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샘터교회 수요성경공부 게시판

4편 녹취록-하나님이 주시는 평화

조회 수 1659 추천 수 0 2010.01.07 00:53:24

시편4편 강해-하나님이 주시는 평화

시편 4편 1절에서 8편까지의 말씀을 교독해서 읽겠습니다.

 

〔 성가대 지휘자를 따라 수금에 맞추어 부르는 다윗의 노래 〕

1.    내 무죄함을 밝히시는 하느님,

      부르짖사오니 들어주소서.

      이 곤경에서 나를 빼내 주소서.

      불쌍히 여기시고 내 기도를 들으소서. 

2.   너희, 사람들아!

     언제까지 나의 영광을 짓밟으려는가?

     언제까지 헛일을 좇고

     언제까지 거짓 찾아 헤매려는가? (셀라)

3.   알아두어라, 야훼께서는 경건한 자를 각별히 사랑하시니,

      내가 부르짖으면 언제나 들어주 신다.

4.  무서워하여라, 다시는 죄짓지 마라.

    자리에 누워 반성하여라, 고요를 깨지 마라. (셀라)

5.  제물을 바쳐 죄를 벗어라.

     그리고 야훼만을 의지하여라.  

6.  "그 누가 우리에게 좋은 일을 보여줄까?"

     하고 말하는 자가 많사오니,

     밝으신 당신의 얼굴을 우리에게 돌리소서, 야훼여.

7.   이 마음에 심어주신 당신의 기쁨,

     곡식이다, 포도주다, 풍년에 흥겨운 저들의 기쁨보다 크 옵니다.

8.  누운즉 마음 편하고 단잠에 잠기오니,

    야훼여, 내가 이렇듯 안심하는 것은 다만 당신 덕이옵니다.

 (공동번역)

 

<참고> 개역개정

시편 4편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현악에 맞춘 노래〕

1.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2.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바꾸어 욕되게 하며 헛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을 구하려는가(셀라)

3.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 내가 그를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4.너희는 떨며 범죄하지 말지어다 자랑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셀라)

5.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지할지어다

6.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

7.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을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8.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

 

아멘! 오늘 시편 4편의 제목은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 이것도 너무 진부한 제목처럼 들리시지요?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 평화에 대한 찬송도 많고 그렇게 기도도 하고 그렇습니다. 오늘 시편기자가 어떤 차원에서 이 평화를 이야기 하는지 살펴 보면 이 제목이 그렇게 진부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1절에서 8절까지 있는데요. 우선 이것을 생각해 보시지요. 저도 이건 정확한 답을 갖고 드리는 질문은 아닙니다. 오늘 시편기자는 이 시를 쓴 이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 놓여 있었을까 하는 그러한 질문입니다. 분명히 그가 어떤 삶의 경험이 있었을 거예요. 그냥 무턱대고 앉아 있다가 갑자기 머리에 떠오른 것을 그냥 시로 쓴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잘 확실하게 잡을 수 없는, 그러나 이 시편에서 보면 조금 그런 식의, 그러한 삶의 자리에 놓여 있었던 거지요. 지금도 제가 기도문을 쓰게 된다면, 설교도 어쩌면 기도문이기도 합니다만, 그러면 그것이 순전히 내 삶하고는 상관없이 아주 고상하고 그럴듯하고 관념적인 어떤 세계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 안에서 나오는 것들이거든요.

 

