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의회 안에서의 소동
(22:30-23:11)        
5월1일

파견대장의 조치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체포된 이후의 상황은 세 부류의 사람들에 의해서 진행된다. 사도 바울, 유대인, 로마 관료. 누가에 의해서 묘사된 사도 바울은 급박한 상황 가운데서도 소신을 잃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유대교와의 우호적인 관계를 회복해내려고 애를 쓴다. 이에 반해 유대인들과 그들의 대표자들은 바울을 무리하게 위협하고 공격을 시도하는데, 그런 과정에서 그들의 어리석음이 드러난다. 누가는 로마의 고급관료를 가능한 대로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들은 열광적인 유대인들에 비해서 이성적인 사람들로 그려진다. 그들은 바울과 그리스도교에 대해서 그 어떤 선입관도 품지 않고 공정하게 대한다. 파견대장에 의해서 바울이 자신을 변호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오늘의 본문도 이런 사실의 한 증거이기도 하다.
안토니오 성(城) 병영 앞에서 한바탕 소란이 벌어진 다음날 파견대장은 이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 산헤드린 의회를 열게 했다. 물론 이 의회는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에 의한 최고 법정이기 때문에 파견대장에게 개회 권한이 주어진 건 아니지만 예루살렘 도시 전체의 치안을 책임진 사람으로서 그렇게 압력을 행사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누가는 파견대장이 바울을 묶었던 사슬을 그제야 풀어주었다고 설명한다. 바울의 로마 시민권을 확인한 후에도 여전히 사슬로 묶어두었다는 건 그렇게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누가는 지금 사건의 합리적 진행보다는 바울과 그리스도교가 처한 입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데 무게를 두기 때문에 사슬 문제는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니다.

의회에서의 에피소드
바울은 파견 대장이나 의회 의장의 허락을 받지도 않은 채 의회원들을 똑바로 바라보고 단도직입적으로 이렇게 자신의 입장을 피력한다. “형제 여러분, 나는 이날까지 하느님 앞에서 오로지 바른 양심을 가지고 살아 왔습니다.”(23:1) 이 말을 들은 대제사장 아나니아는 곁에 섰던 사람에게 바울의 입을 치라고 명령한다. 아나니아는 왜 그런 명령을 내렸을까? 하나님 앞에서의 양심 운운한 바울의 말이 하나님에 관한 권위를 독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의 기분을 몹시 상하게 만든 것 같기는 한데, 우리 독자의 입장에서는 아나니아의 심리적 상태가 의심스러워 보일 뿐이다. 아니니아의 말에 바울의 기는 전혀 꺾이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외친다. “회칠한 벽 같은 이 위선자! 하느님께서 당신을 치실 것이오. 당신은 율법대로 나를 재판하려고 거기 앉아 있으면서 도리어 율법을 어기고 나를 때리라고 하다니 될 말이오?”(23:3) 하나님이 치신다는 표현은 신 28:22에 기록된 저주 방식이다. 아나니아는 66년에 살해당했다고 한다.
이렇게 한 두 마디 오간 다음에 아나니아 곁에 서 있던 사람들이 아나니아를 변호한다는 의미로 바울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하느님의 대사제를 모욕하고 있다.”(23:4) 바울의 변명은 다음과 같다. “형제 여러분, 나는 그분이 대사제인 줄은 몰랐습니다. 네 백성의 지도자를 욕하지 말라고 성서에 씌어 있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23:5). 어떤 학자는 바울이 지독한 근시이기 때문에, 또는 의회 안이 너무 소란스러웠기 때문에 바울이 아나니아를 알아보지 못했다고 설명하지만, 그런 설명은 이런 장면에서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이런 에피소드는 어떤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바울의 정당성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서 누가가 구상한 일종의 문학적 서술이기 때문이다. 이 장면에서 누가는 바울이 율법에 충실한 사람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는지 모른다.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대제사장을 향한 바울의 모욕 건은 예상 외로 간단히 해결되었다. 바울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신의 입장을 다시 해명하기 시작했다. 산헤드린 의윈들은 크게 두 파로 구성되었다. 하나는 바리새파이고, 다른 하나는 사두개파였다. 바리새파는 분파적이고 종교적인데 비해서 사두개파는 현실타협적이고 세속적이라 할 수 있다. 바울은 자신이 바리새파에 속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희망 때문에 자신이 이런 모함을 받게 되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자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사이에 큰 논쟁이 벌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사두개파 사람들은 바울을 비난했고, 바리새파 사람들은 바울을 비호했다. 특히 바리새파 율법학자들은 바울의 다마스쿠스 경험까지도 사실로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우리는 이 사람에게서 조금도 잘못을 찾을 수 없습니다. 만일 영적 존재나 천사가 그에게 말해 주었다면 어떻게 할 셈입니까?”(23:9)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아무리 바리새파와 사두개파의 입장이 다르다고 해도 바울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자중지란이 일어났다는 것은, 특히 바리새파가 바울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게 되었다는 것은 그렇게 자연스러운 설명이 아니다. 물론 바울이 바리새파와 사두개파의 분열을 적절하게 이용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산헤드린 의원들이 그런 정도로 호락호락하게 적전분열을 일으키는 사람들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더구나 자신의 부모까지 거론하면서 자신이 바리새파 사람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바울의 모습도 그렇게 자연스러운 게 아니다. 바울이 바리새파 중에서도 매우 철저한 사람이긴 했지만 결국 그런 모든 전통을 배설물처럼 버린 사람이다. 그런데 현재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 바리새파의 전통을 다시 들먹인다는 것은 별로 개연성이 없는 이야기이다.
