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하늘의 열림’ 경험
(행 7:54-60)        
11월30일

합법인가, 불법인가?
기독교 역사에서 최초로 발생한 순교 사건은 몇 가지 점에서 특이하다. 지난주에 한번 지적했듯이 기독교인으로서 최고의 명예를 얻을 수 있는 순교가 예수의 열 두 사도 이외의 인물인 스데파노에게서 일어났다는 점이 가장 우선적인 특이 사항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이유는 예루살렘 기독교 공동체가 히브리계와 그리스계가 나뉘어져 있었다는 데에 있다. 스데파노는 그리스계 공동체의 대표자로서 예루살렘의 유대인들과 심한 마찰을 빚어서 결국 죽음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이 순교 사건의 또 다른 특징은 공공연한 살해행위인데도 불구하고 사법 당국에 의해서 공식적으로 집행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당시 유대인들의 공의회도 상당한 정도의 사법권을 행사할 수 있기는 했지만 사형에 관한 사항은 반드시 로마 정권의 허락을 받아야만 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유대인들의 제사장과 공의회의 의결로 끝나지 않고 빌라도의 사형 선고에 의해 실현되었다는 사실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사도행전에 기록된 두 번째 순교는 사도 요한의 형인 야고보에게서 일어났는데, 이 일은 헤로데 왕에 의해서 추진되었다.(12:1-5). 더구나 오늘 본문에 묘사된 장면은 유대 율법의 절차에도 별로 적절하지 않다. 산헤드린 공의회 문서에 의하면 종교재판을 통해서 사람을 돌로 쳐 죽여야 할 경우에 다음과 같은 순서를 따랐다. 우선, 손을 등 뒤로 묶인 채 가파른 낭떠러지 위에 서 있는 피고를 첫 증인이 밀어 떨어뜨린다. 그것으로 피고가 죽으면 다행이지만 죽지 않았으면 둘째 증인이 돌을 그의 가슴에 던져서 갈빗대를 부러뜨리고 폐와 심장에 상처를 입힌다. 여호수아 8장에 기록된 아간 사건에서는 여호수아의 명령에 따라서 증인들이 함께 아간과 그 가족을 돌로 죽인 일이 있긴 하지만 그건 산헤드린 법정이 있기 전의 일이었기 때문에 스데파노의 순교 사건과 일치시킬 수는 없다. 누가는 당시의 정확한 정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사도행전의 전체적인 집필 목적을 위해서 부분적으로 편집한 것 같다.
이런 문제는 증인들의 겉옷을 바울이 지켰다는 진술에서도 확인된다.(58절). 실제로는 죽어야 할 피고의 옷을 벗겨야 하는 대목에서 증인들이 돌을 잘 던지기 위해서 겉옷을 벗었다는 식으로 표현된 것이다. 이 대목은 훗날 바울에 의한 다시 확인되었다(22:20). 또 하나의 문제점은 이런 난폭한 사태에 로마 정부의 개입이 없는 이유에 대한 것이다.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끝내고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성전에서 정결 예식을 행하는 마지막 날 유대 군중들에게 린치를 당할 순간에 로마 장교에 의해서 구출된 일이 있으며(21장), 바울이 후송당하는 중간에 매복했다가 죽이려는 음모가 사전에 발각되어 죽음을 면한 일도 있었다(23장). 이에 반해 로마 정부가 스데파노를 향한 유대인들의 불법적 폭력을 저지할 수 없었던 데에는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된다.
사실 합법과 불법의 차이는 종이 한 장 밖에 없을지 모른다. 예수의 십자가는 합법의 틀 안에서 진행되었지만 궁극적으로 불법이었다. 지금 생태계를 파괴하는 건설 작업들이 합법적으로 진행될지 모르지만 지구의 생태적 관점에서는 불법일 수도 있다. 관습법이라는 이론에 근거해서 행정수도이전을 불법이라고 판결한 헌재의 행위가 법적인 실효성을 확보하고 있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불법일 가능성도 아주 높다. 14-17세기에 행해졌던 마녀재판 같은 데서 볼 수 있듯이 어쩌면 인류 역사는 합법과 불법의 혼동사(史)였을지 모른다.

