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로마서 1:26-27)

동성애자들의 비윤리성과 관계되어 교회 안밖에서 자주 논쟁의 근거가 되는 구절이다. 동성애는 죄악이므로 정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로마서의 저 본문은 과거에도 그랬듯이 오늘날에도 재고의 여지가 없는 불변의 진리로 간주된다. 물론 다른 관점에서 바울의 편지를 읽고자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브리즈 역시 다른 관점에서 이 본문을 읽고자 한다. , 바울은 저 구절을 남겼는가? 저 두 구절은 1:18-32절의 본문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나아가 로마서 1장에서 3장에 이르는 바울의 신학적 주장 안에서 위의 두 구절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 막상 질문은 던졌지만 사실 브리즈가 가진 능력의 범주를 벗어나는 것들이다. 그렇다고 꼭 해야 할 질문을 잊어버려선 안 되겠다.

다른 서신서를 읽을 때도 마찬가지겠지만, 로마서의 주제를 인식하는게 중요하다. 편지라는 특성상 거의 예외없이 주제가 도입부에 나온다. 브리즈는 1 16절을 로마서의 키워드로 이해한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모든 믿는 자”, 새삼스럽지만 여전히 감동적이다. 바울의 주장이 군더더기 없이 표현된 이 한 구절을 곱씹으면서 로마서 읽기를 끝내더라도 브리즈같은 초신자 수준에선 성공적이라 할 수 있겠다. 사실 나머지 부분은 세상 모든 사람 [유대인+이방인(헬라인)]에게 예외없이 예수가 필요한 이유를 변증하는 것이다. 특히 (수 천년 동안 하나님의 선택받은 민족으로 살아왔던) 유대인들이 왜 예외가 될 수 없는지를 설득하는 과정이 주된 내용을 이룬다 (2-3).

먼저 1 18절에서 32절까지를 읽으면서 다음 두 가지 질문에 대해 답을 해보고자 한다: (1) 본문에서 누가 책망 또는 비난 받고 있는가? (2) 무엇때문에 책망을 받고 있는가?

첫번째 질문의 답은 쉽다. 여기서(1:18-32)  책망/비난 받고 있는 자들은 누구인가? 바로 이방인들이다.

그렇다면 무엇때문에 이토록 강하게 비난 받고 있는가?

바로 진리를 가로막고(18), 하나님을 인정하기를 싫어하며(28),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지 못하고 감사를 드리지 못했기(21) 때문이다. 바울을 포함한 유대인들에게 있어 이방인들의 이와 같은 삶은 우상숭배에 다름아닌 것이다.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23)”

로마서 1 18절부터 32절을 읽으면서 브리즈가 던졌던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정리하자. 누가 책망받는 죄인들이며, 그들의 죄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진노를 야기한 죄인들은 바로 이방인들이며 그들은 지금 우상숭배라는 가장 근본적인 죄로 인해 비난받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미 보여 주어서(19-20) 하나님을 알 수 있었음에도 그 진리를 억압하고서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을 섬기는(23) 죄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26절과 27절에서 응징받고 있는 동성애 행위와 29절과31절에 나열되어 있는 악한 행위들의 리스트는 도대체 무엇에 관한 것인가? 동성애를 포함하여 거기에 지적된 불의한 행위들 하나 하나가 하나님의 진노”(18)를 일으키는 죄목들인가? 결코 아니다! (본문을 문자적으로 읽든, 역사 비평적으로 읽든, 현대의 사회, 문화를 고려해서 읽든 답은 똑같다).

26절부터 31절까지 나열된 행위들은 순전히 이방인들이 진리를 거짓으로 바꾼(25)” 죄의 결과이며, 이는 하나님이 이방인들을 내어 버려 둬서(24, 26, 28)” 그들의 삶에서 보여지는 행동들인 것이다. 26절에서 바울이 말한 문제의 부끄러운 욕심 (, 동성애)”이 하나님으로부터 (죄가 아니라 죄로 인해) 받은 벌이라는 점은 “--- 우상으로 바꾸었노라(23), 그러므로 ---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두사(24)---, 이는 저희가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25),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26)”의 문맥에서 더욱 명확해진다. 게다가 27절의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라는 구절에서 다시 한 번 동성애는 우상숭배에 따른 하나님의 벌이라는 것이 확인된다. 동성애(-그릇됨) 때문에 동성애(부끄러운 일)를 벌로 받았다고 읽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릇됨-우상숭배)의 댓가에 상당하는 벌(부끄러운 일 동성애)을 받은 것이다.

29절에서 31절 사이에 나열되는 합당치 못한 일들역시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28)”라는 구절에서 그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고 있다. 그 합당치 못한 일들은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나는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1:29-31 ) 여기서 빠져 나갈 수 있는 사람을 브리즈는 아직까지 단 한 사람도 만나 본 적도 없을 뿐더러 앞으로 만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지도 않는다. 다시말해 26-31절에 나타난 모든 비윤리적 행위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결과이지 진노의 원인이 아닌 것이다. 진노의 원인은 이방인들의 우상숭배인 것이다.

