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여애반다라

조회 수 5478 추천 수 0 2013.05.07 21:46:30

來如哀反多羅* 1

 

                                    이성복

 

추억의 생매장이 있었겠구나

저 나무가 저리도 푸르른 것은,

지금 저 나무의 푸른 잎이

게거품처럼 흘러내리는 것은

추억의 아가리도 울컬울컥

게워 올릴 때가 있다는 것!

아, 푸르게 살아 돌아왔구나,

허옇게 삭은 새끼줄 목에 감고

버팀대에 기대 선 저 나무는

제 뱃속이 온통 콘크리트 굳은

반죽 덩어리라는 것도 모르고

 

 
 

來如哀反多羅 2

 

바람의 어떤 딸들은

밤의 숯불 위에서 춤추고

오늘 밤 나의 숙제는

바람이 온 길을 돌아가는 것

돌아가면 볼 수 있을까,

바람의 어떤 딸들이

신음하는 어미의 자궁을 열고

피 묻은 나를 번쩍 들어 올릴 때

또 다른 딸들이 깔깔거리며

빛바랜 수의를 마름질하는 것

보다가, 보다가 어미의 삭은

탯줄 끌고 돌아올 수 있을까,

언젠가 내가 죽고 없는 세상으로

 

 
 

來如哀反多羅 3

 

이 순간은 남의 순간이었던가

봄바람은 낡은 베니어판

덜 빠진 못에 걸려 있기도 하고

깊은 숨 들여 마시고 불어도

고운 먼지는 날아가지 않는다

깨우지 마라, 고운 잠

눈 감으면 벌건 살코기와

오돌토돌한 간처녑을 먹고 싶은 날들

깨우지 마라, 고운 잠, 아무래도

나는 남의 순간을 사는 것만 같다

 

 

   * 來如哀反多羅(래여애반다라)는 이성복 시인의 최근 시집 제목이다. 이 시집에는 이 제목으로 된 시가 아홉 편 실려 있다. 세 편 씩 나눠 싣는다. 이성복 시인의 시는 말 그대로 ‘백척간두 진일보 시방세계'의 문학적 형상화다. 보기에 아슬 하다못해 아찔하다. 기독교 신앙과 다른 길을 가고 있지만 그 아찔한 경험은 비슷한 것 같다. 그의 시를 다 이해하지는 못해도. 그 현묘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기쁨일까 슬픔일까, 환희일까 공포일까? 이 세상에서 이미 그것을 보는 사람은 볼 것이다. 마치 부활 경험이 은폐의 방식으로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듯이. 이 제목의 뜻이 무엇인지는 이 시집의 발문을 쓴 홍경님 선생의 설명을 조금 빌려오는 것으로 대신하겠다.


   “향가 <풍요(風謠)>(<공덕가(功德歌)>)의 한 구절인 ‘래여애반다라’는 ‘오다, 서럽더라’라고 풀이됩니다. 신라 백성들이 불상을 빚기 위한 흙을 나르면서, 그 공덕으로 세상살이의 서러움을 위안하는 내용이라 알려진 저 오래된 노래. 선생님은 ‘공덕’이 아닌, ‘서러움’에 방점을 두고 ‘래여애반다라(來如哀反多羅)’라는 여섯 글자의 의미를 각각 따로 해석하였습니다.”


  


[레벨:5]블루군

2013.05.08 03:24:08

무당.jpg : 래여애반다라

아버지와아들.jpg : 래여애반다라

장례행렬중인아낙네들.jpg : 래여애반다라

풍어제.jpg : 래여애반다라

해탈을꿈꾸며2.jpg : 래여애반다라

 시에서 풍기는 느낌이 이갑철 선생님의 사진집 충돌과 반동과 비슷하네요.
 
 사진집에는 더욱 좋은(?) 사진이 많지만 인터넷상에서 저작권에 그나마 자유로운(배포한 것처럼 보이는)

 공개된 사진 몇개 올립니다.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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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2]잠자는회색늑대

2013.05.08 06:35:41

글을보면 약간 섬뜩하다....라고 말하려 내려오다 정말 오싹해졌습니다.

마음의 눈과 육신에 눈이 연약하여 기도가 절로 나오네요..^^;;;

정말 살아 있음을 찐하게 느끼고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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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8]클라라

2013.05.08 21:53:05

시가 참 어렵네요.
통 모르겠어요.
목사님 해설 없었으면
저는 '살풀이 춤'만 연상하다 말 뻔 했어요.^^

저도 너무 궁금합니다. 
현묘세계, 시방세계, 죽음세계 너머
그 너머의 세계는 우리가 짐작하듯이,
낮의 해 같이 빛나는 세계일까, 아니면
칠흑같이 어둔 밤일까,
환희의 세계일까, 고통의 세계일까,

그러나, 설령, 그 세계가 고통의 세계일지라도
'그 분 안에서, 그 분과 함께' 라면
그 자체를 '환희'라고 할 수 있는 거지요?

백척간두 진일보 시방세계라 하시니,
이런 한시가 생각나네요.

저 백은의 세계 눈부시어
이 누리가 온통 한 진리네
밝음과 어둠마저 이를 수 없는 곳
오후의 햇살에 전신이 드러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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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3.05.08 23:18:31

삶이란,
그리고 죽음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왜 먹어야만 생존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왜 성을 탐닉할까요?
아무리 많은 걸 소유해도 만족이 없을까요?
인간은 왜 이렇게 잔인할까요?
우리의 물음은 끝이 없습니다.
아직도 이 세상이 결정되지 않았다는 뜻이겠지요.

사도신경의 끝마디는 이렇습니다.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습니다."
몸의 부활이 지금의 이런 삶으로 회귀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삶은 유일회적입니다.
그래서 부활을 희망할 수 있습니다.
다시 똑같은 삶이 반복된다면 그것은 신의 저주이겠지요.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아내야 합니다.
모순과 딜레마가 가득해도
그것이 바로 삶의 현실이기에 버텨내야 합니다.
비록 어둠이 가득한 무덤 같은 삶일지 몰라도
저쪽에서 비쳐오는 빛을 힐긋이라도 본 사람이라고 한다면
이 삶을 크게 긍정하게 될 겁니다.
그 큰 긍정은 자신에게 나타나는 모순도 감싸 안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고유한 생명으로 인정하는 겁니다.

'래여애반다라'- 오다, 서럽더라.
인간실존의 깊이를 보면 서럽지요.
그 서러운 실존을 받아들일줄 알면
새로운 차원의 기쁨에 사로잡히겠지요.

이 극치의 오묘한 삶을
우리가 같은 시대에서 살아가고 있네요.
이게 기억날까요?
마지막 심판을 통과한 새하늘과 새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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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8]클라라

2013.05.09 07:33:20

목사님, 엊저녁에는 죽음너머만 생각했는데,
오늘 아침, 목사님 말씀에서
문득, 삶과 죽음이 不可分離 의 관계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군요.
좀 더 긴 시간을 두고 묵상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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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2]잠자는회색늑대

2013.05.09 16:58:08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미야자키 하야오'감독의

한달 전에 봤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라는 제목의 만화영화가 떠오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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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3]달팽이

2013.05.09 13:19:44

우리 시대의 철학자 강신주 교수가
제일로 꼽는 시인이 있는데..
이성복과 김수영 한용운을 들더군요..
그래서 이 시인의 책을 사놓고  많이 읽지는 못했군요..
다시 한 번 책을 보면서 시를 감상해야 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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