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114 히브리서 2장.hwp

 

네,  오늘  히브리서 2장입니다. 1, 우리가 지난번에 14절까지 있는 것을 봤고요. 오늘은 조금 기네요. 18절까지 있습니다. 원래 성경은 장과 절이 없었어요. 나중에 학자들이 읽기 편리하기 위해서 나눈 겁니다. 나눈 게 정확하게 나눈 부분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고 하긴 해요.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오늘 2장이에요. 히브리서 기자가, 이 사람은 사도 바울이라고 할 수 없고 사도 바울의 영향을 받은 어떤 사람, 신학 성경, 구약도 대게 그렇습니다만 저자를 우리가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옛날에는 자기 이름으로 책을 쓰지 않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리고 이런 것들이 개인이 쓰기도 합니다만 초기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형성된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신약이 아니라 구약도 마찬가지에요. 시편이 보통 다윗이 기록했다고 그러지만 실제적으로 다윗이 한 건 아니고 그러한 신학적 전통을 가진 유대인들, 역사 안에서 형성된 거다 그렇게 보면 되겠습니다. 2장 오늘 볼 텐데요. 이 히브리서가 약간 지루한 책입니다. 세밀하게 우리가 잘 파고들지 않으면 좀 낯설어요. 구약이 많이 인용되고 있고요.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삶하고, 복음서는 그래도 좀 낫긴 합니다만, 그리고 바울의 다른 서신들, 로마서라든지 이런 것들은 굉장히 구원의 문제, 의로움에 대한 문제들이 강력하게 표현이 되어 있잖아요. 그렇데 이거는 조금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치가 떨어진다고 하는 것은 아니고요. 약간 색다른 책입니다. 자 그러면 오늘 본문을 같이 읽으면 좋겠습니다. 교독하겠습니다. 제가 먼저 1절 읽겠습니다.

 

1.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2.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3.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4.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

5. 하나님이 우리가 말하는바 장차 올 세상을 천사들에게 복종하게 하심이 아니니라

6. 그러나 누구인가가 어디에서 증언하여 이르되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7. 그를 잠시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시며

8. 만물을 그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만물로 그에게 복종하게 하셨은즉 복종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어야 하겠으나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그에게 복종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10.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11.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12.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13. 또 다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하시고 또 다시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셨으니

14.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16.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17.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18.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오늘은 간단하게 A4용지 한 장으로 공부할 내용을 여러분들에게 문건으로 드렸습니다. 참고하시면 되겠어요. 1절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우리는 들은 것에 대해서 좀 생각을 하자, 들은 것, 들은 것은 구약입니다. 율법이에요. 초기 기독교는 그 당시에는 신약성경이 없었습니다. 기독교가 시작 할 때요. 상당한 시간 동안 없었어요. 당연히 그 사람들은 구약성경을 보고 살았습니다. 들은 것, 그런 거 율법에 열심히 좀 하고, 그리고 그거는 제가 좀 다시 한 번 확인을 해야 되겠네요. 다음 주에 제가 좀 더, 지금 말씀드려야겠네요. 집에서 읽고 할 때는 율법으로 생각을 했는데 다시 읽다 보니까 아닐 수도 있는 생각이 드네요. 그러니까 히브리서를 읽어야 될 사람들이, 그 교회 공동체가 이미 예수 그리스도 대한 것을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걸 가리키는지 아니면 정말 율법을 가리키는지, 제가 약간 혼란이 돼서요. 그 정도로 접어 두겠습니다. 이거 다 끝마칠 때쯤 정확하게 생각이 나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쨌든 여기서 들은 것, 하나님의 말씀이죠. 그것을 잘 유념해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다. 흘러 떠내려간다는 것은 부화뇌동한다, 왔다갔다, 그렇게 한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유지하지 못하는 거죠. 이게 쉽지 않습니다, 사실은. 이게 구약에서도 유대인들이 열심히 하려고 노력을 했는데 잘되지 않는 거예요. 그 이유가 여러 가지 있습니다만 가장 핵심적으로는 두 가지로 말씀드릴 수 있어요. 일단 들은 것, 이것을 실질적으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우리 일상생활이 너무 여러 가지로 복잡하기 때문에 들은 것,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 그 안에서 서 있기가 쉽지 않습니다. 쉽게 말해서 마음은 원이지만 육신은 약하다는 그런 말이 될지 모르겠어요. 이게 쉬운 게 아닌 겁니다. 이게 쉬운 거라면 그렇게 말할 이유가 없죠. 잘 붙들고 있어라. 이런 것들이 상투적인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붙든다고 하는 게 많이 읽어라, 그런 얘기일수도 있고요, 그 말씀대로 서라, 그런 얘기일수도 있어요. 그게 아주 사소한 것 같지만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렇게 비유를 들 수 있을까요? 초등학교 1학년 들어가서 아이들이 한글을 배우잖아요. 지금 뭐 다 배우고 들어가는 경우가 많겠습니다만. 어쨌든 1학년 들어가서 공부할 때 선생님 따라서 어머니, 아버지, 바둑아 이리 오너라,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 단어, 문장 하나하나 바로 서는 거죠. 그러한 방식을 통해서 사물의 대한 이해도 더 넓어지고 어떤 문장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도 커지고 합니다. 신앙도 비슷한 거거든요. 우리가 수요일 공부하는 것도 그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거죠. 그러한 한 걸음 한 걸음 그 세계에 들어감으로써 기독교 영성을 맛볼 수 있습니다. 그런 과정이 없으면 불가능 합니다 기본적으로.

