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의 보도는 일종의 해프닝이다. 뭔가 대단한 일이 벌어질 것처럼 시작되고 진행된 이 이야기가 예상 외로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우선 이 사태와 연결된 문제를 두 가지만 정리하고 넘어가자. 첫째, 에페소에서 바울이 당한 위기는 오늘의 보도보다 훨씬 심각했을 것이다.(고후 1:8 이하). 둘째, 이 에페소 소동 설화에 누가의 신학적 의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이 소동에 연루된 사람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이다.

데메드리오
에페소의 여신 아르데미스 신당 모형을 만들어 파는 수공업 대표자인 데메드리오가 어느 날 동업자들을 선동하기 시작했다. 그의 논리는 다음과 같다. 여신 기념품 사업을 통해서 잘 살아오던 우리에게 위기가 닥쳤다. 그 위기는 바울이라는 사람의 복음 전파에 있었다. 사람의 손으로 만든 건 신이 아니라는 바울의 주장이 인근 지역에 설득력을 얻게 되어, 자칫 우리의 사업이 큰 타격을 입을 뿐만 아니라 아르데미스 여신과 그 신당이 괄시를 받게 될 것이다.
누가는 지금 데메드리오의 행동을 통해서 바울의 복음과 그 지역 사회의 관계를 간접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복음은 분명히 그 사회에 거침돌로 작용한다. 물론 복음이 그 사회를 무조건 거부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근본에 대해서 고민하게 만드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에 대한 전반적인 교회사-신학사적 정황에 대해서는 리차드 니버의 <Christ and Culture>를 참고하라. 복음의 토대인 예수의 십자가가 유대인들에게는 ‘비위에 거슬리고’, 이방인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이는 일이라는 바울의 지적에서도(고전 1:23) 복음과 문화의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데메드리오는 동업자들에게 경제적인 이유와 종교적인 이유를 들어 바울을 공격한다. 그의 속마음은 어디에 놓여 있을까? 실제로 아르데미스 여신에 대한 염려인가, 아니면 돈벌이에 대한 염려인가? 경제와 종교는 인간들의 영원한 관심사이다. 경제가 받쳐주지 않으면 문명이 발달할 수 없고, 종교가 받쳐주지 않으면 예술이 발달할 수 없다는 점에서 경제와 종교는 인류 문명의 쌍두마차라 할 수 있다. 칼빈의 개혁주의 신앙이 자본주의의 토대라는 막스 베버의 논리를 우리가 받아들인다면 종교와 경제는 그야말로 찰떡궁합이라 할만하다.
데메드리오가 자신들이 처한 입장을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긴 하지만 누가는 데메드리오에게 관심이 있는 건 아니다. 그 근거를 우리는 데메드리오가 이런 소동의 주동자인데도 실제로 극장 안에서 극심한 논란이 벌어졌을 때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데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무대에서 사라지고 다른 사람들이 등장하면서, 사건이 더욱 긴박하게 돌아간다.

바울
데메드리오의 선동은 일정한 효과를 달성했다. 사람들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월드컵 때 “대 - 한민국!”을 외치던 응원단처럼 그들은 “에페소의 여신 아르데미스 만세!”하고 외치면서 도시를 시끄럽게 했다. 사람들은 바울 대신 그와 동행한 마케도니아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타르고를 붙들어 극장으로 끌고 갔다. 이 대형극장에서 논쟁을 벌이자는 것인데, 그것은 일종의 인민재판의 성격을 지녔을 것이다.
누가는 이런 긴급한 순간에 무대 뒤편에 있던 바울을 잠시 끌어들인다. 바울은 자기의 동료 두 사람이 극장으로 끌려가는 걸 보고 그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누가는 이 상황에서 바울의 정신적 상태를 설명하지 않는다. 자신의 복음이 에페소의 흥분한 민중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지, 아니면 위험에 빠진 동료들에 대한 책임감이 발동한 것인지 우리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누가는 바울을 뜯어말린 집단이 둘이라고 설명한다. 하나는 신도들이며, 다른 하나는 지방장관들이었다. 바울까지 위험에 처하게 할 수 없다는 신도들의 생각은 당연하지만, 지방장관들까지 여기에 동참했다는 것은 의외이다. 이 사람들은 로마 식민지에서 황제의 통치권을 강화하기 위한 동맹신전의 책임자들이다. 최고위 사회 지도층이라 할 이들이 바울의 안전을 염려했다는 것은 기독교의 복음이 반(反)국가적이지 않다는 사실에 대한 반증이다. 데메드리오를 대표로 한 경제인들은 바울의 복음을 적대시했지만, 실제로 사회 지도층들은 매우 우호적이었다는 사실을 누가는 강조하고 싶었을 것이다. 바울이 극장으로 들어갔는지 아닌지에 대해서 본문이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나설 때와 물러 설 때를 정확하게 구분하는 게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일지 모르겠다.