따라서 바울이 18절부터 31절을 통해 주장하는 바를 요약하면: 1. 하나님께서 만물을 통해 당신을 보였음에도 이방인들은 그 진리를 아는데 실패하였으므로 핑계대지 못한다. 2. 그리하여 그들은 우상을 숭배하고 있다. 3. 그로인해 이방인들에게서 나타나는 모든 비윤리적 행위라는 벌을 받게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유대인에게 있어서 바울의 이와 같은 주장은 전혀 낯설지 않을뿐더러 천여년간 그들이 줄기차게 주장하거나 들어왔던 이야기라는 것이다. 이는 구약 성서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 중 하나로서 유대인들에게 보다 중요한 것은 이방인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내용 다음에 뒤따르는 자신들을 향한 선택과 약속 그리고 희망에 관한 선언이었다. 하나님은 이방인의 우상숭배를 격렬히 비난하면서 때론 닮아 가()는 유대인을 책망하기도 하였으나 그 끝은 항상 유대인에 대한 선별성과 희망의 약속이었던 것이다. 이방인 정죄(우상숭배) – 유대인의 선별성(언약)이라는 대조의 틀이 성립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일반 유대인들이라면 지금쯤 유대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을 확인하는 내용을 자연스럽게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1 16절의 키워드에서 이미 밝혔듯이 바울은 유대인들의 구원에도 예수에 대한 믿음이 필요함을 예시하였다. 이방인의 죄인됨은 쉽게 밝혔으나 우상을 섬기지 않는 유대인들의 죄인됨을 밝히는 것은 바울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바울은 1:32절에서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면서도 비윤리적인 일들을 행하고 또한 장려하는 이들을 비난하고 있다. 바울은 이방인의 악한 행위를 행하고 인정하는 자들을 비난한 후(1:32), 이제 눈길을 이방인의 악한 행위를 인정하지 않는 자들 (당연히 의롭고 선하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자들) 에게 돌린다. 그런데 문제는 (유대인에겐 당혹스럽게도), 바울이 이방인의 행위를 인정하지 않는 자들 역시 함께 비난한다는 점이다! “남을 판단한다는 이유에서다 (2:1). 오랫동안 유대인들이 들어왔던 말씀의 형식(이방인에 대한 비난 유대인에 대한 약속)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앞서 이방인들의 우상숭배를 비난할 때 사용하였던 핑계치 못할(1:20)” 일이라는 똑같은 단어를 사용하면서 말이다 (2:1). 이때쯤 편지를 읽는 유대인(기독교신자)들의 마음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다가오기 시작하지 않았을까?

바울이 남을 판단한다고 비난하는 대상은 자기도 비난받을 일을 하면서도 같은 일을 하는 남을 비난하는 자들에게 시작되어 2장의 이어지는 본문과 3장 전체를 통하여 이방인들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도 예외없이 하나님 아래서는 똑같은 죄인이라는 사실로 이어진다. , 3 20절에 이르기까지 바울의 요점은 죄에 관한 한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방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3:9). 2 1절부터 3:20절까지는 율법(의 준수 여부)으로 남을 정죄하는 유대인의 죄에 관한 내용이다. 1:18-1:32는 이 유대인의 죄인됨을 끌어내기위한 도입부로서 사용된다.

사실 로마서 1:18에서 3:20까지는1:18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를 설명하는 내용이라 할 수 있겠다. 바울은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이유가 이방인들의 우상숭배(1:18-32)와 유대인들의 율법으로 사람을 정죄하는 행위(2;1-3;20)에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이방인(죄인) – 유대인 (구원)]의 틀이 깨어지고 죄인의 부류에 유대인까지 포함시키면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죄인됨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다시말해 바울은 모든 인간이 철저하게 비참한 현실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당연히 이방인 뿐만 아니라 유대인도 예외가 없다. 그런데 이러한 비참한 현실을 찬란히 비추는 광명이 있으니 바로 3 11절부터 마지막까지 이어지는 하나님의 의로움을 알리는 기쁜 소식이 바로 그것이다. 이 소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하여 인간(죄인)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로움 아래 거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로써 [세상 모든 사람(유대인+이방인)이 죄인 믿음 (구원)]의 새로운 대조의 틀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상의 어설픈 성경 읽기로 동성애와 그에 관련된 구절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브리즈의 개인적 견해가 충분히 드러났길 바란다 (글의 목적이 나의 견해를 밝히는 것이지 남을 설득하는게 아니므로).  로마서 1:26-27은 나를 포함한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너무도 명백한 사실때문에 나에겐 그 어떤 특별함도 주지 못하는 부분이다. 여전히 브리즈는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지 못하고 감사를 드리지 못하고있으니 이는 곧 우상숭배와 다를 바 없을진데, 다행스럽게도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3:23-24) 라는 복음 때문에 살아 남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희망의 소식은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8:38-39)”는 구절에서 정점을 이룬다.

바울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 “세상 그 어떤 것도 우리(죄인들)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바울의 이러한 확신은 복음서의 누구든지로 시작되는 예수님의 말씀과 공명되어 메아리친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마태 10:32)”,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마가 9:37)”,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가 12:8)”,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요한 7:37)”,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요한 10:9)”

세상 그 어떤 것도그리고 누구든지에 그 어떤 예외나 조건을 끼워 넣을 여지가 있다고 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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