 

2,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건 율법이 확실한 거예요.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그러니까 그 안에 전통이 된 거에요.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율법을 받지 않았습니까? 그 때에 천사가 거기 역할 했다. 이렇게 유대인들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여기 2장에도 천사에 대한 이야기 많이 나와요. 1장에서도 많이 나왔습니다. 천사들을 통해서 이제 모세가 율법과 십계명, 그런 것들을 받아서 그것이 유대인들에게 하나의 전통으로 굳건하게 서게 됐습니다. 그런데 범죄함과 순종하지 않음으로 공정한 보응을 받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따르지 못하고 순종하지 못해서 거기에 대한 벌, 책임, 그걸 당하게 되었다. 간단한 이야기들입니다. 제가 드린 유인물을 보시면, 2절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받은 대가를 예로써 몇 가지 들었어요. 바벨론의 포로, 로마 식민으로 떨어진 것들, 그리고 각종 고난들, 이런 것들이죠.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따르지 않고 순종하지 않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난다, 그렇게 해석을 한 겁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고난과 이런 것들이 무조건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계적으로 말 할 수 없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도 많아요, 사실은요. 사건 사고도 많고 이렇게 저렇게 인생살이가 엮여져서 하나님 말씀을 바로 순종한다고 하더라도 어려운 일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기자는 전체 흐름에서 볼 때, 전체 큰 틀에서 볼 때, 하나님 말씀에 바로 서지 못하게 됨으로써 유대인들이 이러한 일을 당하게 되었다.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그건 뭐 틀린 이야기는 아니죠.

 

