확인한 상태에서 부르는 찬양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2.주는 악을 꾀하는 자들의 음모에서 나를 숨겨 주시고 악을 행하는 자들의 소동에서 나를 감추어 주소서 네, 1절과 2절이 똑 같이 원수들, 그리고 악을 꿰하는 자들에게서 보호해 달라고 하는 간구입니다. 3절, 여기서부터 인제 악을 꿰하는 자들의 실체가 뭐냐 하는 것들이 설명됩니다. 3.그들이 칼 같이 자기 혀를 연마하며 화살 같이 독한 말로 겨누고 표현이 대단히 문학적이기도 하고 리얼하지요? 혀를 칼 같이 연마 한다 얼마나 날카로운지 어떻게 사람을 해하는지 얼마나 심하게 사람을 파괴하는지 칼 같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혀와 칼, 이게 앞에서도 어떤 시편에 나온 그러한 이야기들이에요. 혀가 왜 칼 같다고 하느냐 하는 것은 제가 설명 드릴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화살 같이 독한 말로 겨눈다고 하네요. 칼 같은 혀, 화살 같은 말, 두 개 다 고대인들에게 아주 큰, 결정적인 무기잖아요? 이것은 상대방을 거꾸러뜨리려고 할 때 사용하는 무기란 말입니다. 혀와 말, 말이지요. 네, 인간의 말이 사람들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오늘 여기 시편기자가 이야기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잘 알고 있지요. 보통 우리는 실제로 어떤 사람을 사기 치거나 실제적으로 육체적인 위해(危害)를 가하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크게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거예요. 예, 그거는 잘못된 생각이지요. 우리 말이 얼마나 심각하게 어떤 사람을 파괴하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겠습니다.

 

4.숨은 곳에서 온전한 자를 쏘며 갑자기 쏘고 두려워하지 아니하는도다 네, 재미있는 표현입니다. 숨어 있어요. 이런 사람들은요. 언제 나타나서 어떤 일을 할 지를 사람들을 눈치 채지 못하는 거지요. 숨어 있는 곳에서 갑작스럽게 아주 갑작스럽게 나타나서 온전한 자를 쏜다고 하네요. 더군다나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요게 맞는 이야기일까요? 틀린 말일까요? 일반적으로는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어떤 사람을 함정에 빠뜨리거나 잘 못하게 할 때 양심의 가책 같은 것을 받지 않습니까 그렇잖아요? 일반적으로 그렇습니다. 그런데 여기 4절에 이야기 하는 이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하였어요. 그러니까 이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네요. 양심이 무딘 그런 사람이라기보다도 굉장히 자기 합리화에 빠른 사람이라고 할까요? 아니면 남이나 자기나 그 행동을 잘 못이라고 말 할 수 없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거 있지 않습니까? 겉으로 상당히 부드럽고 괜찮은 그러한 말을 하지만 그 안에 독이 있고 화살처럼 상대방이나 혹은 그 누구를 상해를 입히는 그런 말들 있잖습니까? 뭐 그러한 경우에 해당 되겠지요. 이건 겉으로는 오히려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그러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목사라고 해도 될까요? 네, 목사는 설교할 때 사명감으로 하지 않습니까? 자기 말이 신자들의 영혼을 찌르고 상처를 낸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말하는 거니까요. 네, 이런 일들은 아주 흔하게 일어납니다. 강단에서, 예를 들자면 동성애자들을 가리켜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다거나 에이즈가 동성애자들을 위한 심판이다 그러한 말들을 주저 없이 하거든요? 그리고 좌파라는 말도 강단에서 쉽게 행해지지 않습니까? 이건 빨갱이하고 비슷한 말이구요. 그리고 그건 적그리스도하고 비슷한 말들이잖아요? 강단에서 쉽게 아주 구체적인 사람들을 향해서 좌파, 빨갱이 적그리스도 뭐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그들은 그렇게 말을 하고도 전혀 양심의 거리낌이 없을 겁니다. 그건 자기들이 하는 말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요..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은 그 사람이 비인격적이라거나 비양심적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예요. 자기 의가 강한 거지요. 자기의요. 복음서에 나오는 바리새인 같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확신범이지요. 말하자면 그러니까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자기들의 행위가 다 의로운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요. 그러니까 그러한 일들을 하는 겁니다. 지난 2000년 동안 기독교 역사에서도 그런 일들이 벌어 졌거든요, 뭐 최근까지 그렇지 않습니까? 미국이 21세기 들어서 초입에 911테러 사건이후로 이라크 침략을 했구요. 그 당시 대통령인 부시는 백악관에서 목사들 데려다가 기도하고 전쟁을 일으키죠. 사명감으로 했거든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까 본인들의 하는 일이 의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말들이 혹은 행동이 온전한 자를 숨은 곳에서 쏘고 하는 거라고 하더라도 결코 자기가 이 사람들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고 하는 겁니다. 물론 제가 뭐 몇몇 사람들만 지칭해서 드리는 말씀은 아니구요. 그거는 저에게서도 그런 일들이 벌어 질 수 있습니다. 5절 여기 이렇게 얘기 합니다.

