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샘터교회 수요성경공부 게시판

48편 녹취록 -찬양받으시리로다

조회 수 996 추천 수 0 2009.04.04 08:37:33

시편 48편 강해-찬양 받으시리로다

시편 48편 입니다. 제가 읽겠습니다.

1절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우리 하나님의 성, 거룩한 산에서 극진히 찬양 받으시리로다
2절 터가 높고 아름다워 온 세계가 즐거워함이여 큰 왕의 성 곧 북방에 있는 시온 산이 그러하도다
3절 하나님이 그 여러 궁중에서 자기를 요새로 알리셨도다
4절 왕들이 모여서 함께 지나갔음이여
5절 그들이 보고 놀라고 두려워 빨리 지나갔도다
6절 거기서 떨림이 그들을 사로잡으니 고통이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 같도다
7절 주께서 동풍으로 다시스의 배를 깨뜨리시도다
8절 우리가 들은 대로 만군의 여호와의 성, 우리 하나님의 성에서 보았나니 하나님이 이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시리로다(셀라)
9절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의 전 가운데에서 주의 인자하심을 생각하였나이다
10절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과 같이 찬송도 땅 끝까지 미쳤으며 주의 오른손에는 정의가 충 만하였나이다
11절 주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시온 산은 기뻐하고 유다의 딸들은 즐거워할지어다
12절 너희는 시온을 돌면서 그 곳을 둘러보고 그 망대들을 세어 보라
13절 그의 성벽을 자세히 보고 그의 궁전을 살펴서 후대에 전하라
14절 이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가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  

이 48편은 앞에 있는 것들과 조금 느낌이 다릅니다. 앞에 시편들은 주로 또 원수들 앞에서 당하는 어려움에 대한 호소, 극한 어떤 질병이나 어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이 도움을 구하는 요청, 그런 것들이 주로 많이 있지요? 그리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하심의 대한 감사 찬양이런 것들입니다. 물론 이 세 번째로 이야기한 그러한 내용들이 여기에 기본적으로 있지요. 사실은 뭐 그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찬양시라고 할 수 있어요. 학자들에 따라서 이것이 이스라엘이 어느 절기에 행진할 때 부르던 노래다 뭐, 그렇게 얘기 하기도 하는데요.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이거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 찬양시로 분류 됩니다. 시편도 여러 가지 이러한 성격으로 분류되거든요. 탄원시, 탄식시, 찬양시, 제의시 이런 것 들요. 등등 있습니다. 오늘 이 48편이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지요. 그런데 이 전개한 방식이 재미있어요. 그 내용들을 우리가 실제로 읽으면서 좀 짚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1절이 이렇게 시작하는 군요. 