열리는 하늘
비록 불법에 의해서 저질러진 스데파노의 죽음이었지만, 그리고 누가의 진술에는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발견되기는 하지만 기독교 역사에서 최초로 발생한 이 순교 사건은 초기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유대인들의 조상들이 예언자들을 죽인 것처럼 그 당시의 유대인들은 예수를 죽였다는 스데파노의 발언은 분명히 의회원들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누가는 그들의 반응을 이렇게 묘사했다. “의회원들은 스데파노의 말을 듣고 화가 치밀어 올라 이를 갈았다.”(54절). 아직 행동으로 폭발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에게 살의는 무르익은 셈이다. 살기를 온몸으로 느낀 스데파노는 오히려 성령이 충만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토로했다. “아, 하늘이 열려 있고 하느님 오른 편에 사람의 아들이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56절).
스데파노가 경험한 하늘의 ‘열림’이라는 현상은 무엇일까? 그것이 일종의 사실적인 묘사라고 한다면 물론 우주의 어느 한 공간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기는 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런 고대의 우주관과 전혀 다른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2천년 전의 신화적 세계관을 오늘 우리에게 강요함으로서 기독교 신앙을 광신으로 떨어뜨리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루돌프 불트만은 탈신화화(脫神話化, Entmythologisierung) 작업을 시도했다. 그는 성서의 신화적 요소를 문자의 의미에서 받아들일 게 아니라 그것의 실존적 의미를 포착하는 게 성서읽기의 바른 자세라는 사실을 주장하려고 하였다. 결국 성서는 그것의 객관적 사실성 여부보다는 독자들의 실존적인 삶에 적용시킬 수 있는 의미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예컨대 하늘을 인간의 마음으로 해석하는 방식의 성서읽기이다. 인간의 인식론적 토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불트만으로서는 이러한 탈신화화 작업을 통해서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당연하다. 그의 주장이 계몽된 현대인들에게 나름의 설득력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성서의 모든 신화적 요소를 그런 방식으로 해체해야만 성서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신화를 뚫고 그것의 리얼리티에 접근하는 게 더 바람직할 것이다. 왜냐하면 과학 문명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신화의 세계에 살고 있는 고대인들보다 세계의 본질을 훨씬 더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하이데거 식으로 표현하자면 우리가 고대인들보다 상대적으로 나은 정보를 갖고 있을 뿐이지 ‘존재의 역운’이라는 차원에서는 다를 게 하나도 없다는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하늘’의 리얼리티는 무엇일까?
성서가 가리키고 있는 ‘하늘’은 공간으로서의 하늘이라기보다는 궁극적인 생명이 은폐되어 있는 곳이다. 비록 스데파노가 하늘을 우러러 본다고 표현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리고 그들이 그런 하늘이라는 공간을 마음에 새겨 두었겠지만 그것은 단지 물리학적 우주 공간 안에 폐쇄되어 있는 세계가 아니라 그 당시로서는 궁극적 생명을 그런 방식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영적인 세계이다.
따라서 하늘이 열린다는 경험은 곧 생명이 열린다는 뜻이다. 스데파노가 보았던 하늘의 열림은 흡사 횔덜린의 시가 세계에 대한 인식이 미숙하던 청소년기보다는 좀더 원숙한 나이가 되어야 더 깊이 열리는 현상처럼 우리의 영적인 성숙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자칫 이런 경험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감정적 초탈인 엑스타시로 나타날 수도 있다. 열광적 기도와 찬송, 또는 신앙의 극단적인 자기 연민을 통해서 빠지게 되는 감정적 망아(忘我)의 상태를 하늘의 열림과 동일시할 수 없다.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은 인간이 자기를 초월한다는 점에서 비슷하기는 하지만 한쪽은 생명 지향적이고 다른 한쪽은 반생명적이라는 점에서 전혀 다른 세계이다. 도박에 빠지는 것과 음악의 세계에 빠지는 것, 술에 취하는 것과 영에 취하는 것이 비슷한 증상을 보이면서도 근본에서 다른 것처럼 말이다.

하나님의 우편
스데파노는 열린 하늘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우편에 ‘서’ 계신 것을 보았다고 한다(56). 사도신경에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 것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반해서 스데파노의 환상에서는 좀 다르게 묘사되어 있다. 이 차이에 대해서 학자들은 몇 가지로 설명한다. 1) 예수는 스데파노를 환영하기 위해서 일어섰다. 2) 예수는 지상에서 그의 메시아적인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일어섰다. 3) 원래 예수는 천사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우편에 서 있다. 이에 대한 정확한 이유를 우리가 파악할 수는 없으며, 어떤 면에서 그런 것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다. 우리가 한번쯤 짚어볼만한 대목은 오히려 하나님의 ‘우편’이라는 표현이다. 오늘 본문이나 사도신경 모두 한결같이 예수님의 위치를 하나님의 우편이라고 설명한다. 이미 시편에도 그런 구절이 있듯이 고대 사회에서 왕의 우편은 그 왕에 버금가거나 바로 아래의 권위를 상징했다. 초기 기독교인들이 예수의 자리를 하나님의 우편으로 설정했다는 것은 예수님이 기도의 대상으로 삼았던 하나님과 예수님이 동일시되었다는 뜻이다.
스데파노가 이제 하나님이 아니라 예수님을 기도의 대상으로 삼은 데서(59,60절) 우리가 확인할 수 있듯이 이런 계기로부터 초기 기독교는 오직 야훼만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유대교로부터 근본적으로 벗어나기 시작했다고 보아야 한다. 이런 상황을 성서학자 헨헨은 이렇게 설명했다. “이제 그리스도교는 단순히 유대교의 메시아적 소종파로 전락할 운명에서 최종적으로 벗어나게 되었다.” 이미 예수님이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날 때부터 메시아였던 예수님이 점진적으로 하나님과 하나 되었다는 게 무슨 뜻인가 하고 의아하게 생각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은 큰 착각이다. 예수님의 메시아 인식이 그 분의 일생에서 언제 정확하게 일어났는지 우리가 정확하게 모르며, 좀더 근본적으로는 십자가 처형을 당할 때까지 몰랐을 가능성도 많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모든 기독론(Christology)은 상당한 역사적 과정을 통해서 점진적으로 형성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의 메시아 성이 불확실하다는 게 아니라 그런 모든 구원론적 사건들에 담긴 역사적 지평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우리는 자칫 양 극단으로 치우칠 위험성이 있다. 한쪽은 소위 근본주의자들에게서 볼 수 있듯이 기독교 신앙의 역사성을 간과함으로써 폐쇄적인 문자주의에 빠지는 것이며, 다른 한쪽은 자유주의자들에게서 볼 수 있듯이 기독교 신앙의 근본을 놓침으로써 역사 상대주의에 빠지는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바람직한 태도는 기독교의 근본(정통)을 역사적 역동성 안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생명의 지평으로 지양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스데파노의 환상에 포착된 ‘하늘의 열림’ 경험을 무조건 문자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거나 아니면 신화로 폐기처분할 게 아니라 그로부터 2천년 이후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여전히 열려야 할 생명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가르침으로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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