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20
과학사는 보다 정밀한 이론들이 기존의 이론들을 보완하거나 대체하는 과정의 연속입니다.
한 때 가장 많은 것을 설명하였을 그러한 이론들이 어떤 역사적 배경에서 탄생하였으며 또
어떤 이유에서 잊혀졌는지를 추적해 보는 것도 과학을 쉽게 이해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되어 새로운 연재를 시작합니다.
(1) 대륙이 움직인다
대륙이동설(theory of continental drift)은 지구과학 분야에서 잘 확립된 이론 중 하나입니다.
지구의 표면층이 크고 작은 십여개의 판(版, plate)으로 갈라져 있고 이 판들이 서로 움직이면서
충돌하고 다른 판의 위로 올라가거나 아래로 깔려 들어가기 때문에 지진, 화산활동등을
유발하며 오랜 시간에 걸쳐 높은 산맥을 만들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과 수 십년 전만
하더라도 이러한 주장은 거의 종교계의 이단과 같은 대접을 받았지요. 20세기 초 기상학자였던
베게너(Alfred Wegener)가 대륙이동설을 주장하면서 그 무거운 짐을 떠 안았습니다.
1620년 베이컨(Francis Bacon)은 대서양과 접한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해안선 윤곽이
비슷하다는 점에 주목했지만, 더 이상 깊이 파고들진 않았습니다. 그 뒤 세계지도가 보다
명확히 그려지면서, 대서양 양쪽 대륙의 윤곽이 나란해서 마치 퍼즐 조각들처럼 잘 들어
맞는다는 점이 지적되곤 했지요. 그러나 20세기 초반까지 대부분의 지구과학자들은 대륙과
해양의 위치는 고정되어 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과학계는 베게너 견해를 아예 무시하거나 가볍게 취급하였습니다.
베게너의 역작인 “대륙과 해양의 기원”은 1915년에 출판되었는데 "전 세계의 대륙은 원래
판게아(Pangaea)라는 초대륙으로 한 덩어리를 이루고 있었으나, 지금으로부터 3억년 전 쯤에
분열하기 시작해서, 각 부분이 동서, 남북으로 계속 이동한 결과, 약 100만년전 쯤에는 지금과
같은 5대양 6대주의 모습을 형성하게 되었다." 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고, 이로부터 바다와
산맥의 형성, 섬의 생성과 소멸 등의 여러 문제들도 일관되게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베게아의 가설엔 그가 지질학자가 아니었고 그의 이론이 지질학외에 다른 분야의 연구결과를
통합하고 있었던 관계로 사소한 잘못들이 적지않게 내포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와 무관하게
정작 수천년의 전통을 가진 정적인 지구의 개념으로 무장한 당시 학자들은 오직 한가지 질문에
집착하였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대륙이동을 가능케 하는가?” 라는 지극히 당연한 질문에 베게너는 지구 지층의
새로운 힘을 고안하여 “그러한 힘이 대륙을 양 극지방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고 설명하려
하였습니다. 또한 바닷물의 조력이 미 대륙을 유럽과 아프리카로부터 서쪽으로 미는 힘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힘’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었고 조력은 계산결과 베게너의
대륙이동을 설명하기엔 터무니없이 미약한 크기의 힘이었습니다. 이처럼 근거를 확인할 수
없는 힘과 잘못된 계산결과를 작동원인으로 제시한 관계로 당시 많은 과학자들이 베게너의
가설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였으나, 대륙이 이동한다는 많은 증거가 있다는 사실만은 서서히
인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여러분이 세계지도를 펴 보면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모양이 마치 퍼즐게임의 두 조각처럼
잘 들어맞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의 지질층이
마치 톱니바퀴가 서로 맞물리듯이 연결됩니다. 따라서 베게너의 가설에 상당한 신빙성이
있음을 부정할 순 없었습니다. 거기에 고생물학 연구의 결과도 신빙성을 더해 주니까요.
그럼에도 대륙이동을 가능케 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설명할 수 없었기에 베게너의 이론이 지구
지질학계의 공식 이론으로 인정받기까진 거의 50년을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동시에 다른 과학
분야의 발전도 같이 더뎌지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고생물학 분야입니다.
당시 고생물학자들은 남반구의 각 대륙(남아메리카, 아프리카, 인도, 호주)에서 발견되는
고대화석층이 유사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륙이동설이 인정받지 못한 상황에서 가장 그럴듯한 해결방법은 바로 각 대륙을
이어주는 “육교(陸橋)/다리”를 가상하는 것이었습니다.
19세기 초 호주의 지질학자인 수에즈(Edward Suess)는 남반구 각 대륙들 사이에 지금은 바다
속에 잠겨버린 큰 육지들이 있었을 거라는 획기적인 가설로 문제를 단숨에 해결하였습니다.