오늘 여기 시편기자도 분명히 어떠한 형편에 놓여 있었을 겁니다. 우리가 성경 읽을 때에 그런 것들을 잘 헤아려 낼 수 있으면 더 정확하게 읽을 수 있는 거예요. 우리는 이 본문에서 일단 두 가지 정도의 상황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내면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이렇습니다. 이 시편기자는 분명히 어려운 형편에 있었던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는 뭔지 잘 모르겠는데요? 그 어려움 가운데서 하나님만 의지함으로써 놀라운 기쁨을 경험하는 거지요. 그러한 영적인 경험이 있는 겁니다. 이게 참 기독교 성서신앙의 핵심이기도 한데요. 그리고 또 어렵기도 한 겁니다. 하나님만 의지함으로써 그 어떤 것으로 인해서도 훼손되어 가지 않는, 훼손당하지 않는 놀라운 기쁨에 들어간 어떠한 시인입니다. 영적인 상태를 얘기하는 겁니다. 예, 그게 하나 우리가 볼 때 이사람이 놓여 있는 어떤 정신적인 상태이고요. 또 하나는 외면적인 문제입니다. 이 시인 주변에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던 거 같아요. 그래서 그들과 어떤 갈등 가운데 놓여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상황이 오늘 시편 기자가 놓여 있는 삶의 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그것을 좀 확인하면요. 내면적으로 이 사람이 어려움 가운데서 하나님만 놀라운 기쁨을 경험했다는 거구요. 또 외면적인, 바깥의 상황으로,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과의 갈등관계에 있었다, 그걸 전제하고 오늘 이 본문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조금씩 안으로 들어 가 보도록 합시다. 1절에 보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이 공동번역이예요. 이게 장단점이 있습니다. 처음 저희 몇 사람이 예배드릴 때, 다른 사람들이 별로 올 거라고 예상하지 않고 식구들만 모여서 예배드리니까 아, 공동번역으로 하면 괜찮겠다, 해서 했습니다. 지금 지나오고 보니까 의미를 밝히는데는 좋은데, 이게 순전히 의역이예요. 그러다 보니까 원래 성서가 가지고 있는 그 본래 뜻, 직역으로만 알 수 있는 그게 조금 부족합니다. 단어들이 너무 우리말로 바뀌어 진거지요. 그래서 앞으로 조금 더 신자들이 오게 될 경우, 서른 명 이상이 넘게 되면 이것을 다른 것으로 바꿔야 될까 생각하구요. 그리고 그게 앞으로 잘 안 나와요. 책을 거의 안 쓰기 때문에, 로마 가톨릭 교회도 다른 걸로 바꿨다고 합니다. 이건 다른 얘기였습니다.

 

1절에 무죄함을 밝히시는 하나님, 들어 주소서, 빼내 주소서, 이렇게 나오고 있잖습니까? 이거는 이제 기도하는 형식으로 나와 있는데요? 원래의 성경에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다, 이렇게 되어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무죄함을, 나의 그런 부분들을 풀어 주시는 분, 이렇게 되어 있다고 그래요. 어쨌든 여기서 말하려고 하는 것은 그 하나님에 대한 아주 분명한 경험이 이 성서기자에게, 이 시편기자에게 있었다고 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아주 확실하게 경험한 사람인 거예요. 이게 참 중요한 거예요. 어린아이들이 어머니 아버지하고 관계에서 이론적으로 설명하기 힘들거든요? 아직 철이 없을 때는요. 그러나 이 아이들이 어머니 아버지에 대한 신뢰가 있는 거예요. 그건 경험적으로 알게 됩니다. 그래서 어머니 아버지가 혼을 낸다고 하더라도 혼 날 때는 어머니 아버지가 좀 싫겠지요? 그래도 조금 지나면 다시 그게 회복되는 거든요? 그 아이들은 어머니 아버지에게 오랜 세월을 거쳐서 그 신뢰관계가 확실해 진겁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도 이게 기초로 있어야 되죠. 하나님은 내 기도에 응답하시고 내 어려움 가운데서도 건져 주시고 도우심을 나에게 주신 분이다, 이런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럼 여러분은 혹시 이걸 좀 다르게 생각해서, 이걸 좀 확대해서 그럼 나에겐 어려움이 하나도 없다는 말이냐, 어려움 있을 때마다 나를 모두다 하나님께서 건져 주신다고 한다면 내가 사는데 어려움이 없겠냐는 말이냐 그것은 결코 아닙니다.

