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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운명, 그리고 신적 초월

조회 수 717 추천 수 0 2017.05.26 13: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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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명, 그리고 신적 초월>

 

죄를 "하느님이 명령하신 규범을 어긴 것" 이라고 간단히 이야기 하면 편하기는 참 편하지만 아주 갑갑해진다. 이 하느님은 전통과 관습, 그리고 질서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요즘 동성애는 죄다라는 말을 많이 듣는데 그 것도 같은 맥락으로 느껴져서 불편하다.

 

죄는 "우리 인간의 실존적 불완전성과 한계성"을 종교적으로 형상화한 말인데, 예수 시대에도 그랬지만 이 것은 신을 빌미로 종교 권력이 사람들을 통제하는 도구로 쓰여 왔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이런 불완전성과 한계성은 결정론적인 부분이 많다. 현대 과학과 심리학은 결정론으로 기울기 시작한지가 오래 되었다고 한다. 예컨대 싸이코패스는 대뇌 구피질인 편도체의 기형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 구체적 실례로 사이코패스의 뇌를 가진 어떤 사람이 정상적인 가정에서 잘 성장해서 유능한 외과 의사가 되었지만, 어떤 사람은 부모의 폭력에 노출되거나 좋지 않은 환경에서 살아가다 보니 흉악한 범죄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결국 선천적인 특성에 후천적인 환경이 결합하면 그 사람의 삶은 자연히 타고난 대로 흘러가게 마련이다. 동양의 사주팔자도 그렇고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니다. 나의 인생에 있어서, 나의 사람됨에 있어서 내가 손을 쓸 수 있는 부분은 아주 적다.

 

기독교는 신의 예정과 자유 의지를 말한다. 이 것은 신이 인간을 지옥에 떨어뜨릴지 천국에 데리고 갈지 창조하기 전에 미리 정해 놓았다는 유치한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현실 속 이야기다. 나는 이것을 운명과 선택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신은 인간 각자를 어떤 특별한 운명 속으로 던져놓고, 인간에게는 아주 협소한 선택의 자유만을 허락해놓았다.

 

신이 인간에게 짐 지워 놓은 운명이야말로 바로 실존적 불완전성과 한계성이다. 누구나 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하고, 환경적으로 유복하게 태어났으면 좋았겠지만, 더러는 태어날 때부터 육체적 정신적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고, 또 더러는 지독한 가난과 불행한 환경 속에서 태어난다. 그 누구도 자신의 외모나 기질, 그리고 성격을 스스로 선택한 사람은 없다.

 

따라서 죄라는 관념은 인간과 삶의 본질을 왜곡할 가능성이 높다. 죄는 신 자신이 초래한 불완전함의 책임을 인간에게 떠넘기는 말이다. 차라리 운명이라는 말이 리얼리티에 더 가깝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타고난 운명에 괴로워하고 허덕이며 결국은 순응하고 살아가다가 결국은 유기물로 사라지고 만다. 그게 필부들의 삶이다.

 

신의 예정은 솔직히 그리 아름답지 않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 것은 인간에게 짐 지워진 운명에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을 구원한다는 신의 또 다른 모습은 운명이다.

 

어떤 목사님은 자신의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중증 장애인들을 앞에 두고 여러분들은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능력을 주셔서 성공하게 해주십니다.” 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씁쓸한 느낌을 지울 길이 없었던 기억이 있다. 우리는 우리에게 무겁게 짐 지워진 운명에 대해서 어떠한 결정적인 선택도 할 수 없다. 애초에 이것은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함으로써 없앨 수 있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란 이야기다. 우리가 죽을 때까지 짊어지고 살아가야만 하는 것일 뿐이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위대한 선택은 운명의 신과 대결할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신적 초월로 옮아감이다.

 

결국 종교는 이 사라지지 않는 이 운명의 굴레, 이 십자가 앞에서 신적 초월의 용기를 주는 것이어야 한다. 이 운명을 죄 또는 죄의 결과로 포장하여 신도들을 겁주면서 종교 비즈니스를 수행하거나, 종교뽕으로 그 운명을 잊게 만드는 어떠한 종교적 시도도 사악하고 어리석은 짓일 뿐이다.

 

이 신적 초월은 니체가 말한 초인의 길과 비슷하다. 신적 초월을 경험한 인간은 여전히 자신은 그에게 짐 지워진 운명의 굴레 아래에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 운명에 굴복하지 않는다. 나는 이 것이야말로 인간에게 내재된 위대한 가능성이라고 생각한다.

 

그 운명과의 대결, 그 것은 욥이 했던 신과의 대결이다. 신과 대결하지 않는 인간은 도저히 신을 만날 수 없다. 신은 운명과 구원이라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 운명의 신과 대결할 용기가 없는 인간은 구원의 신을 만날 길이 없다.

 

내가 사랑하는 한 사람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질병 속에서 겁을 먹고는 운명의 신에게 굴복을 선택했다. 회개하라는 이야기에 자신의 죄를 자책하며 엎드렸지만 그 운명의 신은 그 사람을 더 큰 고통 속으로 내몰았고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이 사람은 그 운명의 신과 대결했고, 그 신을 버렸다. 그러고는 홀로 섰다. 그 고통을 피하지 않고 스스로 그 고통과 맞닥뜨렸다. 결국 그녀는 지금 고통을 이겨내고 있고, 또한 많이 성숙했다. 그녀는 신을 버렸지만 다시 신을 만났다, 자신 속에서 항상 찬란히 빛나고 있던 그 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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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7.05.26 21:17:59
*.164.153.48

평신도 신학자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논리적 사유를 깊이 하시는군요.

마지막이 오기 전까지 아무도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주제지만,

그렇기 때문이라도 우리가 쉬지 말고 질문을 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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