3, 그런데 율법에 관계는 그렇고요.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율법을 바로 순종하지 못함으로써도 그러 한 징벌과 책임, 어려운 일을 당했는데 하물며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떻게 되겠냐, 더 심각한 것 아니냐 그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큰 구원이라고 얘기했어요. 구원이 큰 게 있고 작은 게 있지는 않습니다. 중요하다 그런 뜻이죠. 초기 기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얻게 된 구원을 가리킵니다. 조금 더 여러분들이 구원이 뭔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말은 그렇게 자주해요. 구원 받았다, 구원 얻어야 된다. 이렇게 저렇게 말을 하는데 실질적으로 구원이 잡히나요? 제가 앞에서 찬송가 부를 때 말씀드린 것처럼, 주님께 찬양한다고 할 때 주에 대한 생각이 어떠냐 했잖습니까? 그 질문을 여러분들이 자꾸 하셔야 되는 거예요. 근본에 대해서는 아는 것 같아도, 사실 근본은 다 끝나지 않은 거예요. 종말까지 가기 때문에 여러분 질문을 하셔야 됩니다. 주님이란 것도 그렇고 지금 구원이라는 것도 그런 거예요. 구원이 뭔지를 설명하라고 하면 간단히 교리적으로는 설명할 수 있습니다. 예수 믿고 죽어서 천당 가는 것만 아니라 살아서 평화를 누린다,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삶의 기쁨을 누린다.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상당히 관념적인 거예요. 틀렸다는 게 아니고 옳은 이야기인데 그것이 더 실질적인 내용으로 보충 되어야 합니다. 그건 세상 끝 날까지 계속 보충되어질 거예요.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실 겁니다. 그냥 한 말씀만 거기다가 생각을 그런 쪽으로 하시라는 차원에서 도움의 말씀을 드리면 이렇습니다. 기본적으로는 그게 생명에 관계된 문제에요. 과연 인간의 생명이 뭐냐, 삶이 뭐냐, 그거를 이해하는 게 깊어질수록 이 구원에 문제도 더 깊어지게 됩니다. 만약에 인생살이가 잘 먹고 잘 사는 거다, 그런 정도로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늘 구원을 그런 차원으로 생각하게 될 거예요. 그래서 죽어서도 하늘나라에 가서 여기서 우리가 잘 먹고 잘 살듯이 그런 걸 머릿속에 넣게 된다면 그 사람은 그런 정도 수준에 떨어지게 되고 말겁니다. 그런데 생각이 좀 있는 사람들이나 등등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잖아요. 철학에서도 여러 가지를 많이 얘기 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제가 이 시간에 그것을 더 구체적으로 드리려고 하는 것은 아니고요. 질문하자, 구원이 뭐냐 그런 것들에 대해서 질문을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시라 그 뜻입니다.

 

3절입니다. 중반부터 보겠습니다.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 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내용은 간단하죠. 예수님 말씀 하신 거고요. 그리고 들은 자들이, 이들은 누구일까요? 들은 자들은. 당연히 제자들이죠. 사도들, 초도 기독교 1세대나 2세대 그러한 사람들이죠. 그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거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들은 자들이 전해준거다. 기독교 신앙은 이렇게 누가 기도를 많이 하고 갑자기 번쩍, 이렇게 깨달음이 있어서 들어간 게 아니라 역사에요. 그러니까 예수가 말한 내용, 바실레이아, 하나님 나라, 그분이 그 얘기를 어떻게 했느냐, 말씀하신 거와 구원이 연관되는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 이제 안계시니까 예수님을 본 사람들, 직접 만난 사도들, 이 사람들이 뒤에 전한 거잖아요. 계속 여기까지 내려오게 된 겁니다. 그러니까 그건 역사죠 흘러 내려 온 것. 이것을 소상하게 따라가는 게 신앙에서 중요한 거예요. 복음서에 어떤 얘기가 기록되어 있는지 사도들이 어떤 얘기를 했는지 그 뿐만 아니라 어거스틴이나 루터나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쭉 역사를 거쳐서 이야기 하고 있잖아요. 그런 것을 아는 게 기독교 신앙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겁니다. 그래서 공부하는 게, 배우는 거죠. 신앙에서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렇게 분명히 얘기하잖아요. 주로 말씀하신 거고 또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해 준거다.

