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교회 세습 문제

 

마침내 서울 명일동 소재 장로회 통합측 명성교회가 지난 1112일 저녁 예배를 김삼환 목사 원로 추대식과 그의 아들 김하나 목사 담임 위임식으로 드림으로써 부자 세습을 완료했다고 한다. 보통은 담임 목사로 취임하고 일정한 기간이 흐른 뒤에 위임을 받는데, 김하나 목사는 취임을 건너뛰고 위임을 받았다. 명성교회로부터의 신뢰가 두텁다는 뜻이다. 명성교회 구성원 대다수가 자신들의 교회에서 벌어진 일련의 일들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여길 것이다. 명성교회가 속한 통합 측의 중심 신학교인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들이 반대하고, 노회원들이 법정 투쟁에 들어갔고, 뜻 있는 통합 측 목사들이 염려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염원을 통과시켰으니 한편으로는 찜찜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감격스러울 것이다. 힘자랑이 유별나다.

한국교회에는 왜 세습이 자주 일어나는가? 세습이 왜 문제인가? 개별 교회의 자유로운 선택을 그곳 교회의 구성원이 아닌 사람들이 가타부타 시비를 걸어도 되는가? 총회 법을 무시한 동남노회와 명성교회에 대해서 통합 총회가 아무런 조치를 내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명성교회에 속한 10만 명가량의 신자들 중에서 이 문제를 비판하는 이들은 실제로 없는가? 있다 하더라도 눈치만 보고 있는 걸까? 통합 소속 목사들의 저항은 왜 미미한가? 기독교 언론들 역시 왜 비판 기사에 인색한가? JTBC는 이 문제를 13일과 14일 이틀에 걸쳐서 보도도 하고 앵커 브리핑으로 다루기도 했다. 명성교회 사태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아무도 예측하기 힘들다. 명성교회 구성원들은 밀어붙이기 식으로 끝냈으니 안도할지 모르겠으니 이것이 나비의 날갯짓처럼 명성교회와 한국교회를 어떤 거대한 혁명적 변화의 소용돌이로 몰고 갈 수도 있다. 500년 전 로마가톨릭이 대수롭지 않은 생각으로 면죄부(면벌부)를 시행했다가 종교개혁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것처럼 말이다. 이런 점에서는 명성교회의 이번 일은 차라리 잘된 거다. 한국교회에 문제가 있다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데까지 나가는 게 그래도 새로워질 가능성에 가까이 가는 거니까 말이다. 명성교회의 부자 세습 논란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의견을 간략히 전한다.

 

1) 부자 세습

아버지 목사가 아들 목사에게 담임 목사 자리를 물려주는 걸 부자 세습이라고 한다. 북한 김일성과 아들 김정일과 손자 김정은에 이어지는 세습, 그리고 한국 대기업의 세습이 연상되기에 명성교회 당사자들은 부자 세습이라는 말을 피하고 싶겠지만 실제적으로 내용은 똑같다. 부자 세습 자체가 악은 아니다. 미자립 교회의 세습이라고 한다면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 감리교회 총회는 이번에 세습을 불법으로 규정하면서도 작은 교회는 예외로 했다. 이런 작은 교회에는 갈 사람이 아예 없어서 아들 목사가 이어받는 게 나쁘지 않다고 본 것이다. 명성교회처럼 초대형교회의 세습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교회가 저항해야 할 부의 대물림이다.

김삼환 목사의 아들 김하나 목사는 이미 바람직하지 않은 방식으로 특별대우를 받아 새노래 명성교회의 담임 목사가 되었다. ‘새노래 명성교회는 명성교회가 막대한 재정을 투자해서 건물을 짓고 상당한 숫자의 신자를 보내서 시작된 교회다. 이것만으로도 김하나 목사는 요즘 말로 금수저의 특혜를 받은 것이다. 이런 정도로 대우 받는 식의 교회 개척은 찾아보기 힘들다. 어쨌든지 김하나 목사는 그 교회에서 성실하게 목회를 한 것으로 보인다. 이미 수년전에 공개적으로 세습을 하지 않겠다고 천명하기도 했다. 고민 끝에 명성교회의 청빙을 수락했을 것이다. 속으로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둘째 치고, 아버지나 아들이나 결국 악수를 둔 것이다. 그들에게는 평생 부자세습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을 것이다.

