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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그림교실에 나오시던 한규인 할머니께서는 요즘 못 나오신다.

 두어 달 전 심장수술을 하시고 회복 중이시다.

86세의 고령이신데 9시간의 장시간 심장 수술이 잘되서

회복 중이라니 얼마나 다행인지... 

마을의 노인들이 하나 둘 돌아가시는 게 얼마나 안타까운지.. 

우리가  이사온 일년 동안에도 두 분의 할아버지가 세상을 뜨셨다.

한 분이 돌아가실 때마다 소중한 박물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맞먹을 만큼

한 분 한 분의 삶이 곧 우리의 근 현대사이고 이 마을의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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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이 수술 전에 그린 꽃상여.

하늘나라로 떠난 어머니가 타신 꽃상여를 그리며

"상여꾼이 하나가 아니라

여럿인디 당췌 못 그리것네..."



그림을 그렇게나 세밀하고 화사하게 그리시던 한규인 할머니의 빈자리가 못내 서운하다.

면사무소의 교육담당 공무원 언니가 할머니에게 스케치북을 가져다 드렸다는데

혼자서 이렇게 고운 그림을 그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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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몸을 추스리며 하나하나 세심하게 그려넣으셨다.

마당에 이불도 널려있다.

아마도 며느리가

새 이불을 사 드리고 덮으시던 이불을 빨아 널고 갔나보다.


수업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안쇠실 마을에 사시는 한규인 어르신을 방문했더니

얼마나 반가워하시는지...! 오랜만에 뵙는 해맑은 웃음이다.

진작 찾아뵜어야 하는데....하는 마음이 든다.


 한규인 어르신은 86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기 냄새가 날 것 같은 사랑스러움이 풍긴다. 

거친 구석이라곤 없이 앳된 새댁처럼 고운 분...그림조차 사랑스럽다..


집이 깨끗하다고 했더니

 "애덜이 와서 죄다 춰 주고 가."


 집이 예쁘다는 말에 얘기 보따리를 늘어놓으신다.

수업시간에는 그 얌전하시던 분이. 사람이 그리웠나보다.


"48년 된 집이야.  시숙이 지어 줬어.... 그때만해도 꽤 잘 지은 집이었지.

열일곱에 시집 오자마자 난리가 나서 신랭이 군대를 갔지 뭐여

3년이면 돌아온다더니 3년이 뭐여,.. 6년이나 있다 왔어.

시숙 내외와 한 집에 살았지.

낭중에 시숙이 집을 지어줘서 세간을 났어.

그떄만해도 아주 잘 지은 집이었어, 이 집이..."


이 집에서 지금까지 사신 거예요?


"우리 큰아들 내외가 맞벌이를 해서 손주를 갖다 맺기길레 손주를 봐줬잖어.,

아이구 내가 뭔 야그를 할려면 이렇게 꽁댕이가 질다니까..."

하시고픈 얘기가 산더미 같아 보인다.

"근디 이 녀석이 젊은 아낙을 보더니 그 품으로 기어드는 겨, 지 에미가 그리워서 그럈겠지.

그걸 보니께 으찌나 가여운지..눈물이 나더라구... 당췌 안쓰러워서 아들네로 들어가서 살았어.

 농사는 지야 되니께 겨울에는 아들네서 살고 나머지는 여 와 있고... 그럈지.

근디 겨울에는 지름을 때잖어. 우리 떔에 지름값이 많이 드니께 지름값을 우리가 댔어.

그러다가 좀 크니께 (손주를) 어린이집을 보내데. 그래 다시 여 와서 쭉 살았지..."


더 오래 들어드리고 싶은데 일어나야 할 전화가 왔다.

 늘어지게 앉아 들어드리면 한자락 얘기 보따리를 펼치실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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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선한 바람 불면 건강한 모습으로 그림교실에서 뵙자고 인사를 하고 나왔다.

손을 흔드시는 한규인 할머니....


마당에선 뜨거운 땡볕 아래 독이 오른 고추가 새파랗게 여물어가고 있었다.

잦아드는 할머니의 기력과는 대조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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