 

4, 하나님도 표적과 기사와 여러 가지 능력과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 굉장히 단어들이 좀 복잡하죠. 표적, 기사, 능력, 성령이 나눠 주신 것, 이런 게 나와 있습니다. 굉장히 복잡한 이야기라서 다 따라가기 힘듭니다. 그 당시에 이 사람들이 어떤 뜻으로 썼는지 우리가 그대로 정확하게 알기는 힘들어요. 다만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것, 그리고 제자들이 후세대에게 전해 준 것, 그러한 역사적인 과정을 통해서 이 구원의 문제가 지금까지 내려오게 됐는데 그러나 그런 것으로만 끝나지 않고 그 모든 것들은 다 성령의 활동이시다, 성령의 역사이시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거기까지가 한 패러그래프가 되겠습니다. 여러분들 가지고 있는 성경에도 4절까지가 한 묶음으로 되어 있죠? 큰 구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5, 조금 주제가 바뀌면서 얘기가 나옵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말하는바 장차 올 세상을 천사들에게 복종하게 하심이 아니니라. 다시, 하나님이 우리가 말하는바 장차 올 세상을 천사들에게 복종하게 하심이 아니니라. 천사들이 나와요. 몇 번 나옵니다. 2절에서도 천사가 나왔고요. 천사라고 하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날개달린 어떤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생각하지 않습니까. 성경에는 천사라고 표현이 되어 있고 또 주의 사자, 이렇게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보이는 날아다니는 천사, 날개가 있는 어떤 존재를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문학적인 표현, 그렇게 하면 약하고요. 신학적인 상상력에 근거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뜻을 우리들에게 알려 주는 어떤 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게 천사에요. 지금 제가 말씀드린 것 기억 할 수 있으세요? 유대인들은 이렇게 생각한 거예요. 하나님의 뜻은 사람에게 와야 되잖아요. 그래서 성경도 기록됐고 많이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그냥 연결 되지 않는 거예요. 헬라 철학에서는 제우스의 뜻을 인간에게 전해주는 신을 가리켜서 헤르메스라고 했어요. 그런데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뜻을 사람에게 전달해주는 그 어떤, 보이지 않으나 분명한 힘을 가진 어떤 이를 가리켜서 천사라고 얘기한 겁니다. 거기서 우리가 헷갈릴 수 있어요. 천사라고 하는 낱말이 있으니까 자꾸만 구체적으로 생긴 어떤 것을 생각을 하는데 그건 아니고요. 그렇다고 해서 허황된 것, 확실하지 않은 건데 말만 붙인 거다 이렇게 생각을 해도 안 되고요. 그러한 완전히 우리하고 다른 초월적인 어떤 존재의 그 뜻이 인간에게 알려지는 그 사건, 그걸 가리켜서 계시라고 하는데요. 하나님의 자기의 뜻을 알린다고 하는 것, 거기에는 그냥 되지 않는다고 하는 어떤 시각이 있는 거예요. 거기에는 사람의 어떤 인식이 굉장히 좋아서, 지적으로 굉장히 날카로워져서 알아 낼 수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자신의 뜻을 인간에게 알리는 거기서 있어야만 하는 하나님의 힘, 알리심, 그걸 천사라고 표현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 천사에 대한 유대인들의 생각이 많았어요. 굉장히 그런 것에 대한 생각들이 절절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천사라고 생각을 한 기독교 집단들도 있었어요. 이단이라기보다도 천사는 초월적이니까, 뛰어나니까, 능력이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천사쯤으로 생각을 한 거죠. 초기 기독교는 그것을 받아들였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천사가 아니라 인간이라고 하는 것을 강조한 거예요. 천사를 강조한 것은 영지주의하고 연관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안에도 사실은 영지주의, 신비롭게 뭔가를 안다, 영지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상들의 영향을 받은 것들이 나오기는 합니다만 초기 기독교는 굉장히 건강 했어요 이런 면에서. 굉장히 신비스러운, 비밀스러운 것을 이야기하려고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신비이고 비밀이지만 그것을 조금 아까 얘기한 전문적인 용어로 영지주의, 천사론, 이런 쪽으로 가지 않고 대단히 역사적이었어요. 그래서 예수님을 인간으로 꾸준하게 밀고 나갔어요. 물론 예수님이 인간만은 아니죠. 인간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이라는 긴장을 쉽게 해소 시키지 않았어요. 계속 붙들고 있었습니다. 5, 그런 걸 바탕으로 해서 천사 이야기가 나온 겁니다. 천사 중요한 게 아니다. 천사들에게 복종하게 하심이 아니라고 얘기 했잖아요.