 

성서기자들이 보고 있는 어떤 영적인 세계를 봐야 되는 거예요. 이것 보세요. 쉬운 예를 들자면, 내가 어디 취직하려고 하는데, 계속 취직이 안 된다 하나님께 계속 간구해도 안되요. 그럼 하나님이 안 들어 주신다고 보통사람들이 생각하잖습니까? 그러나 이러한 시편기자의 영적인 높이에서 보면 취직이 안 되도 이미 그것은 하나님이 들어 주신 거예요. 다 도와 주신 겁니다. 현재 내 삶에서 된 모든 것들이 사실은 하나님의 도움이신, 이미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하는 사실이 이미 있는 겁니다. 그것을 우리가 보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요. 뭐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에게 실제적으로 취업하게 하고 좋은 일들이 있게 하는 것이 그게 하나님하고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하는 뜻은 아닙니다. 그런 것을 위해서도 우리가 기도해야 되죠. 그러나 하나님은 그 보다 더 큰 놀라운 도움을 우리들에게 주신다는 거죠. 우리가 취업을 해 갖고 들어가서 더 힘들어 지는 것 보다는 오히려 취업하지 않으면서 못하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내 삶을 더 풍요롭게 할 수도 있고요. 그것이 더 좋을 일이 될 수 도 있거든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도우심이 뭔가를 좀 더 깊이 있게 생각을 하셔야 합니다. 이제 그렇게 서론적으로 시편기자가 말을 한 다음에 이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 자기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냐 하는 것을 2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너희, 사람들아! 그 주변의 사람들을 향한 거예요. 언제까지 나의 영광을 짓밟으려는가? 이 시편 기자의 영광은 하나님 안에서 얻어지는 그러한 것을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도움이 된다고 하는 사실 속으로 들어 가는 것, 그 보다 더 큰 영광은 없습니다. 다시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로 예를 든다면요. 자식들은 부모에게 철저한 신뢰로 들어가는 것 보다 더 큰 영광은 없는 거예요. 그 둘 관계에서 볼 때는 말이죠. 자식이 어머니 아버지한테 맛있는 거 얻어먹고 말이죠, 티비 보고 싶다고 해서 다 해주고, 만약에 그런 방식으로만 부모와 관계를 맺는 다고 한다면 철부지가 되거나 그런 방식이겠지요. 그런 것 하고 좀 다른 차원으로, 하나님이, 부모와 자식 간에도 그런 참된 신뢰, 참된 영광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 시편기자를 비난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이 하나님에게만 도움을 청하고 있고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조소하는 거예요. 그리고 이어서 헛일을 쫓고 거짓을 찾아 헤맨다고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관계없는 일들만의, 거기에만 모든 것을 쏟고 사는 거죠.

 

3절에서 시편기자는 이 시편기자를 조소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하나님을 변호하는 거예요. 너희들이 그렇게 비웃고 있지만, 3절에요. 잘 알아두어라 하면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야훼께서는 경건한 자를 각별히 사랑하신다, 내가 부르짖으면 언제나 들어 주신다, 예, 참 귀한 신앙입니다. 이거는 경건한 사람들,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라는 거지요? 그 분이 사랑하신다, 사랑을 어떻게 경험하느냐 하는 게 관건인데요? 예, 부모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 오늘 제가 자꾸만 그런 예를 들게 되는군요. 여기 비슷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무조건 다 들어 준다고 해서 그걸 확인하는 건 아니잖아요? 다른 차원인겁니다. 아주 특별한 부모와 자식간에 신뢰가 있는 거 거든요? 오늘 시편기자가 바로 그것을 확신하고 있는 거죠, 하나님은 내가 따르는 사람들을 각별히 사랑하신다, 그 기쁨이 이 사람에게 있었어요. 부르짖으면 언제나 들어 주신다고 얘기 합니다.

 

