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프로테스탄트의 참회적 신앙심


대학에서 수행되는 신학작업은 흔히 기독교의 신앙적인 생활과 뚜렷한 거리감을 보인다. 이는 곧 지성이 반드시 종교적 생활로부터 소외되어야한다는 뜻은 아니다. 비록 신학과 신앙생활 사이의 소외가 드물지 않은 현상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신학은 특별히 아카데믹한 성격으로 인해서 종교적 생활과 틈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것은 무엇보다도 역사적 연구와 철학적 반성에 의해서 일어난 결과다. 여기서 말하는 이 역사적 연구와 철학적 반성은 신학이 학문 세계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근거다. 따라서 많은 경우에 신학작업은 역사적인 엄밀성을 추구하며, 또한 어떤 학문적 체계를 성취하기 위해서 가능한대로 학문적 정확도를 높여 나가려한다. 흡사 그러한 신학행위 자체가 목표인 것처럼 말이다. 학자로서 신학자의 외양은 대부분 이러한 기술적인 능력에 따라서 판단된다. 그러나 참된 신학의 특성은 신학적 진술에 포함된 기술적인 문제들을 떨쳐내기 위해서 기독교 신앙의 중심 모티브에 관심을 둠으로써 그것을 극복한다는 데에 있다. 이러한 신학은 단순히 교리에 대한 질문, 즉 삼위일체론이나 십자가와 부활교리, 하나님 나라, 혹은 신앙 자체에 대한 교리를 문제로 삼지는 않는다. 이런 종류의 교리문제들은 분명히 기독교의 경건한 생활과 관계되지만, 이것들이 자체를 목표로 하는 경우에는, 즉 기독교적 경험의 그 뿌리로부터 단절되는 경우에는 과거 전승의 빈껍데기만을 다루는 것 같은 인상을 주게 된다. 이럴 경우에 자주 여러 유형의 잘 알려진 기독교적 신앙심에 관한 놀이방식*이 전면에 등장한다. 이에 대해서 더 이상 언급할 필요는 없지만, 다만 한 마디만 덧붙여 두자. 교리를 통해서 훈련받은 기독교 신자들은 신앙의 기본적 정서를 매우 잘 이해하게 된다. 이들은 교리적인 신앙심을 기독교적 신앙심과 일치하는 것으로 간주할 것이다. 이와 달리 어떤 이들에게 이런 종류의 언급은 이 강연에서 제시하려고 하는 사유의 길을 막아버리게 될지 모른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강연이 말하고자하는 신앙심의 형식을 구분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놀이방식(Spielart)이라는 표현이 뜻하는 바는 기독교적 신앙심을 단순히 교리적인 차원에서만 생각하게 될 경우에 교리의 논란이 흡사 놀이의 방식을 다루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참된 신앙심은 교리를 뛰어넘는, 즉 하나님의 초월에 대한 경험이다. 판넨베르크는 그 초월 경험이 어떻게 역사적으로 가능한가 하는 점을 밝히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신학적 제안들이 열광적으로 환영받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는 곧 그 제안들을 통해서 일종의 신실한 신앙심이 기독교 교리의 전통적 주장과 형태를 과격하게 비판하고 그런 흔적을 남기는 경우다. 경건주의적 신앙심*과 이러한 극단적인 비판의 연결은 몇 십 년 앞서 불트만 학파가 크게 작용한 부분에서 설명될 수 있다. 이러한 연결은 불트만 학파가 담지하고 있는 신앙심의 개인주의적 성격이 1968년 학생혁명의 와중에서 당시 대학생들의 정치적 관심에 대해서 일절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명백해졌으며, 이로써 이 연결은 지리멸렬한 종막을 고하고 말았다. 그런데 이와 달리 칼빈의 유산에 깊이 각인 받은 바르트주의의 정치적 기류는 그 정치적 관심거리라는 점에서 르네상스를 맞았다. 경건한 태도를 특별하게 등급화하지 않는 관찰자는, 즉 이러한 신학적 유행의 출현에 기초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 것들과 대립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 당연히 신학과 신앙의 이러한 연결에 대한, 그리고 그 폭넓은 작용에 대한 보수적이고 복음주의적인 예들이 있다. 그것은 곧 보수적이고 우상 파괴적인 형태에서 가능한 일로서, 이 일에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신학자로 대표되는 경우다. 이런 이들은 기독교 신앙이라는 분명한 색조 속에서 신학 작업을 실행함으로써 활동적인 효과를 내며, 특별한 방식으로 교리와 신앙을 연결시키려고 한다. 분명한 신학적 사유방식의 원리, 그리고 무엇보다도 분명한 신앙적 형식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려는 원리가 연구된 일이 거의 없으며, 또한 한 신학자가 이미 자신이 당연하게 이해한 신앙에서 기독교적 신앙심의 한 형식만을 고집한다는 것도 역시 아주 드문 일이다.

*경건주의적 신앙심(die pietistische Frömmigkeit)이라는 표현에서, pietistisch는 신앙을 내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접근하는 방식을 뜻하며, Frömmigkeit는 종교성이나 신앙심 자체를 뜻한다. 소위 Pietismus(경건주의)는 기독교 역사에서 한 때 활발하게 추구되었던 한 신앙적 경향을 가리킨다면, Frömmigkeit은 어느 한 시대의 신앙적 경향이 아니라 기독교 일반의 종교적 깊이를 가리킨다. 역자는 여기서 Pietismus를 “경건주의”로 Frömmigkeit를 “신앙심”, 혹은 “경건”으로 번역했다.

