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대학생이 촛불집회를 반대하는 1인 시위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수의 의견과 다른 소수의견의 표현은 보장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촛불집회를 반대하는 그 학생의 1인 시위에 대한 안전과 표현의 자유 또한 마땅히 보장되어야 하며 당연한 권리행사로 인정해 주어야 한다.

그런데 한 가지 걱정스러운 부분이 있다. 이 학생이 자신의 권리에 따르는 책임의식에 대해서 얼마나 심각하게 고려했는가 하는 것이다. 그 어떤 권리행사에도 책임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우리 사회에 크게 부족한 게 있다면 표현의 자유와 권리행사에 따르는 책임의식을 묻지 않는다는 점이다.

재협상을 주장하며 기존의 협정을 반대하는 시민들의 권리행사에도 당연히 책임이 뒤따른다. 예를 들어 재협상에 따르는 경제적 손해를 예상해 볼 수 있겠다. 한 계산에 의하면 매 년 약 400억이 넘는 경제적 손해를 감수해야 할 것 같다고 한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경제적 손실은 어떻게든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 1인당 1년에 900원 정도의 손실이니 말이다. 네명의 식구를 가진 내 가족의 경우 1년에 4,500원 정도를 더 지출하는 것이지만 치명적인 광우병의 위험성을 고려했을 때 이 액수는 거의 공짜에 가깝다. 이외에도 재협상에 따를 지 모르는 다양한 손실을 예상해 볼 수 있지만, 내가 죽지 않고 살아 있는 한, 감당 못할 일들이 아니란 것이다. 30개월 이상된 미국산 쇠고기를 먹지 못했다고 해서 죽는 사람은 없을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촛불집회를 반대하는 1인 시위자에게는 어떤 책임이 뒤따를 것인가? 바로 인간 목숨에 대한 책임이다. 아무리 확률이 낮더라도 현재의 협정문대로 미 쇠고기가 수입된다면 광우병에 의한 생명의 손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자, 5년 혹은10년 후 한 사람이 광우병에 걸려 죽었다고 치자. 그 학생은 광우병으로 죽은 자에게 어떤 식으로 책임을 지겠단 말인가?

물론 자신 만이 소고기 수입에 찬성한 것이 아니라고 변명할 수도 있겠다. 대통령부터 시작하여 많은 정치인, 관료, 단체들이 같은 주장을 했다고 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X같은 것은 힘이 있거나 돈이 많거나 머릿수 제법되고 목소리 큰 단체에 속하게 되면 그 어떤 책임으로부터도 자유스러워지는 전통을 같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꼬리는 잔인하게 책임을 떠 맡아야 한다.

다시말해 정말 광우병으로 인해 한 사람이라도 생명을 잃는 순간이 다가오면 저들 모두에게 온갖 비난이 쏟아지게 되겠지만 홀로 시위를 펼쳤던 그 학생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디지털 시대에 그가 시위하고 있는 모습은 이미 인터넷, 신문, 방송등을 통해서 촛불시위 반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찬성의 아이콘이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80년의 괴물이 지금 그러하고 있듯이 오늘의 괴물들도 10년 후 “어쩔 수 없었다”라는 변명으로 책임지기를 거부하며 꼬리 자르기에 여념이 없을 것이다. 홀로 피켓을 들고 눈물을 흘리는 이 대학생은 10년 후 무슨 수를 써서라도 괴물들의 보호막 안에 있어야 한다. 그도 나름 노력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렇게 우리 사회는 또 하나의 작은 괴물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사족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학생이 혹시라도 이 글을 읽을 기회가 온다면, 개인의 생각을 공적으로 표현하는데 따르는 책임감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심사숙고하길 부탁한다. 그러고도 시위에 나서겠다면 제발 자신이 책임 질 수 있는 한도 내에서 표현하길 바라면서, 내 보기에 지금 그 학생이 책임 질 수 있는 적당한 의사표현이 뭘까를 생각해 보았다.

이 정도면 어떨까?

<난 1000원의 추가 부담금을 지불할 능력이 없다 (또는 지불하기 싫다).
촛불시위하는 너희들이 책임져라>

조금 궁색해 보이는가? 그렇다면 좀 더 강력하게 아래와 같은 표현은 어떨까?

<"나에게" 30개월 이상 된 미국산 쇠고기를 달라!>
만약의 결과에 대한 책임 소재가 분명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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