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가 무엇이냐?(요18:38)

조회 수 7677 추천 수 159 2004.12.16 08:42:11
진리가 무엇이냐?
(요 18:38)

복음서의 핵심 주제는 바로 "예수는 누구인가?"에 있다.
동정녀 마리아, 동방박사, 목동 같은 몇 가지 출생 설화로부터 시작해서
공생애에 일어났던 사건과 가르침,
급기야 그의 십자가와 부활에 이르는 일련의 보도는
예수의 정체에 대한 관심으로 흘러든다.
세례 요한도 옥중에서 제자들을 예수에게 보내
당신이 누구인가, 메시야인가 하고 물었으며,
예수 자신도 제자들에게 "내가 누구인가?"하고 물었고,
예수를 제거하려던,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했던 유대의 종교지도자들도 역시
예수의 정체를 불온시했다.
예수를 심문하던 빌라도는 이렇게 묻는다.
"네가 유대 사람의 왕이냐?"(요18:33).
그에게 따라붙은 죄목이 바로 왕을 사칭한다는 것에 있었기 때문이다.
왜 하필이면 '유대인의 왕'인가?
실제로 예수의 행동에는 정권의 찬탈할만한 흔적이 있었던 것일까?
워낙 거친 시대였기 때문에 예수의 능력을 보고
예수를 정치적 지도자로 삼아보려는 주변의 시도가 없지 않았겠지만
그런 시도는 예수의 생각과는 극과 극이라 할 수 있다.
이미 동방박사 설화에서는 아기 예수가 유대인의 왕으로 묘사된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단서를 찾아볼 수 있긴 하다.
출생에서도 '왕'이라는 단어가 붙더니
이제 죽음의 자리에서도 역시 '왕'이라는 단어가 따라붙었다는 건
여러 우여곡절이 예수의 운명에 개입되어 있다는 뜻이다.
물론 우리는 아주 간단하게 예수는 이 세상의 정치적 왕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영적 왕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
이 대답이 일단 옳기는 하지만 이 문제가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단절되는 건 아니다.
이 세상과 하나님 나라의 관계,
역사와 역사 너머,
피직과 메타피직의 내면적 관계를 충분하게 해명하지 않는다면
이런 대답은 단지 교리문답에 불과할 뿐이다.
빌라도는 두 번에 걸쳐서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하고 물었다.
첫번 질문에 대해서 예수가 정확하게 대답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네가 하는 그 말은 네 생각에서 나온 말이냐?
그렇지 않으면, 나를 두고 다른 사람들이 말하여 준 것이냐?"
두번째 질무에 대해서 예수는 이렇게 대답하신다.
"네가 말한 대로 나는 왕이다."
공동번역에서는 "그것은 네가 말한 것이다."로 되어 있다.
어떤 번역이 정확한 것인지 추적하는 작업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예수가 빌라도의 질문대로 자기를 왕으로 생각한 것인지,
아니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돌려 대답한 것인지 말이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빌라도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생각한 '왕'개념이
예수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림이라는 점이다.
예수는 빌라도에게 분명히 이렇게 말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내 나라가 세상에 속한 것이라면 내 부하들이 싸워서,
나를유대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36절).
예수는 두번에 걸쳐서 자기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고 확정한다.
그런데 왜 예수에게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소문이 따라다녔을까?
순전히 모함인가, 아니면 근거가 있나?
이런 문제는 훨씬 복잡한 논의를 거쳐야 하니까 여기서는 접어두고
왕을 사칭한다는 빌라도의 질문에 대해서
자기의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는 예수의 증언에 귀를 기울이자.