 

5.그들은 악한 목적으로 서로 격려하며 남몰래 올무 놓기를 함께 의논하고 하는 말이 누가 우리를 보리요 하며 재미있는 표현이네요. 악한 목적으로 서로 격려한다. 네, 노골적으로 악한 일을, 악한 목적으로 서로 격려하는 그러한 일들은 덜 위험합니다. 오히려 그렇습니다. 그건 스스로가 옳지 않다고 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옳다고 생각하면서 서로 격려하고 올무 놓는 일들 그런 것 또 음모를 꾸미는 일들 예, 이건 더 위험한 거지요. 그것은 바로 제가 앞에서 말씀 드린 대로 자기의가 거기 작동하기 때문에 이렇게 돌이킬 가능성이 별로 없는 겁니다. 이러한 문제들이 이상한 사람들에게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아셔야 되요. 예, 이 5절에 나와 있는 이러한 표현의 끝 부분에 보면 누가 우리를 보리요 얘기 한다고 합니다. 누가 우리를 보리요, 아무도 볼 사람이 없어요. 그러니까 얼마든지 악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예, 요즘 제가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짜투리 시간으로 보는 책이 있습니다. 제목이 다음과 같습니다. 『불멸의 신성가족』이에요. 쓴 사람이 김두식교수입니다. 부제로는 다음과 같은 게 달려 있어요.-대한민국 사법 패밀리가 사는 법, 예, 한 반 정도 읽었는데요. 참 재미있습니다. 한국의 판사 검사 그리고 옷을 벗고 나간 변호사들 사이에 벌어지는 어떤 컨넥션들에 대한 그 속이라고 할까요? 예, 그런 이야기예요. 예, 드라마에 나올 만한 이야기들이 여기 잘 나와 있더군요. 그러니까 변호사가 검사와 판사를 찾아가서 특별한 경우에는 돈을 주기도 하고 뭐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서로가, 판사가 판사에게도 그렇고 검사와 검사끼리라든지 인간관계로 결탁되어 있다는 겁니다. 이건 아주 노골적으로 파렴치한 뇌물사건하고는 상관없이요. 그들은 한 가족이라고 하는 그런 정서가 아주 강하다고 하는 거지요. 사법고시를 패스한 사람들이라고 하는 아주 곤고한 단합된 마음들이 거기 작동하기 때문에 이 법에 관계된 것들을 독점하고 있는 이 사람들 사이에서 문제가 많이 일어 날수 있다고 하는 거지요. 네, 여기 책에서도 제가 아까 드린 말씀하고 비슷한 말들이 나오는데 그러니까 뭐 판사 검사 변호사 개인적으로 부도덕해서가 아니라 어떤 청탁문화 어떤 분위기에 아주 당연시 되는 관례 그런 것들이 거기 작용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전혀 양심에 가책을 느끼지 않으면서 하는 행위들이 결국은 이 사회를 총체적으로 불의하게 만드는 단초가 되는 거지요. 누가 우리를 보리요.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은밀한,그러나 양심적으로 별로 가책을 받지 않는 일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오늘 여기 64편의 시편이 이야기 하고 있는 그 원수들, 악한 일을 도모하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그렇게 먼 이야기는 아니다 그 얘기지요.