 

6, 그러나 누구인가가 어디서에서 증언하여 가로되 거기서부터 구약이 많이 인용되고 있어요. 6절부터요. 사람이 무엇이기에, 계속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각주에 보면 시편 84절 이하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사람과 인자, 이건 뜻은 다르지만 지금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뜻하는 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7, 재밌어요. 그를, 그는 누구죠. 여기 나오는 사람과 인자인데 예수 그리스도에요. 그를 잠시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고 그 잠시라고 하는 단어에도 각주가 붙어 있습니다. 조금 이렇게 표현되어 있어요.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시며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초기 기독교에서 어떤 파가 예수님을 천사로 생각하려고 했던 것은 굉장히 믿음이 있었던 거예요. 예수님의 우월성, 어떤 초월성을 강조하려고 했습니다. 천사가 우월하잖아요, 사람보다. 날아다닐 수도 있고 예를 들자면 선지, 뭘 미리 내다 볼 수 있고 말이죠. 어떤 영향을 받지 않잖아요. 배고프지도 않고 그렇지 않습니까. 신적인 어떤 속성을 가진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초기 기독교는 예수님을 그런 쪽에 가두어 가지고 쉽게 처리하지 않고 계속 인간이라고 하는 사실을 붙든 거예요. 그런데 실제로 보면 인간과 천사를 놓고 볼 때 누가 더 뛰어나요. 천사가 당연히 뛰어나죠. 그걸 해명하고 있는 겁니다. 당연히 인간으로서의 예수는 천사보다 못하다. 외롭기도 하고 인간의 희로애락 다가지고 있으니까 말이죠. 예수님의 인간성, 그 긴장을 유지하면서 그래도 그걸 설명하는 거예요. 잠시 동안 그렇게 된 거다. 잠시 동안이라고 하는 것은 어느 동안일까요. 예수님이 살아 계신 공생애 동안이죠. 그리고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셨다. 예수님의 부활, 예를 들자면, 그걸 통해서 예수님에게는 천사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그러한 영광과 존귀의 그 분이 되셨다고 하는 거죠.

 

그래서 8절에 보면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5절에 보면 천사들에게 복종한 게 아니라고 얘기했고, 이건 여러분들 머릿속에 구도를 보고 말씀을 읽으셔야 합니다. 예수님이 천사다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고 아니다 인간이다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데 거기서 이것을 교통정리하고 있는 겁니다. 예수님의 순전한 인간성을 조금이라도 약화시키려고 했었던 영지주의나 천사론 주의자들, 이런 사람들의 입장이 옳은 게 아니다 그걸 말하려고 하는 거죠. 8절에 보면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셨다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만물이 복종을 하면 복종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어야 하겠으나, 참 이 히브리서 기자가 친절하게 설명을 하네요. 그리고 어렴풋하게 얘기하지 않죠. 아주 정확하게 얘기 하는 거죠. 이게 눈에 들어오시죠. 그리고 애매하게 넘어가지 않습니다. 만물이 그에게 복종해야 되는데 그게 실제로는 아직까지 만물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복종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죠. 8절 후반절에 정확하게 지적을 하고 있어요. 그렇잖아요. 여전히 예수 믿는 사람도 고난당하고 힘들고 죽고 세상에 악이 있고 계속 세계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고 있지 않다고 하는 것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그걸 그냥 어렴풋하게 지나가지 않고 정확하게 짚고 있습니다.

