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난파 이야기(27:1-44)
6월12일

요약
바울의 체포와 공판은 26장으로 끝나고 이제 로마로 호송당하는 이야기가 27장과 28장에 이어진다. 27장은 지중해에서 당한 난파 이야기이고, 28장은 로마 도착과 그곳에서 진행된 복음전도 이야기이다. 특히 27장은 누가의 문학적 상상력이 마음껏 발휘된 대목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흥미를 끈다. 여기 27장에 그려진 바울은 죄수임에도 불구하고 로마의 백인대장과 선주와 선장 등, 그 배에 타고 있던 모든 사람을 압도하는 권위를 행사했다. 이것이 바울의 실제 모습이었는지 아닌지 우리가 판단하기는 힘들지만, 사도행전 전체 집필 의도와 부합하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바울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추호도 흔들림 없는 정신적 지도자였다는 말이다. 우선 27장의 난파 이야기의 줄거리를 따라가 보자.
페스도 총독은 바울의 로마 호송 책임을 백인대장 율리오에게 맡겼다. 율리오와 그 부하들, 그리고 바울과 그 친구들은 가이사리아에서 화물선을 탔다. 그 배는 다음날 가이사리아에서 북쪽으로 그렇게 멀지 않은 시돈 항에 도착했다. 그들이 탄 배는 시돈을 떠나면서 역풍을 만났기 때문에 가능한 최대의 안전을 위해서 키프로스 섬과 길리기아 해안 사이를 지나서 미라 항에 닿았다. 미라 항에서 율리오는 바울 일행을 이탈리아로 가는 알렉산드리아 배에 갈아 태웠다. 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이 알렉산드리아에서 이탈리아까지 곡물을 나르는 이 수송선은 1천2백 톤급은 된다고 한다. 역풍을 만난 이 배는 직선 항로로 들어가지 못하고 훨씬 남쪽에 치우쳐 있는 그레데 섬의 ‘아름다운 항구’에 닿았다.
항해 조건이 점점 나빠졌다. 이제 추분이 지났다는 건 계절풍이 그들이 원하는 방향과는 반대로 불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바울은 사람들에게 자기의 생각을 전했다. “여러분, 내가 보기에는 이대로 항해를 더 계속하다가는 짐과 배의 손실뿐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도 잃을 큰 위험이 따를 뿐입니다.”(19절) 바울의 의견은 여기서 무시되었다. 율리오는 항해를 계속해야겠다는 선장과 선주의 말에 손을 들어주었다. 더구나 미항(美港)은 겨울을 나기에는 불비한 게 많았다고 한다. 결국 그들은 같은 그레데 섬 중간에 위치한 페닉스로 가서 겨울을 나기로 하고 출항했다.
출발은 남풍을 받아 순조로웠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유라퀼라’라는 이름의 태풍이 불기 시작했다. 그 배는 그레데 섬과 아프리카 북쪽의 리비아 사이에 있는 작은 가우다 섬을 스쳐지나가면서 더욱 큰 위험에 빠지게 되었다. 배가 난파되는 걸 막기 위해서 그들은 주로 곡물로 구성된 화물을 바다에 던졌으며, 그 다음날에는 배의 장비까지 던졌다고 한다. 여러 날 동안 온갖 자구책을 시도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으며, 태풍의 강도는 수그러들 줄 몰랐다. 그들은 이제 살아 돌아갈 수 없다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바로 그 순간에 바울은 다시 앞으로 나서서 그들을 격려한다. 그 내용은 간단하다. 그는 그레데 섬의 미항에서 겨울을 나야한다는 자신의 말을 따랐다면 이런 어려움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지적한 다음, 비록 현재는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하나님이 그들의 생명을 지키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말한다. 이 연설의 핵심은 24절이다. “나더러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며 내가 반드시 황제 앞에 서게 될 것이며 나와 동행하는 여러분을 하느님께서 이미 모두 나에게 맡겨 주셨다고 했습니다.” 바울의 선교적 사명에 의해서 주변의 사람들도 구원받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바울의 연설로 군중들이 위로를 받았는지 어떤지에 대해서 본문은 말이 없다. 다만 그의 연설 뒤에 상황이 점차 좋아지게 되었다는 보도를 따른다면 그의 연설에 진정성이 담겨 있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표류 14일이 지나면서 배는 작은 섬 가까이 이르게 되었다. 한밤중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그 사실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다. 추로 물길을 재어보니 점점 낮아지고 있었다. 암초에 걸릴지 모른다는 염려에서 그들은 고물(船尾)에 네 개의 닻을 내린 채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선원들은 이물(船頭)에서 닻을 내리는 척 하면서 거룻배를 띄워 도망가려고 했지만, 그 사실을 바울에게서 전해들은 율리오가 거룻배의 밧줄을 끊어버렸다고 한다.