이제 그렇게 하나님을 변호하고 4절에서 자기를 비난하는 조소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충고합니다. 몇 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충고의 내용이 5,6가지가 되는데요. 첫 번째 좀 무서워 하여라, 두려워 하여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하는 거지요. 예, 사람들이야 자신이 주인이라고 생각하니까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도 모릅니다. 이거는 하나님이 나를 벌을 줄까 아닐까 공포에 떨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생명의 창조자시이시고, 우리를 끌어 가 주시고, 우리의 생명을 완성할 분이시니까 그 분 앞에 서게 되면 우리는 정말 거룩한 두려움, 아, 지난번 에도 한 번 드린 말씀이군요. 그러한 거룩한 두려움을 느낄 수 밖 에 없습니다. 무서워 하려라, 두 번째 죄 짓지 마라, 세 번째는 자리에 누워 반성하라, 이렇게 번역되어 있는데, 이거는 침대에 누워서 깊이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명상하라, 자꾸 설치지 말고 명상 좀 해라 다음에 네 번째는 고요 하라, 좀 입 좀 다물고 좀 조용하게 좀 있어라, 예, 좀 의역이 되서 자리에 누워 반성 하여라 하면, 좀 의역이 돼서요. 명상, 깊이 생각하라 그런 뜻입니다.

 

5절에서도 4절에 이어서 충고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다섯 번째로 되는 거지요. 제물을 바쳐 죄를 벗어라 바른 제사를 드려라 하는 뜻입니다. 요즘 식으로 하자면, 바른 예배를 드려라 하는 뜻이죠, 바른 예배, 형식으로가 아니라 우리 영혼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는 우리의 가장 거룩하고 경건한 행위니까요. 그렇게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면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를 죄 없다고 인정하시니까 죄를 벗는게 되겠지요. 여섯 번째 결론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라 하는 겁니다. 이게 누구한테 하는 얘기인지를 아시겠지요? 지금 하나님만 의지하면서 참된 기쁨에 살아가는 사람, 이 시인을 조소하는 주변의 친구들이라고 할 수 있겠죠? 주변의 여러 사람들을 향해서 지금 반론을 제기하는 겁니다. 하나님 야훼만 의지 하여라 예, 이것도 정말 우리가 많이 들었던 이야기라서 상투적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습니다. 네, 그리고 그게 쉽지 않은 거예요. 하나님만 의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돈을 더 의지하던지, 아니면 인간관계를 더 의지하던지 자기 아내를 의지하던지 예, 부모를 더 의지하던지 그러거든요? 그건 사람 사는 사이에서는 우리 생명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야훼 하나님만이 우리 생명을 주시는 거니까, 그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이 이게 바로 우리 생명에서 흔들리지 않는 아주 바른 길입니다. 예, 이런 것들을 아주 실질적으로 더 생각해 보세요.

 