기독교적 영성의 핵심적 요인을 우리는 소위 말해서 신학의 하부구조로 생각하고 있다. 기독교적 신앙심에 놓여있는 초점의 변화는 기독교 교리사에 등장한 많은 사건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이런 방식으로 생각할 때 어떤 분명한 시기에 성육신 교리가 신학의 핵심으로 등장했는지, 그리고 다른 시기에는 이와 달리 그리스도의 희망적 죽음이, 그리고 또 다른 시기에는 신앙을 통한 칭의론이 중요한 주제로 부각되었는지 이해할 만하다. 영원에 참여하려는 갈망과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삶의 중국에 놓여있는 고통은 성육신 사신에서 한 대답을 발견한다. 다른 한편으로 중세기 교회에서는 증대되는 긴장감으로, 또한 심판의 두려움과 연결된 하나님의 형상에 직면해서 신적인 진노의 유화에 대한 질문이 중심적 의미를 획득했다. 중세기에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의 죄가 대리적으로 만족된다는 교리가 지배적이었다. 이런 교리적 현상은 그 시대의 신앙심이라는 배경이 없는 결코 이해될 수 없다. 이 사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물론 다음과 같은 사실을 눈여겨보아야만 한다. 신약성서에서 볼 수 있는 대로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작용한 속죄는 그 이외의, 즉 이런 보상에서 무능력한 사람 대신에 신이며 인간인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의 진노가 완화되었다는 의미를 갖는 게 아니었다. 거기서는 오히려 하나님 스스로가 속죄 행위의 주체였다. 예수에 의해 견인된 만족이라는 의미에서 속죄에 대한 해석은 서구 중세기적 신앙심의 특별한 표현이었다는 점을 인식할 수 있다. 중세기적 신앙심에서 지배적인 요소였던 죄책감은 곧 후회와 참회 작업을 통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유화 시켜보자는 요청과 연결되어 있었다. 이 죄책감에는 믿음을 통한 칭의라는 루터의 교리가 크게 작용했다. 이 경우에 죄의식과 참회 행위에 빠져들어 꼼짝할 수 없는 상태로부터의 해방은 교회의 성직자 정치로부터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직접적으로 나누고자 하는 해방과 연결되었다. 이 성직자 정치는 전제적이고 혹독한 제도로 경험되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기독교 신앙심의 이러한 양식은 비록 이런 저런 신앙적 유형들이 개체적으로 다양한 변화를 보이고 있지만 분명히 전체 세계상을 내포하고 있다. 기독교 신앙심의 핵심적 유형은 신앙심이라는 이름으로 전통적인 종교 심리학을 논의했듯이 주관적인 태도를 나타내려고만 한 것이 아니다. 이 유형은 오히려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조건이 보이고 있는 복합적인 국면을 나타내 보이고자 한 것이며, 또한 한 시대의 정신이라 할 현상과 결합되어 있다. 그 현상의 생명력이 보다 거대한 것처럼 보이지만 말이다. 기독교의 거대한 신앙적 유형은 그 유형을 생성한 시대를 끝내지 않고 자주 지속시켰다.
그 유형의 특별한 요소들이 무엇인가? 첫째, 여기에는 기독교 교리에서 첨예화된 구체적인 논점들이 거론될 수 있다. 둘째, 이 요소들은 인간적이고 사회적인 경험의 세계에 대한 특수한 이해와 연결되어 있다. 셋째, 특징적인 생명 유형이나 혹은 보충적인 생명 유형의 다수도 역시 기독교 교리를 이해하려는 것이며, 도한 세상 사람의 삶을 적절하게 이해하려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영원에 참여하려는 열망을 통해서 드러난 기독교 신앙심의 유형은 일종의 특별한 예전적 신앙심이나 또는 수도원적 명상 생활에서 잘 드러나 있다. 중세기의 기독교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난 신앙심의 유형은 죄인과 진노하는 신 사이를 대리적으로 중재하려는 모든 양식에 대한 관심과 연결되었다. 성자숭배, 성유물 숭배, 성지순례, 그리고 예전적 희생과 속죄의 희생을 중재하는 제사장의 기능들은 이런 신앙심의 유형과 그것에 핵심적으로 수반되는 것들의 특별한 성격을 가리킨다. 이러한 상이한 현상들은 구별된, 혹은 독자적인 신앙적 유형으로 간주될 수 없다. 오히려 그것은 전체 상을 상호간 보충하는 요소들로 보아야 한다.
이와 달리 13세기 탁발 수도회에서는 새로운 신앙적 유형이 준비된 것처럼 보였다. 소위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친교를 목표로 하는 신앙심이다. 이들이 추구하는 바는 14세기에 일어난 일련의 특징적인 현상 가운데서, 즉 후기 프란시스파 신학과 신비주의, 그리고 갱신된 어거스틴주의와 연결해서 완전한 역동성을 개발시키는 것이었다. 이 시대가 보여준 신앙심의 광범위한 스펙트럼에서 종교개혁이 출현한 것 같다. 종교개혁은 여러 관점에서 하나님과의 직접성에 천착해보려는 새로운 형식이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물론 단순히 함축적이라고 하더라도 교회의 중재적인 제도에 대해서 비판적인 관계를 설정하려는 노력이었다.
그렇지만 물론 종교개혁은 결국 고유하고 새로운 신앙적 유형을 기초했다. 이 유형에서 발견되는 가장 초기의 고전적인 표현 형식은 기독교인의 자유에 대한 루터의 논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는 곧 사죄에 기초해서 개인이 하나님과 관계하는 직접성이며, 또한 개인들의 소명이라는 관점에서 동료에게 봉사하는 삶을 가리킨다. 이 두 관점은 우선적으로 양심의 자유에 대한 생각이 정치적 자유와의 접촉에서 성공적이었는지 아닌지에 따라서, 그리고 루터의 소명 의식이 법적인 사회 개념과 연결되었는지 아닌지에 따라서, 혹은 단순히 개인들의 선택과 그 보증이라는 의미에서 개인의 윤리적 삶과 그 삶의 결과에서 이해되고 있는지 아닌지에 따라서 매우 상이한 모습을 보인다. 모든 색조 덕분으로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는 프로테스탄트의 신앙심은 역동성을 담지하게 되었으며, 그 덕분으로 신자들에게서 활동하는 영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현재 한다는 믿음이 풍요로워졌다.
고대 교회로부터 계몽주의와 각성적인 신앙심의 기독교적 휴매니즘에 이르기까지 기독교적 신앙심의 역사를 스케치하는 것이 이 예비적 서술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그것보다는 기독교적 신앙심의 역사적 유형들이 어떻게 출현했고 사라졌는지를 설명하는 게 가능한지 아닌지에 대해서 질문해야만 한다. 이것은 여러 가지 다른 이유로 인해서 중요한 질문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질문이 생명의 리얼리티와 맺고 있는 신앙심의 내적인 관계를 조망할 수 있게 하고, 신앙심의 구체적인 형태들이 담고있는 가능성과 수행성을 시험할 수 있게 하거나 비판적으로 판단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런 질문에 답하려는 노력은 기독교적 영성의 형식들이 담고 있는 단초를 새롭고 시의 적절하게 판단하도록 그 준거를 제공한다. 이미 말한 바대로 하나의 신앙적 형식은 그때마다의 생명 세계에 대한 경험과 관계된다. 이것은 하나의 신앙적 유형이 리얼리티라는 점에서 얼마나 정당한가에 대한 질문을 부가적으로 설명해주는 요점이다. 이 장에서 이런 질문이 논의됨으로써 그런 신앙적 유형이 오늘의 시점에 이르기까지 보여주고 있는 특별한 의미가 풍부하게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프로테스탄트 신앙심의 경건주의적 변형이 어떻게 왜곡되었는가를, 더 정확히 말해서 죄의식이 어떻게 비판적으로 궤멸되었는가를 알려주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죄책감은 기독교 신앙심의 한 유형이 아니다. 죄책감이라는 것은 도처에서 인간들이 경험하고 있는 바의 것이다. 특히 연대적인 책임감 앞에서 느끼는 부끄러움과 당혹이 덧붙여질 경우에 그 의미가 훨씬 확대된다. 좁은 의미에서 죄의식은 기독교인들의 경우에 우선 양심 개념의 발달과 연결되어서 형성되었다. 이와 달리 유대교에서는 이 죄책감이 이미 일찍이 중요한 기능을 감당했다. 기독교 사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 죄가 용서되고 죄의 능력으로부터 해방된다는 사실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죄책감이 기독교에서 매우 진지하게 다루어졌다. 물론 죄책감은 다른 그 어떤 영역에서보다 기독교에서 훨씬 큰 영향력을 끼쳤다. 또한 서구 기독교에서 점차 중요한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유전죄라는 어거스틴의 도그마는 기독교 서구사회에서 이루어진 아주 특이한 성과였다. 그리고 예외적인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각각 기독교인의 삶을 규정하는 의식에서 볼 수 있는 대로 참회 제도의 발전은 수도회에 의해서 수행된 참회 제도의 확산과 연관해서 양심에 대한 연구와 죄책감을 배양시켰다. 이런 배양을 통해서 죄의식은 중세기의 신앙적 문제에서 현안이 되었다. 기독교 초기부터 비판받은 이 발전은 당연한 게 아니라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초기 기독교에서 죄와 죄책이 세례 예식을 통해서 용서받았다는 사실은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초기 기독교가 이해한 영은 그리스도와의 친교를 통해서 획득되는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해방에 대한 경험이라는 특징으로 나타난다. 2세기가 끝나갈 무렵에 최초로 죄를 범한 기독교인이 교회로부터 출교당해야만 하는지 아닌지, 혹은 그들이 영생에 참여할 수 있는 두 번 째의 기회가 보장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질문을 총체적으로 정리하는 작업이 불가피했다. 따라서 이제 ‘제2의 참회’ 제도가 시행되었다. 고유한 참회는 세례 받을 때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것을 제2의 참회라고 불렀다. 고대 교회에서 공식적 참회로서는 매우 단호한 조건에서 실행된 제2의 참회가 분명히 예외적이었다. 우선 참회와 연결되어 일종의 의식으로서 주기적으로 반복되던 서구 중세기 교회의 회개는 개개 기독교인들이 살아가는 삶의 전형이 되었으며, 또한 매우 광범위하게 기독교적 신앙심을 규정해나갔다. 잘 알려져 있는 대로 북유럽에서 일어난 이런 발전은 초기 중세기 아일랜드와 영국 수도자들에게서 수행된 선교를 통해서 촉진되었다. 수도원에 있던 이들 수도자들은 서로 간에 행한 참회 습관을 발전시켰으며, 또한 이런 참회 습관을 새롭게 변형시켜 나갔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이 느낀 삶의 감정은 초기 기독교인들과 달리 죄의 능력과 그 짐에 대한 것으로 채워졌다. 그들이 주교좌 성당을 들어갈 때 정문의 측면에 놓여있는 어리석은 처녀들과 지혜로운 처녀들 상 사이를 지나가야 했으며, 또한 최후 심판을 묘사하는 그림 밑을 지나가야 했다. 안으로 들어가 보면 반원형의 벽감*에 그려진 세계 심판자로서의 그리스도 상을 자주 만나게 된다. 하나님과 분리된다는 두려운 생각은 하나님과의 중재를 요구하게 된다. 이 중재는 우선 중세기 신앙의 여러 견해를 다양한 형식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성당 건물 내부의 상부가 반원형으로 처리된 벽면을 벽감(壁龕)이라고 하는데, 이 벽감에는 주로 세계 심판자 형상을 한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석상이나 부조가 설치되어 있다.