1절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우리 하나님의 성, 거룩한 산에서 극진히 찬양 받으시리로다
이러한 구절들도 익숙하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생각하는 게 잘못된게 아닙니다. 옳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러한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는 정도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나와 일체되는 경험들이 있어야지요.
찬양을 부를 때도 그렇구, 기도를 드릴 때도 그렇구요. 실질적으로 우리 안에서 우러나오는 그러한 기도와 찬양이 되어야 되는 겁니다. 물론 그러한 기도 그러한 노래 부르면 당연히 우리 안에서 나오는거 아니냐, 이렇게 생각 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말로만 그렇게 하고 말과 생각, 말과 행동, 말과 삶 이런 것들이 일치되기는 사실은 어려운 거예요. 일치를 하려면 그 언어, 성서언어를 분명히 이해를 해야 됩니다.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이라고 하는 이러한 한 짧은 구도 우리가 어떤 차원에서 이 말을 생각 하냐에 따라 깊이가 많이 달라 지겠지요. 위대하다. 여호와는 위대하다. 사실 우리의 세상살이 경험에 따르면 하나님이 위대하다는 것은 상당히 추상적이고 오히려 그 이외의 것들이 위대하다고 하는 걸 느끼는 거 거든요. 그 이외의 것들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여러분이 잘 아실 겁니다 돈이 더 위대하잖아요. 어떤 권력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우리 삶을 좌지우지 하니까 우리는 그런 것들을 위대하다고 보통 말합니다. 물론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예수님을 죽은자로부터 삼일 만에 부활케 하시고 이 역사를 섭리 하신다. 그렇게 말을 하고 있지만 실제적으로 우리가 그러한 생각으로 사느냐, 이런 질문 앞에서 우리는 별로 자신이 없는 거예요.녜, 좀 더 본문을 나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찬양 받으시리로다 그냥 위대한게 아니지요. 그냥 위대한게 아니라 창조자로서의 위대함인 거지요 이 창조라고 하는 말은 우리는 만들었다 그런 간단한 말이 아니라 질적으로 우리와 다르다고 하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가 로보트를 어떤 과학자가 만들었다고 합시다. 이 로보트가 아무리 지능적이고 또 컴퓨터를 통해서 계산을 잘 해 낸다고 하더라고 그 로봇과 그걸 만든 과학자하고는 질적으로 차이가 있는 거 거든요. 여호와는 창조자로서 위대하다 그러한 것들을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서 정확하다, 정확하기도 하고 아주 실질적으로 인식을 하고 또 우리가 그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삶, 이게 필요합니다. 이런 것들이야 여러분들이 수없이 들었으니까 진부하게 받아 드릴 수 있어요. 물론 그렇지 않기를 바랍니다. 또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내가 다시 잠을 깨서 하루를 시작할 때, 생명이 잠자고 있을 때도 생명은 생명이지만요. 잠자고 있을 때 생명과 깨어났을 때 생명은 다르니까 잠자고 있을 때에야 우리가 어떻게 하겠습니다. 무의식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지 못하고 내 욕망대로 움직인다고 하더라도 그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잠이 취하지 않았을 때, 이때는 호흡하는 거서부터 물 한 모금 마시고 또 우리의 어떤 노동행위 우리의 모든 이러한 일상의 삶들에서 하나님이 창조자라고 하는 것, 그 분만이 위대하다고 하는 사실, 그냥 보통 비교급으로서 위대가 아니라 그는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으로 위대하신 분이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의 삶에서 확인하고 또 그 안에서 살아가면서 그 분을 찬양 해야 되겠지요. 그 여호와 하나님이 위대하다고 하는 사실, 그래서 우리가 찬양을 드려야 된다는 사실을 뒤로 2절부터 쭉 설명하고 있는 거예요.이렇습니다. 

2절 터가 높고 아름다워 온 세계가 즐거워함이여 큰 왕의 성 곧 북방에 있는 시온 산이 그 러하도다
큰 왕의 성, 북방에 있는 시온산, 이런 것들은 좀 더 주석이 많이 필요한데 그냥 지나갑시다. 전문적인 문제예요. 제가 잠깐 참고한 주석의 설명에 의하면 북방에 있는 시온산, 이러한 표현들이 이교도적인 것을 넘어서는 유대교적인 특징이 있다고 합니다.전문적인 문제니까 그런 정도로 접어 두고요. 나갑시다. 

3절 하나님이 그 여러 궁중에서 자기를 요새로 알리셨도다
  하나님의 계시를 얘기하지요. 문학적인 표현이지요. 하나님이 여러 궁중에서 자기를 요새로 알리셨도다. 그림처럼 보여 줍니다. 사실은 하나님을 그러한 그림처럼 생각하면 안되지요. 그 사이가 참 미묘합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어떤 형상을 그런 걸 만들지 말라. 그런 계명에 의하면 인간의 모든 하나님에 대한 표상들이 우상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도그마가 되면 그렇게 되는 거 거든요. 그걸 절대화 하면 그렇거든요? 하나님은 절대적인데 그에 대한 표현은 절대적이면 안 된다고 하는, 이러한 아이러니인가요? 아니면 파라독스인가요? 그런게 있는 거예요. 그 하나님을 표현해야지요. 어떻게 표현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형상화하지 말라는 거예요. 이게 우리들로서는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뭘 표현 할 때는 형상으로 하거든요. 그림도 그렇고 이러한 형상화, 모양으로 만들구요. 그렇게 사실적으로 해 주어야 딱 머리로 들어오기 때문에 그렇게 합니다.그런데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설명 할수 없으니까 그런 방식으로 합니다. 그런데 거기에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기독교 교리가 필요 하되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고착화 시키는 규범으로 작용하게 될 때 그때는 우상이 되는 거지요. 이게 필요 없다는 말 아닙니다.그러한 교리가 당연히 필요한데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계시에 열린 그러한 마음을 갖게 하는게 아니라 선입관에 빠져 버리게 하면 곤란하다 그런 이야기지요. 오늘 이 시편 기자가 표현하고 있는 부분들이 선명하게 다 들어 와요. 하나님이 여러 궁중에서 자기를 요새를 알리셨다. 그렇잖아요? 그런데 그게 너무 그림으로 고착되면 또 하나님을 말하는데 적합하지 않은 것이라서 우리가 긴장하면서 이러한 말씀들을 읽어야 되겠습니다. 

