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샘터교회 수요성경공부 게시판

3편 녹취록-아침기도

조회 수 2011 추천 수 0 2010.01.05 03:39:59

시편 강해 3편-아침기도

 

시편 3편입니다. 1절부터 8절까지 이 말씀을 저와 여러분이 교독하겠습니다.

 

〔아들 압살롬에게 쫓길 때에 읊은 다윗의 노래〕

1.    야훼여! 나를 괴롭히는 자 왜 이리 많사옵니까?

       나를 넘어뜨리려는 자 왜 이리 많사옵니까?

2.   너 따위는 하늘마저 버렸다고

     빈정대는 자 또한 왜 이리도 많사옵니까? (셀라)  

3.    그러나 야훼여! 당신은 나의 방패,

       나의 영광이십니다. 내 머리를 들어주십니다.  

4.   나 야훼께 부르짖으면

     당신의 거룩한 산에서 들어주십니다. (셀라)

5.   자리에 들면 자나 깨나

      야훼께서 이 몸을 붙들어주십니다.

6.  적들이 밀려와 에워쌀지라도

     무서울 것 하나 없사옵니다.  

7.   야훼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느님, 구하여 주소서.

      당신은 내 원수의 턱을 내리치시고

      악한 자의 이빨을 부수시는 분,

8.  야훼여, 승리는 당신께 있사오니

    당신 백성에게 복을 내리소서. (셀라)

(공동번역)

 

<참고> 개역개정

시편 3편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사롬을 피할 때에 지은 시〕

1.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나이다

2.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셀라)

3.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나이다

4.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셀라)

5.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6.천만인이 나를 에우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7.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8.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셀라)

 

아멘! 이 시편 3편을 주석한 어떤 구약학자는 이 시편의 3편의 제목을 “아침기도” 이렇게 정했습니다. 아침기도, 아침에 일어나서 드리는 기도라고 하는 뜻이겠지요. 네, 그런 것을 머리에 두시고 한 절 한 같이 나누어서 우리가 생각하겠습니다. 여러분 가지고 있는 성경에 이 3편에 제목을 그렇게 정했지요. “아들 압살롬에게 쫓길 때에 읊은 다윗의 노래”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나중에 어떤 사람이 시편을 정리하면서 붙인 제목입니다. 이 압살롬에게 다윗이 쫓겼다고 하는 이야기는 인제 구약 사무엘하에 나오지요? 제 기억에는 그렇습니다. 아들이 반역을 저지른 거예요. 거기에는 우여곡절이 많이 있습니다. 압살롬이 둘째 아들 정도 되는데, 잘 생기고요. 그 이야기는 제가 다 하지 않겠습니다. 아들에게 반역을 당했을 때 아버지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그리고 이 압살롬을 이 아버지 다윗이 큰 잘못을 아들이 했을 때 용서해 주기도 하거든요? 아주 배은망덕하게 그러한 일을 저지른 겁니다. 쫓겨 갈 때 마음이 참 괴로웠겠지요. 이 압살롬은 다시 그 다윗의 장관의 요압에 의해서 죽었습니다. 기억하시지요? 압살롬이 참 잘 생겼다고 그래요. 머리카락이 얼마나 좋은지 여기에다가 장신구를 넣고 했다고 합니다. 도망가다가 머리카락이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걸려 있다가 체포당해서 죽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제목은 일단 아들 압살롬에게 쫓길 때 읊을 때 노래 이렇게 정했습니다마는 이것이 과연 다윗이 정말 그 아들에게 쫓길 때에 읊은 노래냐 에 대한 것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 시편 내용이 그렇게 상대의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의 입장을 말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뭐 그런 정도의 유추해석으로 그런 제목을 정했습니다. 꼭 이게 다윗의 그런 형편에 의한 시라고 이해해도 좋고 그렇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이 제목자체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내용에 들어가면 이렇습니다.

