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로운 사람(눅 6:36)

조회 수 7742 추천 수 204 2005.10.04 13:21:58
자비로운 사람
(눅 6:36)

누가복음 6장36절은 다음과 같다. “그러니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자비롭다는 말은 주로 불교에서 사용하는 것이라는 걸 보면 종교의 근본은 서로 통하는 데가 많다고 보아야 한다. 기독교의 중심 가르침인 사랑이나 불교의 중심 가르침인 자비는 서로 소통하는 개념인데, 이것은 일단 다른 사람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의 품성, 또는 삶의 태도를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자비롭다는 게 구체적으로 무슨 뜻일까? 누가복음 6장36절을 중심으로 한 문맥 전체를(눅 6:27-38) 보면 이 자비라는 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대번에 발견할 수 있다. 예컨대 예수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잘 들어라. 나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잘해 주고, 너희를 저주하는 사람들을 축복해 주어라.” 이어서 예수는 오른뺨을 치는 사람에게 왼뺨도 대주고,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대해주라고 가르친다. 뒷부분에는 남을 비판하지 말고 용서하라는 말씀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자비는 결국 자기에게 잘못을 행한 이웃을 그대로 용납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런 예수의 가르침 앞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무력감에 빠지고 말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이 가르침이 우리의 현실에서 여전히 유효한지를 질문할 수밖에 없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하무라비 법전과 유대의 율법에 따라서 작동되는 오늘의 이 현실에서 예수의 자비는 공허한 가르침이 아닐까 하는 질문이다. 세속 사회까지 나갈 필요도 없다. 교회 안에서도 역시 자비는 이미 무용지물이 된 상태이다. 같은 교회에 속해 있으면서도 서로 입장을 달리 하는 사람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을 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약점을 찾아내고 심지어는 일부러 흠집을 내는 일들이 허다하다. 물론 여기에는 기독교 신앙에 대한 바른 이해가 부족하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것보다 먼저 인간 자체가 자비롭게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근본적으로 없다는 사실이 더 핵심적인 이유가 아닐까 모르겠다. 뼈를 깎는 듯한 자기 성찰을 통해서 겨우 도달할까 말까한 그런 영적인 상태를 평범한 사람들에게 요구한다는 것은 아무리 옳은 가르침이라고 하더라도 현실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예수는 왜 이렇게 현실적이지 않은 가르침을, 흡사 몽상가의 입에서 나올만한 이런 가르침을 주신 것일까? 더구나 예수 자신도 성전에서 폭력을 사용하면서 싸우셨고, 바리새인들과 정면으로 신학논쟁에 나섰다는 걸 보면 자비, 용서라는 그의 가르침이 모든 경우에 해당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이런 주제는 성서신학과 조직신학 및 윤리학의 관점에서 상당한 논의가 필요하다. 최소한 신학석사 논문의 주제는 될 것 같으니까 여기서는 그저 한두 가지 관점만 짚어보는 것으로 끝내도록 하자.
우선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한 전체적인 문맥의 특징은 ‘너희’라는 단어에 있다. 그러니까 자기가 당한 일에서는 자비를 베풀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이 당한 억울한 일에 대해서까지 자비를 베풀라는 의미는 아니다. 또한 이 자비는 바로 하나님의 속성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우리가 자비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은 우리 내부에 있는 잠재력을 개발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과의 일치에 있다는 뜻이다. 이런 일치의 길이 곧 기독교 영성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런 점에서 기독교인의 삶은 신을 닮아가는 과정인 셈이다.

[레벨:6]유희탁

2005.10.04 17:52:13

신을 닮아가는 과정...
매일의 삶에서 필요하겠죠...
우리의 삶이 끝나는 날까지 계속 되어져야 할 과제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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