모든 교단에는 헌법이 있다. 총회와 노회와 개별 교회는 모두 최상위법인 헌법을 따라야 한다. 명성교회가 속한 장로회 통합 헌법에는 세습 급지법이 있다. 자식만이 아니라 담임 목사의 사위나 가까운 친척에 해당되는 이들도 다 포함된다. 중대형 교회의 세습이 교회의 질서를 파괴하는 것으로 본 것이다. 명성교회는 이번에 총회 헌법을 정면으로 위배했다. 목사의 인사 문제는 노회에서 다루어진다. 김하나 목사가 아버지 김삼환 목사의 명성교회의 담임 목사로 가려면 노회에서 승인을 받아야 한다. 노회법에 따르면 지난해의 부노회장이 자동으로 노회장이 된다. 공교롭게도 이번 노회에서 노회장으로 자연 승계될 예정의 목사는 부자 세습을 반대한 사람이다. 노회는 작은 꼬투리를 잡아서 다른 이를 노회장으로 앉히고 김하나 목사의 인사 문제를 처리했다. 노회법을 무시한 것이다. 여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노회원들은 당연히 명성교회에 직간접으로 속한 이들이다.

명성교회가 총회와 노회에서 무소불위의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알 것이다. 거칠게 표현하면 이렇다. ‘우리 말 안 들어주면 노회에서도 탈퇴하고, 교단에서도 탈퇴할 수 있어.’라는 겁박이 통하기 때문이다. 힘이 없는 교회의 목사가 헌법과 노회법에 위배되는 행위를 했다면 당장 심판위에 소환 당했을 것이다. 아무도 명성교회를 건들이지 못한다. 광고를 수주해야 할 기독교 매스컴도 감히 건들지 못하고, 학교 운명 경비를 지원받아야 할 신학대학교도 공식적으로는 아무 말도 못한다. 일전에 장로회 신학대학교 교수 5,60명이 명성교회 사태를 염려한다는 성명서를 낸 거 같은데, 별 호응을 얻지 못했다. 앞으로 그들은 입을 더 닫을 것이다.

 

2) 개교회주의

명성교회 신자들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생각했다. 김삼환 목사는 그들에게 절대적인 인물이다. 실제로 그는 모든 신자들의 존경을 한 몸으로 받고 있다. 김삼환 목사가 없는 명성교회를 상상할 수 없다. 이제 정년이 되어 어쩔 수 없이 담임 목사직을 떠나지만 교인들 입장에서는 그의 카리스마를 계속 유지시키고 싶을 것이다. 그의 아들을 담임 목사로 세우는 게 최선이라고 그들은 판단했다. 더구나 김하나 목사는 여러 가지 점에서 뛰어난 목회자 아닌가. 실제로 한국의 여러 대형교회가 전임자와 후임자의 갈등으로 인해서 어려움을 겪었다. 자신들은 그런 갈등을 겪고 싶지 않을 것이다. 명성교회 신자들의 진정성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그런 진정성에 근거해서 그들은 명성교회를 비판하는 이들을 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교회 일은 우리가 알아서 결정하는 것이니 참견하지 말라. 우리교회 안에서는 아무 문제가 아닌 것을 당신들이 왜 자꾸 문제를 삼느냐.’ 그들의 순전한 마음과 그 열정은 이해가 간다. 문제는 그들의 교회관이다. 교회관은 곧 신앙관이기도 하다. 교주를 절대적으로 따르는 사이비 이단 추종자들의 마음을 이해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고, 종교개혁 당시의 로마가톨릭교회가 보인 행태도 이해하려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다. 아무리 마음이 순전해도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다. 잘못된 것을 순전하게 따르면 그 결과는 더 치명적이다.

남의 교회 일에 왜 참견하느냐는 그들의 논리는 기독교 교회의 가장 기본적인 보편성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보편성은 공공성이라고도 한다. 사도신경의 한 구절은 거룩한 공교회를 ... 믿습니다.’. 니케아신조에 따르면 교회는 단일성, 거룩성, 사도성, 보편성이라는 특징이 있다. 보편성은 개별 교회만 교회가 아니라 노회와 총회가 바로 교회라는 것이다. 즉 전체 교회가 바로 교회다. 명성교회만 독립적으로 교회가 아니라 다른 통합 측 교회와 더불어서 교회이다. 교단이 달라도 크게 보면 다 여기에 포함된다. 우리교회 일이니 참견하지 말라는 말은 교회의 보편성, 교회의 공공성을 허무는 것이다. 그런 말을 쉽게 발설하는 걸 보면 그동안 명성교회가 신자들에게 어떤 교회관을 심어주었는지 알 수 있다. 그런 말을 하려면 주일예배에서 사도신경 신앙고백 순서를 빼야한다.

