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바울의 회심사건
(행 9:1-19a)        


예수와 바울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스데파노의 순교 장면에서 바울을 잠간 등장시켰다가(8:1-3) 오늘 본문에서 본격적으로 다룬다. 사도행전의 내용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독자라고 한다면 별로 놀라지 않겠지만 처음 대하는 독자라면 기독교를 박해하던 사람이 졸지에 옹호하는 사람으로 바뀌게 되었다는 사실을 매우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기독교의 복음이 유대교를 뛰어넘어 이방인을 향해야만 했다는 당위에 관한 역사적 해명이며 변증이라 할 사도행전의 전체 주제와 연관해서 본다면 오늘 본문에 이르기까지의 앞부분은 바울의 등장을 정당화하기 위한 서론에 해당된다. 이제 바울의 회심 사건을 언급함으로써 누가는 자신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본격적으로 들어선 셈이다. 그런데 누가가 바울의 회심 사건을 예수와의 만남이라는 매우 신비한 현상으로 설명하고 있는 데에는 그만큼 심각한, 또는 신학적인 이유가 있다.
우리는 앞에서 히브리파 기독교인들과 헬라파 기독교인으로 구성된 예루살렘 공동체가 결국 분리되었다는 사실을 한번 짚은 적이 있다. 예수의 사도들과 동생 야고보를 중심으로 한 히브리파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대교와 크게 차별화하지 않으려 한 반면에 스데파노를 중심으로 헬라파 기독교인들은 유대교로부터 독립하려는 의지가 강했다. 초기 기독교에서 주류를 형성하고 있던 히브리파는 좋은 뜻으로 헬라파를 분리시킨 채 예루살렘에 한정하는 공동체를 유지했지만 헬라파는 거침없이 이방 세계를 향해서 나갔다. 이 사이에서 중재역할을 한 인물이 사도 바울이었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왜냐하면 혈통적으로 베냐민 지파에 속한 그는 바리새인 중에서도 골수분자였으면서도 동시에 로마의 직할 식민지인 ‘다소’ 출신이라는 점에서 히브리파와 헬라파의 요소를 골고루 갖추고 있었다. 그렇지만 우리가 세세하게 알 수 없는 여러 가지 이유로 바울이 초기 기독교의 주류로부터 경계의 대상이 되었는데, 이런 갈등은 그가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 물론 기독교의 역사는 바울을 주류로 부각시켰는데, 그것은 예루살렘 중심의 기독교가 약화되고 이방 세계로 나간 헬라파가 힘을 얻게 됨으로써 벌어진 결과일 뿐이지 처음부터 그렇게 계획된 것은 아니었다. 아마 바울은 자신의 선교와 신학의 열매를 전혀 못한 채 매우 비관적인, 혹은 매우 불안한 상태에서 죽었을 것이다.
이렇게 지난 5, 60년간의 역사를 알고 있는 누가는 바울에게 예루살렘의 사도와 예수의 동생 못지않은 권위가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만 했다. 바울의 선교와 신학이 그 당시 교회에 인정받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참고적으로, 바울이 생전에 자신의 사도권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는 것은 곧 그에게 그런 약점이 있었다는 사실의 반증이다.
초기 기독교에서 최고의 권위를 확보하던 ‘사도’는 예수님과 함께 생활하고 부활하신 예수를 목격했으며, 예수에 의해서 제자로 임명받은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런데 바울은 예수님을 생전에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예수를 따르던 이들을 박해하던 장본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바울의 권위를 확보할 수 있는 길은 예수와 바울과의 관계를 증명하는 데 있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런 정황 가운데서 기록된 초기 기독교 문서의 한 부분이다.