알렉산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떠들고 있는 그 와중에 알렉산더라고 하는 유대인이 무대 위에 올라섰다. 그를 그렇게 나서게 한 사람들은 유대인들이었다. 본문 32절에 의하면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무엇 때문에 모였는지 모를 정도였다고 하니까 유대인들은 이 소동이 자칫 자신들에게 불똥이 튈지 모른다고 지레 겁을 먹고, 말 잘하는 알렉산더를 내세워 변명하고 싶었을 것이다. 누가가 전하는 이 장면은 매우 희화(戱畵)적이다. 알렉산더가 군중들을 향해 조용히 하라는 뜻으로 손짓을 하자 군중들은 그가 유대인인 것을 알고 “에페소의 여신 아르데미스 만세!”라는 구호를 두 시간동안이나 외쳤다고 한다. 결국 알렉산더는 한 마디도 못하고 연단에서 내려와야만 했다.
누가는 무슨 이유로 보기에 따라서 별로 필요하지도 않은 이런 에피소드를 끌어들인 것일까? 그 내막을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힘들지만 사도행전의 기본 구도에 따라서 이렇게 추정해볼 수 있다. 바울 일행의 위기를 이용해서 자신들의 입장을 변호하려고 한 유대인들의 태도는 매우 졸렬한 것이며, 결국 근본적으로 봉쇄되고 말았다. 기독교의 복음을 방해하려는 유대인들의 시도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에페소 시장
이 설화는 세 토막으로 구분된다. 하나는 데메드리오의 선동, 두 번째는 몇 가지 에피소드, 셋째는 시장의 대중 설득이다. 대화나 논쟁이 아니라 근동 종교의 광신적 열정만 난무하는 바로 그 순간에 에페소의 시장(서기관)이 등장한다. 익명으로 그려진 에페소 시장은 이 이야기 앞부분에서 바울을 고소한 데메드리오와 대립적인 입장을 보인다. 그의 논리는 다음과 같다.
에페소가 아르데미스의 신당과 제우스 아들을 숭배하는 도시라는 사실은 여전히 유효하다. 군중들이 끌고 온 기독교인들은 아무 잘못이 없다. 신당의 물건을 훔친 일도 없고, 여신을 모독한 일도 없다. 데메드리오 일행은 이렇게 선동하는 방식이 아니라 실정법에 호소해야 한다. 이런 소동에 대해서는 시장이 책임을 져야하며, 더 근본적으로 이런 행위는 불법이다. 시장의 설득에 따라서 흥분했던 군중들을 해산했다. 이 맥락에서 우리는 세 가지 요점을 정리할 수 있다.
1) 기독교 복음은 이방신들을 모독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의 신성을 부인할 뿐이다. 누가는 기독교가 이 세상 문명과 타종교에 대해서 모욕적인 태도로 접근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명확히 한다.
2) 누가에 의하면 기독교는 세속 사회와 적대적이지 않다. 앞에서 데메드리오의 선동을 다룰 때 기독교 복음이 사회의 거침돌로 작용한다고 설명한 것과 이 대목이 모순처럼 보이겠지만 근본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기독교가 로마 황제와 신들의 우상숭배 질서에 영합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도적으로 세상과 충돌한 것은 아니다. 누가는 지금 후자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기독교와 사회의 관계를 일치냐, 대립이냐, 하는 양자택일이라기보다는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서 대응하는 게 바람직한 것 같다.
3) 바울의 복음은 소용돌이 속에서도 승리의 길을 간다. 누가의 눈에 바울의 복음은 그 어떤 시련 가운데서도 앞으로 진행되었다. 데메드리오의 고발은 무고가 되었으며, 바울은 직접 논쟁에 나서지 않은 채 승리자가 되었다.

민중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또 한 부류는 민중이다. 누가가 “에페소의 여신 아르데미스 만세!”라는 그들의 고함을 두 번이나 전달하고 있는 이 민중들은 매우 강력한 힘을 행사하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 매우 무기력하게 허물어진다. 그들은 우선 데메드리오에 의해서 선동당한 다음에 극장의 분위기를 뜨겁게 달구는 역할을 하다가 시장의 회유에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복음서에 등장하는 민중은 예수를 적대적으로 생각한 바리새인들과 달리 예수의 말씀을 순수하게 받아들인 집단으로 그려지기도 하지만, 빌라도 법정에서는 바라바 대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함성을 지름으로써 하나님의 아들 처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도대체 민중은 누구인가? 민중이라는 실체는 있는가?
1960년 대 라틴 아메리카 로마 가톨릭 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난 신학운동이 해방신학이라고 한다면 비슷한 시기에 한국에서 일어난 신학운동은 민중신학이다. 이 두 신학은 이전의 정통신학이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또는 동정의 대상으로만 치부하던 기층민들을 신학의 주체로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그리고 당파성을 토대에 둔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1990년대의 현실사회주의 몰락 이후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무기력증을 보이고 있는 민중신학이 앞으로 신학적 역동성을 회복하려면 민중을 이상화하지 말고 현실적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요즘 황우석 교수의 배아줄기 연구와 연관된 민중들의 태도에서 이런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지난날의 민중을 요즘의 네티즌과 동일시할 수는 없지만 대중성이라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군중, 또는 민중은 윤리보다는 공학에, 세계보편성보다는 민족의식에 쉽게 휩쓸린다. 민중들의 부화뇌동이 정치와 종교 영역이 아니라 과학영역에서도 일어났다는 사실은 해괴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황 교수 파동은 과학이 아니라 순전히 정치공학적인 사건인 셈이다.
이제 바울의 선교는 대중선동이라는 극한의 혼란 가운데서도 추호도 흔들림 없이 자기 길을 가게 되었다. 이제는 로마질서의 지도층 인사들 중에서도 바울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누가는 이런 일련의 설명을 통해서 바울이 초대교회에서 독보적인 지도자였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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