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사를 되돌이켜 볼 때 질병의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병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었습니다. 질병의 원인이 확실치 않으면 시대를 막론하고 추측이나 자칭 전문가들의
근거없는 주장들이 확산되면서 의료행위는 병을 성공적으로 치료하기 보다 더 악화시키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론 의학계가 권위에 집착하여 확실한 증거를 무시하는 바람에 많은 생명이
피해를 보는 일도 있습니다.

그 한가지 예를 찾아보기 위해 무대를 19세기 유럽의 가장 화려한 도시였던 비엔나로 옮깁니다.
아직 질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의 존재를 알지 못하던 시대였고 많은 병의 원인이 나쁜 공기나
냄새 때문이라고 믿고 있었던 시절이었습니다. 또한 환자에게서 나타나는 증상이 병의 원인과
동일시되어 증상과 반대되는 처방이 주요 치료법으로 사용되던 시기였습니다.
즉, 감기나 독감에 걸린 환자의 경우, 일단 뜨겁고 갈증이 나는 증상을 보고서 몸이 전체적으로
건조한 것으로 진단합니다. 따라서 확실한 처방은 차고 습한 것의 혼합이 됩니다.
결국 독감 환자는 물수건이 걸린 방 안에서 찬물이 가득 찬 욕조에 누워 병이 나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식입니다.

중세 이전부터 내려오는 근거가 희박한 의학지식이 여전히 통용되던 비엔나 종합병원의
의사였던 제멜바이스(Ignaz Semmelweis)가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그는 병원의 제1 산부인과 병동에서 출산시 산욕열(産褥熱)이라는 병으로 전체 산모의
약 11%가 사망하는 상황을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산욕열로 인해 많은 산모와
아이들이 죽어가던 시절이었다 하더라도 10%가 넘는 사망율은 분명히 설명을 필요로 하던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의사들의 답변이라곤 그저 “운이 없었다” 아니면 “나쁜 공기 때문이다”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혹자는 제2 산과 병동과 1 병동에 입원하는 산모들의 신분차이에
주목하여 제1 병동에 하층계급 산모들이 많아서 생긴 결과라고 주장하여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제멜바이스는 상관인 산부인과 과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과학적 방법을 동원하여 이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합니다. 그는 우선 산욕열 사망률이 2%  정도인 제2 병동을 실험의 기준으로
삼고 두 병동간의 여러가지 차이점을 조사하기 시작합니다. 드러나는 차이점을 종합한 뒤, 그는
네 가지의 가설을 제시하고 직접 실험에 들어갑니다. 산모의 출산 자세를 바꾸거나 출산시 산모
주위에 사람의 접근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모든 실험이
실패로 돌아가고 사망률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제멜바이스의 친구가 해부 과정 중에 수술용 칼에 손가락을 베이는 사고를
당하고 그 때문에 결국 병들어 죽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제멜바이스는 곧바로 죽은 자의
몸과 접촉할 때 어떤 물질이 옮겨져서 병을 발생시킨다는 다섯 번째 가설을 세웁니다. 그리곤
출산 과정에 관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손을 깨끗이 씻고 들어올 것을 명령합니다.
제1병동에서의 사망률을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제멜바이스의 지위도 함께 떨어지고
맙니다. 1849년 제멜바이스는 ‘과격’한 정책을 제시한다는 이유로 병원에서 해고된 것입니다.

제멜바이스의 손을 씻는 위생방침이 일단 성공적인 결과를 보였기 때문에 즉시 많은 병원들이
그 방침을 수용했을 것 같지만, 당시 의사들은 노골적으로 제멜바이스를 무시하였습니다.
권위있는 학회에 소속되어 있지도 않았으며, 이름이 알려진 의사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고향인 헝가리로 돌아간 제멜바이스는 개인 산부인과 병원을 열고 큰 성공을 거둡니다.
그리고 충분한 데이터를 모은 후 이제 확신을 갖고서 자신의 위생방침 (물론, 손을 깨끗히 씻는
것도 포함해서)을 책으로 출판합니다. 그는 자비를 들여 자신의 책을 유럽의 모든 의학 학회에
보냅니다. 물론 또 다시 간단히 무시당하였죠.
그 사이 유럽 전역에 걸쳐 수 만명의 산모와 갓 태어난 어린이들이 죽어갔습니다. 1860년 봄,
비엔나 종합병원 산부인과 제1병동의 산욕열 사망률은 35%에 이르기까지 합니다.
제멜바이스가 의사와 간호사들의 손을 깨끗이 씻게 하면서 사망률을 1%로 까지 낮추었던 바로
그 병동에서 말입니다. 자신의 명백한 증거 제시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지켜보아야 만 했던 제멜바이스가 우울증 증세에 시달리게 되었다는 사실도 그다지 놀랍지
않습니다. 우울증과 더불어 청결함에 강박 관념을 보였던 그를 친구들은 심한 정신병 증세라
여기고 정신병원에 강제 수용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제멜바이스는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제멜바이스가 죽던 그 해, 영국의 리스터(Joseph Lister)란 의사가 수술용 도구의 살균/소독법을
실험하기 시작하여 실제 큰 성과가 있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비록 리스터가 제멜바이스에 비해
더 잘 알려지긴 하였지만,  그도 어쩔수 없이 변방인 스코틀랜드의 의사에 불과하였고 잘 나가는
런던의 의사들은 여전히 그를 무시하였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선 의사이자 유명한
수필가인 올리버 홈스(Oliver Holmes)가 수술도구 및 손의 소독을 제안하지만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수술도구의 멸균, 소독과 의사, 간호사들의 청결의 중요성이 심각하게 고려되기 시작한 것은
제멜바이스의 통찰로부터 30여년이 지난 후, 현미경 관찰과 파스퇴르의 공헌으로 ‘질병의 세균
원인설’이 널리 인정받기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그러나 세균의 감염 과정을 몰랐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명백한 증거도 쉽게 무시해 버릴 수
있는 전문가들의 권위의식과 그에 따르는 ‘오만’이 그 30년 동안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유일한
원인이었음을 부정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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