 

9,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죽음의 고난, 십자가죠. 죽음의 고난을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죽음을 통해서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영광과 존귀, 이런 말들도 굉장히 관념적이죠. 손에 들어오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이거를 하나님의 빛, 하나님의 광채, 이렇게 표현 많이 해요. 하나님의 현현,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이런 게 다 영광이라고 하는 단어에 들어 있는 뜻들입니다. 혹은 하나님의 얼굴, 이렇게도 얘기할 수 있고요. 하나의 은유 방식으로 성경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데 그걸 좀 더 확실하게 이야기를 한다면 영광과 존귀라는 것은 궁극적인 생명의 사건이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영광과 존귀, 아주 궁극적인 생명으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렇게 되어 있는 거예요.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여기서 십자가와 구원, 십자가와 영광이 연결되고 있습니다. 보세요. 영광은 승리죠. 정말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에요. 십자가는 실패에요. 고난이고 이건 누구라도 다 피하고 싶은 거고요. 이 세계는 아직까지도 십자가의 모습들이 많이 있는데요. 여기서 기독교 신앙의 어떤 비약, 뭐가 좀 필요합니다. 생각의 비약,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 거예요. 그러니까 천사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자꾸만 초월적인 능력자로만 보아요. 그렇게 또 보려고 했어요. 지금도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에 죽었다는 사실을 굉장히 중요한 예수님을 이해하는데 핵심요소로 이해하고 있어요. 그거는 실질적으로 실패입니다. 그거는 고난이고 말이죠. 천사는 죽을 수 없어요. 그러나 인간이기 때문에 그렇게 당하셨는데 오히려 천사들은 죽지 않고 배고프지도 않고 초월적인 능력이 있고 그 방식으로는 영광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역설적인 거예요.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십자가를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썼다 이야기 하고 있잖아요. 그건 우리가 알고 있는 용어로 하면 부활입니다. 예수님에게 일어나 사건을 가리키는데 그게 연결이 되시는지 모르겠어요. 하나님의 주권적인 행위였습니다. 거기에 우리의 운명을 걸고 사는 거죠.

 

그 다음 10,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래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해서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그러니까 천사는 인간을 구원할 수 있어요 없어요? 당연히 없죠. 죽을 수 없는 존재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서 죽으셨고요. 하나님이 그 예수 그리스도를 영광과 존귀의 관으로 씌우셨기에 그리고 마찬가지로 다시 돌아가서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을 살리신다, 구원하신다, 그렇게 온전하게 하신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는 그러한 기독교의 기초 교리입니다. 그것을 이제 성서가 반복해서 말을 하고 있고요. 우리가 그것을 좀 따라가고 있는 중입니다. 11,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여기서 거룩하게라고 하는 것은 하기오스, 그러한 단어인데 구별되었다는 뜻이에요. 성서 주석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11절은 어떤 제사 행위와 연관된다고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왜 구별되느냐. 여러분들 강의 요약문 잠깐 보실까요? 11, 이렇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거룩하게라고 하는 말은 구별시켰다는 뜻이다. 세상 것들은 모두 지나가고 말지만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신 예수와 그를 믿는 자들은 거기서부터 구별된 것이다.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별되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는 제자들을 형제라고 불렀습니다. 11절에 설명하고 있는 그대로에요. 그 다음 12, 12절에 이제 시편을 인용해서 다시 한 번 형제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13절에서도 계속해서 시편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14, 자녀들은, 형제와 비슷한 차원의 의미에요.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혈과 육, 피와 살인데요. 그냥 인간의 구체적인 형체를 가리켜요. 사람을 가리키는 겁니다.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때동안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내심은 앞에 있는 이야기하고 좀 비슷한 반복입니다. 똑같이 인간으로서 고난과 죽음을 받으셨다는 그러한 뜻이죠. 혈과 육을 함께 지내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표현이 좀 재밌죠. 죽음을 통해서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우리가 알듯알듯한데 확 들어오지는 않을 겁니다. 죽음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가리키죠.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를 멸했다. 대충 그러려니 생각하면 되긴 하겠지만 과연 뭘까요? 다시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이것도 기본적으로는 예수님의 부활을 전제하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게 하나의 공식하고 비슷한 건데 이런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어요. 그건 이제 죽음의 세력한테 굴복 당하신 건데 결국 예수님도 천사처럼 초능력이 있어 가지고 십자가에 달렸다고도 용케 풀려나서 하늘로 올라가는 성경의 기록처럼 확실하게 죽은 거예요. 그러니까 죽음의 세력에 굴복 당한 건데, 무너진 건데. 하나님이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고 하는 거예요. 그걸 전제한다면, 부활이 뭐냐 지금 다시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이걸 전제하게 된다면 앞으로 죽게 될 모든 사람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부활, 생명의 세계에 참여하게 되는 겁니다. 그 공식은 이해하시겠죠. 그렇다면 결국 마귀를 멸한 거죠. 죽음의 세력이 무너진 거죠. 그런데 이것은 부활이 뭐냐 이런데 까지 더 이야기가 돼야 되는데 그건 오늘 주제는 아닙니다. 이미 그런 것들을 전제하고 하는 말이에요. 제가 830분까지 하겠습니다.

