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구제금에 얽힌 사연  (15:22-33)
                

예루살렘 방문 목적
로마의 기독교인들에게 편지를 쓰는 바울의 심정은 그렇게 가볍지만은 않았습니다. 이미 로마를 방문하려던 계획이 번번이 실패로 돌아간 데다가 이번에도 우선 예루살렘에서 일이 잘 풀려야만 로마를 방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을 읽은 분들은 알고 있겠지만 예루살렘을 방문한 바울에게 불행이 닥칩니다.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죽을 고비는 넘겼지만 구속의 신세를 면할 수는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일을 해결하고 로마를 거쳐 스페인까지 가려던 바울의 당찬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고, 다만 로마 황제에게 상고를 했기 때문에 피고인의 몸으로 무역선을 타고 로마까지 끌려갔습니다. 바울이 앞으로 자신에게 일어날 이런 일을 어느 정도 예감한 것 같습니다. 이제 로마서를 시나브로 끝내면서 담담하게 자신의 일정 계획을 알리는데, 그 행간에서 우리는 그의 비장한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25절에서 바울은 예루살렘에 사는 성도들에게 구제금을 전하러 간다고 했습니다. 이 일은 이미 오래 전부터 계획되어 있었습니다(갈 2:10). 갈라디아서에는 이 구제금과 연관된 그 당시의 상황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앞서 한번 언급했듯이 바울은 예루살렘에 자리 잡고 있는 초기 기독교 지도자들과 미묘한 갈등을 빚었습니다. 그것의 단초는 물론 바울이 예수 공동체를 박살내는 일에 앞장섰다는 원죄에 있습니다. 바울은 이 사실 때문에 비록 다마스커스 회심 사건이 있었지만 대놓고 예루살렘의 지도자들과 상대할 수 없었습니다. 아라비아와 다마스커스에서 상당한 기간 숨어살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베드로를 만나 보름 정도 함께 지냈습니다. 그 이후로 바울은 예루살렘의 지도부와 아무런 연관 없이 시리아와 길리기아 같은 비유대 지역에서 제나름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갈라디아서 2:1에 따르면 14년 뒤에 디도, 바나바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고 합니다. 이때 바울 일행과 예루살렘 지도부와 적지 않은 논란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갈라디아서 2장의 헬라어 문장이 평소 바울답지 않게 매우 산만했다는 것은 그 당시 바울의 심리적 상태가 상당히 혼란스러웠다는 증거입니다. 어쨌든지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중심으로 한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바울의 활동을 인정함으로써 일단 양측 사이의 갈등이 해소되었습니다. 양 교단 사이에 일종의 선교 정책 협약이 맺어지는 과정에서 예루살렘 교단은 바울 일행에게 자신들의 '가난한 사람들'을 기억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성서에는 구체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아마 우리가 지금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갈등이 바울 일행과 예루살렘의 지도자들 사이에 있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예루살렘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인정한 일이 없는데도 바울이 사도 같은 역할을 했다는 사실에 대해서 언짢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사소한 문제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더 핵심적인 갈등은 선교의 대상이 서로 달랐다는 데에 있습니다. 모두가 유대인들로 구성되었던 예루살렘 지도자들은 당연히 유대인들에게 우선적으로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생각한 반면에 바울은 이방인들을 주요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바울이 원래부터 이방인을 선교의 대상으로 생각했는지, 아니면 예루살렘 지도자들과의 경쟁을 피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힘들지만 사도행전의 과정을 보면 매우 자연스럽게 이방인 선교로 방향을 잡게 되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비록 상황에 대한 판단이 서로 다르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영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문을 막지만 않는다면 하나님의 일은 각양각색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을 우리는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갈등 국면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가난한 성도들
바울이 구제금을 가져간다고 하는 예루살렘에 있는 '가난한 성도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일까요? 그 지역의 빈민층 중에서 교회에 나오기 시작한 사람들일 수도 있고, 아니면 평소에는 그런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지만 흉년이 들었기 때문에 형편이 갑자기 어려워진 사람들일 수도 있으며, 또는 예수를 믿음으로써 경제활동이 힘들어진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힘듭니다만, 갈라디아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예루살렘 지도자들이 도움의 손길을 요청할 정도라면 그 문제가 심각했다고 보아야 합니다.  
