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생명의 터전인 지구라는 행성을 우리는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요? 지구에 관해 여러분이 알고 있는 게 무엇이든 그와 정반대의 의견이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아주 기본적이고 단순한 문제에서부터 여러분을 당황케 할 것입니다. 하나만 예를 들어볼까요? 그리 오래되지도 않은 1947년 독일의 한 아마츄어 천문학자(Valentine Herz)는 지구가 서에서 동으로 자전하는게 아니고 그 반대 방향으로 회전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학자들과 어리석은 대중들이 해가 동쪽에서 뜨는 사실에만 너무 집착하여 잘못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죠. 어이없다고 웃을 일만은 아닙니다. 당사자는 아주 진지하였고 오늘날에도 이에 못지 않은 주장과 가설이 결코 사라지지 않는 추종자들을 끌어 모으고 있으니까요.

오늘의 주제인 지구 나이의 문제로 돌아가보죠. 윌리엄 헤일스란 사람은 1812년 “새로운 연대기”란 책에서 그때까지 2-300 여년 동안 성경연구를 통해 얻어진 120여 차례의 지구나이에 대한 결과를 종합 분석하여 지구의 나이가 기원 전 6984년에서 기원 전 3616년 사이라고 창조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세대의 수 (세대당 평균 130년)를 계산하여 얻은 결과인데 지구 자체는 인간보다 불과 몇 일전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인간이 창조된 시간만 알아내면 지구의 나이는 바로 계산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성경의 모든 기록이 틀림없는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인간을 창조의 최종 목적으로 보는 ‘인간 중심 사상’도 큰 역할을 합니다. 일부 신학자들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기까지 무려 6일의 준비기간이 있었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당황스러워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모든게 한 순간이면 충분할텐데 말입니다)

이러한 젊은 지구라는 관점은 고대로부터 내려져 온 관점과는 정반대의 주장이었습니다. 많은 고대 철학자들은 지구는 항상 존재해 왔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학자들은 지구에 관해서만큼은 중세시대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지구둘레의 길이만 하더라도 아리스토텔레스는 75,200 km로, 기원 전 3세기경의 에라토스테네스는 실험을 통해 46,500 km를, 기원 전 1세기의 포세이도니우스는 44,000 km를 주장했습니다 (실제 지구둘레 길이는 약 40,000 km). 이들의 계산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어이없어 할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이 고대의 사람들이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고 그 둘레의 길이까지 실제와 가깝게 측정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1500여년 후 중세 서구인들이 지구가 편평하다고 믿었던 것과 큰 대조를 이룹니다.

지구 나이에 관한 많은 주장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도 아일랜드의 어셔(James Ussher) 주교(1581-1656)의 계산이 아닐까 합니다. 그의 계산 결과는 지금도 일부 성경의 주석에 지구의 공식 나이로 실려있을 정도입니다. 지구가 기원 전 4004년 10월 23일 정오에 창조되었다는 그의 주장은 너무도 명쾌하여 당시 역사학자들, 성직자들, 저술가들은 감탄을 금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의 주장은 창조된 세상에 대한 비관적 인식과 함께 17세기를 풍미합니다. 세상은 완벽하게 창조 되었으나 점차 타락과 멸망의 길을 걷게 되었으며 이러한 쇠퇴는 재림이 있기까지 계속 악화될 것이라는 관점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17세기가 지구과학이라는 학문이 태동하던 때라는 점입니다. 당시엔 지구와 세상에 대한 기존의 성서신학-죄책감이라는 사고와 새로운 불가지론-긍정의 사고가 서로의 존재를 명확히 인식하지 못한 체 그런대로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지질학의 태동으로 지구의 나이가 생각했던 것 보다 오래되었을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제기되자, 많은 이들이 지구의 나이를 측정하는데 달려 들었습니다. 비록 과학적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최초의 그럴듯한 측정은 프랑스의 뷔퐁이라는 학자에 의해 1770년대에 이루어졌습니다. 그는 지구가 상당한 열을 방출한다는 사실을 이용, 지구의 나이가 7만 5천 년에서 16만 8천 년 사이가 될 것이라고 추정했습니다. 물론 그것은 실제에 엄청나게 작은 수치였지만, 당시로는 획기적인 결과였습니다. 뷔퐁은 그런 주장 때문에 교회로부터 파문의 위기에 처하자 곧바로 자신의 ‘이교적’ 주장에 대해서 사과를 함으로써 대학에서 쫒겨나는 것으로 사태를 마무리 합니다. 그러나 그 후에 쓴 그의 연구노트를 보면 “지구는 최소한 3백만년 전에 만들어졌다” 라는 기록이 있는데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은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만 합니다.

