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다양성 안에서의 일치   (16:1-27)

              
서간 형식을 갖춘 고대 문서치고는 상당히 장문에 해당되는 로마서가 이제 마지막 단락을 맞이했습니다. 15장까지 바울은 자신의 목숨을 담보한 예루살렘 입성을 앞둔 처지에서 숨 가쁜 필치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해명한 후, 이제 16장에서 마음을 비운 상태에서 두루두루 인사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16장 전체가 바울의 진술은 아닙니다. 21-23절은 인사를 전하고 싶은 사람들과 이 편지를 대필하는 사람의 이름이 망라되어 있고, 24절은 그 진정성이 의심되기 때문에 사본에 따라서 누락되기도 했으며, 25-27절은 문체가 기본적으로 바울의 것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앞 부분과 구별됩니다. 오늘 우리는 주로 바울이 개인적으로 거명하고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그 당시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특성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겐크레아 교회의 페배
로마 기독교인들에게 바울이 가장 우선적으로 추천하는 사람이 고린도의 동쪽 항구 도시인 겐크레아 교회에서 활동한 여성 지도자 페베입니다(1,2절). 신약성서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이 페베라는 여성을 바울이 이렇게 간곡한 어투로 부탁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구체적인 것을 알 수는 없지만 그녀가 바울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에게도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는 사실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다"는 바울의 진술을 보면 바울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페베는 겐크레아 교회의 일군입니다. 일군(디아코노스)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보통 '집사'라고 일컫는 바로 그런 용어입니다. 로마서가 기록될 당시라고 한다면 기독교 역사의 초기에 해당되는데, 그 당시에 이미 여 집사가 적극적으로 활동했다는 점에서 여성운동의 역사는 아주 뿌리가 깊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간혹 바울의 서신에 여성을 비하는 듯한 발언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여성에 대한 혐오감이라기보다는 교회 안에서 여성들의 활동이 매우 적극적이다 보니 벌어지게 된 약간의 시행착오에 대한 주의라고 보아야 합니다.
  한국 교회 안에서 여성의 지위는 어느 정도입니까? 신자들 중에서 여성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남성들보다 훨씬 높지만 정치력은 이에 미치지 못합니다. 여성들의 역할은 거의 남성들이 하는 일을 부수적으로 돕는 수준에 머물고 있을 뿐이지 교회를 창조적으로 견인해 가는 실정은 아닙니다. 사실 국회의 남녀 구성 비율도 이제 17대 국회에 들어와서야 겨우 십 여 프로에 접근했을 정도로 우리의 가부장적 질서가 강하니까 교회는 두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물론 외국의 정치권도 아직 남녀가 완전히 평등한 구조를 완성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한국 교회는 그저 흉내내는 수준이 아니라 명실상부 남녀가 동등하게 하나님의 일군으로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 차원의 개혁이 필요합니다. 하나는 구조적으로 여성 지도자들이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이번 17대 국회 비례 대표에서 여성이 반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장치가 도입되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우리의 입장에서도 당회의 구성을 남녀 동수로 하는 것이 하나의 방편입니다. 남성 장로들이 이것을 용납할까요? 다른 하나는 신자들의 의식을 바꾸는 것입니다. 실제로 여성 목사를 담임 목사로 받아들이는 문제에서 여성 신자들이 훨씬 부정적인 입장을 보일 것입니다. 같은 여성이면서 여성 목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런 여성 비하적인 의식이 전환되지 않는 한 구조의 개혁만 갖고는 남녀 평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바울은 '성도의 합당한 예절'로 뵈뵈를 받아들이고 도와주라고 권고합니다. 이런 표현을 미루어보면 이미 그 당시에 기독교인 스스로 '성도'라는 이름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거룩한 무리'라는 뜻의 성도는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가장 풍부하게 담고 있습니다. 과연 '거룩'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을 의미할까요? 가장 오해하기 쉬운 부분은 성속 이원론에 근거해서, 그리고 종교적 이기주의에 근거해서 세상을 낮추어보는 것입니다. 세상은 속되고 교회는 거룩하기 때문에 가능한대로 세상의 일로부터 벗어난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성도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 말입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다음과 같은 기도를 자주 듣습니다. "거룩한 주일에 세상 사람들처럼 세상 재미에 빠지지 않고 거룩한 교회에 나와서 거룩한 예배를 드리게 해 주시니 감사 드립니다." 이런 기도를 함께 드리는 기독교인 마음에는 자신들이 세상 사람들과 무언가 특별히 다르다는 생각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다르다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어떤 집단에 들어왔기 때문에 다르거나 거룩한 게 아니라 그런 거룩한 세계에 들어가 있어야 거룩한 것입니다.
원래 '거룩'이라는 말은 하나님에게만 해당되는 용어입니다. 다른 종교에서도 자신들의 신에 관한 영역이나 시간을 거룩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왜 신(神)만이 거룩한 존재일까요? 여러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의 존재 양식이 우리가 규정할 수 없는 신비이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거룩한 분이라고 부릅니다. 더 나아가서 거룩한 분은 우리에게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신비한 존재인 하나님은 우리의 인식을 초월하기 때문입니다. 거룩, 신비, 두려움이라는 개념은 우리의 인식론적 범주를 벗어나는 절대자 앞에서 인간이 경험하는 세계이기 때문에 거의 동일한 차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인들이 자신을 성도라고 인식한다는 것은 단지 찬송가와 성서를 손에 들었다는 것보다는 존재의 신비를 삶의 토대에 놓는다는 고백입니다. 아무리 그럴듯한 종교의식으로 예배를 드린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마음 속에 탐욕으로 가득하다면 결코 거룩한 예배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헌금을 많이 드리고 그 물질로 선교사를 보내고 신학교를 운영한다고 하더라도 마음이 세속적 경쟁심으로 타오른다면 결코 거룩한 공동체일 수 없습니다.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경제논리와 정치논리를 뛰어넘어 우리에게 다가오는 생명의 힘, 바로 신비한 방식으로 생명을 견인하는 그 힘을 철저하게 인식할 때 비로소 우리는 거룩한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좀더 신앙적인 표현으로 바꾼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서 존재의 신비와 생명의 신비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그런 힘으로 주변의 막강한 정치와 종교를 대항할 수 있었습니다.

