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강

초기 기독교와 바울


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2 함께 있는 모든 형제와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3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5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갈 1:1-5)


바울의 예수 경험

바울은 갈라디아서 서두에 자신의 사도권을 사람이 아니라 신적인 차원으로 돌린다. 그의 진술은 보기에 따라서 비장미가 넘칠 정도이다. 다른 서신에서도 사도적 권위를 언급하기는 했지만, 갈라디아서처럼 강한 어조로 강조한 편지는 드물다. 사람은 자신의 약점에 관한 이야기에서는 민감한 법이다. 아마 바울도 사도권 문제에서 뭔가 이렇게 강하게 어필하지 않으면 안 될 사연을 안고 있는 사람일지 모른다. 이 문제는 갈라디아서 전체와 연관되기 때문에 여기에 잠시 정리하고 넘어가는 게 좋겠다.

초기 기독교의 대표자들은 열두 사도와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이다. 열두 사도가 모두 동일한 권위를 확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복음서에는 열두 사도가 비교적 분명한 권위를 확보한 것으로 나타나지만 그것은 후대 성서기자들의 생각이 가미된 것이고, 실제로 예수님의 공생애 중에 사도들만 특별한 집단으로 대우받은 것은 아니다. 이런 문제는 훨씬 더 깊은 성서학적 연구가 필요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더 깊이 들어가지 말자. 열두 사도 중에서 가룟 사람 유다 대신에 맛디아가 선출된 사건이 사도행전에 간단히 기록되어 있다. 맛디아는 그 뒤로 한 번도 교회의 역사에 등장하지 않는 걸 보면 그 사건도 별로 중요한 게 아닌지 모른다. 사도행전을 따르면 열두 사도 중에서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정도가 권위를 인정받았을 뿐이다. 초기 예루살렘 공동체의 역사에서 일곱 집사* 중의 한 사람으로 선택되었으며, 기독교 역사에서 최초의 순교자로 일컬어지는 스데반은 사도는 아니었지만 사도와 버금가는 권위가 있었으며, 빌립 집사도 비슷한 권위가 있었다. 다소에 은둔하고 있던 바울을 안디옥 교회로 이끌어내서 함께 활동했으며, 바울의 선교 1차 여행에서 동반자로 활동한 바나바도 그에 못지않은 권위가 있었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도 가장 큰 권위를 확보하고 있었던 인물은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였다.


*사도행전 6:1-7절에 따르면 예루살렘 교회는 사도들이 구제하는 일로 시달리는 문제로 인해서 그 일을 분담할 일곱 명의 일꾼을 뽑았다. 본문은 그들이 사도들의 보조자인 것처럼 보도하지만 실제로는 사도들과 똑같은 일을 감당했다. 일례로 스데반은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했다.(행 6:8) 그 뒤로 이어지는 행 7:1-53의 설교는 베드로와 바울의 설교에 못지않은 권위가 있었다. 또 한 사람의 일꾼인 빌립도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내시에게 세례를 준 적이 있다.(행 8:26-40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볼 때 일곱 명의 일꾼은 단순히 사도의 보조자가 아니라 헬라파 기독교인의 대표들이라 할 수 있다. 소위 일곱 집사 사건은 히브리파 기독교인과 헬라파 기독교인의 공식적인 분열인 셈이다.  


기독교를, 더 정확하게는 유대-기독교를 박해하던 바울이 사도를 자처하고 나섰을 때 예루살렘 교회에서 사도적 권위를 확보하고 있던 사람들의 기분이 어떠했을는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그 당시 주류라 할 예루살렘 지도자들은 바울을 인정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오늘 우리의 눈에 위대한 사도 바울을 그들이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이상한 거 아닌가, 하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의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바울의 사도권을 인정해줄만한 어떤 객관적인 요소들이 없었다는 말이다. 요즘 식으로 말해서, 신학교도 다니지 않고 교단에서 목사 안수도 받지 않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에게서 목사직을 인정받았다고 주장한다면 누가 그 주장을 믿어주겠는가?