날이 밝자 다시 바울의 역할이 부각된다. 그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먹으라고 충고한다. “여러분은 오늘까지 열나흘 동안이나 마음을 졸이며 아무것도 먹지 않고 굶어왔습니다. 자, 음식을 드시오. 그래야만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입니다.”(33절) 그는 지금 선장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하고 있다. 더구나 그는 사람들 앞에서 빵을 들어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린 다음,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런 장면은 흡사 예수님의 오병이어 사건이나 성만찬을 연상시킨다. 사람들은 바울의 말에 용기를 얻었고, 음식을 먹었는데, 그 숫자가 276명이었다.
이제 사람들은 멜리데 섬의 해변으로 올라가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두 물줄기가 합쳐지는 곳에 끼어 꼼짝하지 못하게 된 배는 모래톱에 얹혀 심한 물결에 파손되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죄수들이 헤엄쳐서 도망갈 걸 염려한 군인들은 그들을 모두 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율이오는 바울을 살릴 생각으로 군인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헤엄칠 수 있는 사람부터 먼저 해안으로 올라가게 한 후, 나머지는 물에 뜨는 물건을 붙잡고 올라가게 함으로써 결국 모든 사람들이 생명을 건지게 되었다. 바울의 약속이 이 마지막 순간까지 그대로 실현되고 있다.

역사성 문제
이 난파 이야기는 누가 읽더라도 어떤 역사적 사실에 관한 객관적인 보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바울이라는 한 사람을 영웅으로 만들기 위한 저자의 의도가 곳곳에 담겨 있다. 우선 이 이야기에는 바울이 죄수로 호송당하는 중이라는 사실이 별로 고려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그 당시의 죄수는 쇠사슬에 묶여서 지내야만 했다. 이 이야기 마지막 장면에서 군인들이 죄수들을 죽이려고 했다는 사실을 보면 이 배에는 바울만이 아니라 여러 죄수들이 함께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쇠사슬로 묶여있지 않았다면 어느 순간에 반란을 일으킬지도 모를 일이다. 바울은 이 이야기에서 죄수의 모습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미항에서 항해를 계속할 것인지 아닌지 결정해야 할 순간에 바울이 자기의 의견을 냈다. 아무리 바울의 인격이 그 배 안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만큼 출중하다고 하더라도 죄수라고 한다면, 특히 쇠사슬에 묶여 있어야만 할 죄수라고 한다면 지도자처럼 행동할 수는 없었다. 율리오는 바울의 의견보다 선장과 선주의 의견을 더 믿었다는 말은 율리오에게 항해의 권한이 있다는 뜻인데, 이건 사실관계가 잘못된 것이다. 항해 문제는 로마 백부장인 율리오보다는 선장과 선주의 권한에 속했다.