 

6.그들은 죄악을 꾸미며 이르기를 우리가 묘책을 찾았다 하나니 각 사람의 속 뜻과 마음이 깊도다 네, 악한 일을 꾸미면서 묘책을 찾았다고 이렇게 소리를 치네요. 네, 이러한 행동들을 보고 시편기자는 이렇게 한탄합니다. 각 사람의 속뜻과 마음이 깊도다 악을 꾸미는 데도 아주 교묘한 거지요. 거기에 머리가 잘 돌아 가는 거지요. 그렇게 인간은 악한 쪽으로도 굉장히 깊이 있게, 표현이 정확하지 않는데요. 그런 쪽으로 영악하게 잘 움직인다고 하는 말이지요. 예, 여기까지만 본다면 참 인간 삶이라고 하는 게 인간들이 모여 사는 사회라고 하는 게, 참담하지요. 그러나 7절부터 전혀 새로운 시각이 열립니다. 악을 도모하는 사람들의 “옳다구나 이러한 기발한 생각을 누가 할꼬?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다 묘책을 찾았다.” 이렇게 굉장히 뿌듯하게 생각하고 그렇게 음모를 꾸미고 하지만 그러나 그게 다 말짱 다 헛일이다 그 얘기지요. 이렇게 말합니다. 7.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을 쏘시리니 그들이 갑자기 화살에 상하리로다 하나님이 그들을 쏘신다고 하네. 예, 이게 무슨 뜻일까요? 악한 사람들이 악을 행하는 만큼 벌을 받는다는 이야기일까요? 64편은 이미 기원이 성취 된 걸 전제한데서 나온 제의공동체 찬양이라고 하는 점에서는 그렇게 볼 수 있지만 그러나 실제 삶에서는 꼭 그런 것은 아니지요. 악한 사람들이 늘 악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니더라구요. 겉으로 드러나기에는 그렇습니다. 오히려 정 반대의 경우도 있지요.

 

오늘이 이제 8.15인데요. 예, 그러니까 일제 시대 때에 항일 운동하던 사람들의 후손들은 다 어려워지고 당사자들은 말할 것 없고요. 후손들까지 힘들어진 반면에 친일했던 사람들은 천수를 다 누리기도 하고요. 후손들도 잘 되는 경우도 많이 있었습니다. 예, 그런걸 놓고 볼 때는 악을 꾸민다고 하는 사람들을 쏘신다고 하는게 언제나 들어맞는다고 하는 이야기는 아니지요. 그러나 이런 관점으로부터 생각해 볼수는 있습니다. 비록 겉으로 평안하게 잘 산 것 같지만 그러나 결국은 그들의 영혼이 허물어 질 수 있는 거거든요. 그거는 제 3자가 판단하기는 힘듭니다. 그걸 숨기고 사는 거거든요. 우리가 성서의 말씀을 옳다고 믿는다면 하나님이 그들을 쏜다고 하는 말도 우리가 받아 들여야지요. 다만 그게 쫄딱 갑자기 망한다거나 죽을병이 걸린다거나 사고를 맞는다거나 뭐 그러한 방식으로만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사람은 아무리 모든 일들이 잘 되는 것 같아도 영혼이 허물어질 수 있거든요 그게 가장 불행한 거 아니겠습니까 예, 우리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결국 이 세계가 악에 의해서 움직이는 게 아니라는 그러한 믿음을 갖고 있어요. 이건 아주 틀림없는 겁니다. 물론 우리가 살아가면서 악의 종횡무진이라고 할까요? 악한 행위들의 그러한 것들을 우리가 많이 보긴 하지만, 도저히 이 세상은 하나님이 아니라 오히려 악이 통치하는 게 아닌가 그러한 생각이 들 때가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믿음을 갖고 있어요. 고 긴장을 우리가 잘 살펴야 합니다. 악이 통치하는 것 같은 그러한 현실이지만 그러나 결국 하나님이 온전히 독점적으로 통치한다고 하는 사실 안으로 들어가야 되는 거지요. 그게 가능하지요.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 하는 것을 길게 설명해 드리진 않겠습니다. 앞에서도 몇 번 공부한 내용이니까요. 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예수님의 십자가만 생각해 보실까요? 그건 분명히 악의 승리예요. 그러나 그 악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때 까지만 자기들의 힘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으로 자기들이 승리한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예수님을 부활의 생명체가 되시게 하셨단 말입니다. 전혀 질적인 다른 차원으로 하나님께서 행위 하시는 거지요. 하나님의 구원은 그렇게 질적인 차이가 있는 겁니다. 이런 말들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너무 관념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어요. 그거보다도 당장 이 땅위에 정의를 세워야 되고, 잘 못 된 것은 때려 부셔야 되고 아, 그래야지 그게 하나님이 살아 있다는 증거가 되는 거지 되지 뭐 의로운 사람 죽을 때까지 생고생 하게 하고, 죽은 다음에 뭐 어떻게 잘 되는 거, 그건 정말 역사에 대한 책임감이 없는 소리다 그렇게 생각할 분들도 있을 겁니다. 네, 거기서 기독교 신앙의 영성이 좀 더 필요합니다. 우리가 이 땅위에서의 삶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육신이 허물어지는 것에 한정된 악의 행위에 우리가 완전히 굴복당할 수는 없는 거거든요? 결국 이러한 문제들도 생명이 뭐냐 하는 그러한 근본적인 하는 질문하고 연관되어 있습니다. 예, 조금 이웃가지에 이르는 생명을 다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거 하고 살아 있을 때만의 그러한 생명만을 삶이라 이해하는 거하고는 차이가 있는 거지요. 이 두 가지 삶을 제가 이원론적으로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땅위에서 삶과 죽음 이후에 그러한 것들이 딱 끊어져 갖고 전혀 다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여기 현실의 삶에 죽음 이후에 우리가 얻게 될 그러한 영혼의 생명이 어떤 방식으로든지 개입되어 있거든요. 예, 그건 우리가 모르는 방식으로 생명은 아주 통전적이라고 할 수 있는 거예요. 예, 그런 쪽으로 우리 생명의 지평을 넓혀가지 않으면 이러한 죄악과 의의 갈등 문제들, 무지한 자의 고난이라든지 신앙인들의 어떤 삶의 방향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해명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걸 해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성서가 그러한 깊은 차원을 이해하기 때문에 거기를 따라가고 있을 뿐이지요.