그래도 바울의 입장에서는 그 당시 유대-기독교의 지도자들에게서 인정받지 못했다는 것은 인간적으로도 서운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가 이전에 기독교를 박해한 일이 있긴 했지만 회심 이후로 예루살렘의 사도들보다 더 고된 시련을 받으면서 복음을 전했으며, 실제로 그가 뿌린 복음의 씨앗이 많은 열매를 거뒀다는 사실을 놓고 보더라도 예루살렘의 지도들에 비해서 못할 게 하나도 없었다. 이런 정황에서 그는 이제 예루살렘 지도자들과의 관계를 놓쳐도 어쩔 수 없다는 배수진을 치고 자신의 사도권을 강하게 주장하게 된 것이다.

바울이 그렇게 막무가내 식으로, 단순히 인간적인 감정에 휩싸여서 자기의 사도권을 주장했다는 말은 아니다. 사실 그 당시의 사도권은 요즘처럼 교회법에 의해서 부여되는 것은 아니었다. 한 지역의 공동체가 인정하는 방식으로 그것이 확보될 수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복음서에 사도로 임명받은 열두 제자들보다는 예수님의 동생이 야고보가 훨씬 강력한 권위를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바울의 부활 체험이 명백하다면 예수님의 공생애 당시에 열두 제자로 임명받은 사람들에 비해 못할 게 하나도 없는 셈이다. 오늘 우리는 이런 문제를 판사가 재판을 하듯이 딱 부러지게 판정을 내릴 수는 없다. 그 당시는 조직과 제도가 성립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실체에 가까이 접근해 있는가 하는 게 관건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의 사도직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는다고 주장한 것이다.

바울의 이런 주장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사도행전에 따르면 바울은 분명히 스데반의 순교 사건에서 나름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예수 추종자들을 체포하기 위해서 대제사장의 이름으로 다마스쿠스 같은 곳으로 출장을 다니기까지 했다. 조금 옆으로 나가는 말이지만, 다마스쿠스 도상의 회심 사건에 관해서는 바울이 직접 쓴 서신에서도 몇 번 언급했지만 스데반 순교 사건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다마스쿠스 도상 사건도 구체적으로 진술한 것이 아니라 부활의 주님을 만났다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진술한 것이다. 어쩌면 바울은 초기 기독교를 박해하긴 했지만 스데반의 순교에 깊숙이 가담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사도행전을 기록한 익명의 누가는 바울의 회심을 조금 더 극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 스데반 순교 사건에 바울을 연루시켰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사도행전*은 초기 기독교의 실증적인 역사가 아니라 바울 이후 한 세대가 흐른 다음에 바울의 제자가 바울을 초기 기독교의 지도자로 재해석한 변증 문서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사도행전의 바울과 서신의 바울은 약간 씩 차이가 난다. 예컨대 사도행전의 바울은 명 연설가로 묘사되지만 서신의 바울은 어눌한 사람으로 진술된다. 사도행전의 바울은 예루살렘의 지도자들과 큰 마찰을 보이지 않았지만, 갈라디아서의 바울은 이단논쟁이라 불러도 좋을 정도로 대립적이었다. 이런 차이는 서신이 바울의 진접 진술인 반면에 사도행전은 제 삼자의 보도라는 사실에 연유한다. 특히 사도행전이 바울 생애에 관한 객관적인 연대기가 아니라는 사실이 여기서 중요하다. 누가는 이미 한 세대 전에 세상을 뜬 바울이 예루살렘의 사도들과 깊은 신앙적 교제를 나눴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야만 이미 역사에서 사라진 예루살렘 교회를 대신해서 기독교 역사에 주류로 부상한 헬라 이방인 공동체의 영적 권위를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해는 마시라. 사도행전의 모든 보도가 허위라는 말이 아니다. 누가의 신학에 의한 재구성이라는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바울이 초기 기독교를 박해했다는 엄연한 사실만 본다면 그의 사도권 주장은 터무니없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부활의 예수를 만났다는 사실을 여러 번 반복해서 강조했다. 갈 1:12절에도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복음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다른 사도들이나 지도자들은 대개가 예수님의 생전에 예수님과 일정한 접촉을 한 사람들이지만, 바울은 예수님을 전혀 만나보지 못했다. 바울이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들었을 개연성은 있다. 어쨌든지 그는 초기 기독교를 박해하는 과정에서 회심한다. 그 회심의 계기는 부활의 주님을 만난 경험이다. 바울은 부활에 관해 서술하면서(고전 15장) 그것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여러 증인들을 내세우는데, 그 증인 중에 자신도 포함시킨다. 게바, 열두 제자, 오백여 형제, 야고보, 바울(고전 15:5-8) 그 대목에서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했기 때문에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할 수 없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이런 일련의 진술은 바울이 예수를 직접 경험했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도대체 바울은 무엇을 경험한 것일까? 그가 실제로 부활의 주님을 만난 것인가? 아니면 환상을 본 것인가? 십자가 처형, 무덤, 부활, 승천, 하나님 우편이라는 사건 진행에 따르면 예수님은 지상에서 천상의 세계로 옮기셨다. 부활과 승천 사이에는 40일이라는 기간이 있는데, 바울이 바로 이때 예수님을 만난 건 아닐 것이다. 그가 초기 기독교를 박해하다가 회심한 그 시기는 예수님의 승천 이후로 어느 정도 세월이 흘렀다는 건 전제한다고 봐야 한다. 바울의 예수님 경험과 회심이 승천 이후라고 한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예수님이 바울을 만나기 위해서 하늘에서 잠시 지상으로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갔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면 바울의 경험은 직접적인 게 아니라고, 또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 직후에 만난 경험과는 다른 어떤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경험이라고 한다면 그가 자신을 게바, 열두 제자, 오백 여형제, 야고보와 동급의 위치로 진술한 고린도서의 주장은 정확한 게 아니다.

