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20
오래된 조개 껍질과 같은 해양생물의 화석이 산꼭대기에서 자주 발견되는 이유가 뭘까?
이러한 관찰은 17-18세기 학자들에게 지구가 한 때 엄청난 양의 물에 잠겨있었다는 부인할 수
없는 증거로 간주되었습니다. 학자들이 성경의 대홍수를 떠올린 것은 어쩌면 필연이라고도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수성론(水成論, Neptunism)이라는 가설이 발전하게 됩니다.
수성론은 19세기 지구과학계의 거성이었던 베르너(Gottlob Werner)에 의해 다듬어집니다.
베르너에 따르면 모든 암석은 지구를 덮고 있었던 원시 바닷속에서 비교적 짧은 기간에
만들어졌습니다. 최초의 침전물이 지구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화강암과 태고의 암석을
만들었는데 큰 폭풍우가 휘몰아쳐서 원시 암석의 표면은 가루가 되고, 그 파편에서 소위
과도기적 암석(transitional)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바다가 잔잔해진 후 다음 시기의 침전으로
우리가 오늘날 퇴적암이라 부르는 암석층이 형성되었으며, 마지막으로 최근의 화산활동에 의한
암석층이 쌓이게 된다는 이론입니다. 베르너의 암석 수성론은 구약 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홍수
이야기로부터 영향을 입은 바가 큽니다. 다시말해서 높은 곳의 조개껍질을 비롯해서 지구상의
모든 것은 해수면이 오르내리던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확신이었습니다.
조개껍질들이 산꼭대기로 올라간 것은 세계적인 홍수 때문일 것으로 믿었습니다.
수성론은 1840년대 빙하론의 등장으로 지질학계에서 사라지지만 그 이전에 이미 큰 타격을
받게 됩니다. 19세기 수성론의 가장 큰 경쟁이론은 허튼(James Hutton)이 이끄는
화성론(火成論, Plutonism)으로 이들이 결국 승자의 위치에 자리잡습니다. 화성론자들은
18세기 후반부터 지층의 침식과 융기의 순환과정을 주의깊게 관찰하였습니다. 침식에 의해
지표가 깎여 나가도 지구 내부의 열작용으로 새로운 암석이 분출되는 과정인 화산활동과
마그마 분출로 인해 새로이 지표가 생성됨으로써 상쇄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렇게 새로이
형성된 산맥과 다른 지형들은 다시 강물의 침식작용에 의해 바다 속의 지층에 침전되나,
지하의 열작용에 의해 지각이 융기함으로써 새로운 지표를 형성하는 순환과정인 것입니다.
지구의 표면이 화산이나 지진 때문에 끊임없이 바뀌게 되었고 변덕스런 바닷물과는 상관이
없다는 주장입니다. 이들에 의하면 산꼭대기 조개껍데기는 한 때 조개껍대기를 포함한
지층이 바닷속에 있었다가 서서히 융기되어서 산이 된 것일 뿐입니다.
모든 암석이 원시바다 안에서 일정한 순서에 따른 침전의 결과라는 수성론에 비해 순환적이고
연속적인 암석 형성과 특히 화산활동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화성론은 근대의 지질학자들에게
큰 호응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구의 생김새를 이해하는데 수성론과 화성론의 경쟁보다 더 중요하고 치열했던 싸움이
있었습니다. 바로 격변설(Catastrophism)과 동일과정설(unifromitarianism) 간의 경쟁입니다.
아니 어쩌면 전쟁이라 불러야 할 정도였습니다. 가끔 이 논쟁을 수성론과 화성론 논쟁과
혼동하기도 합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격벽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지구의 모양새가
재앙에 가까운 갑작스런 사건들에 의해 다듬어졌다고 믿습니다. 그런 변화를 일으킨 원인을
대부분 홍수로 보았기 때문에 격변론과 수성론을 같은 것이라고 오해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성서 근본주의자들이 노아의 홍수가 본격적인 과학의 한 주제가 될 수 있다는 기대로
격변설에 관심이 많습니다. 반면에 동일과정설에서는, 지구상에서의 변화가 점진적인 것이고,
거의 모든 과정은 오랜 시간에 걸쳐서 서서히 일어난 것이라고 믿습니다.