 

8.이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지리니 그들의 혀가 그들을 해함이라 그들을 보는 자가 다 머리를 흔들리로다 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바로 그런 거지요. 칼과 같이 남을 찌르는 혀, 화살의 독과 같이 누구를 병들게 해야만 그런 것이 오히려 자기들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혀가 그들을 해하리라 모순이죠 모순이라는 말이 여기 해당되나요? 자기가 놓은 올무에 자기가 빠지는 겁니다. 이건 틀림없는 이야기지요. 참된 것이 아닌 그러한 말은 결국은 자기 영혼을 훼손시킵니다. 그건 누가 인정해 주고 인정해 주지 않느냐에 상관없이 자기가 행한 말 그것이 자기를 판단하는 거죠. 9.모든 사람이 두려워하여 하나님의 일을 선포하며 그의 행하심을 깊이 생각하리로다 이런것이 제의적 공동체 찬양입니다. 아주 확연하게 드러나는 거죠. 하나님이 우리 생각을 뛰어 넘어서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화살 쏘는 사람들을 그들를 쏘고 그들을 엎드러지게 하고 그들의 혀가 그들을 상하게 하는 그런 일을 하시니까요. 사람들이 두려워 할 수 밖에 없는 거지요.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10.의인은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그에게 피하리니 마음이 정직한 자는 다 자랑하리로다 예, 이렇게 시편기자가 함께 부르는 제의 찬양을 노래했습니다. 예, 귀한 말씀이죠. 이게 아, 고대 유대인들의 찬양이다 고런 정도로 끝나지 말고 우리의 현재 영성을 풍요롭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건 틀림없는 거예요. 결론에 마지막 절을 다시 보세요. 의인이 즐거워한다고 하는데, 이건 자기당착 자기도취를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거는 하나님을 통해서 즐거워하는 거거든요? 이것도 하나님께 일치 되었을 때 때 가능하거든요? 그러한 영적인 경지가 오늘 여기 64편을 같이 읽고 공부한 우리 모두에게 함께 하기를 바라겠습니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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