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1일

제3차 선교여행
바울은 고린토에서 보낸 일 년 반 동안의 활동으로, 18절에서는 단지 ‘여러 날’이라고 표현되어 있지만, 2차 선교여행을 마감하고, 원래의 출발지였던 안티오키아로 돌아갈 계획을 세운다. 그런데 그는 왜 아퀼라 부부와 함께 떠난 것일까? 이에 대한 정보를 사도행전이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그저 추정해볼 도리밖에 없다. 앞에서 보았듯이 그들 부부는 로마에서 추방당한 후에 고린토에서 꽤 괜찮은 피혁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바울은 마케도니아 공동체로부터 선교비를 받기 전까지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아마 아퀼라 부부는 바울의 설득으로 사업을 그만두고 선교 활동에 뛰어들기로 작정한 건 아니었을는지. 또는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사업장을 에페소로 옮기면서 그곳까지 바울과 동행할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바울은 하나님께 서약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고린토를 떠나기 전에 바로 오른 쪽에 있는 항구 도시인 겐크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다고 한다. 그는 하나님께 무슨 서약을 한 것일까? 바울은 유대인들의 종교 의식인 ‘나실인’ 서약을 한 것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나실인은 예루살렘에서 이런 의식을 행해야 하며, 외국에서 나실인 서약을 했다고 하더라도 머리카락을 태우고 제사의식에 참여하기 위해서 최소한 30일간은 예루살렘에 머물러야 한다. 따라서 바울은 그렇게 심각한 나실인 서약이 아니라 단지 선교 여행에 관한 기도와 그렇게 복잡한 의식이 필요하지 않은 약속을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드린 게 아닐까 생각된다. 다른 한편으로, 율법이 아니라 복음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 바울이 머리를 깎았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율법과의 관계에서 바울을 변호하려는 의지가 여기에 담겨 있을 것이다.
어쨌든지 겐크레아에서 배를 탄 이들 일행은 일단 중간 기착지인 에페소에 도착했다. 바울이 유럽에서 다시 소아시아(지금의 터키)로 건너온 셈이다. 에페소에서 바울이 보인 행적도 여러 가지 점에서 따라잡기 힘들다. 누가는 무슨 생각으로 바울이 아퀼라 부부와 헤어져 혼자 회당에 들어갔다고 설명하는 것일까? 여기에 어떤 큰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단지 바울이 이후로 그들과 동행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암시하기 위한 것이리라.
바울은 에페소 회당에서 유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들이 바울에게 좀 더 오래 머물러 있어 달라고 청하였다.”(19절)는 걸 보면 바울이 여기서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 같다. 그런데 바울은 그들의 청을 거절하고 “하나님의 뜻이라면 다시 찾아오겠소.”하고 그곳을 떠났다. 기회를 얻는 대로 복음 전하는 걸 가장 귀하게 여기던 바울이 이렇게 좋은 기회를 거절했다는 건 무슨 말인가? 이에 관한 모든 사연을 우리가 확인할 수는 없지만, 바울이 에페소에서 시간을 충분히 내기 힘든 상황에 직면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약간 다른 시각으로 본다면, 이 에페소 공동체가 원래는 바울이 가기 전에 설립되어 있었지만 누가가 바울의 주도권을 인정하기 위해서 이렇게 잠시 틈을 내어 들린 것으로 설명한 것인지 모른다.
에페소를 떠난 바울은 원래의 목적지인 시리아로 가지 않고 훨씬 남쪽으로 처진 가이사리아로 갔다. 신약학자들의 의견에 따르면 그 당시 계절풍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그쪽으로 가게 되었다고 한다. 에페소에서 배를 타고 시리아 안티오키아로 직접 가지 않고, 본문의 보도대로 가리사리아에 들렸다가 육로로 또 다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그 당시의 여행 조건을 감안한다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가이사리아를 거쳐 예루살렘까지 들어간다는 것은 바울에게 큰 모험이라는 점에서도 계절풍 주장은 일리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주장이 무조건 옳다고 볼 수는 없다. 비록 힘든 일이었다고 하더라도 어떤 필요에 따라서 그걸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도행전의 집필 의도에 따라서 이 문제를 객관적으로 판단한다면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누가는 늘 바울이 예루살렘 공동체와 괜찮은 관계였다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각인시키려고 했다. 왜냐하면 바울에게는 그 부분이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울이 이제 2차 선교여행을 끝내는 이 순간에 예루살렘 공동체에 들려 사도들에게 인사드렸다는 게 사실이라고 한다면 바울에 대한 인상은 완전히 달라지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이 보도가 무조건 누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픽션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바울과 예루살렘 지도자들 사이에 나름으로 어떤 관계가 형성된 것은 분명하고, 그리스 이방인 공동체의 태두인 바울의 신앙적 뿌리가 예루살렘에 놓여 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정황이 누가에 의해서 그 당시의 교회가 놓인 형편에 따라 적합하게 해석된 것이다.
바울은 가이사리아, 예루살렘을 거쳐 드디어 안티오키아로 가서 얼마간 머물다가 다시 선교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이제 3차 선교가 시작된 것이다.