 

1절에 보면 야훼 하나님에게 탄원을 드렸지요? 나를 괴롭히는 자가 왜 이렇게 많고 넘어뜨리는 자가 왜 이렇게 많냐 하는 겁니다. 사면초가에 빠진 이 시인의 입장을 우리가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이 정말 어떤 어려움에 빠졌는지는 구체적으로 여기서 설명하고 있지 않고 있기 때문에 잘은 모릅니다. 그건 아마 감당하기 정말 힘든 그런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것은 우리가 더 이상 내용은 모르니까 접어 두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우리는 이러한 1절을 보면서 기도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호소이고 탄원이고 그런 것들이지요. 이런 기도는 절망 상황에 빠졌을 때에 나온다 예, 그렇게 우리가 이 말씀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사람이 어디에도 희망을 걸 수 없는 그러한 상황이 이르렀을 때 말이지요. 그것이 내가 당장 불치병에 걸렸다거나 그런 일들도 있을 수 있겠고, 어디에서 완전히 따돌림을 당할 수도 있겠구요. 아니면 자기가 삶의 허무를 경험할 수도 있겠구요. 이런 저런 이유가 있겠는데, 더 이상 이 땅 위에서 희망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상황, 그런 데에서는 하나님을 향한 기도가 나올 수 밖 에 없거든요? 그게 정말 참된 기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냥 지금도 잘 되고 있는데 또 더 잘되게 해 달라 라든지, 우리가 어린아이들이 부모들에게 용기를 달라고 하는 식으로 하는 기도를 드릴 수도 있기도 있습니다마는 그런 것은 우리 영혼에서 나오는 기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앞서 영혼에 대한 말씀을 드렸지요. 그러니까 생명의 깊은 차원을 영혼이라고 하는데, 사실은 하나님과의 영적인 소통이라고 이야기하는 기도는 거기서 나와야 됩니다. 우리 속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향한 다른 사람에게만 말할 필요도 없는, 말 할 수도 없는 그러한 호소를 하나님께 드리는 거지요. 이건 기도만이 아니라 우리 신앙생활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 땅위에서 조금 다른 사람들보다 좀 편하게, 실용적으로 편하게 살기 위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는 게 아니라 내 생명의 궁극적인 그러한 거 말이지요? 생명의 끝이라고도 할 수 있고요. 그러한 차원에서 하나님과 우리가 참된 관계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에게서의 신앙의 문제는 바로 그런 거였습니다. 그들은 그저 자기 신앙적이고, 종교적인 경건성, 그건 종교적 교양을 이야기 합니다. 그러한 범주에서, 그러한 틀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려고 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도저히 받아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이에 반해서 세리나 죄인들 이런 사람들은 교양을 내 보일만한 형편이 전혀 되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은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예수님의 말씀을 더 잘 받아 드릴 수가 있었습니다. 오늘도 우리 신앙이 교양의 차원이냐, 아니면 우리 생명의 심층적인 차원이냐 이거는 우리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예,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용해서 우리가 좀 더 편안하게 살자는 뜻으로 예수님을 믿는 게 아니라 우리의 존재전체, 생명 전체 죽음과 삶의 전체를 통틀은 그러한 것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그러한 태도로 우리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오늘 여기 어거스틴의 기도에서도 우리가 보았고 오늘 여기 시편기자의 기도에도 있듯이 괴롭히는 자, 혹은 넘어뜨리는 자가 너무 많다고 하는 이 절박한 상태에서 하나님을 향한 이 기도가 나왔습니다.

 

