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구원(35)

조회 수 1188 추천 수 0 2018.02.17 20:11:07

(35)

나는 구원받았나?’라는 질문에 답하거나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구원에 대한 희망이나 확신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구원에 대한 표상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대답 과정에서 내가 생각하는 구원 표상이 정리될 것으로 기대한다. 구원받았나, 하는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나의 대답은 다음이다. ‘나는 이미 구원받았다는 사실과 아직은 아니라는 사실의 긴장 가운데서 살아간다.’ 하나님 나라는 이미’(already)와 아직 아님(not yet)의 변증법적 긴장 가운데 놓여 있다는 명제와 궤를 같이 하는 대답이다. 애매한 대답이라고 생각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애매한 게 아니라 역동적인 것이면서 동시에 아직 하나님을 직면하지 못한 사람으로서 최선의 대답이다.

나는 종종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되는 경험을 한다. 나 스스로 나를 완성해야한다는 모든 강요와 욕망으로부터의 해방이다. 그것을 나는 모든 게 귀찮아지는 경험이라고 표현하곤 했다. 목사라는 직책도 귀찮고, 남편과 아버지라는 위치도 귀찮고, 그동안 내가 쓴 책도 귀찮고, 그리고 돈도 귀찮다. 궁극적인 순간에 없어도 괜찮은 것은 결국 귀찮은 것이 아니겠는가. 어머니 자궁 속에 들어있던 순간이나 죽는 순간이나 칭짱고원에서 불어온 거센 바람이/ 내 집 앞뜰의 작은 민들레를 다소곳이 눕히다’(이시영의 시 바람전문)는 시구가 내 영혼을 가득 채우는 순간, 또는 저수지 얼음판에서 쩡하는 소리를 듣는 순간 말이다.

돈에 대한 것만 보충 설명하겠다. 돈은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요소지만, 최소한 일용할 양식이 보장된다면 더 이상의 돈은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다. 필요하지 않은 것을 더 소유하는 것은 멋지게 말해서 삶의 낭비이고, 편하게 말해서 귀찮은 일이다. 지금 내가 죽기 직전이라고 가정해보자. 밤에 잠자듯이 죽어서 아침에 가족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되는 게 최선이겠지만, 불행하게도 숨쉬기 힘든 순간이 이어진다고 하자. 그 순간에 나에게는 돈이 전혀 필요 없다. 숨넘어가는 나에게 옆에서 가족이 당신 통장의 돈을 어떻게 처리하면 되지요?’라고 묻는다면 정말 짜증나는 일이다. 그 순간에 나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은 숨을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쉬든지 아니면 빨리 숨이 끊어지는 것이다. 매 순간을 절대적인 것과 대면하는 태도로 산다면 모든 것으로부터의 해방이 가능하다. 그것이 절대 자유로서의 구원이다. 나는 아직 이런 경지에 이르지 못했기에 은행계좌도 열려있고 신용카드도 사용하는 중이다.

이런 깨우침과 경험은 반드시 기독교 신앙에서만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도 가능하다. 지난 인류 역사에서 무소유의 자유를 이미 실천한 사람들이 많았고, 지금도 많다. 출가 수행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런 경지를 목표로 하는 사람들이다. 기독교 신앙 밖에서 그런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그들의 방식에 관해서 나는 크게 관심이 없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통해서 이런 절대 자유의 경지에 조금씩 가까이 가고 있을 뿐이다. 실제로는 한참 멀었지만.


[레벨:13]쿠키

2018.02.19 12:43:37

목사님. 가장 삶의 본질을 알려주시는데도 목사님께서 글을 하두 잘 쓰셔서 웃음보가 터졌어요. 짜증 나신다는 말씀에~~
'어머니 자궁 속에~~쩡하는 소리를 듣는 순간 말이다' 요 부분이 앞의 내용과 잘 연결이 안되는데요...아! 궁극적인 순간을 묘사한 것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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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8.02.19 21:52:45

쿠키 님이 스스로 답을 찾으셨습니다.

겨울하늘을 높이 나는 철새 떼도 우리를 궁극적인 순간으로 끌어들입니다.

그 무엇도 더 이상 필요하지 않는 걸 느끼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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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3]뚜벅이

2018.02.19 15:29:44

마지막 순간에 짜증내시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ㅎㅎ

바람으로, 민들레로 부활하여 자유롭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봄을 기다리며 해봅니다.

글 읽는 행복을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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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8.02.19 21:54:23

내가 죽을 때 제발 주변에 아무도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이 보이면 미련이 남든지 짜증이 날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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