18세기 중반에 지구를 탐색하는 새로운 지질학이 탄생하였습니다. 과거의 학자들과는 달리
철저한 현장조사를 통해 과학적 방법론을 통한 이론을 제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들이
관찰했던 지층의 구조와 잔재는 과거에 격변이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지구가 불과
수천 년이라는 짧은 역사를 가졌다고 믿었기 때문에 – 따라서 종말도 수천 년 내에 올 것임 –
일정하고 느린 지질학적 변화는 불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같은 이유에서 미래도 그런 과정이
일어나기엔 지구의 남은 수명이 너무 짧다고 본 것입니다. 그런데도 지구는 온통 변화의
흔적들로 가득 차있으니 유일한 설명은 갑작스런 격변 뿐이었던 것입니다.
당대 유력한 해부학자였던 큐비에(Georges Cuvier)는 화석에 나타나는 생물체들이 현재의 것과
매우 다르다는 사실을 기반으로 먼저 멸종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입니다. 그는 생물종이 아주
급격하게 사라지는 대신 신에 의해 보다 향상된 종으로 다시 창조된다고 추측하였습니다. 지금
볼 수 있는 코끼리는 맘모스의 설계를 발전시켜 창조된 것이라는 형식입니다. 그는 이러한
생각을 지질학적 변화에도 도입하여 신의 의지에 의한 격변이 생물종의 멸종과 재창조의
원인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물론 그러한 격변 중 하나가 바로 노아의 홍수이며 바로 이 때
맘모스가 멸종하였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가설은 창세기의 문자적 해석과 많이
동떨어진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그의 종교적 신념이 흔들리진 않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지구가 수천 년 전에 만들어 졌다는 믿음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 기반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당시 거의 모든 과학자들이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나타나는 증거들을
어떻게든 성경의 내용과 상충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고민하였습니다. 그 결과 나온 생각이 바로
세상을 두 개의 시대로 구분하는 것이었습니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긴 고대의 시간에 신은
창조의 정점이라 할 인간 창조를 준비합니다. 큐비에가 주장했던 격변들과 반복된 생물의 창조
사건들을 이 시기에 포함시켜 화석을 통해 보여지는 생물의 멸종을 설명하려 했습니다.
두 번째 시대인 근대에는 물론 인간이 등장하며 그 기간은 수천 년 정도인 것입니다. 이러한
분리체계를 이용, 종교적 신념과 관측된 실상과의 필연적인 충돌을 한동안 피할 수 있었습니다.
18세기 말에 이르러 선사시대의 유적이 발굴되고 특히 근대의 유물이라고 보기 불가능한
석기들이 발견됩니다. 주류 학계의 반응은 이러한 도구들이 자연적으로 생성되었다고
반박하거나 아니면 그저 예외적 발견의 하나로 치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무시하면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라는 식의 대처도 오래가지 못하였습니다. 버클랜드(William Buckland)
목사가 그의 신앙과 관찰 결과를 조화시키려 했던 시도는 당시 기독교 과학자들이 처했던
상황을 잘 대변해 줍니다. 그는 웨일즈 지방에서 발견된 맘모스와 인간의 뼈가 뒤섞인 선사시대
‘주거지’를 조사한 후 정의상 근대에 출현한 인간이 고대의 생물인 맘모스와 함께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유적은 당시 인간들이 맘모스를 숭배하는 미신을 섬기고 있어 죽은 자를 맘모스
뼈가 있는 곳에 매장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신학적으로나 과학적 견지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고대와 근대를 구별짓는 사건으로서의
‘노아의 홍수’ 문제였습니다. 유럽의 다양한 지역에서 선사시대 유물이 발견되고 더 이상 대홍수
이후 근대에 출연한 인간이란 개념이 유지될 수 없게되자, 버클랜드를 포함한 많은 학자들이
노아의 홍수를 계산에서 제외시키기 시작합니다. 지구가 수천 년 밖에 되지 않았다는 설이
폐기되고 마침내 인류의 역사도 수천 년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지질학의 대전환이 이루어지는 분기점을 1859년으로 보는데 이 해는 우연하게도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판된 때이기도 합니다.