지구역사 초기부터 중생대 (약 1억 5천만년 전)까지 존재했을 그 대륙들을 통해 생물체가 각
대륙사이를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각 대양에 그토록 큰 대륙들이
잠겨있다는 그 어떤 증거도 찾기 힘들었던 일부 지질학자들은 대신에 대륙과 대륙사이를
연결해 주는 좁은 육교(지협,isthmi)를 가정하였습니다. 이들의 가설은 그 당시에도 존재했던
남북 아메리카를 잇는 파나마 지협의 존재와 불과 수천년 전 아시아와 아메리카를 이어주었던
베링해(알라스카와 시베리아 사이)의 육교로 인해 꽤나 설득력이 있어 보였습니다.
1960년대에 이르러 대륙이동설은 해저확장설과 통합되어 판구조론(Plate Tectonics)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당시 미국 프린스턴 대학의 헤스(Hary Hess)는 지구내부의 상승하는
마그마에 의하여 깊은 바다 속의 상대적으로 얇은 지표에서 새로운 지각이 형성되며, 생성된
지각은 맨틀(지각 바로 아래에 있는 두꺼운 암석층)의 대류로 인하여 계속해서 양 옆으로
(1년에 1-6 cm 씩) 확장된다는 해양저확장설을 제안하였고 그 증거들이 속속 발견되면서
베게너가 그토록 알아내고자 했던 대륙이동을 가능케 하는 원인이 규명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베게너는1930년 그린랜드 탐험 도중 이미 유명을 달리하여 본인의 가설이
받아들여지는 것을 지켜보지는 못하였습니다.
당연히 현존하는 대륙사이를 메꾸는 큰 육지가 있었을 거라는 수에즈의 가설은 폐기되었으며,
파나마지협의 존재도 남북아메리카 두 대륙을 잇는 좁은 육교가 아니라 두 아메리카대륙이
서로 마주 보고 이동하는 과정에서 생긴 지형으로 밝혀집니다. 그런데 베링해의 육교는
대륙이동과는 관계없이 실제로 수천년 전 빙하기의 마지막 시기까지 존재하였고 그 후 빙하가
녹아 수면이 높아지면서 물에 잠긴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당시 이 육교를 통해 수많은
생물들이 아시아와 아메리카대륙을 오갈 수 있었고 여기엔 물론 인간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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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가장 많은 것을 설명하였을 그러한 이론들이 어떤 역사적 배경에서 탄생하였으며 또
어떤 이유에서 잊혀졌는지를 추적해 보는 것도 과학을 쉽게 이해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되어 새로운 연재를 시작합니다.
(1) 대륙이 움직인다
대륙이동설(theory of continental drift)은 지구과학 분야에서 잘 확립된 이론 중 하나입니다.
지구의 표면층이 크고 작은 십여개의 판(版, plate)으로 갈라져 있고 이 판들이 서로 움직이면서
충돌하고 다른 판의 위로 올라가거나 아래로 깔려 들어가기 때문에 지진, 화산활동등을
유발하며 오랜 시간에 걸쳐 높은 산맥을 만들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과 수 십년 전만
하더라도 이러한 주장은 거의 종교계의 이단과 같은 대접을 받았지요. 20세기 초 기상학자였던
베게너(Alfred Wegener)가 대륙이동설을 주장하면서 그 무거운 짐을 떠 안았습니다.
1620년 베이컨(Francis Bacon)은 대서양과 접한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해안선 윤곽이
비슷하다는 점에 주목했지만, 더 이상 깊이 파고들진 않았습니다. 그 뒤 세계지도가 보다
명확히 그려지면서, 대서양 양쪽 대륙의 윤곽이 나란해서 마치 퍼즐 조각들처럼 잘 들어
맞는다는 점이 지적되곤 했지요. 그러나 20세기 초반까지 대부분의 지구과학자들은 대륙과
해양의 위치는 고정되어 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과학계는 베게너 견해를 아예 무시하거나 가볍게 취급하였습니다.