4절 왕들이 모여서 함께 지나갔음이여
5절 그들이 보고 놀라고 두려워 빨리 지나갔도다
그 요새 앞에서 왕들이 놀라서 지나간다. 왕들이라고 한다면 그 당시로서는 가장 위대한 존재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들도 놀란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예. 하나님이 왜 찬양 받으실 분이냐는 그러한 이유를 이제 성서 이 기자가 이러한 문학적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는 거지요. 그런데 거기서 끝나는게 아니라 6절에 보면,  

6절 거기서 떨림이 그들을 사로잡으니 고통이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 같도다
하나님이 요새 앞에서 왕들이 두려워하고 놀라고 떨렸고 그리고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과 같은 고통을 겪었다. 재미있는 표현이네요. 왕들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걸 더 고통스러울지 모르지요. 그들은 지존자라고 자타가 인정하고 있는데, 그런데 그런 것들이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하나님 앞에서 이것을 알게 되면 그게 얼마나 고통스럽겠어요? 참 그렇습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높은 자리에 올라 가지 않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고통당하지 않을 수 있는 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약하기 때문에 자기위치가 높아지면 자기도 모르게 교만하게 되거든요. 자기 말 한 두 마디로 모든 일들이 막 뒤바뀌기고요. 사람들이 자기에게 아첨하고 말이지요 듣기 좋은 소리 하고, 실제적으로 자기에게 그러한 권력으로 모든 일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아주 특별한 사람 아니면 정말 교만해 질수 있습니다. 당연히 그렇게 될 거예요. 그러한 것들이 산산히 흩어져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명명백백하게 깨닫게 된다면 그건 정말 고통스러운 일들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만을 높이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런 삶을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든지 그렇게 살아야 될 겁니다 

7절 주께서 동풍으로 다시스의 배를 깨뜨리시도다 
다시스의 배 무역항해하는 큰 선박이지요. 그런 것들도 깨뜨린다 이건 사실적인 표현 같아요. 무역선들이 태풍을 만나서 많이 깨지지 않겠습니까? 도대체 왜 저런 일이 일어나는가? 하는 거지요. 그렇게 큰 배 보기만 하면, 참 사람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만한 무역선들이 현재는 그 낙엽처럼 돌풍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뒤뚱거리다가 무너지는 그런 일들을 볼 때 하나님의 능력, 위대성 이런 것들을 그들이 절실하게 깨달았을 겁니다.

8절 우리가 들은 대로 만군의 여호와의 성, 우리 하나님의 성에서 보았나니 하나님이 이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시리로다
녜, 1절에 여호와는 위대하시다 찬양 받으시리로다, 하고 2절부터 쭉 그의 위대성들을 왕들이 처한 그러한 두려움 이런 것들을 배경에 놓으면서 설명을 쭉 했습니다. 이제 그런걸 전제하면서 후반부로 넘어 가면서 그러한 하나님에 대한 그 위대성에 하나님에 대한 찬양들 그런 것들을 그 찬양들을 조금 더 일상적인 상태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그런데요 정확한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 48편에 조금 다른 거와 비교할 때 색다른 내용들이 좀 많이 들어가 있어요.  

9절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의 전 가운데에서 주의 인자하심을 생각하였나이다
10절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과 같이 찬송도 땅 끝까지 미쳤으며 주의 오른손에는 정의가 충 만하였나이다
9절에는 인자하심,10절에는 정의로움, 오른손에 정의가 충만하다
특별히 오른손에 하나님의 우편, 이러한 표현들이 고대 유대인들의 어떤 생각들이 담겨 있는 거예요. 시편 다른데도 그런 내용들이 있다고 합니다. 왕의 오른편이라고 하는 것은 왕과 거의 대등한 그러한 권한이 있는 사람이 자리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주님의 오른손, 하나님에게서 오른손이고 왼손이고 그런게 어디 있겠습니까?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상징적인 거지요. 하나님에게는 가장 중요한 것이 정의 이다 라는 이런 뜻으로 이야기하는 거지요.9절에서 인자하심 10절에서 정의를 얘기하고 있는데 이것은 이 땅 위에는 인자하심과 정의가 없다 매말라 간다 그런 것에 대한 어떤 고발이라고 할 수 있다고도 할 수 있구요. 그런것에 대한 신앙적인 분석 이렇게 얘기 할 수 있습니다. 어쨋든 인자함이 없는 그런 세상에서 주께서 인자하심이 있구요. 그걸 또 생각을 한다는 거구요. 하나님이 정말 정의로운 이러한 세상을 향해서 통치 하신다 그걸 내다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시편기자가 살고 있는 세상을 그렇지는 못하지요. 사실 시편세상을 그렇지 못하지요. 그러한 기도와 그러한 신앙을 노래하고 있는 겁니다.  