여전히 종교개혁은 이러한 영성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종교개혁자들에게 복음은 죄, 불안, 시련, 그리고 죄의식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생각하기를 이러한 사신은 자신들의 죄의식을 짊어지고 있는, 그리고 하나님의 용서를 갈구하는 인간에게 그 초점이 놓여 있었다. 프로테스탄트의 신앙심이 기독교적 자유를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죄의식의 사슬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들은 뒷날 논란거리가 되었다. 율법적인 설교는 이와 반대로 도덕적인 방종에 대한 죄의식을 증거하는 데 유효했다. 그들은 이 죄의식을 통해서 사회의 복음을 받아들인 것으로 생각한 게 틀림없다. 프로테스탄트의 경건주의는 주로 구원받을 수 있는 신앙의 조건으로서 죄와 죄책에 대한 의식의 기능에 집중되었다. 말하자면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세리 경우처럼 자기 스스로 죄인이라고 자인하고 자신이 하나님의 은총에 의존되어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함으로서만 이 죄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다.
프로테스탄트가 이러한 경향에 대해서 자주 반동적인 자세를 보였다는 것은 결코 우연한 게 아니었다. 니체는 도덕 계보학(1887년)이라는 책에서 기독교 신앙심과 도덕에 담긴 죄책감의 배양에 대해서 화려한 필치로 비판했다. 근원적으로 자기 자신이 한때 경건주의에 빠졌던 젊은 니체는 경건주의적 성향의 도덕주의와 자기증오에 반란을 일으켰으며, 죄와 죄책에 대한 저들의 하소연을 반대하고 오히려 새롭고 자기 의식적인 무죄를 요구했다. 그는 죄책, 의무, 그리고 양심에 대한 개념을 인간의 도덕적 규정에 대한 고매한 생각에서 찾지 않고, 오히려 경제적 생활의 세속적 뿌리에서, 그리고 경제적 의무와 채무에서 찾아보려고 했다. 그는 잘못된 양심을 영혼의 질병이라고, 내적으로 공격하는 경우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는 성서의 하나님을 인간의 죄를 심판하는 자와, 즉 그릇된 도덕의식의 투사와 일치시켰다. 그리고 그는 인류 역사에서 파생된 최고의 죄의식이 기독교의 하나님 이해에 들어있다고 주장했다. 니체는 무신론을 통해서 기독교의 하나님을 파괴하는 것이야말로 죄의식의 짐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 게 틀림없다. “무신론과 제2의 무죄는 상호적으로 연관된 생각이다.”
니체는 기독교의 ‘금욕적 관념’과 죄책감을 유럽인의 ‘건강 역사’에서 발생한 가장 숙명적인 전개라고 보았다. 그의 시각에 따르면 죄책감을 자학적으로 강화시키는 것은 영혼의 건강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이런 비판은 그의 뒤를 이어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거의 유사한 방식으로 수행했던 바의 그것이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니체보다 훨씬 비관적으로 생각했고, 또한 모든 문화발전의 조건으로서 공격성의 억압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강조했지만 니체와 거의 같은 의미에서 잘못된 도덕의식이 곧 사회적 초자아를 억압하는 자기 공격의 한 형식이라고 간주했다. 프로이트는 종교를 죄의식에서 파생된 집단 노이로제라고 보았다. 니체는 이미 앞서서 ‘노이로제’라는 말을 사용했었다. 그리고 그는 종교의 근원을 노이로제의 느낌과 그 위력 앞에서 갖게 되는 불안이라는 사실에서 추정한 첫 인물이었다. 그 불안은 종교에 내재해 있는 죄책감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현대 독자들로 하여금 틀림없이 프로이트의 책 ‘토템과 터부’를 기억나게 할 것이다. 이 책은 1913년에 출판되었다. 프로이트는 니체와 마찬가지로 기독교를 그렇게 정열적으로 다루지는 않았다. 일반적인 종교에 관해서 그는 니체가 기독교 신앙심에 나타난 있는 참회적 정서를 비판하면서 발전시켰던 것과 거의 흡사하게 해석하려는 경향을 보였다. 프로이트 역시 죄의식을 무엇보다도 자기 공격이라고 간주함으로써 문화적인 초자아로 하여금 지나칠 정도로 엄격하게 자아를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 경고했다. 지나친 요구로 인해서 개개인들이 노이로제에 빠질 수 있으며, 또한 자아 정체성을 발전시키고 강화시킬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니체와 프로이트가 서로 일치하여 전통적인 도덕규범을 훼손시켜나가는 작업을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오늘날 도덕규범들은 개인들이 지켜야할 절대적인 것으로 더 이상 요청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들은 초자아로부터 넘겨받는, 즉 개인과 상대해있는 사회의 내면화된 요구다. 이런 요구들이 지향하는 바가 개인적인 정체성을 위협하는 것이라면 이 비난은 사회를 향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규범의식의 변화가 마지막에 제시된다. 니체와 프로이트가 금세기에 도덕적으로 비판한 인간의 자기 이해와 생활태도의 직접적이고 간접적인 활동은 보다 많은 연구를 필요로 한다.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심의 공식적인 신앙태도에 대한 그들의 작용은 정말 끔찍했다. 과거에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던 참회적 경향은 정신질환이라고, 또한 특별히 자학적으로 자기를 공격하는 매우 세세하고 파괴적인 형식이라고 일컬어졌다. 이러한 비판은 오늘날까지도 기독교회의 신학과 신앙생활에서 충분할 정도로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다. 그의 비판은 기독교 신학으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질문에 직면하게 했다. 하나님은 인간의 정체성과 자유에서 극복될 수 없는 대상인지 아닌지, 그리고 인간은 기독교 신앙을 통해서 신경증적으로 살아감으로써 그 곳에 고착되어버린 것은 아닌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니체가 자신의 비판을 적용한 프로테스탄트의 경건주의적 유형은 불행하게도 이런 논증으로 인해서 상당한 정도로 위기에 처했으며 취약해졌다. 경건주의가 신앙적 각성에 기초한 신앙심*을 통해서 프로테스탄트 영역에 매우 광범위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기독교 의식에 정서적인 위기를 불러왔다. 이 위기는 프로테스탄트 전반에 걸쳐서 효과가 있었다. 로마 가톨릭의 신앙심도 역시 이런 위기에 봉착했다. 무엇보다도 두드러진 바는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실행된 참회적 예전의 위기다. 그러나 그 여파는 미미했다. 왜냐하면 프로테스탄트와는 달리 가톨릭에서는 참회적 경건이 중심적 의미를 형성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앙적 각성에 기초한 신앙심(die Erweckungsfrömmigkeit)이라는 말은 18세기 각성운동에 기초한 기독교의 경건을 가리킨다. 이 각성운동은 경건주의 운동과 같은 의미다.