격변설에 대한 첫번째 도전은 화성론을 주창한 허튼으로부터 제기됩니다. 그의 화성론에서
보듯이 지구는 상상을 초월하는 역사를 가졌으며 그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산을 쌓고 또 깍아
나갔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과거를 보는 열쇠다”라는 모토아래 모인 동일과정설
주창자들은 격변설을 믿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지극히 싫어하였습니다. 이들에게 지구상에서
동물들이 멸종되고 새로운 종들이 다시 창조된다는 주장은 알 수 없는 것을 설명하는 편리한
방법일 뿐이며 비겁한 행위로까지 비추어졌습니다. 동일과정설의 실질적 대부였으며 지질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라이엘(Charles Lyell)은 “그런 주장보다 더 무지를 조장하고, 호기심을 무디게
만드는 것은 없다”며 격변설을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라이엘도 중요한 사실을 애써 무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현재 보이는 산맥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고, 특히 빙하가 지형 변화의 큰 원인이라는 아가시
(Louis Agassiz)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 오류를 범하였습니다. 1840년 아가시는 ‘빙하 연구’
라는 책을 출판하여 오늘날 우리가 흔하게 듣는 ‘빙하 시대’라는 단어를 탄생시켰습니다.
유럽대륙이 한 때 거의 빙하로 덮여 있었고 빙하의 확장과 축소가 반복적으로 나타났다는 빙하
이론은 문자 그대로 ‘격변’이 있었음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격변은 아주 천천히 장기간에
걸쳐 일어나는 격변입니다. 따라서 빙하기의 존재와 역할은 동일과정설을 지지하면서
지형변화를 가능케하는 또 하나의 힘을 제공한 것입니다.
서로 물고 물리면서 좀처럼 승부를 내기 힘들것 같았던 격변설과 동일과정설의 경쟁은 몇 번의
반전이 있은 후 대륙이동설의 정립으로 동일과정설에 유리한 방향으로 흐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지구과학자들은 격변설과 동일과정설이 모두 옳다고 생각합니다. 현대
지질학자인 브라이언 존(Brian John)은 “물론 산의 모양이 만들어지는데 장기간의 침식과정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동일과정설이 옳다는거죠. 그런데 지진이나 산사태 한 번이면 산의
모습이 순식간에 뒤바뀝니다. 지진, 산사태는 물과 바람 빙산에 의한 침식이 수천 수만 년에
걸쳐 하는 일을 불과 5분이면 해내는거죠. 지진과 산사태는 격변 아니겠습니까?” 라며 간단히
상황을 정리합니다.
여느 사회집단처럼 과학계도 만일 극단적으로 양립하는 두 가지 의견이 충돌하면 합리적
타협이라는 게 힘든 것 같습니다. 격변설과 동일과정설의 경우, 라이엘이 가진 지질학계에서의
영향력과 격변설에 대한 그의 증오에 가까운 감정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논쟁의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1875년에 사망한 라이엘의 영향력은 정말 대단해서, 1980년대 지질학자들이
운석의 충격 (일종의 격변) 에 의해 공룡의 멸종이 일어났다는 새로운 주장을 받아들일 때에도
엄청난 부담을 감수해야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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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관찰은 17-18세기 학자들에게 지구가 한 때 엄청난 양의 물에 잠겨있었다는 부인할 수
없는 증거로 간주되었습니다. 학자들이 성경의 대홍수를 떠올린 것은 어쩌면 필연이라고도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수성론(水成論, Neptunism)이라는 가설이 발전하게 됩니다.
수성론은 19세기 지구과학계의 거성이었던 베르너(Gottlob Werner)에 의해 다듬어집니다.