예, 6절 부터는 이제 자기를 비난하는 사람들의 상태가 뭔지 이제 그걸 설명하고 있습니다. 거기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 누가 우리에게 좋을 일을 보여 줄까 하고 말하는 자가 많다 이게 자기를 조소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이 주변에 있는 사람이 이 시인을 향해서 그렇게 이야기 한 것 같아요. 야, 이 친구야 네가 하나님 의지하고 모든 것 부르짖는 것 들어 주신다고 하는데, 도대체 뭐 좋은 일을 해 줄 분이 있다고 그러냐, 믿지 말아라, 그렇게 주변에서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 거지요. 그를 향해서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는 거 거든요? 이렇게 비난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도움을 알지도 못하고 기대하지도 않고 그리고 진정한 희망도 없는 겁니다. 그냥 자기가 재산을 늘린다거나 재미있게 산다 그런 정도지요. 그런 것들은 우리가 다 지나가는 것이고, 참된 희망은 하나님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좋은 일을 해 줄 사람이 없어 이렇게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삶에는 진정한 희망이 없다고 하면서 말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런 사람들은 일종의 허무주의입니다. 겉으로는 굉장히 열정적으로 세계를 사는 것 같아요. 이것저것 얼마나 할 일들이 많이 있습니까 그 안에는 깊은 좌절, 깊은 허무가 많이 있고요. 공허한 것을 달래기 위해서 또 바깥으로 더 과도하게 많은 것을 찾아서 오늘 현대인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속이 허전하면 자꾸 채워야 되거든요? 그러니까 악순환이 되고 있습니다. 예, 참된 도움을 모르는 사람들의 그런 삶의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성서기자가 자기 기도문을 결론 삼아서, 정리하면서 하나님의 신앙을 다시 한 번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 마음에 심어주신 당신의 기쁨, 기쁨, 이거는요. 곡식이다, 포도주다, 풍년에 흥겨운 사람들의 기쁨, 이제 이건 소유하는 거죠. 예, 여러 가지 재산이 많아지거나 이런 저런 것들도 기쁨은 기쁨이겠지요. 그렇습니다. 재미있는 일들이지요. 그러나 이 시편기자의 기쁨은 하나님이 주신 것인데, 이 세상에서 자기가 어떤 것을 이룬 것, 성취한 것 이런 것 하고 비교 할 수 없는 그런 기쁨이라고 얘기합니다. 과연 그것이 무얼까요? 이런 기쁨이 우리들에게 확실하게 와 닿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때가 많이 있지요? 목사의 길을 가면서도 만일 목사가 교회를 크게 했다, 신자들 많이 모았다, 그런 걸로 기뻐한다면 그거는 좀 수준 낮은 기쁨입니다. 그건 추수를 해서, 추수를 많이 거둬들여서 얻는 세속적인 기쁨하고 차이가 하나도 없어요. 그건 소유지향적인 거죠. 말하자면, 그런 건 흉년이 들면 또 실망이 되어 버립니다. 이런 것 하고 상관이 없는 기쁨, 그건 하나님만이 우리들에게 제공해 주실 수 있는 것이거든요? 이건 말로만 사람들이 생각하고 아주 실질적으로 그 안에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자꾸 흔들리고요. 거기서 문제가 많이 벌어지고 신앙으로 점점 깊어지는 그러한 어떤 일들이 우리들에게 참 많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네, 하나님 주신 기쁨은 곡식 포도주, 그 당시에는 가장 좋은 것들이었는데, 그런 것 보다 더 크다, 얘기합니다. 참 시인의 영성이 참 놀랍고요 부럽습니다. 네, 이렇게 하나님과의 관계에 깊게 들어가면, 무엇이 아쉽겠으며 무엇이 불안하겠으며 무엇을 더 원하겠어요? 그 상태로 자족하는 거죠. 아, 그래서 될 대로 되라 그냥 아무 노력도 없이 사는 거, 그걸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전혀 다른 차원에서의 기쁨을 얘기하죠.

 

예, 그러한 내용이 7절에 있는 것이 8절에 계속됩니다. 연결되는 말씀 이예요. 결론이지요. 예, 그런 기쁨이 있으니까요. 어때요? 8절에 누운즉 마음 편하고 단잠에 잠긴다, 네, 3장에는 “아침의 노래”처럼 나왔고요. 여기 4장은 이렇게 잠자리에 든다는 걸 보고 “밤에 노래시” 이런 이름도 좀 붙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3편과 4편이 연달아 나오는 것 같아요. 3편은 “아침의 기도” 4편은 “밤의 기도” 밤에 마음 편하게 단잠에 잠긴다, 걱정하지 않고요. 어린 아이가 어머니 가슴에 안겨서 아주 행복하게 잠 자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위로를 알 때에 우리가 그렇게 단잠을 잔다는 겁니다. 마지막 9절이 그렇지요? 8절의 마지막 뒷 부분 야훼여 내가 이렇게 안심한 것은 다만 당신 덕이옵니다. 흔들리지 않고 주변에서 조소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더라도 그리고 이런 저런 어려운 일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가 전혀 흔들리지 않고요. 마음 편하게 안심할 수 있는 마음을 이렇게 놓는 거죠.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나님 때문이다, 하나님 덕이다,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우리가 그 이외의 것은 우리가 안심할 수 없습니다. 그 어떤 것으로도 불가능한 것입니다. 지예가 독일에 가게 되는데, 언젠가는 다 부모를 떠나야 되는 거구요. 그 자식을 부모가 결코 안전하게 지켜 줄 수 없습니다. 내가 여기서 데리고 있으나 독일에 가 있으나 사실 똑 같은 거예요. 또 어떻게 보면, 조금 나이가 들면 빨리 부모를 떠나는 게 그게 그 아이를 위하는 지름길입니다. 한국의 많은 부모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은 부모가 자식을 키우고 어떻게 한다는 생각, 가르치게 된다는 생각을 한다는 겁니다. 나는 부모가 자식을 가르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조금 훈계는 할 수 있고, 뭐 조금 정보는 줄 수 있지요. 그러나 정보가 정말 교육은 아니거든요? 생명과 가까이 가는게 교육이거든요? 생명을 이해하는 게 그래서 그 생명을 내가 풍요롭게 알아가는 게 교육의 본질이잖아요? 음악도 그렇고 시도 그렇고 다 그렇습니다. 그거는 성령만이 하는 거예요. 기독교에서 얘기하는 성령, 진리의 영이기 때문이예요. 그런데 오늘 많은 사람들이 선생들도 그렇고 부모들도 그렇고 자기가 성령인 것처럼 제자나 학생들이나 자식들에게 대한 다는 말이에요. 아주 참 위험한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식들이나 학생들을 나 몰라라 될 대로 되라 내 버려두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가능한대로 도와 줄 것을 도와주고 정보를 줄 건 주고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하나님이 하신다, 우리가 자식을, 생명을 만든 것이 아니잖아요? 그것은 하나님 성령의 창조활동이거든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영적인 평화를 누릴 수 있다고 하는 사실 이것을 아주 확실하게 그리고 실질적으로 마음속에 새기고 그 안으로 깊이 들어가야 되겠습니다. 오늘 시편을 우리 다시 한 번 읽읍시다. 이번에는 함께 읽겠습니다. 