베게너의 역작인 “대륙과 해양의 기원”은 1915년에 출판되었는데 "전 세계의 대륙은 원래
판게아(Pangaea)라는 초대륙으로 한 덩어리를 이루고 있었으나, 지금으로부터 3억년 전 쯤에
분열하기 시작해서, 각 부분이 동서, 남북으로 계속 이동한 결과, 약 100만년전 쯤에는 지금과
같은 5대양 6대주의 모습을 형성하게 되었다." 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고, 이로부터 바다와
산맥의 형성, 섬의 생성과 소멸 등의 여러 문제들도 일관되게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베게아의 가설엔 그가 지질학자가 아니었고 그의 이론이 지질학외에 다른 분야의 연구결과를
통합하고 있었던 관계로 사소한 잘못들이 적지않게 내포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와 무관하게
정작 수천년의 전통을 가진 정적인 지구의 개념으로 무장한 당시 학자들은 오직 한가지 질문에
집착하였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대륙이동을 가능케 하는가?” 라는 지극히 당연한 질문에 베게너는 지구 지층의
새로운 힘을 고안하여 “그러한 힘이 대륙을 양 극지방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고 설명하려
하였습니다. 또한 바닷물의 조력이 미 대륙을 유럽과 아프리카로부터 서쪽으로 미는 힘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힘’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었고 조력은 계산결과 베게너의
대륙이동을 설명하기엔 터무니없이 미약한 크기의 힘이었습니다. 이처럼 근거를 확인할 수
없는 힘과 잘못된 계산결과를 작동원인으로 제시한 관계로 당시 많은 과학자들이 베게너의
가설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였으나, 대륙이 이동한다는 많은 증거가 있다는 사실만은 서서히
인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여러분이 세계지도를 펴 보면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모양이 마치 퍼즐게임의 두 조각처럼
잘 들어맞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의 지질층이
마치 톱니바퀴가 서로 맞물리듯이 연결됩니다. 따라서 베게너의 가설에 상당한 신빙성이
있음을 부정할 순 없었습니다. 거기에 고생물학 연구의 결과도 신빙성을 더해 주니까요.
그럼에도 대륙이동을 가능케 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설명할 수 없었기에 베게너의 이론이 지구
지질학계의 공식 이론으로 인정받기까진 거의 50년을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동시에 다른 과학
분야의 발전도 같이 더뎌지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고생물학 분야입니다.
당시 고생물학자들은 남반구의 각 대륙(남아메리카, 아프리카, 인도, 호주)에서 발견되는
고대화석층이 유사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륙이동설이 인정받지 못한 상황에서 가장 그럴듯한 해결방법은 바로 각 대륙을
이어주는 “육교(陸橋)/다리”를 가상하는 것이었습니다.
19세기 초 호주의 지질학자인 수에즈(Edward Suess)는 남반구 각 대륙들 사이에 지금은 바다
속에 잠겨버린 큰 육지들이 있었을 거라는 획기적인 가설로 문제를 단숨에 해결하였습니다.
지구역사 초기부터 중생대 (약 1억 5천만년 전)까지 존재했을 그 대륙들을 통해 생물체가 각
대륙사이를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각 대양에 그토록 큰 대륙들이
잠겨있다는 그 어떤 증거도 찾기 힘들었던 일부 지질학자들은 대신에 대륙과 대륙사이를
연결해 주는 좁은 육교(지협,isthmi)를 가정하였습니다. 이들의 가설은 그 당시에도 존재했던
남북 아메리카를 잇는 파나마 지협의 존재와 불과 수천년 전 아시아와 아메리카를 이어주었던
베링해(알라스카와 시베리아 사이)의 육교로 인해 꽤나 설득력이 있어 보였습니다.
1960년대에 이르러 대륙이동설은 해저확장설과 통합되어 판구조론(Plate Tectonics)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당시 미국 프린스턴 대학의 헤스(Hary Hess)는 지구내부의 상승하는
마그마에 의하여 깊은 바다 속의 상대적으로 얇은 지표에서 새로운 지각이 형성되며, 생성된
지각은 맨틀(지각 바로 아래에 있는 두꺼운 암석층)의 대류로 인하여 계속해서 양 옆으로
(1년에 1-6 cm 씩) 확장된다는 해양저확장설을 제안하였고 그 증거들이 속속 발견되면서
베게너가 그토록 알아내고자 했던 대륙이동을 가능케 하는 원인이 규명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베게너는1930년 그린랜드 탐험 도중 이미 유명을 달리하여 본인의 가설이
받아들여지는 것을 지켜보지는 못하였습니다.
당연히 현존하는 대륙사이를 메꾸는 큰 육지가 있었을 거라는 수에즈의 가설은 폐기되었으며,
파나마지협의 존재도 남북아메리카 두 대륙을 잇는 좁은 육교가 아니라 두 아메리카대륙이
서로 마주 보고 이동하는 과정에서 생긴 지형으로 밝혀집니다. 그런데 베링해의 육교는
대륙이동과는 관계없이 실제로 수천년 전 빙하기의 마지막 시기까지 존재하였고 그 후 빙하가
녹아 수면이 높아지면서 물에 잠긴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당시 이 육교를 통해 수많은
생물들이 아시아와 아메리카대륙을 오갈 수 있었고 여기엔 물론 인간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2008.04.02 03:29:04
아메리카 대륙에 살던 원주민들과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들이 빙하기에 아시아 대륙으로부터 이동해왔다고 하는데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말인가요? 육안으로 보면 비슷하게 생긴 듯 하기도 한데, 몽고인종과의 유사성이 실지로 발견되고 있나요?
