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과 들음 (요 8:38)

조회 수 6461 추천 수 105 2004.06.14 21:49:17
봄과 들음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하느니라." (요한복음8:38)



예수는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그들의 조상에게서 "들은 것"을 행한다는 게 무슨 뜻일까? 예수는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나라를 직접 보았지만 유대인들은 조상에게서 전해들었을 뿐이다.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요8:28).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조상에게서 전해져 내려오는 전통과 풍습을 듣고 그대로 따라 살았지만 예수는 자신이 아버지(하나님)에게서 본 것을, 그가 가르친 것을 말한다. 이 양자의 입장이 비슷한 것처럼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예컨대 제주도에 사는 사람이 서울에 직접 와서 그 풍경을 보는 경우와, 다른 사람에게서 전해들은 경우는 같을 수가 없다. 그들이 서울에 대해서 말할 때 똑같은 대상이지만, 그리고 내용도 비슷할 수 있지만 직접 본 사람과 전해 들은 사람의 머리 속에는 전혀 다른 그림이 들어 있다. (바리새인 처럼) 전해들은 사람은 들은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반면에 (예수처럼) 직접 본 사람은 모든 것을 알기 때문에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다. 결국 전자는 돌팔이 약장수처럼 같은 내용을 그럴듯하게 꾸미기 위해서 포장하는 일에 마음을 쓰지만, 후자는 그런 노력없이 그저 자신이 본 것을 단순하게 말하기만 하면 된다. 전자는 주어진 정보에 매달려서 있기만 할뿐이지만, 후자는 자유롭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0). 하나님을 보고 그 세계에 들어간 사람은 자유로워지며, 그때가 되어야 무언가를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삶의 태도 사이에 놓인 틈은 너무나 심각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경우에 거의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종교 전문가들이라 할 수 있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너무나 당연하다. "너는 누구냐?"(요8:25).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전해들은 것 이외의 다른 것을 말하고 있는 예수는 아무리 타당한 말을 하더라도 그들의 눈에 정상적인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모든 시대는 이렇듯 자신들과 다른 것을 보고, 생각하고, 그래서 다르게 살아가는 예언자들을 보기 싫어했다. 이는 곧 동굴 밖의 세계를 본 사람이 다시 동굴로 돌아와서 동굴 속의 자기 동료들에게 밖의 새로운 세계를 아무리 설명해 주어도 그것을 알아듣지 못했다는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와 같다.

여기서 설교자들에게 요구되는 태도는 우선 예수가 아버지게에게서 본 것을 말씀하는 것처럼 그 세계를 보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보지 못하고 바리새인들처럼 들은 풍월만 읖조리고 만다면 설교자로서의 기본적인 자질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물론 겉으로만 보면 재미있는 설교도 하고, 사람들이 은혜를 받았다고 하니까 나름대로 설교자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보지 못한 사람의 설교는 아무리 화려하게 꾸며졌어도 참은 아니다. 바리새인들처럼 종교적 권위와 인간적 정직성과 학문성으로 아무리 무장했어도 진리를 말하는 게 못된다. 진리의 세계에 들어가지 못하면 자유도 없다. 그런데 이렇게 진리를 듣는 것에 머물지 않고 자기의 삶에서 육화되는 계기를 불교에서는 돈오(頓悟)라고 하며, 창에서는 득음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바로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보는 것"에 비견된다. 소로우가 <월든>이라는 책에서 우리 주변에 철학적 정보를 전달해주는 철학선생은 많은데 철학을 삶으로 실천하는 철학자는 없다고 말했듯이 진리를 전해듣고 전달하는 사람은 많은데 그 세계를 보고 그대로 사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말이다. 우리 주변에 성서와 하나님에 대해서 들은 풍월로 전달하는 사람은 많은데 그 세계를 보고 그대로 사는 설교자와 신학자는 별로 없다.  







[레벨:0]ark007

2007.07.08 13:11:05

굉장히 깊이 반성하고 반성하는 글입니다. 교수님의 말씀이 하나도 틀린것이 없습니다. 우선은 자신을 먼저 반성하고, 실천해 하겠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레벨:18]은나라

2016.07.05 10:24:02

예전엔 읽고 그냥 지나친 글인데..
본것을 전해 들을때..와 들은것을 그대로 전해 들을때와의 차이점을 요즘엔 확연하게 경험하는거 같습니다.
아무리 자세한것을 물어도 제말뜻을 이해하지 못하는걸 보면.. 정목사님은 제가 묻는것보다 더 깊은 세계로 인도 하시는것 같아요.^^(절 혼란스럽게 하시면서요..ㅎ)

혼란스러움으로 인한 궁금증으로 잠시 멈춤..의 발걸음을 다시 재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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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6.07.05 21:48:28

은나라 님의 질문 중에서 제가 이해하지 못한 게 있다고요?

그럴 수 있겠군요.

자, 힘을 내서 가던 길을 더 가봅시다.

[레벨:18]은나라

2016.07.05 22:41:54

ㅎㅎ아니요.. 정목사님이 제질문을 이해 못한다는게 아니라.. 우리 교회 목사님이요.

정목사님의 혼란스런 답글로 인해서.. 신학공부 강의 듣기를 시작했어요.

제가 너무 기초가 없고, 수박 겉만 핱는거 같아서요..

신학공부책을 진즉에 사놓고 강의듣기를 시도 했었는데 그땐 넘 어려워서 진도를 못 나갔었거든요.

이제 다시 시작하는데, 궁금증과 질문을 가지고 하니까.. 조금씩 이해가 됩니다.

여전히 어렵긴 하지만요.^^

하나님 나라 강의듣기와도 연관이 되는듯 하여 좋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하나님 나라에 대한 궁금증이 많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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