공관복음서는 빌라도의 질문에 대한 예수의 대답이 '왕'이라는 단어 부근에 머물러 있지만
요한복음서는 한 걸음 더 나간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가 하는 말을 듣는다."(37절).
요한이 빌라도의 질문을 통해서 제시하려는 대답이 바로 여기에 있다.
예수의 나라는 진리라고 말이다.
요한복음서 기자가 헬라철학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여기서 예수는 유대인들의 정치적 관심사를 한단계 '업드레이드' 시켜서
철학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유대인과 로마인들은 '왕' 개념을 중심으로 자기들의 삶을 이끌어간 반면에
요한복음서는 오히려 '진리'에서 그것을 찾았다.
그가 이해한 예수는 바로 진리의 증언자였으며,
한걸음 더 나아가 그가 곧 진리 자체였다(요 14:6).
사람들은 왕의 나라와 진리의 나라를 혼동할 때가 많다.
아니 왕의 나라는 쉽게 이해하지만 진리의 나라는 아예 이해하지도 못한다.
그래서 그러지 빌라도는 예수의 말을 듣고
"진리가 무엇이냐?"하고 다시 묻는다.
진리라는 개념 자체를 몰랐기 때문인지, 진리의 내용에 대한 관심 때문인지
정확하게 잡아지내기는 힘들지만
본문의 대화가 여기서 단절되는 걸 보면
진리를 지적하는 예수의 말씀이 빌라도에게 매우 당혹스러웠던 것만은 분명하다.
대개의 사람들은 '진리'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
진리라는 단어를 모른다는 게 아니라
그것이 바로 '나라'라는 의미를 모른다는 말이다.
'나라'가 통치를 의미한다면 진리의 나라는 진리의 통치를 가리킨다.
요한은 이렇게 진술한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가 하는 말을 듣는다."
성서기자들은 바로 예수가 진리라고 생각했다.
이 말은 바꿔서 진리가 곧 예수라는 말이기도 한다.
신학이 풀어야 할 대목이 바로 여기에 있다.
예수가 왜 진리인가?
진리가 왜 예수인가?
교리문답의 차원에서,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또는 그를 믿으면 구원받으니까 진리라는 대답이 가능하긴 하지만
그런 정도에서 머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예수가 누구인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려졌다고 하더라도
진리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열려있기 때문이다.
종말론적인 성격이 담겨 있는 진리가 우리에게 모두 밝혀지기 전까지는
예수의 정체에 대한 대답도 역시 완료된 것은 아닐 것이다.
대강절을 지나면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화두처럼 붙잡고 생각해야 한다.
예수는 누구인가?
진리가 무엇인가?



[레벨:6]유희탁

2004.12.21 07:26:01

이것을 깨닫기란 참 어렵네요...예수??..진리??

[레벨:1]한경숙

2005.08.09 17:29:52

베드로가 아니라 빌라도가 질문했죠.
예수께'진리가 무엇이냐' 하고 다시
유대인들을 향해서 물었죠.
바라바를 놓아 주랴? 예수를 놓아 주랴?
누구를 놓아 주랴?

그것이 바로 우리들이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진리가 무엇이냐? 하고 쉼표도 없이 마침표도 없이
다시
세상과 타협하고 있지요.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05.08.09 19:12:22

한경숙 선생,
내용을 꼼꼼하게 읽고 오류를 잡아내셨내요.
비평가로서 자격이 있습니다.
내가 여러번 빌라도를 베드로로 잘못 썼군요.
고맙습니다.
덕분에 제대로 잡아놓았습니다.
"바라바를 놓아 주랴, 예수를놓아주랴?"는 윤석전 목사님이 쓰신
책 제목이네요.
윤 목사님 취향이신가?
건강하시고,
고전읽기에서 뵙겠습니다.

[레벨:1]한경숙

2005.08.15 21:55:56

윤목사님 취향 절대로 절대로 아닙니다.
물론 정용섭 목사님 취향도 아닌 것 같구요.
아닙니다.
아닌 것 같구요. 하는
부정은 긍정일지도 모릅니다.

윤석전 목사님 취향이면서
정용섭 목사님 취향일 수도 있을까요?

저는 예수님 취향입니다.

취향이라는 말을 예수님께 쓰기는 좀 그렇긴 하네요.
내일 뵙겠습니다.

참! 윤석전 목사님 그런 책이 있었나요?
한 번 읽어 봐야겠네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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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5.10.07 18:07:11

다시 대글이 달린 걸 이제야 발견했군요.
지난 여름에 고전읽기에서 시간을 함께 보냈습니다.
과수원에서 같이들 갔습니다.
그 뒤로 개강한 다음에
영신 교정에서 한번 스쳤네요.
건강해 보여서 좋았습니다.
학교생활, 교회생활, 가정생활,
이중 삼중으로 할 일이 많지요?
일 욕심 부리지 말고 천천히 가세요.
주의 은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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