11절 주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시온 산은 기뻐하고 유다의 딸들은 즐거워할지어다
그것 참 이상한 노릇이시지요?주의 심판이라고 한다면 두렵고 떨리고 그렇게 해야 될 텐데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얘기합니다. 왜 그럴까요? 답은 뻔 하지요. 심판이라고 하는 것은 악을 제거하고 불의를 정의롭게 하고 그러한 하나님의 행위이기 때문에 당연히 정의롭지 못한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기뻐할 수 밖에 없지요. 시편을 읽으면서 우리가 그 시편기자들의 생각을 좀 따라 갈수 있습니다. 그들이 왜 그런 하나님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속마음을 따라 갈 수 있는 거예요. 이게 아까 얘기 한거하고 연관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마는, 하나님이 어떻다고 하는 것은 결정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본 사람도 없구요 본 사람은 죽는다고 되어 있구요.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서 누가 이렇다 저렇다 딱 끊어서 말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이 시편기자들이 하나님은 어떻다, 자비롭다 정의가 충만하다 이렇게 표현하고 있잖아요. 정말 하나님이 정의로우신 분이신가 인자하신 분이신가. 물론 그렇지요. 그래서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요 제가 말씀 드리려고 하는 정확한 부분이 전달하기는 좀 쉽지 않군요. 그렇더라도 한번 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도 정확하게 묘사 할 수는 없습니다. 그 분은 물건이 아니니까요. 사상이 아니니까요. 이데올로기기 아니니까요. 어떤 시스템도 아니구요. 완료된 어떤 것도 아니구요. 종말에 가서야 실체가 다 드러날 그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 분에 대해서 시편기자가 말하는 것처럼 인자하심 정의가 충만, 이렇게 이야기 한다고 해서 바로 그 분을 실체적으로 말했다고 볼 수는 없는 거지요. 그럼 왜 시편기자들이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는 가 하는 거예요. 그들은 하나님을 직접 본 건 아니니까요. 말을 해야 하는데, 하나님이 어떻다 이렇게 사실은 직접적으로 말하긴 힘들고 오히려 이거는 부정적인 방법으로 말한다고 볼수 있습니다. 이 말 자체는 부정적인 것은 아니에요. 인자하심, 정의 이런 건 적극적인 표현인데, 이것 자체가 하나님을 바로 그거다 라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니다 라는 것이라는 거지요. 하나님을 직접 말 할수 없기 때문에 오늘 이 땅위에서 하나님이 지으신 인간의 생명을 파괴하는 그러한 요소들과 반대되는 그것을 극복 할 수 있는 그 속성, 힘들을 하나님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겁니다. 인자하심을 생각한다고 그랬으니까 세상이 인자하지 않는 거예요. 인자하지 않는 세상이 어떻게 극복 될 수 있겠어요. 이건 하나님의 뜻은 아니다 라고 하는 것은 분명하니까요. 그러면 하나님은 인자하신 분이다 인자하신 세상 가운데서도 인자하신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분의 뜻을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기대 한다 그러한 시편기자들의 신앙고백이라고 할 수 있지요. 정의도 마찬가지고요. 정의롭지 않으니까 정의롭지 않은 세상이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거 잖아요? 그래서 하나님을 정의로운 분이라고 이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게 전달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12절 너희는 시온을 돌면서 그 곳을 둘러보고 그 망대들을 세어 보라
13절 그의 성벽을 자세히 보고 그의 궁전을 살펴서 후대에 전하라