우리가 앞에서도 몇 번 확인한 사실이지만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바울이 유대교의 율법을 박멸하려는 게 아니며, 그리스도교가 유대교와 근본적으로 다른 게 아니라는 점을 해명하는 중이다. 바리새파와 사두개파가 바울에 대해서 서로 다른 입장을 보였다는 이런 이야기를 읽는 사람들은 누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며, 유대교의 입장에서도 그리스도교가 적대적인 집단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산헤드린 의회에서는 이제 바울 문제보다는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사이의 논쟁이 훨씬 심각한 문제로 부각되었다. 논쟁이 과열해지자 바울에게 신체적인 폭력이 가해질 것을 염려한 파견대장은 부하들을 시켜서 바울을 병영으로 옮겼다. 이 장면에서도 로마 고위 관료는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해서 신속하게 처리함으로써 결국 바울을 결정적으로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로마 정부에 대한 초기 그리스도교의 입장이 이런 데서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물론 특별한 시기에 그리스도교가 로마 정부에 의해 시련을 당하긴 했지만 일반적으로는 보호받는 일이 많았을 것이다. 이런 우호적인 관계가 결국은 콘스탄틴 황제에 의한 밀랑칙령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교회와 국가의 관계는 유럽 역사에서 우여곡절이 많았다. 큰 그림으로만 말한다면 아주 특별한 몇몇 시기만 제외한다면 교회와 국가는 독립된 질서를 서로 인정하는 관계를 맺었다. 교황은 황제의 천부적 권위를 인정했고, 황제는 교황에게 일정한 세속적인 힘을 제공했다. 많은 신학자들은 교회가 ‘포스트 콘스탄틴’으로 인해서 갈릴리의 혁명적 기운을 잃어버렸다고 비판한다. 물론 교회가 세속적인 권위에 맛을 들임으로서 복음의 변혁적 기능과 예언자적 역할을 상실할 때도 있었지만, 이런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게 재단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교회가 세속 정부에 비판적인 태도를 일관되게 견지하지 않는 이유는 교회의 존재 근거가 세속적이지 않다는 데에 있다. 교회는 정권의 궁극적인 목표인 복지사회 건설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데에 그 목표가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교회는 고유한 방식으로 생명의 세계를 경험하고 그것을 선포한다. 성찬식, 세례식, 예배, 기도회, 성서공부 등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희망하게 하는 것이 곧 교회의 근본 목표이다. 이런 최소한의 행위를 방해하지만 않는다면 교회는 세속정부를 부정할 수는 없다.
물론 여기에 반론이 가능하다. 교회의 종교적인 행위를 방해하지는 않지만 반민주적이고 반민중적이고 폭력을 일삼는 정권을 향해서는 교회가 적극적으로 투쟁해야 한다고 말이다. 본회퍼가 히틀러 암살 비밀결사에 참가했다는 사실은 이에 대한 좋은 예이다. 필자는 이런 반론에 동의한다. 다만 교회 현실에서는 이런 투쟁이 훨씬 복합적인 성찰을 거친 다음에 실행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한 정부, 한 국가는 한 두 마디로 재단하기 어려울 정도로 훨씬 복잡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오늘 교회의 이름으로 반미운동을 전개해야만 할까? 신자유주의와 양극화를 양산하는 오늘의 모든 정부를 향해서 교회가 돌을 던져야 하나? 결국 교회는 사안별로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하는 방식으로 투쟁하는 길밖에 없다. 교회가 세속정권의 마성을 못 보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것을 뚫고 임하시는 하나님의 통치에 훨씬 근원적인 희망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주님의 음성  
의회 안에서의 소동은 일단락되었다. 바리새파 사람들과 사두개파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싸웠고, 바울은 파견대장에 의해서 안전하게 보호되었다. 그날 밤 바울에게 주님이 환상으로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너는 예루살렘에서 나에 관하여 증언한 것처럼 로마에서도 증언해야 한다.”(23:11) 오늘 본문은 당장 큰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에서 전혀 새로운 분위기로 바뀌었다. 바울은 이제 주님의 말씀에 의해서 로마까지 가야할 이유가 확보된 셈이다. 로마에서도 복음을 증언하는 일이야말로 바울에게 맡겨진 가장 큰 사명이다. 그것은 또한 초기 그리스도교가 당면한 과제이기도 하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이 우여곡절을 거쳐서 로마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곧 누가가 사도행전을 집필한 목적이기도 하다.
그렇게 소란스러운 상황 가운데서도 바울이 로마에서도 복음을 증언하다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은 그리스도교적 영성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가리켜준다. 오늘도 이런 영성은 우리에게 유효하다. 서로 자기주장에만 사로잡혀서 살아가는 이런 풍토에서 그것을 뚫고 내려오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대개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음성이 들린다는 사실 조차 알지 못하며,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환청에 시달린다. 영적인 음성을 들으려면 그것을 먼저 경험한 사람들의 고백인 성서를 깊이 있게 이해해야 하며, 또한 이 세상의 생명 현상을 눈여겨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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