프로테스탄트의 경건주의적 신앙심이 추구하는 참회적 성향이 니체와 프로이트에 의해서 그토록 취약해진 이유는 무엇인가? 이에 대한 답변은 이렇다. 경건주의, 특히 후기의 경건주의는 신앙적 각성에 기초한 신앙심을 통해서 구체적인 형식들, 즉 죄책과 죄에 대한 뉘우침을 사죄의 복음에 참여하기 위한, 그리고 이로써 하나님과의 일치에 필요한 참된 신앙의 기본적이고 항시적인 조건이라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죄의식이 불일치에 대한 표현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경건 유형은 사실상 개인들을 소외 상태에 빠뜨린다. 따라서 이러한 소외감으로부터 벗어날 길이 없게 된다. 왜냐하면 이런 소외는 구원이라는 이름으로 실행된 정체성에 대한 가상의 개념과 동일한 기초가 되었기 때문이다. 자기 정체성에 대한 이러한 개념은 환상적이라고 비난받게 된다. 왜냐하면 개인적 죄성에 지속적으로 작용하는 자기의식인 이런 소외에 대한 의식은 개인들로 하여금 구체적인 정체성을 획득하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이미 종교개혁자들의 중심적 교리였음에도 불구하고 프로테스탄트 역사에서 별로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다. 종교개혁이 제시하고 있는 사신은 당연히 이러한 의미에서의 죄의식을 목표로 삼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 죄의식에 대한 불안과 유혹에서, 그리고 하나님과 적대하는 것들을 끊임없이 중재하고 극복하는 시도로 인해서 겪게 되는 자기 탈진의 불확실성으로부터 신자들이 해방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소외라는 비참한 상황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에 기초했다. 이 약속은 하나님에 의해서 영감된 말씀을 통해서 증명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해방은 신자들이 약속의 하나님과 맺는 직접성과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점에서 개인에게만 유효한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그 약속에 대한 믿음과 동일시되는, 그리고 그 믿음의 행위와 동일시되는 이런 약속을 받아들이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요구되는 것이 없다. 그러나 기독교적 자유에 대한 새로운 프로테스탄트 교리에는, 특히 루터교에서는 한 가지 문제가 숨겨져 있었다. 즉 칭의론이 용서를 시급하게 권고한다는 사실과 연결된 문제였다. 루터의 독특한 교리에는 분명히 신앙을 통해서 획득된 칭의가 엑스트라 노스, 즉 자기 외부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신비적으로” 참여한다는 사실이 들어있다. 루터는 그리스도에게 참여한다는 것이 신뢰의 행위로 성취된다고 믿었다. 왜냐하면 우리가 다른 이를 완전히 신뢰한다면 완전히 문자적인 의미에서 우리가 믿는 그에게 우리를 “맡겨버리기” 때문이다. 우리의 미래, 우리의 생명은 우리가 신뢰하는 것에 달려있다. 따라서 우리는 믿음을 통해서 예수의 생명과 영, 그리고 칭의를 얻게 된다. 이것은 믿는 자가 여전히 용서받을 필요가 있는 죄인으로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밖에서, 즉 그리스도 안에서(extra nos in Christo) 주어지는 새로운 생명의 기초다. 여기서 말하는 용서는 하나님이 우리 스스로 용인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죄성을 보지 않으시고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준다는 특징을 갖는다. 이 말을 신학적인 언어학으로 해석한다면 그리스도의 의에 의해서 얻게된, 즉 전가(轉嫁)된 의로움이라는 뜻이다. 또는 ‘법적인 의미의 칭의’*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이 칭의라는 것이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 행위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법적인 의미의 칭의가 믿음을 통해서 ‘신비적으로’ 그리스도에게 참여한다는 기본적인 직관으로부터 분리되어버린다면 용서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들임으로써만 결과적으로 고유한 원자론적 실재주의** 가 발생하며, 그리고 칭의에 참여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용서하신다는 약속이 항상 거듭해서 필요하다는 말이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항상 거듭해서 죄에 빠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종류의 실재주의적 경향은 멜랑히톤에게서 이미 그 흔적을 보인다. 멜랑히톤의 무미건조한 합리주의는 루터 사상의 신비적 뿌리와는 별로 연관성이 없다. 그리스도 안에서 지속적이고 새로운 생명을 기초하는 세례의 기능은 이러한 실재주의로 인해서 훼손 받는다. 왜냐하면 세례를 받았지만 죄는 여전히 남아있고 항상 거듭해서 하나님의 용서를 반드시 받아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실존이 어떻게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으며, 또한 교회로 모인 공동체의 개체들이 기독교인들로서 다른 죄인들과 얼마나 구별되는가 하는 점에서 분명히 질문이 제기된다. 루터 신학에서 세례는 개개인의 새로운 실존을 자기 밖인 그리스도에게 토대를 두었다. 그리고 기독교적 참회는 세례로 인해서 발생한 사건을 계속적으로 습득하는 것과 다른 게 아니었다. 그러나 용서한다는 약속, 즉 ‘법적인 의미의 칭의’가 세례를 강조하는 루터의 입장과 갖게 되는 관련성이 개혁주의적 경건과 예배의식에서 즉시 불분명해졌다. 루터 교회의 후기 예배 의식문에서는 세례에 대한 관련 사항이 특히 예배 시에 드려지는 죄고백과의 연결에서 기대되는 것보다 훨씬 적었다. 따라서 어떻게 계속적인 기독교 실존이 가능한지에 대한 문제가 부각되었다. 초기 경건주의는 각각 기독교인들에게 인격적인 성장을 통해서 유일회적인 회심과 중생을 요청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새로운 생명의 아이덴티티는 루터가 가르친 대로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외부에서가 아니라 개인과 그 개인의 발달 내부에서 획득되어야만 했다. 그리고 경건주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삶으로 회심할 것을 요청했다. 이 회심은 구체적인 날짜에 이루어지며, 또한 이러한 회심으로 완전하고 미래적인 생명에 참여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경건주의적 요청은 새로운 형태로 자기의(義)를 이루는 출발점일 수 있다는 점에서 끊임없는 위험성에 노출되어 있다. 따라서 18세기 중엽 이래로 각성운동은 이를 반대하고, 거듭된 참회와 용서의 필연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죄와 용서가 항상 거듭해서 순환된다는 실재주의가 어쩔 수 없는 결과로 등장했다. 죄의식과 용서의 순환은 유감스럽게도 루터교회에서만이 아니라 프로테스탄트 전통의 형태에서도 역시 지배적으로 작용했다.