그 상태를 2절에서는 더 노골적으로 이야기해요. 이렇게 말합니다. 2.너 따위는 하늘마저 버렸다고 빈정대는 자 가 많다고 하는 거예요. 이거는 친구들이 이야기 합니다. 가까운 친구들마저 너 그렇게 사는 것 보니까 하나님도 너를 버렸구나 이렇게 빈정 되는 상황에 해당합니다. 이런 친구들이 빈정거림이라고 하는 걸 들으면 구약의 어떤 것이 기억나지요? 욥이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사탄이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 욥을 시험한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습니까, 참고적으로 한 말씀만 더 드린다면 악이나 사탄 말이죠. 그게 큰 능력이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들은 이제 우리가 준비되지가 못했을 때 우리를 허물어뜨릴 수 있는 것 뿐이지 결국은 그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거거든요. 욥을 시험 준 것도 사탄이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 그 안에서만 된 겁니다. 어찌 욥이 그러한 상황을 당했을 때 옆의 친구들이 다 그렇게 욕한 거거든요? 심지어는 그 부인마저 욥을 향해서 하나님 욕하고 나가 죽어라 그 비슷하게 얘기를 했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도 자기를 이해 해 주지 못하는 그런 상황입니다. 하나님이 너를 버렸다고 하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거와 같은 상황 말이지요. 제가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마는 예수님이 십자가 상에서 말씀하신 일곱 마디 말씀중에 하나가 그거지요? “하나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십니까?” 예수님이 십자가 상에서 하나님으로부터의 버림받음 하나님으로부터의 유기(遺棄)라고 합니다. 그런 상황까지 내 몰리셨다, 지금 시편 기자가 그런 절박한, 그런 상황에 처해서 친구들의 빈정거림을 들으면서 하나님을 향해 탄원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이지만 이 시편기자는 3절에 보면 그러나,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건 강한 반어법이예요. 자기 상황이 그렇지만, 야훼를 향해서 기도합니다. 당신은 나의 방패, 나의 영광이십니다. 내 머리를 들어주십니다. 기도하지요. 예, 여러분 이러한 기도도 실질적으로 이해해 보도록 하십시오. 방패하고 하는 말을 우리가 많이 들었는데요? 정말 하나님이 나의 방패인가, 그걸 정면으로 승부하는 심정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우리의 영적인 상태가 어디 있느냐에 따라서 이 말씀이 우리들에게 실질적으로 들어 올 수도 있고 그냥 스쳐 지나 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잘 되기를 바란다 그런 점에서 방패다 라고 한다면, 하나님은 그런 점에서 방패가 되지 않습니다. 아, 내가 기도해서 좋은 남편을 만난다, 좋은 아내를 만난다 그런 것도 이런, 하나님이 나의 방패라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부를 때는, 성서기자들이 그렇게 부를 때는 거의 다 생명의 문제예요. 생명의 깊이에 대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을 지키신다고 하는 겁니다. 그것도 훨씬 더 여러 가지 차원이 있거든요? 살아 있는 만큼 우리 필요 한 것만큼 지키시기도 하고요. 더 나아가서는 우리는 죽으면 생명이 끝났다고 하는데, 그 죽음 이후까지 포함한 모든 생명을 지키신다는 하나님께서 지키신다는 신앙고백입니다. 이런 시편기자의 기도는 상당히 차원이 높은 거지요. 예, 그리고 하나님은 나의 영광이 되신다고 했는데요? 내가 세상 사람들에게 칭찬 받는 것이 영광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런 점에서 하나님이 우리 영광이 되어 지는 것은 아닙니다. 전혀 다른 차원이예요. 아까 어거스틴의 기도에서 사랑으로 우리가 하나님과 연합된다고 얘기하지 않습니까? 정말, 영광은요. 헬라어로 독사(doxa,δοξα:헬)라고 하는데요. 그거는 우리가 어떤 것으로 표현할 수 없는 가장 거룩한 상태를 이야기 합니다. 이 땅 위에서는 그런 것은 없는 거예요.

 

바로 하나님과 연합 했을때만 우리는 정말 거룩한 세계로 들어가는 거지요. 그러니까 부활 같은 것들이 다 거룩하고, 그게 영광입니다. 생명의 진수라고 할 수 있지요. 우리는 이 땅에서 살면서 생명의 그림자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살지만 건강도 순식간에 없어질 수 있고 젊은 이런 것도 금방 쇠(衰)해지거든요? 그러한 것이 하나님에게서만 영원한 생명이 가능하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알고 있고 그런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 곧 영광을 얻는 거죠. 하나님만이 그런 점에서 우리들의 영광입니다. 그런 점을 더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4절에 나 야훼께 부르짖으면 당신의 거룩한 산에서 들어주십니다.(셀라) 요 구절은요. 지난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경험했던 귀한 것들, 그런 것들에 대한 기억이고 회상입니다. 지금 현재 어려움을 많이 당하지만, 그러나 지난 날 하나님과 아주 깊은 영적인 소통 경험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을 기억하면서 이제 하나님이 오늘도 나를 그렇게 인도해 주신다는 신앙고백이죠. 이런 점에서 신앙은 기억이고 회상입니다. 흡사 부부가 같이 살면서도 어려움을 당하잖아요? 그러나 이제 지난날 과거에 두 사람이 좋은 경험을 많이 나누게 되면 고운 정 미운정이 든다는 그러한 말 처럼요, 부부사이에 위기도 많이 극복됩니다. 똑 같다는 말은 아닙니다만 비유적으로 설명해서 그렇습니다. 오늘 시편기자는 아주 어려운 형편에 있었지만, 친구들마저 너 하나님이 버린거야, 너를 버렸어, 왜 그 모양 그 꼴이냐, 그러한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이 모르는 하나님과의 은밀한 영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기억하면서 오늘의 어려움들을 극복해 나갑니다. 그러한 태도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네, 5절에서 바로 오늘 이 3편 기도제목하고 연관되는 내용이 나옵니다. “아침기도”라고 제가 말씀 드렸어요.

