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미국 북서부 와이오밍 주의 고산지대에 서식하던  295마리의 큰사슴(Elk)들이 갑자기 죽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이 큰사슴들은 겉보기엔 정상이었으나 걷지 못하고 서 있다가 결국 지쳐 쓰러진 후 굶주림 속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수의학자들의 부검 결과 사인은 독성식물에 중독된 것으로 밝혀집니다. 그 뒤 연구원들은 그 독성물질이 지의류(地衣類, Lichens)로부터 나온 것임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건조한 이 지역에서 오래 전부터 서식해왔던 지의류가 왜 올 봄에 이르러 갑자기 독성물질을 함유하게 되었지는 여전히 수수께기로 남아 있습니다.

 

오랜 된 무덤의 석물이나 돌계단, 그리고 커다란 바위 등을 자세히 보면 빛바랜 청자색을 띤 뭔가가 보입니다. 이끼로 오인되기도 하고 곰팡이나 버섯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자라는 장소에 따라 색깔과 모양도 다양하여 마치 여러가지 색상의 그림물감을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풀어놓은 것 같기도하며, 넝쿨처럼 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순우리말로 돌꽃이라고 불리는 지의류입니다.

지의류는 땅() ()이라는 뜻이지만 어찌 보면 돌() ()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지의류가 돌에만 피는 것은 아닙니다. 햇볕이 잘 드는 교회 마당에서도 자라지만, 다른 생물들은 살고 싶어하지 않는 바람이 거센 산꼭대기나, 북극의 불모지처럼 바위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고 너무 추워서 아무 경쟁 상대가 없는 곳에서는 더욱 잘 번성합니다. 거의 아무것도 살지 않는 남극 대륙에서도 바람이 거센 바위라면 어느 곳이나 단단하게 달라붙어 살고 있는 400여 종의 지의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나무나 풀 사이에서도 자라며 심지어 유리 위에서도 잘 자랍니다. 아름답게 채색된 성당의 유리가 변색되기 시작했다면 십중팔구 지의류가 그 원인일 겁니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지의류가 어떻게 사는지 이해할 수 가 없었습니다. 지의류는 아무런 영양분도 없는 바위에 붙어 살고, 씨앗도 만들지 않기 때문에 상당한 학식이 있는 사람들조차도 돌들이 식물로 변화하고 있는 과정이라 믿을 정도였으니까요. 지의류의 정체성은 오랫동안 수수께끼였다가 아주 최근에 와서야 그 신비가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지의류는 아주 흥미로운 생물입니다. 지의류는 사실 진균류(곰팡이)와 조류(藻類: 물속에 사는 미생물 크기의 식물)의 연합체입니다. 진균류는 산을 분비해서 암석을 녹이고, 조류는 그때 녹아나온 미네랄을 필수영양소로 사용합니다. 또한 진균류는 균사라고 하는 실같은 접착물질을 분비하여 조류를 한 곳에 고정시켜줍니다. 대신 조류는 광합성이 가능하여 그로부터 나온 영양분을 곰팡이와 나누어 가집니다. 그다지 멋진 상황은 아니지만 성공적인 협동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리하여 세상에는 2만 종이 넘는 지의류가 번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의 연구결과는 이러한 결합이 결코 단순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많은 지의류를 분리 실험해보면 의외로 조류는 곰팡이의 도움이 없어도 스스로 살아갈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의류 속의 곰팡이는 단독으로는 삶을 이어가질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직 명쾌한 해답이 나오진 않았으나, 어쨌든 진균류쪽이 주동이 되어 조류를 볼모로 삼아 이 결합을 진행하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진균류와 조류의 결합이라는 신비함 못지않게 지의류가 만들어내는 물질들도 신비하기만 합니다. 현재 약 300 여 종류가 넘는 화학물질을 분비하는 걸로 알려져 있으나 그 기능과 구조등에 관한 연구는 지극히 초보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나마 잘 알려진 물질이 항생기능이 있는 우스산(usnic acid)인데, 미국 큰사슴의 갑작스런 죽음을 유발시켰던 원인이기도 합니다. 물론 특정시기에 지의류가 우스산을 그것도 초식동물들에게 치명적일 정도로 대량 생산하게된 경위에 대해선 알려진게 없지요.

거친 환경에서 사는 모든 생물들이 그렇듯이 지의류도 아주 느리게 성장합니다. 지의류가 단추 크기 정도로 자라려면 반 세기 이상이 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큰 접시 크기의 지의류는 수백 년 어쩌면 수천 년 동안 자란 것일 수도 있습니다. 푸른색을 띠는 지의류는 공해에 아주 민감하여 지역 환경 지표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근래 대도시에서 푸른 지의류가 사라지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지의류보다 더 힘들게 사는 생물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지의류는 가장 단순한 수준의 생명이라고 하더라도 그저 자신만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감동적인 사실을 보여주는 예라고 하겠습니다.

 

때론 생명이라는 것이 그저 존재한다는 사실을 간과하기 쉽습니다. 인간으로서 우리는 생명에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경향을 다른 모든 생명체에게도 강제하고 싶어합니다. 인간은 미래에 대한 계획과 소망과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부여된 존재라는 스스로의 믿음을 끊임없이 이용하고 싶어합니다. 그렇지만 지의류에게 생명이란 무엇일까요? 지의류가 존재하고 싶어하는 충동은 우리만큼 강하거나 어쩌면 더 강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인간이 숲속의 바위에 붙어서 수십 년을 지내야만 한다면 절망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지의류는 그렇지 않습니다. 거의 모든 생물들과 마찬가지로 지의류는 그저 자신의 존재를 이어가기 위해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고, 어떤 모욕도 참아냅니다. 생명은 그저 존재하고 싶어할 뿐입니다.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삶의 의미는 이미 충분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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