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6:19-21, 하늘에 쌓는 보물

조회 수 7074 추천 수 34 2008.08.18 20:47:02
1995.2.26.
하늘에 쌓는 보물
마6:19-21

오늘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많은 비인간적인 행위 내지 부도덕성들이 대개는 재물과 관계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며칠 전에 있었던 인천지법의 집달관 횡령 사건만 해도 그렇습니다. 그와 유사한 일들이 어디 이번 뿐이겠습니까만 터질 때 마다 수십억 원, 수백억 원이라는 천문학적 액수에 우리 같은 소시민들은 그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뿐입니다. 이런 사건들이 터지는 이유는 이에 해당한 한 두 사람의 개인적인 인격이나 도덕성의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 전반에 걸쳐 있는 가치관의 문제입니다.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것을 아주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이런 시대정신 가운데서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재물관을 갖고 살아야 할까요? 이 문제는 어쩌다 한번 쯤 생각해야 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인 삶 가운데서, 그리고 죽을 때 까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결단해야 할 문제입니다. 신앙이란 건 그저 예수만 믿으면 천당을 간다는 생각만 하고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안 쓰는 게 아니라, 모든 사건 앞에서 책임적인 결단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돈을 어떻게 벌고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 우리의 신앙이 판단된다는 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어느 정도의 재물을 갖고 사는 게 바람직한가 하는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게 답변이 주어질 수는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 하더라도 가능한대로 많은 재물을 갖고 사는 게 좋다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많은 기독교 사업가들이 자기들의 재물을 통해 하나님의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일이 대단히 많습니다. 예컨대 서울신학 대학교 기숙사를 헌납한 미국의 스텐리 탬 장로 만 하더라도 그 좋은 본보기입니다. 그는 그의 사업을 통해 벌어들이는 이득 중에 십분의 오를 떼어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 쓰다가 나중에는 십분의 구를 그렇게 썼다고 합니다. 현재 서울 신학대학교 발전 기금 모금 추진위원장으로 수고하는 분은, “주일은 휴무입니다”는 광고문안으로 작년에 방송광고심의 위원회로 부터 방송불가 판정을 받았다가 불복하여 재심 중에 있는 신원그룹 회장 박성철 장로(신길성결교회)입니다. 신원그룹은 에벤에셀, 베스띠 벨리, 씨, 모두스비 벤디, 세스티 등 여러 브랜드를 비롯하여 신원건설에 이르기 까지 비약적인 발전을 계속하고 있는 회사입니다. 그가 그만한 재산을 모았기 때문에 목회자들 양성하는 신학대학교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 거금을 희사하고 그 일의 추진을 책임질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일들의 예를 든다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만 결국 현실적으로 볼 때 하나님의 일도 재물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점에서 그리스도인가 많은 재산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필요하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그리스도인들이 너무 많은 재물을 갖고 있으면 곤란하지 않는가 하는 주장도 가능합니다. 재물이란 게 신자들의 신앙을 돈독히 한다기보다는 오히려 허물어뜨릴 위험성이 많기 때문에, 또한 예수님도 그저 일용할 양식만 구하라고 했지 많은 재물을 구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점, 또한 초대 교회의 신자들이 철저하게 청빈을 기독교적인 윤리의 기초로 삼았다는 점에서 이런 주장을 합니다. 사실 사람들은 조금 씩 생활의 여유가 늘어날 때마다 그런 재물을 의지하게 됩니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생활이 어려울 때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다가도 조금 여유가 있게 되면 멀리하는 일이 많습니다. 재물이란 게 매우 교묘해서 우리를 잡아매곤 합니다.
그렇다면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서, 그리스도인은 재물을 어느 정도 갖고 살아야 합니까? 이에 대한 정답은 없습니다. 양심적으로 모은 재물이라면 그리스도인이라 하더라도 부끄러울 게 없습니다. 다만 그걸 어떻게 사용하는가가 중요합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이에 대한 대답을 간접적으로나마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다시 마음을 정리해서 읽어보도록 합시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그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명을 뚫고 도적질 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이 말씀은 그 뒤에 나오는 여러 말씀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24절에도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는 말씀이 있으며, 31절에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면서 33절에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에 서술된 이 여러 말씀들은 각각 다른 상황 가운데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으로서 전체적으로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살아가라는 명령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두 가지 종류의 재물이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는 땅에 쌓아두는 재물입니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땅에 재물을 쌓는 것에 목적으로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작은 월급을 타서 아끼고 아껴서 집 한 칸이라도 장만해야 하고 여러 문화기구를 들여야 놓아야 하고 조금 더 여유가 생긴다면 주식도 사고 땅도 삽니다. 우리나라 남자 40대의 돌연사가 많은 이유는 결국 땅에 재물을 쌓는 일에 골몰하다가 그 긴장이 쌓여서 성인병으로 번지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우리는 조금도 마음의 여유를 갖지 않고 불철주야 재물을 쌓는 일만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같은 동양인인 일본도 비슷한데, 이에 비해 유럽이나 북미 쪽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평생 동안 전세집에 살아도 별로 안타까워하지 않습니다. 제도적으로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하기도 합니다만 기본적으로 재물 보다는 사는 것에 더 중요성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이 어느 정도의 재물이 필요하기도 하고, 때로는 많을수록 좋긴 합니다만 그런 마음이 지나치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지나친지 그렇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어디에 있을까요? 재물을 자기의 생명보다 더 사랑한다면 그건 잘못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재물 때문에 신의도 도덕성도 다 팽개친다면 그건 탐욕에 불과하여 그런 재물은 인간을 결코 유익하게 만들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땅에 재물을 쌓아두지 말라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 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경험을 통해서 본다하더라도 분명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의지하는 재물이란 건 우리가 억지로 붙잡아 둘 수 없습니다. 사업에 실패하여 모든 걸 날리기도 하고, 집안 식구가 사고를 당하여 쌓았던 재물을 다 밀어 넣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기를 당하는 일은 없습니까? 몇 년 전에 주식 때문에 집안 망한 경우도 많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절약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그만큼 재물을 모을 수 있긴 합니다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저금 한 푼 하지 말고 버는 대로 막 써버리라는 말씀은 결코 아닙니다. 절제하지 않고 사는 것은 그만큼 불신앙입니다. 다만 문제는 재물을 쌓는 것 자체를 삶의 목적으로 삼는 데 있습니다. 중간에 여러 가지 일로 없어질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죽을 때는 아무 짝에도 쓸데없는 그 재물에 삶의 목적을 둔다는 건 정말 미련합니다.
