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샘터교회 수요성경공부 게시판

117편, 여호와 찬양

조회 수 817 추천 수 0 2011.01.13 22:16:42

대구샘터교회 수요성경공부, 2011년 1월12일, 저녁 8시, 시편 117편

여호와 찬양

시편 117편은 시편 모음집 중에서 길이가 가장 짧다. (가장 긴 시편은 두 차례 뒤에 나온다.) 이것이 독립된 시편이 아니었다는 주장도 있다. 116편의 결론이거나 118편의 서론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차이가 더 크기 때문에 독립된 것으로 봐야 한다. 이 117편은 제사장이 성전에 모인 순례 청중들에게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요청하는 의식문(儀式文)이다.

1절은 단도직입적으로 여호와를 찬양(찬송)하라고 말한다.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예배하라는 말과 동일하다. 찬양은 예배이고, 예배는 찬양이다. 엄격하게 말해서 예배에 참여하는 이유는 은혜를 받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은혜는 이미 받았다. 그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린다.

찬양의 기초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 구원자가 구원받아야 할 자의 관계에 놓여 있다. 두 존재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차이가 있다. 주고받는 거래가 성립되지 않는다. 성서는 이를 토기장이와 질그릇의 관계로 설명하기도 한다. 질그릇의 입장에서는 그 어떤 불평도 불가능하며, 시시비비도 불가능하다. 오직 감사와 찬양만이 가능하다. 토기장이의 생각을 다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욥기의 가르침도 이와 비슷하다. 무죄한 이의 고통을 인과응보론의 논리로 접근했던 친구들이나 그것을 무조건 거부한 욥의 생각이 모두 부정된다. 사람의 인식으로 하나님의 뜻을 규정하고 재단하는 것에 대한 경고다. 찬양은 그런 차원을 뛰어넘어 창조와 피조의 존재론적 자리로, 유와 무의 경계로 들어가는 영적인 태도이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모든 나라들아’, ‘모든 백성들아’라고 말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는 국가의 차이나 사람의 차이가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즉 모든 개인적인 삶과 국가적인 삶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서만 달성되기 때문이다. 죽음과 부활생명 앞에서 개인의 차이, 국가의 차이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존재의 아득한 깊이에서는 인간 삶의 모든 차이가 극복될 수밖에 없다. 그런 깊이에서 나오는 영혼의 외침이 여호와 찬양이다.

2절은 찬양해야 할 이유를 설명한다. 두 가지다. 하나는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여호와의 진실하심이 영원하다는 것이다. 루터는 인자하심을 Gnade(은혜)로, 진실하심을 Wahrheit(진리)로 번역했다. 인자하심과 은혜는 큰 틀에서 똑같다.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곧 그의 은혜이기 때문이다. 시편기자가 무슨 의미로 이렇게 표현했는지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데, 여기서는 간단한 것만 짚겠다.

다른 성경말씀도 그렇지만 이것은 우리의 기준으로만 보면 곤란하다. 나에게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났다는 사실만을 은혜로 보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도 믿지 않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행운과 불행이 다 닥친다. 하나님의 모든 행위는 근본적으로 옳고 선하다는 사실에 대한 고백이 곧 은혜가 크다는 말이 가리키는 것이다. 바울도 모든 것이 협력해서 선을 이룬다고 말했다.(롬 8:28) 기본적으로 종말론적인 관점이다.

종말론적 관점은 여호와의 진리가 영원하다는 진술에 그대로 나타난다. 영원하다는 말은 여호와가 종말론적으로 옳다는 뜻이다. 사람은 유한한 방식으로 세상을 경험하기 때문에 영원을 실제로 경험하기는 어렵다. 영원하다는 말은 여호와가 초월적인 존재라는 뜻이기도 하다. 은혜가 크고 진리가 영원하다는 사실을 알고 경험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여호와를 찬양할 것이다. 지극한 생명의 약속에 대한 희망에 사로잡힐 것이다.(롬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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