*법적인 의미의 칭의(die forensische Rechtvertigung)라는 말은 앞서의 전가라는 말과, 즉 그리스도의 탓으로 돌린다는 말과 같은 지평에 속한다. 말하자면 기독교인은 자기 자신이 아무리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스스로는, 또는 실제로는 의로워질 수 없고 하나님이 그렇게 인정해줄 때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칭의는 법적인 의미를 가질 뿐이다.

**원자론적 실재주의(ein atomistische Aktualismus)라는 말은 가장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대상을 기초로 놓고 판단하려는 생각을 뜻한다. 즉 원자는 모든 물질의 기초 단위이며, 실재는 사실적인 대상이라는 점에서 물질의 기초 단위가 변하지 않듯이 모든 신앙적 현상을 이러한 사실에 입각해서 생각하려는 것이다. 판넨베르크는 이 개념을 신앙적 신비주의와 대조적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그에 의하면 멜랑히톤이 이런 실재주의를 대표한다면 루터는 신비주의를 대표한다.

이러한 실재주의의 잠재적인 위험성은 하나님의 약속을 포함하고 있는 성서의 권위가 공격받지 않고 유지되던 동안에는 매우 오랜 기간 동안 현상으로 등장하지 않았다. 성서는 인간의 모든 행위와 연결되어 있는 하나님의 약속을 증명함으로써 기독교인의 실존적 연속성을 명실상부하게 보증했다. 그러나 합리주의적 성서비평이 등장함으로써 성서의 권위가 그 공식적 타당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기독교 믿음이나 경험이 기독교를 설명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이로 인해서 죄의식과 용서받았다는 확신의 관계가 불가피하게 변화될 수밖에 없었다. 고유한 죄책에 대한 경험은 이런 맨털리티를 설명한 톨룩(F.A.G. Tholuck, 1799-1877)의 주장에 상응해서 복음의 진리에 대한 준거가 되었다. 말하자면 인간이 “자신의 내부적 갈등을 가장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모든 계시를 발견한다면 이것이 바로 그에게 진리다”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당연히 복음화는 늘 인간의 죄성을 준엄하게 깨우치는 작업으로 시작되었다.
루터의 종교개혁이 이해하는 신앙의 동기는 각성적 경건을 지향하는 경건주의를 초월하는 길이라는 점에서 아주 분명하게 드러났으며, 이런 관점에서 경건주의와 반대된다. 그렇지만 종교개혁의 가르침에서도 각성의 주관주의적 경건을 추구하는 하나의 연속성이 있긴 하다. 종교개혁은 특히 믿음을 통해서 칭의에 이른다는 중심적인 가르침에서 중세기적 참회 예전과 그 문제를 극복하려는 신학적 반성으로 발전되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약속이 성직자의 사죄하는 자리에 등장함으로써 종교개혁은 죄인과 진노하는 하나님 사이에서 중재가 필요하다는 중세기적 요청을 극복하고, 그리스도에게 현재 하는 하나님과 새롭게 직접적인 관계를 맺게 되었다. 동시에 참회 사상은 특별한 예전적 예배의식을 뛰어넘어 확장되었으며, 기독교인의 삶도 역시 모든 점에서 그렇게 강박 되었다. 참회라는 생각은 신앙생활 전반에서 작용하게 되었다. 루터 신학의 이러한 개념은 율법과 복음 사이의 차이점에 대한 루터의 해석에서 독특하게 표현되었다.
이러한 차이점의 표제어는 성서에서 발견될 수 있다. 아직은 어떤 유형의 일치를 보이지는 못하지만 특별히 바울에게서 발견된다. 루터의 견해에 따르면 이러한 두 표제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의 편지에서와 같이, 하나님의 계시 역사에 나타난 상이한 두 시기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기독교적 생활에서 동일하게 작용하는 두 원칙과 연관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참회 예전이나 중세기 교회의 고해* 프락시스라는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율법에 대한 루터의 이해는 고해를 통해서 실행되어야 할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기능과 상응한다. 이 고해가 실행되는 곳에서 사제는 고해를 드리는 이들의 죄를 기억나게 하기 위해서 그들을 책망한다. 루터는 죄를 용서한다는 말씀으로서의 선포와 복음을 고해에서 발생되는 사죄의 말씀이라고 이해했다. 얼마나 많은 개신교 설교자들이 율법적인 설교나 용서하신다는 권고의 설교를 통해서 죄를 들추어내기 위해서, 복음을 받아들임으로써 뉘우치고 있는 죄인들에게 접근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프로테스탄트 전통에서 참회적 신앙이 얼마나 포괄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는 분명해진다. 경건주의는 단순히 이 전통을 계속 유지시키기만 하면 되었다. 경건주의는 인간적인 죄의 비참에 대한 후회 막급한 인식에서 출발해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들이려는 심리적 결과만을 그저 확대시키기만 하면 되었다. 멜랑히톤은 이미 이런 길을 개척했다.

*독일어 Buße(참회)나 Beichte(고해) 모두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Buße는 기독교인이 실질적으로 하나님께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바라는 회개인데, Beichte는 그러한 참회를 어떤 예전적 형식을 통해서 표현하는 행위다. 가톨릭 교인들은 미사에 참여하기 전에 사제 앞에서 고해 성사를 드리며, 그래야만 영성체를 받을 수 있는데, 이들의 행위가 바로 Beichte다.