한국교회는 교회의 보편성과 공공성이 아니라 귀신들린 것처럼 개교회주의에 사로잡혀 있다. 목사들이 신자들에게 우리교회를 사랑하라는 말을 반복한 탓이다. 개교회주의는 교회를 사적인 차원으로 떨어트렸다. 교회의 사유화다. 이것이 로마가톨릭과 다른 개신교회의 특성이라고 강조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다. 일리가 있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개신교회의 역사도 있다. 그런 요인들을 다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오늘처럼 극단으로 치닫는 개교회주의는 용납되기 힘들다. 한 건물 안에 여러 교회가 입주해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다. 교회끼리의 무한 경쟁도 우리나라 밖에는 없다. 목사 사례비의 양극화도 한국교회 밖에는 세계 그 어디에도 없다. 교회성장 일원론에 빠진 교회도 한국이 대표적이다. 이런 현상들이 대부분 개교회주의에 기인한다. 명성교회의 부자세습도 바로 이런 데에 기인한 것이다.

 

3) 명성교회의 내일

앞으로 이 문제는 어떻게 전개될까? 김하나 목사는 계속 명성교회 위임목사 자리를 지켜낼 수 있을까? 교회 밖에서 추진되는 반대에 부딪쳐 불명예 퇴진할까? 이런 대립으로 인해서 통합 교단이 부분적으로라도 분리될까? 법을 어긴 교회를 힘이 있다고 해서 묵과하는 교단에 남아있지 않겠다는 목사와 교회가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늦게라도 명성교회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정상화의 해법을 찾을까? 이를 계기로 뜻 있는 신자들이 명성교회 출석을 그만둠으로써 명성교회의 위상이 급락하게 될까?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직까지는 이 문제에 대한 통합 목사들의 움직임이 크지는 않다. 속으로는 크게 불편하게 생각하겠지만 내놓고 반대하기는 상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목사들은 자기 교회 문제만으로도 힘이 소진될 대로 소진되어서 이런 문제에 개입할 여력이 없다. 그러나 어떤 계기만 주어지면 그들이 힘을 합할지도 모르겠다. 지난겨울에 촛불의 힘으로 대통령을 탄핵시켰듯이 말이다. 과연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개인적인 느낌만으로 한 마디 한다면 명성교회에서 차지하는 김삼환 목사의 비중을 놓고 볼 때 이미 저질러진 사태를 아무도 되돌리지 못할 것이다. 명성교회 관계자들은 이런 사태를 확고히 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할 것이다. 예를 들어, 교단에서 힘이 있다하는 인물을 명성교회 설교자로 초청하면 거절할 사람들이 많지 않을 것이며, 강단에 선 사람이 명성교회를 비판하지는 못할 것이다. 대형교회 강사로 초청받는 사람들은 작은 교회 목사들의 한 달 치 월급보다 더 많은 강사료를 받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강사비만이 아니라 다른 명목으로 돈을 받기도 한다. 세상만이 아니라 교회도 돈만 많으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 돈이 하나님이다. 선의로 봐서 명성교회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앞으로 나름으로 헌신적이고 혁신적인 노력을 기울 것이다. 신학교와 해외선교와 구제를 위해서 재정을 많이 쏟을 것이다. 그런 방식으로 인심을 얻고 위기를 돌파할 수 있다. 떡고물 때문에라도 그런 일에 박수치는 동료들이 제법 나올 것이다. 그리고 대중들은 이번 사태를 천천히 망각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다 잘 되는 일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후로 아무리 괜찮은 모습을 보인다고 해도 그들은 한국교회와 동료 목사들에게 큰 상처를 준 것이기에 그걸 회복하기는 어렵다. 김삼환 아버지 목사와 김하나 아들 목사를 한국교회 역사학자들은 냉정하게 판단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다른 일을 행할 것이기에 하나님에게 손해나는 일은 없다. 정말 큰 손해는 그들 부자 목사다. 믿음으로 의롭다는 인정을 받는다는 사실에 자신의 영혼을 걸었던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 되는 해에 딱 맞추어 그들은 믿음이 아니라 대형교회를 유지하는 것에 자신의 영혼을 걸었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선포한 것이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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