 

그 다음 15,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부활 생명을 얻는다는 확신, 믿음, 그런 게 있다면 죄와 죽음으로부터 당연히 자유로워 진거죠. 종노릇하는 것에서부터 풀리는 거죠. 16,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하심이 아니요. 천사 많이 나오죠. 그 때 당시 천사론 주의자들이 많았다는 얘기예요. 그건 굉장히 매력적인 거예요. 그렇잖아요. 내가 뭐 신기한 거 봤다 요즘에도 많이 기독교 신앙이 그렇잖아요. 환상 봤다 이런 쪽으로 생각하지 않습니까? 비슷한 것들이에요. 그게 아니다. 천사를 붙들어 주려하심이 아니라 구체적인 인간이다. 아브라함의 씨, 아브라함의 후손들, 혈과 육을 가진 그런 나약한 사람들이다. 그걸 붙들어 주려하심이라 되어있습니다. 17, 그러므로, 거의 결론에 갑니다. 그가 범사에, 그는 누구죠?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 그가 범사에 모든 일에 형제와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천사가 아니라 인간이다. 인간처럼 되어야만 하는 게 당연하다. 그래야만 구원이 가능하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하심이라. 대제사장,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제사 행위를 통해서 하해를 가능하게 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을 대제사장이라고 하는데 구약적인 용어로 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일을 설명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우리랑 똑같이 죽었어요. 그게 천만다행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를 믿음으로 이제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에게 일어난 부활 생명에 참여한다고 하는, 그러니까 대제사장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화해시켜주는 분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옳다 그 얘기죠.

 

마지막 18,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계속 반복해서 나오죠.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우리와 똑같이 그렇게 사셨다는 이야깁니다.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여기까지입니다. 이게 여러분들 쭉 공부하면서 봤듯이 천사주의자들과 대립되는 것을 볼 수 있죠. 예수님을 초월적인 능력이 있는 천사로 생각하려고 했던 사람들에 대한 하나의 반론으로써, 단순히 그들에 대한 반론만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중심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어쨌든 천사에 대한 호감, 이런 걸 많이 가지고 있던 사람들에게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되심, 혈과 육을 지니심으로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대제사장이시다. 그걸 얘기하는 겁니다. 그러면 제가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오늘 히브리서 2장을 같이 공부했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의 신앙 그 과정에서, 한발 한발 나아가는 그 길에서, 귀중한 디딤돌이 되도록, 영적인 소양이 되도록 인도해주십시오. 예수님이 천사가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사셨기에 죄와 죽음가운데서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우리들을 구원하셨다는 그 놀라운 고백, 그리고 증언을 저희들이 듣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다 인도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며 또 지금도 주관하시는 분이 성령이신 줄로 믿습니다. 2015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금년 마칠 때까지 우리의 삶을, 특별히 신앙의 삶을 주님께서 인도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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