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짓기 위해 오래된 집을 헐었다. 동네사람들 말을 들으면 백년도 넘은 집이라고 한다. 120여 평의 땅에 열 평 남짓 자리를 잡고 쓰러질 듯 위태롭게 받쳐져 있던 이 초가삼칸이 내 소유가 된 것은 2년 여 전, 귀촌한 직후였다. 남편은 거들떠 보지도 않던 이 집을 사겠다고 호기롭게 나선 것은 그 당시 시세가 내가 꼬불쳐 둔 소액의 비자금과 딱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온전히 내 재력으로 땅과 집이 생긴 후, 뿌듯한 마음에 지인들이 놀러 오면, 자랑스럽게 그 땅과 집을 보여주곤 했는데 그때마다 사람들은 금방이라도 허물어져 내릴 것 같은 집 모양새에 어이없어 했다. 동네사람들은 바가지를 썼다고 혀를 찼고, 심지어는 당장 되팔으라는 친지도 있었다. 땅 모양이며 진입로가 집을 짓기에 어렵게 생겼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인생살이가 참 흥미로운 것이, 그 사고(?)를 친 탓에 우리는 이 새울마을로 이사를 오게 되었고, 또 좋은 인연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 집에 혼자 세를 들어 살던 사람마저 나가고 나자 빈 집에는 금새 풀이 무성해지고 괴괴해졌다. 어차피 새 집을 지으려면 철거를 해야해서 군에 철거를 신청했더니 석면 지붕만 걷어갔다. 지붕을 뜯어내자 며칠간 장대비가 내렸다. 흙벽과 천정이 우루루 무너져 내리고 두꺼비집에서는 불꽃이 튀고 야단법석이 났다. 철거업체를 불러 해체를 하기로 했다. 힘 좋은 굴삭기는 단번에 기둥뿌리를 뽑고, 벽을 무너트렸다. 백년 가까운 집이 맥없이 허물어지는데는 단 몇시간이 필요할 뿐이었다. 폐기물의 대부분은 트럭에 실려가고, 일부는 불태워 땅에 묻혔다. 그 광경을 지켜 보면서 이 오래된 집에 켜켜이 담겨있던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도 묻혀지는 기분이었다. 아쉬운 마음에 집의 무엇이라도 보관하고 싶었다. 새로 지을 집에 이들 중 일부라도 담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마룻짱과 문짝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남편은 물론, 주변에서 아무도 찬성하는 이가 없었다. 너무 오래된 마루인데다 물이 스민 나무라 틀어져 못 쓴다고, 이걸 재활용하는 일이 훨씬 더 번거롭고 비경제적이라고들 했다. 내가 이상한 걸까, 아니면 사람들이 이상한 걸까. 아무리 고물짝이라도 100년의 세월을 담고 있는 그 시간성의 가치를 왜 실용성으로만 저울질하는지 모르겠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가는데는 의미를 두지 않는 걸까. 그 오래된 마루는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밭일 나간 엄마를 기다리던 기다림의 자리였을지도, 일터에서 돌아온 아낙의 고된 몸을 쉬던 쉼터였을지도 모른다. 혹은 여름날 모기 불을 피워놓고 오손도손 온식구가 저녁상을 물리던 장소였을지도, 마루 위 처마에서는 뒷뜰 감나무에서 딴 단감이 조롱조롱 결려 가을햇살에 말라갔을 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무결 하나하나에 켜켜이 담긴 100년의 사연들을 몽땅 폐기물 처리장으로 보내 버릴 수가 없었다. 고맙게도 목사님과 교인 분이 도와주셔서 진흙이 잔뜩 묻어있는 마루장을 뜯어오는 일에 성공했다. 그리고 마룻짱들을 순서를 맞춰 트럭에 실고와 일일히 진흙을 닦아냈다. " 우리가 마치 고대 유물 발굴단 같네요.ㅎㅎ" 마루짱들을 닦아주시며 하시는 목사님 말씀이다. 그늘에 말려 잘 보관했다. 막상 새 집에 그것들을 살릴 수 있을지는 모르나, 폐기물 하치장으로 실려가지 않고 건져진 마루장들을 보니 일단은 안심이다. 이 마루짱들로 평상을 만들어도 좋겠다. 이담에 손녀가 생긴다면, 그 평상에서 어린 손녀딸과 여름 밤하늘의 별들도 바라보고,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며 또 다른 역사를 이어갈 것이다. 이 터에 새로 올라 갈 새 집에서. |
웃겨님, 건져진 마루장과 문짝들을 보니 고맙고 안심이되네요.
이십여년전에 제가 어린시절 자라던 오래된 집이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빈 집으로 있을때, 서울에서 귀농한 어떤 분들이 잠시 빌려 살면서 대청마루와
문짝을 떼어내고 방을 들여 많이 안타까워했지요.
그때 당시 아랫채 헛간에 쌓아 둔 보물을 전라도에서 경상도까지 싣고 왔지요.
솜씨 좋은 목공 장인의 손 길을 거치자,
마루장으로는 청마루 평상과 탁자로, 문짝은 문고리를 그대로 살려 거실 탁자로 만들어,
동생들과 나눴지요.
나무의 나이테로 보아하니 백년은 족히 넘었을 육송의 옹이와 나무결하며,
고조 할아버지때부터 손때 묻은 문고리하며...
저희 가족의 이야기와 내력이 함께합니다,
거실 청마루 평상에 누우면,
어릴적 여름 밤이면 올망졸망한 손자 손녀들을 대청마루에 나란히 누이고선,
까슬까슬 풀 먹인 모시 홑이불을 덮어 주시고,
부채 하나로 모기와 더위를 날려 버리시던 할머니 손길을 추억합니다.
올 여름 오개월 된 손자가 방문하면 할머니와 똑같이 저도 해볼 참입니다.
오늘 김해는 장마 사이에 선선한 동풍이 불어와,
쾌청하고 산뜻한 칠월입니다.
어릴적 초저녁 이른잠을 자고 난후 한밤중 일어났을때 집안에 아무는 없는것을 알고 인공 조명 하나 없는 마루에 걸터 앉아 동네가 떠나가라고 울었던 기억이 있지요. 그러면 어떻게 아셨는지 어머니는 금새 마당으로 들어서셨고 이내 울음은 그치고 말았죠. 기억엔 하늘엔 별들이 허벌나게 많았었지요.... 봉당돌을 디딤돌 삼아 오르던 어릴적 고향집 마루가 생각나네요.ㅎ
첫번 사진을 보니 정식 대청마루는 아니고 툇마루인가 봅니다.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보물을 잘 챙겨두셨습니다.
마루 나무판에다가 조각칼로 뭔가를 새겨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