베르너에 따르면 모든 암석은 지구를 덮고 있었던 원시 바닷속에서 비교적 짧은 기간에
만들어졌습니다. 최초의 침전물이 지구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화강암과 태고의 암석을
만들었는데 큰 폭풍우가 휘몰아쳐서 원시 암석의 표면은 가루가 되고, 그 파편에서 소위
과도기적 암석(transitional)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바다가 잔잔해진 후 다음 시기의 침전으로
우리가 오늘날 퇴적암이라 부르는 암석층이 형성되었으며, 마지막으로 최근의 화산활동에 의한
암석층이 쌓이게 된다는 이론입니다. 베르너의 암석 수성론은 구약 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홍수
이야기로부터 영향을 입은 바가 큽니다. 다시말해서 높은 곳의 조개껍질을 비롯해서 지구상의
모든 것은 해수면이 오르내리던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확신이었습니다.
조개껍질들이 산꼭대기로 올라간 것은 세계적인 홍수 때문일 것으로 믿었습니다.
수성론은 1840년대 빙하론의 등장으로 지질학계에서 사라지지만 그 이전에 이미 큰 타격을
받게 됩니다. 19세기 수성론의 가장 큰 경쟁이론은 허튼(James Hutton)이 이끄는
화성론(火成論, Plutonism)으로 이들이 결국 승자의 위치에 자리잡습니다. 화성론자들은
18세기 후반부터 지층의 침식과 융기의 순환과정을 주의깊게 관찰하였습니다. 침식에 의해
지표가 깎여 나가도 지구 내부의 열작용으로 새로운 암석이 분출되는 과정인 화산활동과
마그마 분출로 인해 새로이 지표가 생성됨으로써 상쇄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렇게 새로이
형성된 산맥과 다른 지형들은 다시 강물의 침식작용에 의해 바다 속의 지층에 침전되나,
지하의 열작용에 의해 지각이 융기함으로써 새로운 지표를 형성하는 순환과정인 것입니다.
지구의 표면이 화산이나 지진 때문에 끊임없이 바뀌게 되었고 변덕스런 바닷물과는 상관이
없다는 주장입니다. 이들에 의하면 산꼭대기 조개껍데기는 한 때 조개껍대기를 포함한
지층이 바닷속에 있었다가 서서히 융기되어서 산이 된 것일 뿐입니다.
모든 암석이 원시바다 안에서 일정한 순서에 따른 침전의 결과라는 수성론에 비해 순환적이고
연속적인 암석 형성과 특히 화산활동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화성론은 근대의 지질학자들에게
큰 호응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구의 생김새를 이해하는데 수성론과 화성론의 경쟁보다 더 중요하고 치열했던 싸움이
있었습니다. 바로 격변설(Catastrophism)과 동일과정설(unifromitarianism) 간의 경쟁입니다.
아니 어쩌면 전쟁이라 불러야 할 정도였습니다. 가끔 이 논쟁을 수성론과 화성론 논쟁과
혼동하기도 합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격벽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지구의 모양새가
재앙에 가까운 갑작스런 사건들에 의해 다듬어졌다고 믿습니다. 그런 변화를 일으킨 원인을
대부분 홍수로 보았기 때문에 격변론과 수성론을 같은 것이라고 오해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성서 근본주의자들이 노아의 홍수가 본격적인 과학의 한 주제가 될 수 있다는 기대로
격변설에 관심이 많습니다. 반면에 동일과정설에서는, 지구상에서의 변화가 점진적인 것이고,
거의 모든 과정은 오랜 시간에 걸쳐서 서서히 일어난 것이라고 믿습니다.
18세기 중반에 지구를 탐색하는 새로운 지질학이 탄생하였습니다. 과거의 학자들과는 달리
철저한 현장조사를 통해 과학적 방법론을 통한 이론을 제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들이
관찰했던 지층의 구조와 잔재는 과거에 격변이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지구가 불과
수천 년이라는 짧은 역사를 가졌다고 믿었기 때문에 – 따라서 종말도 수천 년 내에 올 것임 –
일정하고 느린 지질학적 변화는 불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같은 이유에서 미래도 그런 과정이
일어나기엔 지구의 남은 수명이 너무 짧다고 본 것입니다. 그런데도 지구는 온통 변화의
흔적들로 가득 차있으니 유일한 설명은 갑작스런 격변 뿐이었던 것입니다.