12절과 13절은 으음, 또 궁정에 대한 묘사 인데요 이게 실제적으로 시온 예루살렘 궁정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지요? 지금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표현입니다. 그 요새지요. 하나님이 자기 요새로 자기를 알리신 거예요. 하나님의 집이라고 할 수 있고 하나님 자체라고 할 수 있는 거예요. 이건 문학적으로 뭐라고 붙이는지 모르겠어요. 알레고리는 아니고요. 어떤 사물을 통해서 어떤 궁극적인 어떤 분을 이야기 할려고 하는 거거든요.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장미꽃을 그렇게 묘사를 할 수 있는 거 잖아요? 그 방식입니다. 시온 이거는 예루살렘과 같은 하나님의 도시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거기를 돌면서 망대를 세워 봐라 그리고 성벽을 자세히 보고 궁정을 살펴서 후대에 전하라 하나님이 어떤 분이냐고 하는 것을 후대에 전하라고 하는 뜻이지요. 마지막 14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14절 이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가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
녜. 유대인들은 특별한 민족임에 틀림없습니다. 이렇게 올 곧게 끊임없이 하나님에 대한 관심을 갖고 대대로 살았던 민족이 인류역사 이래 또 있을까요?물론 유대인들에게도 그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시대에 따라 차이는 있긴 있지만 일관성은 분명히 있습니다. 다른 민족에게는 그러한 것들이 별로 많이 나타나지 않고 있구요. 물론 고등종교에서는 일관성들이 있지요. 불교에서도 신을 그런 일반적인 유럽의 종교하고는 좀 달리 신을 대상으로 하지 않지만 그래도 그 안에 일관성은 분명 있긴 있습니다. 그건 분명하구요. 유대인들에게는 특히 이런게 강한 것 같습니다. 그들이 당대에 하나님에 대해서 온전히 다 몰랐다고 하더라도 그것도 다시 자신들도 알거예요. 하나님이 이런 분이신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고 우리를 도울 실 거라고 생각하면 돕지 않으시고 늘 실망하고 우상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반복되었지만, 그래도 그 민족안에 하나님을 향한 일관된 생각들이 녹아 있습니다. 자기들이 다 몰랐더라도 후대에 자기들이 생각했던 것을 전하면 그 후대에 또 하나님의 뜻이 다 들어난다고 생각을 하는 거지요. 후대에 전하라고 이렇게 말하라고 있군요. 그런 점에서는 오늘도 기독교 신앙을 바르게 이해해서 하나님 뜻이 무엇인지를 잘 생각하고 후대에 전할 필요가 있겠지요. 이런 점에서 기독교 신앙 구약 신약을 전체 통 틀은 그러한 신앙은 역사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역사적인 존재라고도 할 수있지요마지막 14절 아까 읽었지요?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이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가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
녜. 이러한 신앙들은 그렇게 간단 한게 아닙니다. 자기들은 끊임없이 어려움을 겪고 하나님이 살았나 죽었나 의심이 들 만한 때가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죽을 때까지 인도하신다는 신앙을 놓치지 않은 거예요. 그런 방식으로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해 하려고 애썼고 그런 민족에게 하나님이 더 드러나셨다 더 계시하셨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신앙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유효합니다. 이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가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바로 그 하나님을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에게서 새롭게 경험했습니다. 인식하고 경험했습니다. 14절 다시한번 읽고 오늘 공부 마치겠습니다.

