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5일, 목
희망의 신학
현재 생존해 있는 조직신학자 중에서 가장 비중이 높은 개신교 학자는 위르겐 몰트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26년생이다. 그를 세계적 신학자로 올려놓은 책은 그가 38세에 펴낸 『희망의 신학』(Theologie der Hoffnung, 1964년 발행)이다. 마르크스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Ernst Bloch 1885-1977)의 3권으로 된 『희망의 원리』(Das Prinzip Hoffnung)에 도전을 받고 마르크스 관점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을 몰트만은 여기서 제시했다. 전체 맥락으로 볼 때 블로흐는 ‘희망이 있는 곳에 종교가 있다.’고 보았다면, 몰트만은 ‘종교가 있는 곳에 희망이 있다.’고 보았다. 몰트만의 책에서 한 군데만 인용하겠다.
신앙한다는 것은 미리 취한 희망 가운데서 십자가에 달린 자의 부활로 말미암아 무너진 그 한계선을 넘어간다는 것을 뜻한다. 만약 이 점을 고려한다면, 이 신앙은 세상 도피와 체념, 책임 회피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 희망 가운데서 영혼은 탄식의 골짜기를 벗어나서 상상 속의 행복한 하늘나라로 날아가지 않으며, 이 땅과 결별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흐가 말했다시피, 희망은 “우리의 무덤 너머에 있는 하늘의 피안 대신에 우리의 무덤 너머에 있는 이 땅의 피안, 즉 역사적 미래, 인류의 미래”를 지시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희망이 인식하는 것은 하늘의 영원이 아니라 그의 십자가가 서 있는 이 땅의 미래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희망은 그가 죽기까지 사랑한 바로 그 인류의 미래를 인식한다. 그러므로 인류에게 십자가는 이 땅의 희망이다. 그러므로 이 희망은 몸으로 순종하기 위해 투쟁한다. 왜냐하면 희망은 몸의 부활을 기다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희망은 파괴된 땅과 고통을 당하는 인간들을 온유하게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인류에게 땅의 나라가 약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 십자가는 유일한 희망이어라! Ave crux-unica spes!
21일 주일 설교 제목은 <믿음과 희망>이었다. 여기에는 위에서 인용한 몰트만 신학이 자리한다. 그는 십자가가 인류와 땅의 미래라고 한다. 오늘 한국교회는 그 미래를 지시하고, 실제 삶으로 보여주고 있을까? 그래서 세상은 교회의 메시지와 삶을 자신들의 미래로 받아들여도 괜찮을 거 같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몰트만이 아직 살아 있군요... 전 왜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지 모르겠군요.
아마도 20년 전에 '희망의신학'을 읽어서 하도 오래전이라 몰트만이 죽었다고 생각한것 같군요.
찾아보니 박봉랑 번역 책이 누렇게 변해서 책꽂이 맨 꼭대기에 꽂혀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