참회적 신앙심에서 인간의 죄성에 대한 견해가 종교경험의 출발점이라 할지라도 근원적으로 이것이 자기 공격에 대한 표현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 자기 공격은 개인들에게서 그 인격적 정체성을 강탈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반대로 이러한 신앙심의 역동성은 모든 인간적인 권위와 상관없이 기독교인의 자유에서 개인들에게 속한 새롭고 견실한 정체성의 기초를 목표로 했다. 종교개혁은 중세기적 참회 정서의 조건하에서, 그리고 이런 입장의 변형으로서 사실적으로 이런 목적에 도달했다. 그리고 이로써 한 신앙심의 유형이 인간의 경험 세계에 대한 해석을 포괄하는지, 어떻게 역사적 생명세계를 기초하는지 한 전형을 제시했다. 중세기적 참회 정서가 당연한 리얼리티였던 시기에 프로테스탄트의 칭의론이 열어 가는 해방의 능력과 작용은 유효했다. 물론 인격적인 죄성에 대한 의식은 기독교의 자유를 새롭게 형성하기 위해 필요했던 우연하고 역사적인 원인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자유가 작용하기 위해 필요한 조직적인 전제였다. 이로써 이러한 전제가 인간 교육의 변화에 근거해서 당연한 명백성을 상실했을 경우에 경건의 위기를 피할 수 없었던 게 틀림없다. 이러한 변화의 결과에서 하나님의 율법은 거의 위협이 되지 못하는 것으로, 그리고 하나님은 완고한 심판자이기보다는 자상한 아버지로 나타났다. 철저하게 변화된 전제하에서 프로테스탄트의 참회 지향적인 신앙심을 유지하는 것은, 그리고 그런 참회적 신앙심과 연계하여 시도된 율법과 복음에 대한 설교를 익숙한 형태로 지속시켜 나가는 것은 전제된 멘털리티가 침식되는 경향성을 확실하게 보이도록 했다. 이것은 율법과 복음에 대한 설교의 기능이 되었다. 율법 설교는 항상 거듭해서 이런 설교 없이 도대체 가능할 수도 없는 죄의식을 우선적으로 증거했다. 인간에 대한 낙관적 상을 통해서 규정된 일종의 역사적 세계에서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위협을 통해서 죄의식을 증명해보려는 시도가 매우 철저하고 기이할 정도로 추진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죄의식은 인간의 자기 경험에서 더 이상 기초로 인정될 수 없는 것이었으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의지가 사람들에게 실제적으로 그러할 정도로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경험이었다.
인간의 현실성에 대한 편견 없는 경험으로서 유효한 것들과 프로테스탄트적인 신앙심의 전통 형식 사이에 점증하는 틈은 경건주의적 신앙심이 점증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신경증적인 관계에서 설명된다. 기독교 사신은 하나님의 율법이라는 망치로 강력한 충격을 가함으로써 죄의식이 민감해지도록 했다. 이러한 수고가 점점 더 강화됨으로써 기독교가 말하는 자유의 사신은 퇴색되었다. 어떤 조건 없이 허락된 용서를 선포하기 위해서 한 때 전제 조건이었던 죄의식을 보장하는 데 항상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이런 노력으로 인해서 프로테스탄트는 자기의(義)를 위한 특별한 형태를 갖추었다. 훌륭한 프로테스탄트 신자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로 의로워질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다음과 같은 사실에 놓여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세리와 바리새인의 비유에서 자기는 의로운 쪽에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즉 죄인과 세리 편이지, 결코 바리새인 편이 아니라고. 따라서 이 죄의식은 비등점으로 고수되고 있는 게 틀림없다. 이 경우에 훌륭한 프로테스탄트 신자가 이러한 수고로 이미 바리새인의 자리에 앉아있다는 점이 쉽게 간과된다. 프로테스탄트의 자기의는 무조건적으로 선행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결정적인 과업은 자신의 고유한 처지를 제어하고 정상적으로 유지하는 데 놓여있다. 이런 일에 유용한 자기 공격의 사냥개는 물론 아주 간단히 제어 당하지 않았다. 한때 이신칭의론*의 내용을 구성했던, 그야말로 탁월한 자유가 확실하게 변방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현대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은 죄성에 천착함으로써 하나님의 용서가 임한 세리들과의 일치를 확실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죄의식을 주일 예배에 한정시키고 있다. 이런 현상은 죄책감이 오용되었음을 알려준다. 프로테스탄트 신학자들과 교회 지도부는 지난 십 년 간 왜 종교개혁적 이신칭의론이 역동적으로 작동하지 못했는가 하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변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 있다. 변화된 인간론과 변화된 윤리적 입장의 조건 가운데서 루터식으로 해석된 율법과 복음 도식이 낯선 의식의 증거로 견인되었다는 점이다. 기독교 자유에 대한 종교개혁적 이상이라는 기준에서 볼 때 이 결과는 의심의 여지없이 원래의 의도와 상반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회심하라는, 하나님에게 돌아서라는 요청이 현대 세계에서 무의미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완전히 그 반대다. 하나님에게 돌아서라는 요청이 지나치게 강조된 시기를 서양사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하나님에게 돌아서는 것은 오늘 우리 세대에 우선적으로 개인의 도덕성에 대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 도덕성의 문제이기보다는 우선 개인들이 살아가는 삶의 주변에서만이 아니라 사회적 삶에서도 역시 다시 하나님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우리의 일상적 행위를 파악하는 일이나, 또는 우리의 사회적 상황이 갖는 조직망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노동과 휴양에 아무 상관이 없다면, 도덕적 회심은 아주 간단히 부자연스러운 짐처럼 보일 뿐이다. 여기서 말하는 짐이라는 것은 우리의 삶을 요동시키며, 무엇보다도 우리의 감동적인 자기만족에 해당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신경증적으로 착색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만약 회심의 독특한 의미가 완전하고 철저하게 하나님과 연결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대부분의 우리들은 다른 방식으로 이 문제를 시작해야한다. 말하자면 우리는 우리의 일상적 세계가 하나님에게서 벗어나서 세속적으로 해방되는 일이 없도록 우리의 일상적 삶이 취하고 있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우리의 의식을 바꾸어나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에 이러한 회심이 개인을 통해서 달성될 수 있는 게 아니라 사회적 의식과 사회적 문화 자체의 변화를 요청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만 한다. 오늘날 확실히 개인적인 상황이 중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이 상황에서는 하나님을 향한 회심이 우선적으로 삶에 대한 도덕적 진술의 변화를 요청한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들은 우리 시대에 요청되는 회심의 전형적인 형태를 특징화하는 것이기보다는 예외적인 경우다. 일반적인 경우에 도덕적인 생활태도가 아니라 오히려 변화되어야할, 그리고 당연히 도덕적인 생활태도를 포함하는 전체적인 삶의 이해가 핵심이다. 이러한 근본적인 변화는 세계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 그리고 우리가 그러한 해석을 담아낸 자리에 대한 해석이 변화함으로써만 하나님과 그 나라의 존엄이라는 전망에서 도달될 수 있다.

*이신칭의론(以信稱義論)은 전체 개신교회의 신앙적 특징을 드러내주는 개념으로서 인간의 의로움이 믿음과 행위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가톨릭교회와 반대로 오직 믿음만으로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최근에 알려진 바로는 99년10월에 루터 교회와 로마 가톨릭 교회가 합의하기를 구원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루어진다고 했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이런 신학적 합의가 전적으로 개신교회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인간의 업적이라는 것도 사실상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한다고 본다면 여전히 가톨릭교회의 특징이 유지되는 것이다.