바울의 경험
바울에게서 일어난 사건은 두 단계로 나뉜다. 하나는 예루살렘에서 다마스쿠스로 향한 가던 중간 일어난 사건이다. 그는 그리스도교를 믿는 사람들을 체포할 수 있는 증명서를 지참하고 몇몇 수발꾼들과 함께 길을 가는 중이었다. 다마스쿠스 가까이 이르렀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비추었고, 그가 땅에 엎드러지자 다음과 같은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4). 놀란 바울이 누구냐 하고 묻자 이런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일어나서 시내로 들어가거라. 그러면 네가 해야 할 일을 일러 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6). 바울이 땅에서 일어났지만 앞이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다마스쿠스로 들어가서 사흘 동안 앞을 못 보고,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고 한다.(9).
우리는 이런 본문을 만날 때 상당히 곤혹스럽다. 일단 이런 현상의 역사성을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어야 할는지 우리는 감을 잡기 쉽지 않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있는 그대로 믿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모든 것을 사실로 믿는 게 기독교 신앙에서, 특히 성서를 해석하는 작업에서 능사는 아니다. 왜냐하면 다른 본문도 마찬가지이지만 이렇게 특별한 텍스트를 해석할 때는 우리가 고려해야 할 전제 조건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이 본문은 흡사 신문 기자처럼 그 현장에 있던 어떤 사람에 의해서 사실적으로 보도된 게 아니라 초기 기독교 안에서 전승되어온 자료를 바탕으로 기록되었다. 전승이라는 것은 그 전승에 참여한 개인이나 집단에 의해서 조금씩 변화되기 때문에,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에는 전혀 다른 이야기로 각색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해야만 한다. 물론 이 이야기는 바울의 직접 경험이기 때문에 틀림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사도행전 22장과 26장에 반복해서 언급되었다는 것을 보면 우리가 이 이야기의 역사성을 어느 정도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개인의 주관적 경험이라는 게 얼마나 한정적인 것인지 잘 알고 있다. 비록 바울의 신앙적 진정성을 우리가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보도의 세부적인 항목까지 객관적 사실로 믿어야만 성서를 옳게 해석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는 또 다른 신학적 문제도 놓여있다. 빛으로 나타난 분, 다른 이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지만 바울의 귀에만 들린 그 소리의 주인공이 만약 예수 그리스도라고 한다면 조금 곤란한 문제가 발생하다.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예수는 이미 승천하셨으며,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다가 이 세상 마지막에 재림하실 분이다. 예수가 하나님의 우편과 이 지구 사이를 필요에 따라서 오갈 수 있다는 말인가? 물론 소설이나 동화 같은 데서는 예수가 현현하곤 하지만 실제의 역사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성서와 기독교 2천년 역사에서 이루어진 초월적인 존재와의 만남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천사로 이름 붙여진 어떤 매개체들이었다. 이런 점에서 오늘 본문에 등장한 예수는 실제적인 예수라기보다는 거룩한 체험에서 등장하는 어떤 특별한 현상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은 아무런 역사적 근거 없이 단지 바울의 사도적 권위를 확보하기 위한 누가의 창작물이라는 뜻일까? 그것보다는 이 사건은 다른 텍스트와 마찬가지로 사실과 해석의 종합이라고 보아야 한다. 여기서 ‘사실’(fact)은 바울이 기독교를 박해했던 사람이며, 다마스쿠스에서 회심하고 아나니아에 의해서 세례를 받았다는 것 정도라 할 수 있다. 그 과정에 바울에게 어떤 종교적 변화가 있었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아는 게 거의 없다. 오늘 본문에는 바울의 회심이 빛으로 나타난 예수를 만난다는 식으로 매우 드라마틱하게 묘사되어 있지만 그 안에는 그의 신학적 변화, 일종의 ‘패러다임 쉬프트’가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지 전승은 대개 줄거리 중심으로 발전하기 때문에 바울의 내면적 변화는 생략된 채 이런 다마스쿠스 사건으로 전해졌을 것이다. 이 전승이 이제 누가에 의해서 부활, 승천한 예수와 바울의 만남으로 해석됨으로써 새로운 의미의 ‘사건’(event)으로 바뀐 것이다. 이런 변화와 발전이 곧 역사다. 경우에 따라서는 잘못된 해석도 있지만 역사의 과정을 통해서 그런 해석들은 제거되고 옳은 해석들이 이 세계를 끌어가는 추동력으로 작동하게 된다.    

박해자에서 박해받는 자로!
오늘 본문이 바울의 경험보다 아나니아의 경험에 더 큰 비중을 두는 이유는 바로 이 사건을 누가가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울이 시력을 잃고 다마스쿠스에 들어와 있는 동안 그곳에 살고 있던 아나니아도 이상한 현상을 경험한다. 그는 바울을 도와주라는 음성을 듣는다. 그러자 이미 바울에 대한 나쁜 소문을 듣고 있던 아나니아가 머뭇거리자 좀더 명확한 음성이 들린다. 이 음성이 바로 누가가 사도행전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다. “그래도 가야한다. 그 사람은 내가 뽑은 인재로서 내 이름을 이방인들과 제왕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널리 전파할 사람이다. 나는 그가 내 이름 때문에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할지 그에게 보여 주겠다.”(15,16). 아나니아는 말씀대로 바울을 찾아갔다. 그러자 바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져나가 다시 보게 되었고,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아나니아의 환상에 의하면 이제 바울은 박해자로부터 박해받은 자로 살아야만 했다. 실제로 바울은 그렇게 살았다. 초기 기독교 지도자들 중에서 바울만큼 극한적인 어려움을 당한 사람은 별로 없다. 선교 여행 자체가 힘들기도 했지만 예루살렘 사도들에게서 받은 냉대도 힘들었을 것이며, 자신의 선교가 크게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로 인해서 낙담한 적도 많았을 것이다. 아마 바울의 삶을 잘 알고 있던 누가는 이런 회심 전승을 통해서 바울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귀한 일군이라는 사실을 전하려고 한 것 같다. 어쨌든지 다행스럽게 이러한 바울의 삶이 누가의 저작활동을 통해서 다음 세대에 알려지게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하나는 기독교의 역사는 바울과 누가 같은 사람들에 의해서 발전했으며, 이런 일은 앞으로도 계속된다는 것이다. 비록 그 당시에는 별 볼일 없었는지 모르지만 바울의 회심과 선교, 신학으로 인해서 기독교가 제 자리를 찾아갈 수 있었다는 말이다. 만약 유대교 안에서 경건한 사람들로 남으려 했던 예루살렘의 사도들만 있었다면 기독교의 역사는 전혀 다른 길을 걸어왔을지도 모른다. 다른 한편으로 누가는 숨어있던 바울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긴 인물이다. 만약 누가가 없었다면 바울을 통해서 이루어진 초기 이방인 전도 및 신학 작업은 영원히 파묻혀 있었을지 모른다.
이런 사건을 통해서 우리가 새겨야 할 또 하나의 교훈은 하나님이 역사에 참여한다는 사실이다. 원래 초기 기독교가 역사 안에 등장하게 된 것 자체가 기적적인 일인지 모른다. 왜냐하면 교회의 등장은 사람들이 의도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의도가 없었다면 결국 하나님이 개입했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역사 개입과 그것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 변증법적으로 작용함으로써 이 세계의 구원역사는 일어난다고 보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 역사는 신비이며, 바울의 회심 사건인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이런 역사적 신비를 배울 수 있다.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