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누가의 기독교 변증
(행 5:17-42)        
11월2일

우리가 오늘 함께 읽은 본문은 상대적으로 분량이 많기는 하지만 그 구조는 매우 간단하다. 대사제들과 사두개파 사람들에 의해서 사도들이 감옥에 갇혔다가 천사들에 의해 기적적으로 출옥한 다음에 유대의 산헤드린 의회에서 종교재판을 받았다는 게 그 대충의 줄거리이다. 그렇지만 본문의 내면에 놓인 실체는 우리가 따라잡기 불가능할 정도로 다층적으로 복합적이다. 그 진술들 중에서 어떤 부분이 역사적 사실에 가깝고, 어떤 부분이 초기 기독교의 전승이며, 또한 저자 누가 본인의 신학적 해석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우리는 일단 그런 한계를 전제하고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최대한으로 들어가도록 하자. 본문은 세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천사 이야기
첫 단락은 17-21절이다. 대사제와 그의 일당인 사두개파 사람들이 사도들을 자기네 감옥에 가둔 이유는 사도들이 예수의 부활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유대 사회에서 같은 주류 계급에 속한 사람들이었지만 바리새인과 사두개파 사람들은 이 부활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도행전에는 이 부활 문제가 이런 종교적이고 정치적인 역학과 미묘하게 연관되어 있다. 바울이 위기에 빠졌을 때 이 부활 문제를 언급하여 바리새인과 사두개파 사이에 논쟁을 야기함으로써 그 위기를 벗어난 이야기는 차치하고라고, 오늘 본문만 보더라도 이 앞 단락에서 사도들을 감옥에 넣은 이들이 부활을 부정하는 사두개파로, 반면에 사도들에게 호의적인 입장을 보인 가말리엘은 긍정하는 바리새파로 묘사되어 있다.
19절에 의하면 ‘주의 천사’(앙겔로스 퀴리우)가 밤중에 감옥 문을 열고 사도들을 데리고 나왔다고 한다. 그 천사는 사도들에게 이렇게 지시했다. “어서 가시오. 그리고 성전에서 이 생명의 말씀을 남김없이 사람들에게 전하시오.” 여기서 ‘주의 천사’는 누구일까? 어떤 사람들은 천사를 어린아이들의 동화에나 나올만한 날개 달린 어떤 초월적인 존재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런 능력이 있어야만 경비가 삼엄한 감옥 문을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사도행전에는 여러 번 이런 천사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7:30, 8:26, 12:7,11, 27:23.
사도행전에는 이런 기적적인 현상을 통해서 감옥 문이 열렸다는 보도가 세 번이나 나온다. 그것도 초기 기독교에 핵심적인 활동을 했던 사람들에게 골고루 적용된다. 한번은 오늘 본문의 사도들이며, 두 번째는 베드로(12:6-11), 세 번째는 사도 바울(16:26-27)이다. 더구나 이런 묘사는 헬라 문헌에 나오는 사건들과 비슷하다. 따라서 본문에서 묘사된 천사와 기적적인 사건은 누가에 의한 독창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이미 그 당시에 잘 알려져 있던 문학적 표현 양식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 사건에는 다음과 같은 개연성이 있다. 지금 사도들이 갇혀 있는 감옥은 로마 관할이 아니라 대사제와 사두개파 사람들이 직접 관할하는 사적인 감옥이다. 이 말은 그만큼 경비가 허술하다는 뜻이다. 사두개파와 생각을 달리하는 어떤 바리새인이, 특히 사도들의 설교에 영향을 많이 받은 어떤 바리새인이 감옥의 경비원들을 매수해서 사도들을 끌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다음날 재판이 벌어졌을 때 이 출옥 사건이 쟁점으로 부각되지 않은 걸 보면 이런 일들은 그 당시에 흔하게 벌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어쨌든지 끊임없는 위기 가운데서도 사도들을 돕는 손길이 있었다는 사실은 초기 기독교에 적지 않은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사도들의 변론
두 번째 단락(22-32)은 산헤드린 의회에 의해서 사도들이 재판받는 과정인데, 다음 단락(33-42)을 포함해서 4장의 재판과 거의 흡사하게 진행되고 있다. 대사제는 이렇게 심문을 시작한다. “예수의 이름으로는 가르치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두었는데도 당신들은 어쩌자고 온 예루살렘에다 당신네 교를 퍼뜨리는 거요?”(28절). 이 대사제의 논고는 4장 17,18절을 배경으로 한다.
일종의 신흥종교라 할 기독교와의 관계를 이렇게 교권에 의지해서 처리하는 방식은 모든 기성 종교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마틴 루터를 향한 교황청의 자세로 이와 똑같았으며, 사이비 이단이라고 부르는 종파, 즉 여호와의 증인이나 제7일 안식교를 향한 우리의 태도 역시 이렇다. 몇 년 전 감리교에서는 신학대학교수의 신학(타종교의 구원, 다원주의)을 문제 삼아 출교 처분을 내린 적도 있다. 궁극적인 진리의 차원에서 자기의 정체를 밝혀나가야 할 종교가 이렇게 교권에 의존하게 되는 이유는 그 조직이 진리의 영이 아니라 공격적인 힘의 논리에 의해 지배받는다는 데에 있다.
이런 현상은 세속의 질서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요즘 우리에게 현안으로 등장한 국가보안법 논의가 바로 그것이다. 공산주의를 구체적으로 고무 찬양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그런 서적을 읽거나 소유하는 것도 역시 형사처벌하게 되어 있는 이 국가보안법은 인간의 천부적 권리인 사상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점에서 기형적인 법이라고 보아야 한다. 공산주의 이념에 의해서 허물어지지 않을 만큼 그 토대가 튼튼한 대한민국이 반인권의 상징이라 할 국가보안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질서보다는 오랜 관행에 고착된 탓이라 본다.  