도대체 그 당시에 무슨 일이 어떤 순서로 일어난 것일까? 바울이 그렇게 자신 있게 자신의 사도권을 주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무언가 더 근본적인 어떤 사건이 연루된 게 아닐까 생각된다. 그것을 필자가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문제는 주로 신약학자의 몫이기도 하고, 초기 기독교는 이런 사건의 실증적이고 연대기적인 사실을 역사적으로 남기는 일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이에 관한 정보가 거의 없는 형편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그 모든 실체를 그대로 복원하기는 힘들다. 다만 우리가 상식적인 차원에서, 또한 신학의 기초에서 몇 가지 관점은 짚을 수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과 부활 이후에 벌어진 일들은, 특히 부활 현현은 우리의 일상적인 경험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부활체인 예수님은 생전의 모습처럼 형체를 갖거나 음식을 드시기도 했지만, 혼령처럼 문을 열지 않고 방안으로 들어오기도 했다. 부활한 주님에 대한 복음서 기자들의 묘사는 자신들의 경험에 대한 단순한 서술이지 부활의 실체에 대한 정확한 진술은 아니다. 그들은 일상에서 경험할 수 없는 전혀 새로운 생명체를 경험한 것이다. 그 사건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구약성서에 근거해서 새롭게 해석되고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삼일 후에 부활했다는 사실과 사십 일 만에 승천했다는 사실들이 교회 안에서 부활과 관계된 전승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보기에 따라서 아주 어수선하지만, 인간의 인식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개입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부활 현현 경험에서 초기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이 어렸을 때부터 알고 있던 모든 유대교 신앙을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바울은 바로 이런 초기 기독교의 열광적 시기에 다른 제자들과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다. 그가 비록 초기 유대-기독교를 박해한 전력이 있지만 부활의 주님을 만난 후에는 다른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유대교와는 전혀 다른 신앙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는 그 경험을 어느 한 순간에도 유보하지 않았다. 예수 경험 이후로 그는 그가 자랑하던 모든 업적들을 배설물로 여기게 되었다. 이건 감상주의적이고 주관적인 신앙경험이 아니라 지성적이고 객관적인 신앙경험에서 나온 일종의 패러다임 쉬프트이다. 바울은 이제 하나님과 세계 전체에 관한 전혀 새로운 관점을 얻었다는 뜻이다. 그는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에게 승인을 얻느냐, 얻지 못하느냐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왜냐하면 부활의 예수를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이 얼마나 확실한 건지는 더 생각해야겠지만, 이건 우리의 공부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게 아니니까 오늘은 여기서 접자. 어쨌든지 중요한 건 바울이 자신의 사도권을 사람의 권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의 권위에 설정한다는 것이다.