 

1.    내 무죄함을 밝히시는 하느님,

      부르짖사오니 들어주소서.

      이 곤경에서 나를 빼내 주소서.

      불쌍히 여기시고 내 기도를 들으소서. 

2.   너희, 사람들아!

     언제까지 나의 영광을 짓밟으려는가?

     언제까지 헛일을 좇고

     언제까지 거짓 찾아 헤매려는가? (셀라)

3.   알아두어라, 야훼께서는 경건한 자를 각별히 사랑하시니,

      내가 부르짖으면 언제나 들어주 신다.

4.  무서워하여라, 다시는 죄짓지 마라.

    자리에 누워 반성하여라, 고요를 깨지 마라. (셀라)

5.  제물을 바쳐 죄를 벗어라.

     그리고 야훼만을 의지하여라.  

6.  "그 누가 우리에게 좋은 일을 보여줄까?"

     하고 말하는 자가 많사오니,

     밝으신 당신의 얼굴을 우리에게 돌리소서, 야훼여.

7.   이 마음에 심어주신 당신의 기쁨,

     곡식이다, 포도주다, 풍년에 흥겨운 저들의 기쁨보다 크 옵니다.

8.  누운즉 마음 편하고 단잠에 잠기오니,

    야훼여, 내가 이렇듯 안심하는 것은 다만 당신 덕이옵니다.

 

예, 우리 앞서 불렀던 이 찬송을 한 번 더 부르겠습니다. “금과 은으로 우리를 구원할 수 없네” 오늘 우리가 같이 공부한 시편4편의 내용하고도 연결된 가사를 담고 있습니다.

“금과 은으로 우리를 구원할 수 없네, 세상 보화로 우리를 구원할 수 없네,

주의 은총만이 우리를 죄 중에서 구원 하네, 주님 흘리신 보혈이 우리를 구원하네.”

이것으로 오늘 성경공부와 기도 모임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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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8]클라라

2010.01.07 01:01:01
*.229.151.223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따르게 하소서

 

오 하나님,

이제 나는 주님만을 사랑하며,

주님만을 따르며,

주님만을 찾으며,

주님만을 섬기고자 합니다.

주님만이 나의 참 주님이시기에

주님의 지배하에 거하고자 합니다.

 

기도하오니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나에게 명하소서.

그러나 먼저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내 귀를 치료하여 열어주소서,

주님의 손짓을 볼 수 있도록

내 눈을 치료하여 뜨게하소서.

 

주님이 누구이신지 바로 식별할 수 있도록

나에게서 망상을 쫓아내주소서.

주님을 바라보기 위하여

어디로 가야 할지 말씀해주소서.

주님이 명하시는 모든 것을 나는 따르기 원합니다.

아멘.(어거스틴독백록 』,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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