설교단에서 외쳐지는 도덕적 회심 설교는 오늘날 생동적인 기독교 신앙심을 갱신시키기 위해서 요구되는 그럴듯한 방식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프로테스탄트 전통의 참회적 멘털리티에 기초한, 그리고 프로테스탄트 설교에서 율법과 복음이라는 도식이 집요하게 존속됨으로써 거듭해서 갱신되는 관찰 방식이다. 그러나 세례를 받은 기독교인이 자신의 죄된 실존을 후회막급 하는 것에만 고착되어 버린다면 이는 교회 안이 아니라 교회 밖에 자리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로써 막연한 죄의식과 자기 스스로 옳다고 생각해서 얻어진 칭의에 대한 믿음이 마귀 떼처럼 강화되는 일이 드물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개인의 삶에 놓여있는 상황에 대한 아무런 증거도 없이 막연하게 일반적인 논조로 설교되는 도덕적 요청의 불가피한 작용이다. 윤리적 규범에 대한 일반적 논쟁은 사회적 삶의 기본에 대한 논의에 속한다. 이런 논의의 뿌리는 결국 종교적이며, 이것은 도덕적 규범의 형태에서만 언급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다. 도덕적 일반성에 대한 강의는 체념 신앙만 확증할 뿐이다. 이 체념은 사람들을 세리라는 인물과의 일치를 통해서 공허하고 비구체적인 칭의 신앙으로 이끌어간다. 칭의 신앙의 쇠퇴를 공허한 종교의식으로 생각하는 다른 전망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가리킨다. 도덕적 회심에 대한 설교는 기독교적인 언어에 담겨야할 신실성을 지속적으로 붕괴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매 주일마다 사람들은 이런 설교를 듣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에 설교자는 자난 주일에 선포된 회심 설교가 교회 공동체에게 온전하게 적용되었다는 느낌을 갖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 경우에 공동체는 단순히 설교의 유형이 중요할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아무도 실제적으로 의미심장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이미 말한 대로 죄책감의 기능과 그것이 기독교적 신앙심으로 생산되는 것에 대한 비판은 순수한 회심의 필연성을 약화시키지도 않으며, 또한 이를 통해서 인간의 죄론을 의문시하지도 않는다. 기독교 신학은 모든 잘못된 생각을 영혼의 질병이라고, 더 정확히 말해서 자기 공격이라고 해석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심리적 진술의 도전은 피해갈 수 없으며, 그럴만한 것은 수용되어야만 한다. 우리는 세례 받은 기독교인이 원칙적으로 죄의 힘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점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비록 우리가 바울이 “육체”라고 불렀던 이기심을 통해서 여전히 유혹 받고 있지만 말이다. 죄에 빠지거나 개인적인 잘못을 범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을 막연하게 일반적인 것으로 주장할 수 없다. 오히려 그 일반성은 공개적인 설교에서 최소한의 일반적인 표현으로 제한 받아야 한다. 기독교회가 자기 집단이 형성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통적으로 거부되고 있는 사안들은 물론 설교로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 이런 경우에 그 기초가 도덕적으로 우선시 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하지만 말이다. 더군다나 기독교 공동체가 자신들의 공동 생활 영역에서 받아들이고 있는 자리를 명확하게 묘사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묘사함으로써 인간적 현실성을 획득하게 되며, 또한 보편적 지평에서 질문할 수 있게 된다. 죄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범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것의 뿌리가 불신앙에 놓여있다고 하더라도, 신학적 죄론은 죄의식의 심리적 진단이 자기 공격에 대한 표현이라는 사실을 확증한다. 이러한 의혹은 죄 개념이 인간의 근본적인 비동일성*에 대한 특징으로 파악되는 경우에만 극복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비동일성은 도덕적 규범을 범함으로써 일어나는 결과이기보다는 근원적으로 모든 도덕적 반성을 가리킨다. 사실상 여기서는 인간 행위의 구조에서 볼 수 있는 일종의 거점이 있다. 그것이 자기 집착과 자기 초월 사이의 긴장을 통해서, 즉 개인의 인간적 동일성을 파괴할 수 있는 그런 긴장을 통해서 특징화된다면 말이다. 동일성은 이미 처음부터 주어진 그 무엇이 아니라 비동일성을 극복함으로써 도달되는 어떤 목표다. 인간의 동일성이 종교적 주제와 밀접하게 연결된다면 인간 상황이라는 특색을 드러내는 근본적인 비동일성을 죄라 일컬을만한 적절한 이유가 주어질 것이다. 인간의 죄성에 대한 이러한 묘사는 자기 공격에 대한 한 예를 제시하는 것이라고 더 이상 비난받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 묘사는 도덕적 규범을 설정하는 대신에 인간 상황을 묘사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바로 참된 자기 동일성이 획득되어야만 할 경우에 극복되어야만 할 인간적 비동일성의 상황이다. 이런 방식으로 기독교적 신앙심의 심리적 비판에 대한 답변이 전반적으로는 가능하다. 그러나 율법과 복음 도식에 대한 전통적 참회 신앙심이 만든 실용의 기초에 대한 답변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프로테스탄트 신앙심에서 이런 도식이 작용하는 한에서 신학과 신앙심이 이러한 심리적 비판에 반대 의견을 제기할 수 있는 기회는 별로 없다. 또한 이러한 토양에서 신경증적 신앙심의 경우들이 거듭해서 제시된다는 사실을 예견하는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비동일성(非同一性)은 독일어 Nichtidentität의 번역인데, 비정체성이라고 할 수도 있다. 판넨베르크는 기독교가 인간의 죄책감을 지나치게 심리학적으로 해석하고 접근하기 때문에 결국 인간의 동일성을 훼손시킨다고 진단한다.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도덕적 약점을 불안하게 생각하고 끊임없이 그러한 도덕적 규범을 완성시켜 나가는 일에 신경증적으로 매달리게 한다면 해방과 자유를 지향하는 기독교의 구원론과 거리가 먼 일종의 인간론적 왜곡인 셈이다.