당대 유력한 해부학자였던 큐비에(Georges Cuvier)는 화석에 나타나는 생물체들이 현재의 것과
매우 다르다는 사실을 기반으로 먼저 멸종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입니다. 그는 생물종이 아주
급격하게 사라지는 대신 신에 의해 보다 향상된 종으로 다시 창조된다고 추측하였습니다. 지금
볼 수 있는 코끼리는 맘모스의 설계를 발전시켜 창조된 것이라는 형식입니다. 그는 이러한
생각을 지질학적 변화에도 도입하여 신의 의지에 의한 격변이 생물종의 멸종과 재창조의
원인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물론 그러한 격변 중 하나가 바로 노아의 홍수이며 바로 이 때
맘모스가 멸종하였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가설은 창세기의 문자적 해석과 많이
동떨어진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그의 종교적 신념이 흔들리진 않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지구가 수천 년 전에 만들어 졌다는 믿음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 기반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당시 거의 모든 과학자들이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나타나는 증거들을
어떻게든 성경의 내용과 상충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고민하였습니다. 그 결과 나온 생각이 바로
세상을 두 개의 시대로 구분하는 것이었습니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긴 고대의 시간에 신은
창조의 정점이라 할 인간 창조를 준비합니다. 큐비에가 주장했던 격변들과 반복된 생물의 창조
사건들을 이 시기에 포함시켜 화석을 통해 보여지는 생물의 멸종을 설명하려 했습니다.
두 번째 시대인 근대에는 물론 인간이 등장하며 그 기간은 수천 년 정도인 것입니다. 이러한
분리체계를 이용, 종교적 신념과 관측된 실상과의 필연적인 충돌을 한동안 피할 수 있었습니다.
18세기 말에 이르러 선사시대의 유적이 발굴되고 특히 근대의 유물이라고 보기 불가능한
석기들이 발견됩니다. 주류 학계의 반응은 이러한 도구들이 자연적으로 생성되었다고
반박하거나 아니면 그저 예외적 발견의 하나로 치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무시하면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라는 식의 대처도 오래가지 못하였습니다. 버클랜드(William Buckland)
목사가 그의 신앙과 관찰 결과를 조화시키려 했던 시도는 당시 기독교 과학자들이 처했던
상황을 잘 대변해 줍니다. 그는 웨일즈 지방에서 발견된 맘모스와 인간의 뼈가 뒤섞인 선사시대
‘주거지’를 조사한 후 정의상 근대에 출현한 인간이 고대의 생물인 맘모스와 함께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유적은 당시 인간들이 맘모스를 숭배하는 미신을 섬기고 있어 죽은 자를 맘모스
뼈가 있는 곳에 매장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신학적으로나 과학적 견지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고대와 근대를 구별짓는 사건으로서의
‘노아의 홍수’ 문제였습니다. 유럽의 다양한 지역에서 선사시대 유물이 발견되고 더 이상 대홍수
이후 근대에 출연한 인간이란 개념이 유지될 수 없게되자, 버클랜드를 포함한 많은 학자들이
노아의 홍수를 계산에서 제외시키기 시작합니다. 지구가 수천 년 밖에 되지 않았다는 설이
폐기되고 마침내 인류의 역사도 수천 년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지질학의 대전환이 이루어지는 분기점을 1859년으로 보는데 이 해는 우연하게도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판된 때이기도 합니다.
격변설에 대한 첫번째 도전은 화성론을 주창한 허튼으로부터 제기됩니다. 그의 화성론에서
보듯이 지구는 상상을 초월하는 역사를 가졌으며 그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산을 쌓고 또 깍아
나갔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과거를 보는 열쇠다”라는 모토아래 모인 동일과정설
주창자들은 격변설을 믿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지극히 싫어하였습니다. 이들에게 지구상에서
동물들이 멸종되고 새로운 종들이 다시 창조된다는 주장은 알 수 없는 것을 설명하는 편리한
방법일 뿐이며 비겁한 행위로까지 비추어졌습니다. 동일과정설의 실질적 대부였으며 지질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라이엘(Charles Lyell)은 “그런 주장보다 더 무지를 조장하고, 호기심을 무디게
만드는 것은 없다”며 격변설을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라이엘도 중요한 사실을 애써 무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현재 보이는 산맥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고, 특히 빙하가 지형 변화의 큰 원인이라는 아가시
(Louis Agassiz)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 오류를 범하였습니다. 1840년 아가시는 ‘빙하 연구’
라는 책을 출판하여 오늘날 우리가 흔하게 듣는 ‘빙하 시대’라는 단어를 탄생시켰습니다.
