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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 버지니아 페페로니 롤

조회 수 2343 추천 수 0 2018.03.21 13:53:37
웨스트 버지니아 페페로니 롤

wv fairmont country club bakery (pepperoni roll) 04.JPG EXIF Viewer사진 크기1024x712

     백인 중에서도 비교적 인종차별을 많이 받았던 ‘알 카포네’로 유명한 이탈리아인들은 이민 초기에 버지니아주 바로 서쪽에 위치한 웨스트 버지니아주로 많이 이주해 왔다. 그 곳에 탄광촌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인의 이민 초기 시절, 그들의 눈물은 탄광촌의 삶 속에 겹겹이 쌓여 있었다.
     
     탄광내에서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페페로니를 얹은 피자를 통째로 들고 지하 갱도로 내려 갈 수는 없는 노릇이고 하지만 허기진 배는 채워야 했었기에,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페페로니 롤'이다.
 
     피자에 들어가는 피자빵과 페페로니는 똑같은데, 그것을 동그랗고 넓적하게 자르는 대신 얇고 길게 썰어서 그걸 빵으로 감싸 구웠다. 롤의 형태로 개조한 것이다. 휴대하고 먹기 쉽게 말이다. 

     영락없는 우리의 김밥이다! 

     하와이로 떠난 최초의 한국 이민자들... 땡볕 내리치는 하와이 사탕수수 밭 그늘에 앉아 챙겨간 점심으로 생존을 위해 씹어 먹었던 눈물로 범벅이 된 그런 김밥 한 줄이 혹 있었는지도...

country club bakery 02.JPG EXIF Viewer사진 크기1024x519

     웨스트 버지니아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 '페페로니 롤'을 처음 만들었던 그 식당은 지금도 영업 중이다. 방문했을 당시엔 연세가 지긋하신 백인들이 끊이지 않고 그 식당에서 그 롤을 구입하고 있었다. 옛날의 그 맛을 잊지 못해 주기적으로 이 식당에서 그 음식을 사가고 있는 것이다. 사실 말이 식당이지 그 내부엔 손님을 위한 식탁 하나 놓여 있지 않다. 그냥 돈만 지불하고 그 롤만 사갈 수 있는 구조이다.  

     페페로니 롤 탄생지를 찾아 여기까지 왔다는 말을 이탈리아인도 아닌 한 동양인이 꺼내니 주인이 너무 반가와 한다. 사실 이 페페로니 롤 이란 말은 웨스트 버지니아주를 떠나면 아주 생소한 단어가 되어 버린다. 미국 내에서도 타주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낯 설은 이 음식을 한 동양인이 사러 왔다고 하니, 마치 한 백인이 한국에서 ‘뽑기’ 나 ‘아이스케끼’를 찾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식당 주인은 기념 촬영을 위해서, 아직 사지도 않은 페페로니 롤 봉지를 통째로 들고 와서 사진을 찍으라고 난리다.   

     가족들과 함께 그 롤을 하나씩 잡고 고기 씹는 심정으로 한 입 베어 물었다. 순간…

     “이런 걸 왜 먹지…”

     자꾸 씹으면 나름 고소한 맛도 있었지만, 즐겨 찾기에는 너무 어색한 맛이었다. 

     현재는 많은 탄광이 폐광이 된 상태이다. 그 중 한 폐광을 관광지로 단장해서 사람들에게 옛 추억을 선물하고 있다. 실지로 그 폐광 갱도를 탄광차를 타고 내려가 볼 수 있다. 그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 놓고 광부 복장을 한 사투리가 아주 심한 전직 광부 출신 안내원이 아주 실감나게 관광객들의 호기심을 충족해 주고 있다. 그 안내원이 광부들의 힘들었던 투쟁 어린 삶을 설명하는 도중, 옆에 않아 있었던 한 백인 여성이 갑자기 안내원의 말을 막으면서 살짝 떨리지만 자랑스런 말투로 이야기했다. 

     “전 그걸 잘 알고 있어요. 제 아버지가 광부이셨거든요.” 

     이탈리아계 여성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 탄광차에 탄 수 십 명의 관광객 중에 동양인은 우리 가족 5명 밖에 없는 것 같았다. 더 나은 삶과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외국으로 거주지를 옮겨 기꺼이 자신의 인생을 헌신하는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이 잠시 떠 올랐다. 동시에 목이 메었다.

     볼 품 없게 생기기 까지 한 이 페페로니 롤은 먹으면서도 목이 메었지만 먹기 전에도 목이 메었던, 우리 인생살이의 고달픈 생존의 역사를 말해 주고 있었다. 오늘의 고된 하루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면, 그날의 피로를 단번에 날려줄  해맑은 아이들의 웃음이 있었다. 그 모습을 기대하며, 그 짧은 점심시간에 그 롤을 우걱우걱 목구멍으로 집어 넘겼을 것이다.  

beckley exhibition coal mine 18.JPG EXIF Viewer사진 크기1024x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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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March 2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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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시간여행 비슷한 느낌이 드는군요.

베이커리 앞에 선 아동은 예베슈 님의 아들이겠고,

맨 아래 광부는 밀랍 인형으로 보이는데

둘 다 잘생겼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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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예베슈

March 22, 2018
*.160.91.255

아. 그러고 보니 정말 밀랍인형처럼 보이네요. 하지만 진짜 사람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사투리가 아주 심한 전직 광부 출신 안내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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