바울이 지금 예루살렘으로 가져가는 구제금은 그리스 북쪽에 해당되는 마케도니아와 아카이아 지역의 신자들이 모금한 것이었습니다. 이 지역에 살고 있던 신자들의 형편이 넉넉했다기보다는 기독교 신앙에 충실했던 사람들의 당연한 행위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마케도니아 지역의 신자들이 기쁜 마음으로 여기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할 '의무'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방인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성도들의 정신적인 축복을 나누어 가졌으니 이제는 물질적인 것을 가지고 그들을 도울 의무가 있지 않겠습니까?"(27절). 예루살렘 교회는 복음의 발생지로서 세계 교회의 정신적 토대이기 때문에 그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이방인 교회가 돕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물질적으로 서로 돕고 도움을 받는 일은 이렇게 초기 공동체 시절부터 교회를 구성하는 핵심적 요소였습니다. 만약 오늘의 교회가 이런 전통을 무시한다면 자신의 뿌리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이런 가르침을 배격하는 쪽으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교회의 빈익빈부익부 현상은 여기서 재차 거론할 필요도 없이 아주 명확하며, 그것이 개선될 기미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더 합니다. 전국 교회의 30% 정도가 재정적으로 자립하지 못하고, 말 그대로 '생존'에 급급한 실정입니다. 한국교회의 물적 토대가 절대적으로 부실하다면 절대 빈곤층에 속하는 교회 문제도 어찌 손을 쓰기 힘들겠지만 우리의 상황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자랑하듯이 세계 50대 대형교회 중에 절반 이상이 한국에 있을 정도로 한국 교회 전체의 물적 토대는 생각 밖으로 탄탄합니다. 문제는 그것이 교회의 본질에 근거해서 분배되지 못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런 구조는 단지 어려운 교회에서 일하는 목사들이 고생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한국교회 전체를 허약하게 합니다. 천박한 자본주의 정신에 찌든 교회가 어떻게 구원론적 공동체로 인정받을 수 있겠습니까?

두 가지 근심
구제금을 갖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바울에게 두 가지 근심이 있었습니다. 한 가지는 기독교를 박해하는 유대인에게서 화를 당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화를 당한다는 헬라어는 죽음까지 포함된 의미이며, 바울을 공격하는 사람들이 단지 예루살렘에 국한하지 않고 유대 전체 지역에서 총망라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분위기가 매우 험악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21장 이하에는 바울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체포되는 장면이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어서 23에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겠다고 맹세한 사람들이 나설 정도로 상황이 매우 급박하게 돌아갔습니다. 이런 정도의 일이 기다리고 있다면, 그리고 바울을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고 만류한 사람들이 있을 정도라고 한다면(행 21장) 예루살렘 방문을 앞두고 로마서를 집필하고 있는 바울이 그 위험을 어느 정도는 각오했을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 공동체에 기도를 부탁한 또 하나의 다른 근심은 예루살렘 신자들이 구제금을 받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가져가는 구제금이 그 곳 성도들에게 기쁜 선물이 되도록 기도하여 주십시오"(31절)라고 진술했다는 것은 그렇게 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 구제금은 이미 예루살렘 지도자들이 요청한 것이었는데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울은 그것에 대해서 자세하게 기록하지 않았으며, 사도행전에도 별 다른 언급이 없습니다. 가장 큰 가능성은 예루살렘 지도자들이 바울을 공격하는 유대인들을 의식했을지 모른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아직 기독교 공동체가 어떤 조직을 완벽하게 구비하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유대인 교회와 안디옥을 중심으로 한 이방인 교회가 서로 별개의 공동체로 운영되고 있었을 것입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 같은 예루살렘 지도자들은 바울의 선교 활동에 대한 소식을 듣고 한편으로 기쁘게 생각했지만 바울의 과격한 태도로 인해서 예루살렘 공동체가 피해를 받으면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예루살렘에서 체포당한 바울이 살해당할지도 모르는 급박한 상황 가운데서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가 그런 부분을 생략한 것인지 실제로 아무런 행동도 없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사도행전의 보도에 한정해서 본다면 적진에서 목숨을 담보하고 고군분투하는 바울은 예루살렘 지도자들에게서 철저하게 소외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베드로를 중심으로 한 사도들이 의리도 없이 비겁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바울의 행동에 개입함으로써 예루살렘 공동체가 와해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너무 강했기 때문에 벌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미리 짐작한 바울로서는 예루살렘 교회가 자기의 구제금을 받지 않을지 모른다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평화의 인사
모든 일이 원만하게 처리되면 이제 바울은 기쁜 마음으로 로마 교회를 방문하게 됩니다. 이것이 곧 로마서를 쓰게 된 동기입니다. 물론 로마서의 내용은 이런 실제적인 일보다도 복음과 율법, 믿음을 통한 구원이라는 복음의 진수를 담고 있긴 하지만 아주 절박한 상황 가운데서 진술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로마서는 일종의 신앙적 유언을 담은 문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끝으로는 바울은 '평화의 하느님'이 함께 하기를 바란다는, 전형적인 유대인의 인사를 보내는데, 그것은 곧 하나님의 구원을 가리킵니다. 유대인들에게 평화(샬롬)는 곧 구원과 동의어입니다. 전쟁의 역사를 거쳐온 민족이기 때문에 평화를 구원으로 인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평화는 반드시 정치, 경제적인 차원만이 아니라 우리 개인의 정신적 차원에서도 구원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정신이 참된 평화를 얻게 되는 때는 곧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는 때일 것입니다.
이제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는 뜻의 '아멘'으로 로마서는 끝납니다. 16장은 추신과 후대의 첨부입니다. 초기 기독교에서 아주 독특한 캐릭터를 갖고, 그렇게 활동했던 바울은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는 심정에서 '아멘'으로 편지 쓰기를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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