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샘터교회 수요성경공부 게시판

111편, 거룩하고 지존한 이름

조회 수 628 추천 수 0 2010.11.20 08:34:35

대구샘터교회 수요성경공부, 2010년 11월17일, 저녁 8시, 시편 111편

거룩하고 지존한 이름

 

성경은 하나님에 대해서 설명한다. 심지어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신 것처럼 묘사하는 대목도 적지 않다. 그것을 기록한 사람들은 실제로 하나님을 경험한 것일까? 오늘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경험하는가? 하나님을 직접 볼 수 없어서 하나님을 본 자는 죽는다고 하는데, 성경은 왜 하나님을 경험한 것처럼 말하는가? 성경기자들의 하나님 경험은 부분적이고 간접적이지만 진실한 것이다. 그 핵심은 하나님이 구원자라는 것이다. 이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나?

여호와의 행위가 크고(2절), 존귀하고 엄위하며, 그의 의가 영원하다(3절)는 사실이 그 대답이다. 시편기자가 이렇게 표현한 이유는 세상이 사람들의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뚫어보았다는 데에 있다. 예컨대 출애굽 사건은 아무도 생각할 수 없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행위가 크고 존귀하고 엄위하다는 증거라는 말이다. 아시리아와 바벨론은 이스라엘의 운명을 파괴한 제국이었다. 영원할 것처럼 보인 그런 제국도 순식간에 사라진다. 아무리 큰 권력을 쥔 정치인이나 기업가라고 하더라도 제국이 무너지듯이 어느 순간에 무너진다. 모든 것들이, 모든 계획이, 모든 탐욕들이 파도 앞의 모래성과 같다는 사실을 시편기자는 보았다. 이 파도의 힘이 바로 하나님의 행위이다. 그것을 보는 사람도 있고, 못 보는 사람도 있다.

위 시편에서 그 사실을 비슷한 시구로 반복해서 설명한다. 7,8절을 보라. “그의 손이 하는 일은 진실과 정의이며 그의 법도는 다 확실하니 영원무궁토록 정하신 바요 진실과 정의로 행하신 바로다.” 이런 영적 통찰도 쉽게 얻을 수는 없다. 대개는 눈앞에 벌어지는 사건에만 마음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이 진실과 정의로 작동된다는 사실을 믿고 살기는 힘들다. 시편기자는 파렴치하고 승자독식의 세상살이에서도 하나님의 진실과 정의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믿었다. 이런 믿음에 이르려면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의 이면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마치 연극에서 무대 장면만이 아니라 뒤편에서 더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걸 알아야 하듯이 말이다.

9절은 여호와의 이름이 거룩하고 지존하다고 노래한다. 이 말은 여호와의 구원행위에 맞설 능력이 이 세상에는 없다는 뜻이다. 그런 존재에게만 거룩하다는 말을, 지존하다는 말을 붙일 수 있다. 이런 진술이 옳은가? 이게 어려운 질문이다. 물론 우리는 옳다고 믿고 신앙생활을 하지만 자칫하면 패권적인 생각으로 빠져들 위험성이 있다. 타종교에 대한 냉소와 폭력으로 진행될 수도 있다. 성속이원론에 빠질 수도 있다. 이스라엘의 역사와 기독교 2천년 역사에도 이런 일들은 일어났다. 최근의 ‘땅밟기’ 해프닝도 이와 다를 게 없다. 이를 극복하려면 이런 진술이 진리의 차원에서 계속 검증받아야 한다. 진리의 차원이라는 말은 성서의 가르침이 진리를 독점하는 방식이 아니라 진리의 논쟁에 나서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의 믿음을 변증하는 것이 바로 가장 본질적인 선교다.

결론적으로 시편기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전한다.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 이외의 것들은 근본적으로 무능력하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두 가지로 오해할 수 있다. 하나는 교회생활의 절대화다. 광신을 바른 믿음이라고 할 수는 없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우리 영혼의 문제이며, 삶의 중심의 문제이다. 다른 하나는 삶의 허무주의이다. 세상살이는 무의미하게 생각하는 것은 결코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 생명의 주인이 여호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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