대사제의 논고에 대한 베드로와 사도들의 대답 역시 4장의 내용과 비슷하다. “사람에게 복종하는 것보다 오히려 하느님께 복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29절). 이 대답은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패권적 유대종교와 로마정치의 억압적 구조에 맞서 오랫동안 투쟁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신앙적 아포리즘(경구)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경구는 헬라 문명을 상당하게 이해하고 있던 누가가 “너희들의 말을 듣기보다 신의 말을 듣는다.”는 소크라테스의 말에서 빌려왔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어쨌든지 하나님의 말과 사람의 말을 구분한다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직접 말씀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통해서 말씀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각에 불과한 것을 신의 계시라고 선포하는 사이비 교주들에게 대중들이 현혹당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람의 말과 하나님의 말은 구별되는가, 또는 그것을 구별할 수 있을까? 이런 문제는 여기서 몇 마디로 해결될 수 없다. 모든 말은 사람을 통해서 나오지만 그것을 전하는 사람의 영적인 세계가 하나님의 세계에 얼마나 가까이 있는가 하는 게 바로 그 차이를 구분할 수 있는 결정적인 요소일 것이다. 그러나 원칙적으로는 그렇게 말할 수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역사가 흘러야만 그 차이가 드러날 것이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사람보다 하나님께 복종해야 한다는 말을 그렇게 확실하게 선언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에게 이미 궁극적인 진리 체험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유대 지도자들에 의해서 십자가에 처형당한 예수가 하나님에 의해서 살아났으며, 승천하시어 하나님의 오른 편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30,31절) 믿을 수 있었다. 예수에게서 발생한 이런 구원론적 사건을 이들이 믿게 된 그 저간의 형편을 살피는 것도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왜냐하면 그런 문제는 객관적 사실보도의 기준으로 해명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대목에 기독교 신앙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는 좁은 길이 놓여 있다. 자칫하면 우리는 모든 것을 무조건 믿으려드는 광신의 상태에 빠질 수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예수 사건을 매우 불합리한 것으로 매도하는 냉소주의에 빠질 수도 있다. 광신과 냉소 사이에 자리 잡은 오솔길을 진지하지만 열린 마음으로 걸어갈 때 사도들의 신앙경험이 우리에게 실질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 신앙적 사유의 오솔길을 신학개념으로 간단히 설명한다면 구원 사건의 ‘이미’와 ‘아직 아님’의 변증법적 성격을 포착하는 작업이다. 예수의 역사 안에서 우리가 일상으로 경험할 수 없는 부활 사건이 ‘이미’ 발생했지만 그것은 단지 예수에게 유일회적으로 발생한 사건이지 우리에게는 ‘아직’ 현실화하지 않았다. 구원 사건이 이미 완료된 것으로만 보면 구원의 신비를 놓치는 ‘광신’에 빠지며, 이 구원 사건의 역사성을 놓치면 결국 우리는 냉소에 빠지고 만다. 우리는 이미 예수의 운명 안에 하나님의 구원 사건이 유일회적으로 발생했다고 믿으면서도 동시에 그 사건은 종말에 가서야 전체적으로 드러난다고 믿는다. 이런 논리는 단지 신학적 수사에 속하는 게 아니라 어떤 사태를 훨씬 확실한 토대에서 해석하려는 진리론적 태도이다.

가말리엘의 등장
사도들의 변론을 들은 대사제와 사두개파 사람들은 이들을 죽이려 했다. 아마 사도들이 이런 살해의 위기에 빠지기 시작한 것이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이제 이런 살해의 위협이 7장에서 스데반의 순교로 현실화한 다음 예루살렘 공동체에 계속적으로 가해졌으며, 훗날 바울에게도 똑같이 가해졌다. 다행이 이번 재판에서는 이런 위기를 모면하게 되었는데, 여기에는 바리새인인 가말리엘 선생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가말리엘은 사도들을 죽여야겠다고 생각한 산헤드린 의원들을 다음과 같은 논리로 설득했다. 튜다와 유다가 민중들을 선동하여 많은 추종자를 얻었지만 튜다와 유다가 죽은 다음에 이런 폭력적 해방운동이 힘을 잃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지적한 가말리엘은 예수 공동체를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게 지혜로운 일이라고 말했다. “만일 이 사람들의 계획이나 해동이 사람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면 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이라면 여러분은 그들을 없앨 수 없을 것입니다. 자칫하면 여러분이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지도 모릅니다.”(38,39절).
가말리엘의 이 진술은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가 하고 싶었던 말이다. 뛰어난 역사가이며 문필가인 누가는 지난 60년의 세월 동안 예수 공동체가 허물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훨씬 강력하게 선포된다는 사실은 곧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점을 논증하고 있다. 하나님의 뜻은 역사에 의해서 증명된다는 이 논리는 늘 기독교 신앙의 핵심으로 작용했다.
우리는 5장을 끝으로 예루살렘의 유대 기독교인 시대를 끝내고 헬라 기독교인 시대로 접어들게 될 것이다. 비록 누가는 예루살렘 공동체를 매우 적극적이고 역동적인 모습으로 묘사했지만 실제로는 예상외로 소극적이고 유대인 특유의 경건한 성격이 많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누가의 이런 역사해석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역사는 한번 일어난 것으로 고정되어 버리는 게 아니라 후대의 해석에 의해서 그 역사의 새로운 지평이 열린다는 점에서 오늘 우리도 역시 우리의 전통인 성서와 지난 2천년 교회 역사를 새롭게 해석해나가는 작업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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