19세기에 이르면 지질학의 발전으로 많은 학자들이 창세기 시간의 척도를 믿지 않게 됩니다. 어쩌면 수천만 년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길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죠. 당시 가장 독실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던 버클랜드(Buckland) 목사마저도 성서는 하늘과 땅이 첫날에 만들어졌다고 주장하지는 않고 단순히 ‘태초에’ 만들어졌다고 했을 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그 태초가 “100만 년의 100만 배 동안” 계속되었을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1859년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영국 남부지방의 지질학적 변화가 무려 3억 년에 걸쳐서 완성되었을 거라는 견해를 밝힙니다. 다윈은 그의 주장이 극심한 논란의 대상이 되자, 3판에서는 그런 주장을 빼기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지구가 기존의 생각보다 오래되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남은 문제는 대체 얼마나 오래되었으며 또 어떻게 그 사실을 밝혀낼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리학에 그 족적을 영원히 남길 위대한 과학자 켈빈 경(윌리엄 톰슨)이 그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다윈에게는 물론이고 과학의 발전에도 불행한 일이었다고 하겠습니다. 자연과학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명성을 날렸던 그도 지구의 나이에 관해서는 실패를 하고 만 것입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지구의 나이를 최대 4억 년 정도로 추정하던 켈빈은 점점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밝히기 시작합니다. 안타깝게도 그는 자신의 추정치를 끊임없이 줄여나갔습니다. 최대 4억 년이 1억 년으로 줄었고, 다시 5,000만 년이었다가 말년엔 2,400만 년을 제시하였습니다. 당시 물리학으로는 태양과 같은 별이 연료가 바닥나지 않은 상태로 끊임없이 타오르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던게 가장 큰 원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켈빈은 어쩔 수 없이 태양과 지구를 포함한 행성들의 역사가 비교적 짧을 것이라고 믿게 된 것입니다.

켈빈을 비롯 지구 나이 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과학자들의 결론은 불확실성을 더욱 심화시켰을 뿐이었습니다. 존경받던 지질학자 새뮤얼 호턴이 23억 년을 제시하여 다른 이들의 추정치를 훨씬 뛰어넘었던 것을 필두로 학자마다 각자의 지구 나이를 갖고 있는게 아닌가 할 정도의 혼란이었습니다. 1900년대에 이르러서야 새로운 접근법을 이용한 아주 특별한 수치가 등장합니다. 러더퍼드라는 물리학자가 지구의 나이가 적어도 수억 년은 될 것이고,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오래 되었을 것이라는 확실한 증거를 제시했던 것입니다. 놀랍게도 그 근거는 원소가 붕괴되면서 다른 종류의 원소로 변할 수 있다는 일종의 연금술에 있었습니다. 바로 방사성 동위원소(핵물질)의 특성을 이용한 것입니다. 초기 핵 물리학자들이 핵물질의 위험성을 모른 채 연구에 몰두한 덕분에 20세기 초에 이르러 지구가 유서 깊은 행성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오래되었는가에 대해서 확실하게 알게 되기까지는 그로부터 반 세기를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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