이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가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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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8]클라라

2009.04.04 10:13:27
*.216.132.150

시편 48편 녹취록 입니다.
좀더 다듬어서 올리려고 했는데,선교사님의 독촉(^^)도 있고 해서 그냥 무대뽀로 올려 봤습니다.
녹취하는 동안, 어떤 말로도 표현 할 수 없는 기쁨에 잠겼었다는 거,
꼭 말씀 드리고 싶네요.
아, 진짜 이제부터 시작이군요!!
우주 여행 말이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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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6]사띠아

2009.04.04 14:22:19
*.162.136.252

이렇게 정성이 많이 들어간 녹취록을 읽는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청출어람이군요.emoticon
라라집사님에게 배우는 재미가 솔솔합니다.

한번 들으며 녹취하고
두번째 다시 들으며 고치면서 느끼는 느낌,
세번째 또 다시 들으며 의미를 되새기며 녹취하는데 오는 깨달음..
그 녹취의 세계에 들어오신 것을 축하합니다.

계속 이은 녹취를 하실 수 있도록 튼튼한 허리를 주시도록 기도합니다.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09.04.04 14:26:29
*.139.165.30

사티아, 라라 님에게 의견을 묻습니다.
녹취록을 동영상 메뉴에 올리면 제한된 다비안만 접할 수 있으니
밖으로 돌리는 게 어떨는지요.
시편은 <성서마당>에,
사도신경강해는 <온라인강의실>로요.
동의 하시면
제가 그쪽에 방을 마련하겠습니다.
감사.
profile

[레벨:26]사띠아

2009.04.04 19:34:58
*.162.136.252

목사님!
저도 대찬성입니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일에 쓰임을 받는 자가 되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주말 되세요.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09.04.04 19:55:32
*.139.165.30

온라인 강의실에 들어가면
<조직신학해설>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녹취록을 넘겨주시죠.
사티아 님이 일일이 하기 힘들면
내가 시간이 날 때 옮겨드릴게요.
원하시는대로,
감사.
profile

[레벨:26]사띠아

2009.04.04 22:30:43
*.160.132.218

목사님
제가 하고 싶어도 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아마 동영상 강의만 쓰기가 허락이 되어 있어서 그럴 겁니다.
쯔읍...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09.04.04 22:58:23
*.139.165.30

제가 조금 조정했으니
다시 시도해보세요.
감사.
profile

[레벨:38]클라라

2009.04.04 14:49:27
*.216.132.150

목사님, 공개하는 거 대 찬성인데요.

제 녹취가 영 형편 없는데, 흉 안 잡힐까요?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09.04.04 19:56:45
*.139.165.30

성서마당에서
성서연구로 들어가면
<시편공부>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거기에 올려보세요.
감사.
profile

[레벨:38]클라라

2009.04.04 20:16:53
*.216.132.150

목사님, 잘 알겠습니다.
순서상 46편이 먼저 올라가야 할 거니까 저는 조금 기다렸다가 올릴 께요.
목사님께서 제목 정해 주시지 않으시면, 편의상 시편 첫 귀절을 제목으로 삼을까 하는데요.
그리고 정정해야 할 부분은 없는지요?
저는선교사님 따라 갈 생각은 꿈도 못 꿔 보겠구요^^
profile

[레벨:38]클라라

2009.04.05 12:11:26
*.216.132.150

선교사님,
제가 녹취 되지 않은 것도 시도해 볼려고 하는데요.
혹시 선교사님 꿍쳐 놓고 공개 안 하신 것 있음, 말씀해 주세요^^
저는 앞에서 부터 천천히 해 볼라구요.
목사님께선 분명히 이러시겠지요?
-이런.. 라라 집사가 시편 바람 단단히 들었군..
안 봐도 뻔해요.ㅋㅋ
profile

[레벨:26]사띠아

2009.04.09 01:46:54
*.162.141.44

라라집사님
꿍쳐둔것 없으니까 처음부터 쉬엄쉬엄하세요.
제가 시간이 되면 거들어드릴께요.
그럼...
시편아 라라집사님의 바람을 타고 훠이 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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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 62편, 영혼의 침묵 정용섭 2009-07-30 791
162 61편, 땅 끝에서의 부르짖음 정용섭 2009-07-25 784
161 60편, 사람의 구원은 헛되다 정용섭 2009-07-15 556
160 59편, 주는 나의 요새 [23] 정용섭 2009-07-10 950
159 58편, 하나님이 계시다 정용섭 2009-07-01 596
158 57편, 지존하신 하나님 정용섭 2009-06-24 545
157 56편, 사람이 내게 어찌하랴 정용섭 2009-06-10 786
156 55편, 탄원의 영성 [3] 정용섭 2009-05-27 495
155 54편, 주의 이름으로 정용섭 2009-05-14 575
154 53편, 어리석은 자 정용섭 2009-05-08 518
153 52편,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항상 있도다! [2] 정용섭 2009-04-29 769
152 51편 원죄와 구원 정용섭 2009-04-22 623
151 50편 자기 열정과 참된 하나님 신앙 [2] 정용섭 2009-04-15 790
» 48편 녹취록 -찬양받으시리로다 file [12] 박은옥 2009-04-04 996
149 49편 부러움과 두려움을 넘어서 [2] 정용섭 2009-04-02 610
148 46편 - 주는 우리의 피난처 녹취록 file [4] 김현혁 2009-03-29 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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