2008.04.02 04:31:57
Marburg 대학은 신학/철학, 인문학 뿐만 아니라 의학, 과학분야에서도 명성이 높더군요.
저야 에볼라/마버그 바이러스 때문에 'Marburg'란 지명과 대학을 알게 되었지만 말입니다.
저야 에볼라/마버그 바이러스 때문에 'Marburg'란 지명과 대학을 알게 되었지만 말입니다.
2008.04.02 04:36:04
호주의 경우 남방인들의 유입이 아메리카의 경우엔 몽골족 북방계에 속하는 집단들이 이주하였습니다.
물론 이 두 집단 모두 아프리카에서 아라비아반도 남부를 거쳐 인도/파키스탄 지역으로 이동한 후,
그 경로를 달리 하였다고 보는게 정설입니다.
화석, 유적지, 언어, 유전자 연구등의 결과를 대조분석하는 큰 작업이 계속 이루어지고 있는데,
머지않아 인류역사를 개관하는 보고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인종(race)이라는 개념이 최소한 과학계에서 만큼은 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이 두 집단 모두 아프리카에서 아라비아반도 남부를 거쳐 인도/파키스탄 지역으로 이동한 후,
그 경로를 달리 하였다고 보는게 정설입니다.
화석, 유적지, 언어, 유전자 연구등의 결과를 대조분석하는 큰 작업이 계속 이루어지고 있는데,
머지않아 인류역사를 개관하는 보고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인종(race)이라는 개념이 최소한 과학계에서 만큼은 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2008.04.02 09:41:01
이미 유전학적 아담찾기에 성공했다는 보고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유전학적 계보찾기를 이용해 보니.. 아시아 일대에 징기스칸의 DNA를 지닌 이들이 천여만명에 이른다고 하더군요.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제퍼슨은 선조가 유럽인이 아니라 중동인이었다고 하구요.
결국 그런 방법으로 찾아낸 슈퍼 아담.. 그러니까 현 모든 남자들의 원조상은 대략 6만여전 아프리카 지역에서 태어난 이라고 하더군요. 현 모든 남자들의 DNA에는 이 슈퍼아담의 변형유전인자가 들어있다고 하더군요. 그럼 세상의 모든 남자들은 유전학적 의미에서는 한 형제들이겠죠~
결국 그런 방법으로 찾아낸 슈퍼 아담.. 그러니까 현 모든 남자들의 원조상은 대략 6만여전 아프리카 지역에서 태어난 이라고 하더군요. 현 모든 남자들의 DNA에는 이 슈퍼아담의 변형유전인자가 들어있다고 하더군요. 그럼 세상의 모든 남자들은 유전학적 의미에서는 한 형제들이겠죠~
2008.04.02 14:05:54
이길용 박사님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셨네요.
'이브'라고 불리우는 우리의 유전학적인 어머니는 약 15만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혹시 조상이면 아담과 이브가 같이 살았어야 하지 않느냐고 의아해 하실 분들이 있겠군요.
'이브'는 여성으로부터만 전해지는 유전자 정보를 추적해서 나온 결과입니다. 미토콘드리아 DNA라고
하는 유전정보는 엄마를 통해서만 자식들에게 전해집니다. 따라서 브리즈처럼 딸을 낳지 못한 부모는
미토콘드리아의 유전 정보만을 놓고 볼 때 대가 끊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앞으로 수천, 수만년 후 인류가 최초의 어머니를 추적한다면 그 과정에서 저와 저의 아내는
절대 언급되지 않을 거라는 말씀! 설사 아무리 제 후손들이 많이 살아 남았다 하더라도, 흐-흑.
'이브'라고 불리우는 우리의 유전학적인 어머니는 약 15만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혹시 조상이면 아담과 이브가 같이 살았어야 하지 않느냐고 의아해 하실 분들이 있겠군요.
'이브'는 여성으로부터만 전해지는 유전자 정보를 추적해서 나온 결과입니다. 미토콘드리아 DNA라고
하는 유전정보는 엄마를 통해서만 자식들에게 전해집니다. 따라서 브리즈처럼 딸을 낳지 못한 부모는
미토콘드리아의 유전 정보만을 놓고 볼 때 대가 끊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앞으로 수천, 수만년 후 인류가 최초의 어머니를 추적한다면 그 과정에서 저와 저의 아내는
절대 언급되지 않을 거라는 말씀! 설사 아무리 제 후손들이 많이 살아 남았다 하더라도, 흐-흑.













이길용
이방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