 

5절 보세요. 이렇습니다. 5.자리에 들면 자나 깨나 야훼께서 이 몸을 붙들어주십니다. 그렇게 기도해요. 아주 달콤한 꿀처럼 단 잠자리지요. 그리고 아침에 그리고 상쾌한 기분으로 깨는 겁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눈을 뜨고 하나님이 자나 깨나 나를 붙들어 주신다고 하는 그런 기도를 드리는 거지요. 저는 이러한 구절을 읽으면서 우리 기독교인의 매번 일상의 삶이 달콤한 잠을 잤다가, 숙면하는 거지요, 탁 눈을 떴을 때 그 기쁨, 세상이 있어요, 일어나 보니까 여전히 아침 새도 울고 푸른 숲도 있고 말이죠, 공기도 마실 수 있고, 하여튼 그러한 생명의 희열, 뭐 그렇게 말할 수 있겠군요. 아주 단잠을 자고 아침에 그렇게 깨끗한 영혼으로 하나님께서 세상에 생명을 허락하셨다고 하는 극한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 아닌가, 우리 기독교인의 일상의 삶이 말이지요. 예, 그런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늘 흐리멍덩한 상태에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요. 머리에 잡생각이 많은 거죠. 살아가면서 온갖 것들이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자고 있는 건지 깨고 있는 건지 모르는 상태, 그래서 우리의 영성이 둔한 그런 상태가 많습니다. 그건 그 만큼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느슨하다고 하는 거지요. 여기 젊은 사람들도 있습니다마는 정말 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 처음에 그 여자? 혹은 남자? 그때 정신이 번쩍 나는 거란 말이예요. 그 사람이 있다고 하는 사실 만으로도 삶에 기쁨을 누리는 것처럼요, 그러나 사람을 통해서는 계속 되지 않습니다. 살다보면 계속 안되니까요, 그것은 그 사람을 실망시키는 거고, 아무리 좋았다고, 완벽한 여자, 남자라고 생각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는 결코 만족이 안 되거든요?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신 분이고 생명의 근원이시고요, 그 분과 우리가 연합하게 된다면, 오늘 여기 시편기자가 얘기하듯이 아주 깊은 잠을 자다가 깨끗한 마음으로 정신 차리고 딱 일어났을 때, 세상을 보았을 때, 그러한 우리의 삶이 된다는 말씀이지요. 그래서 아침기도, 이러한 즐거움과 기쁨과 희열, 평화로 드리는 우리가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매일 매일 우리가 그렇게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예, 6절에 보면요. 이제 그러한 깨어 있는 영혼이기 때문에 적들이 몰려와 에워쌀지라도 무서워 할 것이 없다 예, 이런 영성의 경지, 이게 필요합니다. 우리는 조금 돈이 부족하거나 예를 들자면, 그런 걸로 상당히 고민을 많이 하고 염려를 많이 하거든요? 그건 뭐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기도 한데, 그러나 그런 것만이 아니라 자기가 만들어서 고민하는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실제가 아니라 허상을 갖고 빠져 들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오늘 시편기자는 적들이 밀려와서 에워싸도 무서워할 것 하나도 없다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을 지키십니다, 살아 있을 때만이 아니라 죽음 까지도 통치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그런 세계까지 통치하시는, 완전히 그런 것을 이끄시는 하나님에게 우리를 맡겼고, 그 분이 우리를 보장해 주시는데, 사실은 무엇을 두려워하겠어요.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신뢰가 없기 때문에 이렇게 단잠을 자지 못하고 꼭 육체적인 잠만 아니라 상쾌한 기분으로 깨지 못하고 흐리멍덩하게 삶을 살 때가 간혹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다음 말씀도 그 정도까지만 하겠습니다. 7절, 8절요. 그냥 읽어 보지요. 7.야훼여, 일어나소서. 마지막으로 한 번 기도하는 겁니다. 나의 하느님, 구하여 주소서. 당신은 내 원수의 턱을 내리치시고 악한 자의 이빨을 부수시는 분, 8.야훼여, 승리는 당신께 있사오니 당신 백성에게 복을 내리소서.(셀라) 이 셀라는 그렇습니다. 동의합니다. 아멘하고도 비슷한 뜻입니다.