브리스카와 아퀼라
바울이 두 번째 추천하고 있는 브리스카와 아퀼라는 바울에게서 최고의 찬사를 받습니다. "그들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내 목숨을 살려 준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에 대해서는 나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가 다 고맙게 생각합니다."(4절). 이들 부부와 바울의 관계는 매우 돈독합니다. 사도행전 18장의 보도에 따르면 로마의 글라우디오 황제가 유대인을 로마에서 축출하는 칙령을 내렸을 때 아퀼라는 아내 브리스킬라(사도행전과 로마서의 이름에 약간의 차이가 있음)와 함께 이탈리아를 떠나 그리스의 고린도에 머물러 있던 중에 바울의 방문을 받습니다. 이들의 직업은 똑같이 천막 만드는 일이었다고 하는데, 그런 탓에 함께 어울려 당분간 고린도에서 지냅니다. 이들 세 사람은 고린도를 떠나 에베소에서 잠시 머물다가 바울은 이들 부부와 헤어지고 3차 선교여행을 떠납니다. 성서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브리스카와 아퀼라는 바울과 별도로 초기 기독교 역사에서 특별한 선교 사명을 감당했다고 합니다. 특히 디아스포라 선교를 독자적으로 전개한 인물들이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를 기록하면서 황제의 칙령이 해소된 뒤 다시 로마로 돌아간 아퀼라와 브리스카와의 옛일을 기억하면서 감격에 찬 어조로 그들에게 찬사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5절에 보면 이들 부부의 집이 곧 '교회'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당시 모든 교회가 이런 가정교회 형태는 아니었습니다만, 여전히 이런 교회가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원래 예수님의 제자들이 최초로 모임을 가졌던 '마가의 다락망'도 역시 가정교회의 원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모임이 점차 조직화하고 확대되면서 공식적인 장소가 마련되었을 것입니다. 기독교를 박해하는 황제가 다스릴 때는 '카타콤'에서 모임을 갖기도 했겠지요.
교회가 오늘처럼 어떤 공적인 장소를 중심으로 한 형태를 갖는 것과 가정교회 형태를 갖는 것 사이에는 장단점이 있습니다. 우선 가정교회는 그 구성원들 사이에 매우 긴밀한 연대감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것이 지나쳐서 공동체의 질서를 상실할 위험성도 없지 않습니다. 공공교회는 장엄한 예배의식이 가능하고 공동체의 질서를 원활하게 유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구성원 사이의 영적 역동성이 훼손될, 즉 형식주의에 빠질 염려도 있습니다. 또 다른 차이를 지적하자면 가정교회에는 교권이 약화되고, 공공교회에는 그것이 강화된다는 점이 그것입니다.
앞으로 개신교 교회의 형태는 이 두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쪽은 교권과 질서와 성장을 중심으로 한 기존의 공공교회이며, 다른 쪽은 영적 역동성과 신앙적 자유가 강조되는 가정교회입니다. 중요한 점은 어떤 방식이라고 하더라도 교회의 본질을 그 안에 담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과 따라서 교회 일치를 훼손시키지 않은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곧 '다양성 안에서의 일치'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너무나 쉽게 편견에 휩쓸리거나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다양성 안에서의 일치'를 이룬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게 아닙니다.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통해서 교회의 본질에 천착할 수 있을 때만 가능한 일입니다.

데르디오
22절에 보면 재미있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이 편지를 받아쓰는 나 데르디오도 주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문안드립니다." 바울의 대필자인 이 사람은 편지 끝 부분에 살짝 자신의 이름을 삽입했습니다. 이럼 로마서 16장은 약간 혼란스러운 대목이 적지 않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열거되는 3-16의 서술 방식은 의외입니다. 바울의 편지 그 어디에도 이런 방식의 서술은 없습니다. 특히 이단에 대한 종교심판과 같이 준엄한 필치로 서술된 17-20절은 주로 안부를 묻는 앞뒤의 진술 맥락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25-27절이 후대의 삽입이라는 사실은 모든 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이 문제는 학문적인 부분이니까 오늘 우리가 다룰 필요는 별로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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