예수님은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하였습니다. 하늘에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늘에 쌓는 보물은 무엇일까요? 땅에 쌓는 재물은 은행에 저금을 하든지 집이나 땅을 사면되는데 하늘은 어디입니까? 하늘은행의 구좌는 무엇인가요? 어떤 분은 속으로 “아, 저 목사님이 교회에 헌금을 많이 하라고 저 말씀을 하시는구나!”하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교회가 하나님의 일을 앞장서서 하기 위해서는 물질이 필요합니다. 이번에 우리 교회 땅을 계약하고 구입하는 과정에서 돈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스럽게 다시 느꼈습니다. 누군가는 수백억 원이나 횡령을 했다고 하는데, 누구는 민사재판 한 건 처리해 주고 수억 원을 수임료로 받았다고 하는데 우리는 3억 원이 없어서 앞으로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우리 믿음의 후손들이 지켜 나갈 교회 땅을 넉넉하게 준비하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교회를 꾸려가는 문제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고, 여기 말하는 하늘의 보물은 교회를 뛰어 넘는 사실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교회가 비록 하나님의 일을 전념하고 있는 공동체일지라도 하늘 자체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현실 교회는 여러 교파로 분리되었을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토스토엡스키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피력하고 있듯이 하늘과 대치되기도 합니다. 교회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재물을 사용하라는 것이 하늘에 쌓아두라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우리는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는데 재물사용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일부러 우리가 무소유로 살아가거나 가난하여 자식들 교육도 바로 시키지 못하는 걸 정당화하는 말씀은 아닙니다. 자식교육을 위해 사용하는 것도 사실은 하나님의 뜻에 속합니다만, 우리가 지나친 욕심을 갖지만 않는다면 필요한 만큼 사용하고 최선으로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사용한다는 말의 기준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이웃과 사회의 평화와 정의를 위해 사용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재물을 사용하는데 있어서 이웃에 대해 지나치게 인색합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가 추상적으로 듣지 않고 삶의 실천 기준으로 받아들인다면 지금처럼 살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에 비해 유럽 사람들은 재물에 대해 좀 다르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주 <한겨레 21>에 보면 영국의 자선사업이 CC(charity card)로 인해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소식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은행카드 처럼 생긴 이 카드로 모든 기부금을 처리하는 제도입니다. 그 보도를 통해 영국 사람들이 자선단체 대해 갖는 관심이 지대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어려운 이들을 돕기 위한 자선단체로 부터 희귀질병퇴치 캠페인단체, 학교와 병원에서 조직한 단체, 각종 동물을 보호하는 단체(예컨대 고슴도치 돕기 캠페인 단체 등), 국제사면위원회처럼 정치 및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기구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대부분 개인 호주머니에서 자발적으로 염출되는 이런 기부금의 액수가 엄청납니다. 93년 결산을 보면 문화유산보호단체는 1천억 원, 전국 구명선박연합은 730억원, 어린이 보호는 700억원, 왕립 암 연구는 630억원, 구세군은 420억원, 어린이 학대방지는 400억원 등입니다. 이런 생활모습이 바로 기독교적인 전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간혹 김밥 할머니가 수십억 원의 전 재산을 대학에 기부했다던가 하는 소식이 우리에게도 있습니다만 이런 일들은 특수한 경우이고 대개는 자기 것을 내놓지 않고 사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전통 가운데는 유산상속이라는 게 너무 철두철미하게 뿌리박혀 있기 때문에 도저히 이웃과 사회를 위해 자기 재물을 떼어놓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만약 우리가 자식들에게 물려줄 생각만 하지 않는다면 앞서 말한 대로 자기 집이 없어도 그만이고, 있다 하더라도 더 보람된 일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저의 집 사람 친구 중 한 사람은 부모에게 유산을 물려 받은 게 적지 않아서인지 경기도 분당에도 건물을 샀고, 대구에도 지산인가 어딘가에 땅을 샀다고 합니다. 그런 일들을 모두 매도하려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의 재물관이란 게 대대손손 물려주는 것으로 굳어졌다는 걸 지적하려는 겁니다. 우리 교인들의 대부분은 그럴 여유가 없는 형편입니다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까지 말씀드린 걸 실천하는 게 그렇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억지로 할래야 할 수도 없습니다. 땅에 쌓아두는 것의 무의미성을, 하늘에 쌓아두는 것의 참의미성을 확실하게 인식하는 경우에만 가능합니다. 더 나아가 하늘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는 이들, 하늘에 참 소망을 두는 이들에게만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그런 말마시오. 어찌됐던 이 땅에 사는 한 잘 먹고 잘살아야 하고, 우리 자식들에게도 평생 먹을 거 준비해 주어야 해요.” 세상 사람들처럼 그런 생각으로 살아가겠다면 예수를 믿을 필요는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늘 21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 우리는 지금 어디에 마음을 두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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