유럽대륙이 한 때 거의 빙하로 덮여 있었고 빙하의 확장과 축소가 반복적으로 나타났다는 빙하
이론은 문자 그대로 ‘격변’이 있었음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격변은 아주 천천히 장기간에
걸쳐 일어나는 격변입니다. 따라서 빙하기의 존재와 역할은 동일과정설을 지지하면서
지형변화를 가능케하는 또 하나의 힘을 제공한 것입니다.
서로 물고 물리면서 좀처럼 승부를 내기 힘들것 같았던 격변설과 동일과정설의 경쟁은 몇 번의
반전이 있은 후 대륙이동설의 정립으로 동일과정설에 유리한 방향으로 흐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지구과학자들은 격변설과 동일과정설이 모두 옳다고 생각합니다. 현대
지질학자인 브라이언 존(Brian John)은 “물론 산의 모양이 만들어지는데 장기간의 침식과정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동일과정설이 옳다는거죠. 그런데 지진이나 산사태 한 번이면 산의
모습이 순식간에 뒤바뀝니다. 지진, 산사태는 물과 바람 빙산에 의한 침식이 수천 수만 년에
걸쳐 하는 일을 불과 5분이면 해내는거죠. 지진과 산사태는 격변 아니겠습니까?” 라며 간단히
상황을 정리합니다.
여느 사회집단처럼 과학계도 만일 극단적으로 양립하는 두 가지 의견이 충돌하면 합리적
타협이라는 게 힘든 것 같습니다. 격변설과 동일과정설의 경우, 라이엘이 가진 지질학계에서의
영향력과 격변설에 대한 그의 증오에 가까운 감정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논쟁의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1875년에 사망한 라이엘의 영향력은 정말 대단해서, 1980년대 지질학자들이
운석의 충격 (일종의 격변) 에 의해 공룡의 멸종이 일어났다는 새로운 주장을 받아들일 때에도
엄청난 부담을 감수해야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2008.04.20 18:33:55
언젠가 극단적으로 다른 두 그룹이 그랜드 캐년 탐사하는 기사가 난 적이 있지요.
늙은 지구와 젊은 지구..
우리 집 게으름뱅이 튤립들은--주인을 닮았는지--
아직 입을 열지 않았는데 테네시는 어때요?
아름다운 봄날. 많이많이 즐기십시요.
긴 글 쓰시느라 너무 애쓰시지 마시고..
글이 좀 길면 오자가 더 많던 가요? ㅎㅎ
anyway.. thanks..
늙은 지구와 젊은 지구..
우리 집 게으름뱅이 튤립들은--주인을 닮았는지--
아직 입을 열지 않았는데 테네시는 어때요?
아름다운 봄날. 많이많이 즐기십시요.
긴 글 쓰시느라 너무 애쓰시지 마시고..
글이 좀 길면 오자가 더 많던 가요? ㅎㅎ
anyway.. thanks..
















이런 저런 가설들이 반전되고 대립하면서 지구과학 이론을 발전시켜왔군요.
글을 읽다가 엉뚱한 생각을 해 봤습니다.
동일과정설이 인간이 만들어가는 역사라면,
격변설처럼 그것을 한 방에 뒤엎을 수 있는 하느님의 개입이 지구이론뿐만이 아니라
인간역사에도 일어났음 좋겠다는....^^
그나저나 이 분야에 쌩 문외한이 제가 브리즈님 덕에 상식이 늘어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