아폴로
누가는 바울의 3차 선교여행의 첫 자리에 에페소에서 활동하던 아폴로를 등장시킨다. 바울이 앞서 고린토에서 시리아로 가기 위해서 잠시 에페소에 들렸을 때는 아폴로가 없었다가 이제야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아폴로는 바울이 에페소에 들리기 전에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는 바울 못지않게 소아시아와 그리스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던 유대 기독교인 지도자였을 것이다. 고린토 교회에 이미 아폴로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한다. 고린토 교회 안에 바울 파, 아폴로 파, 베드로 파, 심지어는 그리스도 파가 서로 경쟁하고 있었으니 말이다.(고전 1:12, 참조 3:4). 바울은 자신과 아폴로의 역할을 이렇게 설명했다. “도대체 아폴로는 무엇이고 바울은 무엇입니까? 아폴로나 나나 다 같이 여러분을 믿음으로 인도한 일꾼에 불과하며 주님께서 우리에게 각각 맡겨 주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 나는 씨를 심었고 아폴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자라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고전 3:5,6).
고린토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 아폴로는 여기 에페소에서도 역시 그런 역할을 감당했다. 본문에 따르면 그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으로 구변이 좋고 성서에 정통한 사람이었다.”고(24절) 한다. 그런데 그는 “요한의 세례밖에 알지 못했지만, 이미 주님의 가르침을 배워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열성을 다하여 전도하며, 예수에 관한 일들을 정확하게 가르치고 있었다.”(25절). 여기서 말하는 요한의 세례는 물로 주는 의식을 말한다. 이에 반해 바울이 베푸는 세례는 “성령의 세례”였다. 이 세례문제는 다음 시간에 조금 더 자세하게 다루게 될 것이다.
아폴로에 대한 누가의 설명은 상당히 긍정적인 편이다. 그는 1) 예수의 가르침을 배워 잘 알고 있었으며, 2) 열성을 다하여 전도하며, 3) 예수에 관한 일들을 정확하게 가르쳤다. 이런 아폴로에게서 우리는 교회 지도자의 기초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다.
1) 우선 예수의 가르침을 정확하게 배우는 게 중요하다. 아마 많은 기독교 신자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잘 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여기서 말하는 배움이라는 건 단지 교리에 대한 정보가 아니라 구원론적 실체를 의미한다. 구원 사건인 예수는 우리의 삶에서 참된 능력으로 드러나야 하기 때문에 구원의 지평들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구약성서에 근거해서 예수 사건을 새롭게 이해하고 해석한 원시 기독교의 신앙과 신학이 바로 이런 작업이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은 이 예수의 구원 사건을 자연과학과 타종교의 차원에서 정확하게 해석하는 것일지 모른다.  
2) 아폴로는 전도에 최선을 다 한 사람이었다. 전도라는 말은 오늘 한국교회에서 지나칠 정도로 흔하게 언급되기 때문에 진부해졌는지 모른다. 우선 아폴로는 순회 전도자였을 것이다. 27절의 설명에 따르면 에페소 교회는 아카이아 지역으로 건너가고 싶어 하던 아폴로에게 추천서를 주었다. 바울이 고린토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이 문제를 거론한 적이 있다.(고후 3:1). 이렇게 아폴로는 여러 곳을 순회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던 인물인 셈이다. 오늘 우리가 아폴로처럼 순회 전도자가 되어야만 하는 건 아니다.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과 형편이 제각각인 것처럼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방식도 다를 수 있다. 우리는 현재 자기에게 가장 적절한 전도 방식이 무엇인지 살필 필요가 있다.
3) 아폴로는 예수에 관한 일을 정확하게 가르쳤다. 여기서 정확하게 가르친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또한 오늘 우리는 이런 정확한 가르침을 따르고 있을까? 사실 정확하게 배우는 것도 힘들고, 그렇게 가르치는 것도 힘들다. 모든 공부가 그렇지만, 신앙적인 공부는 훨씬 힘들다. 왜냐하면 신앙은 영적인 현실이기 때문이다. 오늘 이 시대에 가장 왜곡된 가르침은 신앙의 도구화일 것이다. 성서와 신앙을 이용해서 자기 삶을 확장하려는 태도는 결국 그런 영적인 현실로 들어가는 길을 막을 뿐이다. 예컨대 성서에서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배우려는 것은 성서읽기의 심각한 위기이다. 그런 배움은 굳이 성서와 신앙이 아니라 이 세상의 교양과 처세술에서 얼마든지 얻어들을 수 있다.
우리는 아폴로에게서 바람직한 교회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핵심적 자질 세 가지를 검토했다. 그러나 이것들은 훨씬 근원적인 하나의 사태로 집중되어야 한다. 그것은 곧 예수와의 진정한 만남이다. 그런데 여기서 만남이라는 말은 오해하기 쉽다. 흡사 친구를 만나듯이 왠지 기분이 좋은 어떤 상태를 연상하면서 예수와의 만남을 생각한다면 감상주의로 떨어질 위험성이 높다. 따라서 신앙의 차원에서는 만남이라기보다는 일치라는 말이 옳을지 모르겠다. 예수의 인격과 그에게서 발생한 메시아적 사건이 일치한 것처럼 우리가 한편으로는 그의 인격과,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그의 사건과 일치하는 게 중요하다. 이런 토대에서 우리의 배움과 가르침은 길을 잃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에페소 원시 공동체의 실상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 오늘 본문이 보도하는 것은 바울이 2차 선교여행을 마치면서 에페소를 경유했으며, 그 와중에 아폴로가 매우 성실하게 복음을 전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더 많은 전도자들이 에페소를 거쳐 갔을 수도 있다. 이런저런 사람들의 숨어 있는 힘이 종합적으로 에페소 교회를 살리는 데 작용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오늘도 우리는 이름이 당장 드러나든지 않든지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아적 구원 사건에 집중해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이런 삶의 태도가 바로 역사의식이며, 궁극적으로 종말론적 신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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