 

승리, 하나님의 승리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예, 그렇습니다. 사탄이나 마귀, 혹시 그런 쪽으로 우리를 시험하고 유혹하는 자들이 있지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결국 승리자가 하나님이시거든요? 창조자도 한 분 뿐이시고, 종말에서 이 세계를 심판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예, 오늘 여기 문학적으로 그렇게 표현했어요. 원수의 턱을 내리치신다, 악한 자의 이빨을 부순다, 턱과 이빨이 부서지면 원수가 아무 능력이 없는 거잖아요? 예,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그 분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 가셨습니다, 그분의 처형은 겉으로 보면 원수의 승리입니다. 예수를 죽였으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전혀 다른 차원에서 원수의 이빨을 부수고 턱을 부순거예요. 그래서 죽은 자로부터 예수님을 부활 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의 참되고 궁극적인 승리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이미 하나님이 승리하셨다고 것을 전제하고 이 세상을 사는 겁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어려운 점을 만나고 또 죽음의 문을 통과해야 되지만, 그러나 그게 정말 세례를 받는 것처럼 정말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고요. 무로 돌아가는 경험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이 승리하셨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예, 오늘 말씀을 우리가 좀 기억하시면서, 한 2분정도 묵상을 좀 하십시다. 마음속으로 기도도 드리고 또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기억하기도 하면서 묵상의 방식으로 기도하겠습니다.

(묵상기도)

 

하나님 고난 주간 이 수요일 저녁에 저희들을 불러 주셔서 하나님의 귀한 말씀을 나누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또 기도를 드릴 수 있도록 인도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비록 우리가 시편기자의 그러한 기도의 고백처럼 어려운 시련이 많을 지라도 하나님이 바로 승리자임을 믿고 우리가 단 잠에 빠져 들 듯이 하나님 안에서 평화를, 기쁨을 잃지 않도록 인도해 주십시오. 이 고난주간에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우리가 다시 한 번 기억합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큰 섭리에서 순종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우리가 다시 한 번 기억합니다. 주님, 이렇게 십자가 달리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해 주신 그 사랑을 잊지 않게 하시고 우리의 삶속에 십자가가 늘 증거 되도록 주님, 인도해 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늘 우리 같이 공부한 시편 3편을 다시 같이 읽는 것으로 오늘 모임을 마치겠습니다. 시편 3편, 같은 마음으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겠습니다.

 

1.    야훼여! 나를 괴롭히는 자 왜 이리 많사옵니까?

       나를 넘어뜨리려는 자 왜 이리 많사옵니까?

2.   너 따위는 하늘마저 버렸다고

     빈정대는 자 또한 왜 이리도 많사옵니까? (셀라)  

3.    그러나 야훼여! 당신은 나의 방패,

       나의 영광이십니다. 내 머리를 들어주십니다.  

4.   나 야훼께 부르짖으면

     당신의 거룩한 산에서 들어주십니다. (셀라)

5.   자리에 들면 자나 깨나

      야훼께서 이 몸을 붙들어주십니다.

6.  적들이 밀려와 에워쌀지라도

     무서울 것 하나 없사옵니다.  

7.   야훼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느님, 구하여 주소서.

      당신은 내 원수의 턱을 내리치시고

      악한 자의 이빨을 부수시는 분,

8.  야훼여, 승리는 당신께 있사오니

    당신 백성에게 복을 내리소서. (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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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8]클라라

2010.01.05 03:53:40
*.229.151.223

사랑으로 주님과 연합하게 하소서

 

오 하나님,

주님을 불러 기도하오니 나는

주님에게서 돌아설 때 넘어지게 되고,

주님을 향해 되돌아설 때 일어나게 되며,

주님 안에서 머물 때 든든히 서게 됩니다.

 

주님을 떠날 때 죽게 되며,

주님에게 되돌아갈 때 다시 소생하게 되고,

주님 안에 거할 때 참으로 살게 됩니다.

주님을 버리고 떠날 때 멸망하게 되고,

주님을 향해 손을 뻗을 때 주님을 사랑하게 되며,

주님을 바라볼 때 주님을 향유(有)하게 됩니다.

 

오 하나님,

주님을 불러 아뢰옵니다.

믿음으로 나를 불러 주님을 향하게 하시고,

소망으로 나를 들어 주께로 이끌어 올리시며,

사랑으로 나를 주님과 연합하게 하소서. 아멘.(어거스틴독백록,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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