전통적인 참회 신앙에 전제되어 있는 것처럼 인간에게서 율법과 명령에 대한 생각이 인격적 죄책과 죄의 느낌을 적게 상기시키면 시킬수록 율법과 복음 도식으로 행해지는 참회 설교는 기독교 신앙을 위한 도구로서는 더욱 축소될 것이다. 인간에게 참된 인격적 일치성이 결여되었다는 점이 분명하다 할지라도 이것 때문에 인간에게 기독교 사신이 필연적으로 요청된다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오늘날 인간들에게는 여러 다른 사신을 통해서 삶의 의미를 충만하게 열어갈 수 있다는 약속이 눈앞에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의 스펙트럼은 기독교가 제공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풍부한 종교적 방식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신경증적 죄책감의 생산과, 또한 양심의 충격을 불러내는 일의 전력에 대해서 재검토하지 않는다면 율법에서 복음으로 다가갈 수 있는 직접적인 길이 그 어디에도 없다. 더구나 기독교 전승의 해석력은 세상에서 인간 규정과 그 상황을 해석한다는 점에서 타종교와 비종교적 의미 제공과 경쟁적인 관계에 서야만 한다. 이런 상황에서 전통적 참회 신앙심은 프로테스탄트 신학과 영성에 오랜 역사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쳤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대의 불안과 갈망에 적합한 신앙적 형식을 충분히 야기하는 데에는 거의 쓸모가 없다. 여기서 말하는 신앙심은 기독교적 자유의 영을 신실하게 구체화할 수 있는 것을 말하며, 또한 복음 선포가 역사를 통해서 그 신앙심의 길을 거듭해서 동기화하고 이끌어왔던 것을 가리킨다.
이런 부정적인 판단은 우리가 개신교의 이신칭의론을 포기해야한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후기 중세기적 참회 신앙심과 맞서서 이 이신칭의론은 죄와 죽음의 세력에 대한 기독교적 자유를 매우 역동적으로 생산했다. 또한 모든 인간적 권위에 대한 독립성도 역동적으로 만들었는데, 이 독립성은 하나님의 약속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강력하게 만들고 능력적으로 만든 것이다. 그렇지만 참회적 신앙심의 언어가 기독교적 자유의 개념에 대해서 시간적으로 제한적인 옷에 불과했다는 점을, 그리고 그 여파가 그 후로 자주 제한적이었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만 한다. 이 사실은 특별히 이신칭의에 대한 루터의 개념이 귀착하게 된 사실주의에서 두드러졌다. 이 개념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사실적으로, 그리고 ‘신비롭게’ 참여한다는 루터의 환상에 더 이상 착근되지 못했을 때 그렇게 되었다. 엑스트라 노스 인 크리스토(우리 밖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된 칭의를 신뢰한다는 것은 믿는 자가 죄인으로서 자기 자신에게 현존한다는 점을 전제한다. 칭의를 ‘법적으로’ 이해하고 접근하는 경우에 믿는 자가 자기 자신의 구원을 희망하려면 자기를 죄인으로 간주해야하며, 또한 계속적으로 그런 경험을 유지해야만 한다. 이로 인해서 자기를 자기 자신 안에 내재하는 죄인으로 바라보는 경험과 자기 밖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를 바라보는 경험 사이에 놓이게된 틈으로 인해서 믿는 자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일치된 개념을 획득할 수 없었다. 여기서 말하는 이 개념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변화된, 지속적인 생명의 역사에 토대를 놓을 수 있었던 그것을 말한다. 이 역사는 세례를 받음으로써 시작되는 사건이다. 이러한 연속성 대신에 믿는 자는 순수하게 법적인 칭의론이라는 의미에서 항상 거듭해서 자신의 타락한, 그리고 죄에 물든 본성에서 돌아서서 그리스도의 약속을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는 의로움을 향하도록 강요받고 있다. 따라서 이미 명백해진 것처럼 자기의(義)와 위선에 대한 프로테스탄트적인 형태들이 무성하게 되었다. 칭의론을 전제하는 것과 고유한 죄성에 대해서 깊이 통회하는 경험은 율법적 설교를 통해서 상당할 정도로 생산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참여함으로써 기독교인이 자유로워진다는 종교 개혁의 중심 사상은 참회적 신앙심을 벗어남으로써만 보장될 수 있었다고 말이다. 오직 이럴 경우에만 믿는 자는 종교개혁적 교리강습이라는 전제가 소멸됨으로써 믿는 자로 하여금 기독교인다운 인격적 자기 정체성을 형성하지 못하게 하는 자기 공격의 경험을 피할 수 있다. 만약 소외되었던 생활방식이 구원받았다는 기쁨과 해방하는 영의 새로운 표명이 우리에게 요청된다면, 니체는 자기가 만났던 기독교인 중에서 이런 것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조롱한 바 있는데, 전통적 참회 신앙심과의 결별이 불가피하듯 기독교적 신앙심과 생활태도에 대한 새로운 형식을 찾아보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로 불가피하다. 이에 대한 설명은 다음의 두 강의에서 다루어질 것이다.

보충강의(1986년)

앞서의 내용은 1976년에 강의한 것이었다. 프로테스탄트의 참회적 신앙심에 대한 나의 비판적 분석은 그때나 십 년이 지난 지금이나 본질적인 면에서 변함이 없다. 물론 오늘날 이러한 신앙적 유형은 광범위한 해명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 부언 되어야만 한다. 다른 현상 형식으로 번역함으로써만, 예를 들어 앞으로 4장에서 언급하게될 정치적 설교나 신앙심의 형태로 번역하는 것인데, 이런 신앙 형식은 여전히 나름대로 광범위한 흔적을 남길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신앙적 형식이 우선적으로 강하게 작용된 복음주의 운동은 전통적 참회 신앙심의 협착과 강압을 극복하고 기독교적 부활 신앙의 기쁨에 더 많은 공간을 제공해보려는 시도를 다층적으로 전개했다. 교회의 설교와 신앙생활에서 볼 때 인간적 생활태도의 규범과 관계된 모든 질문에 대한 일종의 거대한 불확실성이 오랫동안 율법 설교의 위치로 들어선 것 같다. 이것은 윤리적 성향의 개념이 극단화되어 있는 정치적 질문과는 다르다. 인격적 생활태도의 영역에서 도덕적 규범이 파멸되는 경우에 일종의 보상 기능이 이런 극단화에서 발생된다. 도덕규범에 대한 의식의 불확실성은 프로테스탄트와 조우하는 경우에 최소한 부분적이나마 전통적 참회 신앙심과 그 도덕주의가 신실하지 못하다는 결과를 빚는다. 여기서 생성된 진공 상태에서 이것은 오래 지탱될 수 없으며, 또한 다음과 같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즉 새로운 도덕성으로 기대된 방향 전환은 습관적인 전형에 맞아떨어지는 일종의 반동 형식만을 철저하게 담아낼 것이라고 말이다. 따라서 이 순환이 성취되기만 하면 곧 지난날의 도덕을 붕괴시킨 문제들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이런 순환의 절망으로부터 도덕적 삶의 형태가 새롭게 기초를 다질 수 있다. 필연적으로 다른 삶의 형태를 발전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삶의 태도에 새로운 기초를 놓는 방식으로 말이다. 무엇보다도 전통적으로 그랬듯이 도덕의식과 참회적 신앙심의 밀착은 이런 것들과 불가분리로 연결되어 있는 문제들이 새롭게 야기되지 않는 경우에 두 말 할 것도 없이 생명을 유지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이 문제들이라는 것은 상당할 정도로 전통적이며 도덕적인 입장을 붕괴시키고 있는 것들을 뜻한다. 교회는 물론 기독교적인 생활 질서나 참회와 교회법규의 창설을 포기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러한 과업을 새롭게 풀기 위한 길은 아마도 공허한 의식으로 고착되어버린 참회적 신앙심이 붕괴됨으로써만 촉진될지 모른다.


1) 이에 대해서는 다음의 졸저를 참조할 것. Anthropologie in theologischer Perspektive, 1983, 278ff., 286ff.
2) Friedrich Nietzsche: Genealogie der Moral Ⅱ, 16 (1887), 콜리와 몬티나리 편, 니체 전집 6권의2, 1968, 337ff.; 특히 3-6과 8번을 참조할 것(앞의 책 310-318, 321f.).
3) 앞의 책 Ⅱ, 20(346, 141f.).
4) Genealogie der Moral Ⅲ, 21 (410).
5) Sigmund Freud: Totem und Tabu Ⅲ, 4.
6) F. Nietzsche: Genealogie der Moral Ⅱ, 19(343f.).
7) S. Freud: Totem und Tabu Ⅱ,4.
8) J.A.G. Tholuck: Die Lehre von der Sünde und vom Versöhner, 1823(톨룩 전집 1권, 1862), 296.
9) 이에 대해서 다음을 참조할 것. W. Joest: Ontologie der Person bei Luther, Göttingen 1967, 233-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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