태풍으로 인해서 이들의 절망감이 극에 달했을 때 바울은 완전히 영웅적인 행동을 한다. 그는 세 가지를 말했다. 배는 잃겠지만 목숨만은 잃지 않는다. 하나님의 천사가 알려주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나에게 맡겨주었다. 물론 어떤 극한적인 상황에서 이렇게 영웅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긴 하다. 스데반의 순교 장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 특출한 바울에게서 그런 일들이 가능하기는 하다. 그러나 바울도 이런 죽음 일보 직전의 상황에서 당황했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더구나 바울은 어눌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렇게 위기에 빠진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연설을 했다는 건 역사적인 바울의 모습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멜리데 섬에서 벌어진 사건도 역사성을 의심하게 한다. 한밤중에 고물에 닻을 내리고 날이 밝기를 기다리던 와중에 선원들이 거룻배를 타고 배에서 빠져나가려고 했다는 묘사는 항해에 관해서 정확하게 모르는 사람의 진술이다. 그들이 실제로 산전수전 다 겪은 선원들이라고 한다면 거룻배보다 본선이 훨씬 안전하다는 사실을 몰랐을 리가 없다. 마지막 순간에 죄수들이 도망갈까 하고 군인들이 염려했다는 말도 구체적인 상황을 모르는 사람의 묘사이다. 죄수들은 쇠사슬을 차고 있었기 때문에 도망가려고 마음을 먹어도 도망갈 수 없었다.

누가에 의해 해석된 바울
우리는 이 난파 이야기에서 거의 완전무결한 신앙으로 무장한 한 영웅을 만난다. 헨헨(D. Ernst Haechen)은 저자 누가에 대해서 이렇게 지적했다. “누가는 바울이 생명의 위협 앞에서 절망할 수도 있었고(고후 1:8), 따라서 죽은 자를 깨우시는 하나님의 기적에 대해서도 절망할 수 있었다는(고후 1:9,10) 사실을 알지 못했으며, 또 독자들도 그 점을 알지 못하게 했다. 그는 오직 강력하고 흔들리지 않는, 승리에서 승리로만 전진하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만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27장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언가 근본적인 결격 사유가 있는 거 아닌가, 하고 걱정할 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염려는 접어두어도 괜찮다. 그 이유는 간단히 세 가지이다. 첫째, 사도행전은 사실보도가 아니라 역사 해석이다. 둘째, 사도행전은 누가 공동체를 향한 변증서이며 동시에 설교이다. 셋째, 사도행전에는 그리스도교의 고유한 신앙고백이 살아있다. 만약 우리가 이런 신학적 근거를 정확하게 파악하기만 한다면 사도행전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부족할 게 하나도 없다.
성서에 대한 매우 극단적인 두 입장이 있다. 하나의 극단은 성서를 여전히 축자영감설에 근거해서 접근하는 이들이며, 다른 하나는 성서를 순전히 종교사적 문서로만 접근하는 이들이다. 양 극단은 나름으로 일리가 있으며, 동시에 결정적인 단점을 안고 있다. 일리가 있다는 말은 한편으로 성서가 문자의 차원에서 진리를 담아내기도 하며, 다른 한편으로 종교 일반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결정적인 단점이라는 말은, 우선 축자영감설은 문자로서의 성서가 가리키고 있는 역사적 개방성과 무관하게 된다는 것이며, 종교사학적 관점은 성서의 특수성이 상실된다는 의미이다.
사도행전을 축자영감설 안에서만 바라본다면 사도행전의 역사적 흔적을 그리스도교적 진리와 일치시키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며, 종교사적 관점으로만 바라본다면 누가의 고유한 영적 현실들을 놓치게 될 것이다. 이 양 극단의 한계를 극복하고 사도행전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
난파 이야기를 견강부회 식으로 해석하지 말고 엄밀한 역사 비평에 근거해서 그것의 영적인 현실들을 바르게 파악해야 할 것이다. 바울로 대표되는 그리스도교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난파당하고 있는 모든 인류에게 구원을 길을 안내한다는 게 바로 그것이다. 이런 신앙은 오늘 우리에게도 역시 유효하며, 당연히 그래만 한다.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