은혜와 평화

바울은 “함께 있는 형제들”과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에게 편지를 쓴다. 바울은 지금 혼자 머물고 있는 게 아니라 다른 형제들과 함께 지내는 중이다. 아마 소아시아 지역에 선교를 하고 있을 때로 알려져 있다. 그 시기는 50-55년이며, 발신지역은 에베소이다. 이런 정보가 무조건 정확한 건 아니지만 대략 그렇게 보는 것이 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필자의 생각에 그 시기는 2차 선교여행을 떠나기 바로 직전 바나바와 헤어진 이후일 것이다. 그는 갈라디아 지역과 소아시아 지역에서 더 이상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잡지 못하다가 드로아까지 밀려난다. 드로아는 그 당시 소아시아에서 마케도니아로 항해하는 배들이 묶는 중요한 항구였다. 그곳에서 바울은 환상을 본다. 마케도니아 사람들이 복음을 전해달라는 환상이다. 그는 결국 갈라디아와 소아시아 지역을 떠나서 마케도니아와 아가야 지역으로 복음 전파의 동선을 확장시켰다. 타의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복음이 문화와 정치가 발전된 그리스, 로마 지역으로 전파된다.

바울에게는 마케도니아 환상을 경험한 시기가 가장 어려울 때였다. 갈라디아 지역으로부터도 좋지 않은 소식을 접했을 것이다. 자신이 전한 복음이 매도당하고, 다시 토라와 할례를 지켜야 한다는 유대 기독교인들의 주장이 갈라디아 지역의 여러 교회에 파고든 것이다. 바울은 사면초가의 입장에 처한 셈이다. 그러니 감정적으로 격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앞으로 갈라디아서를 읽어가면서 느끼겠지만 바울은 다른 편지에 비해서 훨씬 과격하게 갈라디아서를 썼다. 그의 감정이 걸러지지 않고 그대로 노출된 탓이리라. 앞서 말한 사도권의 강조도 이런 전반적인 흐름에서 이해해야 한다.

바울은 편지 형식에 따라서 먼저 평화의 인사를 전한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 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3절) 은혜와 평화는 신약성서의 모든 서신의 인사에 나오는 관용어이다. 이걸 상투적인 것으로만 받아들이면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깊이 있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기독교 신앙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헬라어 ‘카리스’는 은혜, 친절, 긍휼, 신적 현재의 특별한 표명, 선물, 축복 등등의 뜻이 있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값없이 받는 선물을 가리키는데, 구체적으로는 구원을 말한다. 우리를 구원하신 은혜가 놀랍다는 표현이 여기에 해당된다. 우리가 세례교인이라고 한다면, 그리고 조금 교회생활에 익숙한 신자라고 한다면 이런 것쯤은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우리의 삶에 실체로 다가오는가에 달려 있다. 여기서 우리는 정보에 머물러 있는 신앙 행태와 실체적인 깨우침으로 들어간 신앙 행태를 구분해야 한다. 신앙적인 정보는 웬만큼 교회에 다니면 저절로 알게 되지만 깨우침은 어떤 영적인 실질에 대한 경험이기 때문에 교회 경력만으로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헬렌 켈러를 가르친 설리번 선생에게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그는 어린 헬렌 켈러를 열심히 가르쳤지만 실제적인 앎의 차원으로 들어가게 하지는 못했다. 예컨대 손바닥에 tree라는 알파벳을 써주고 나무를 손으로 만지게 해도 헬렌 켈러는 나무에 이름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어느 무더운 날 마당에 있는 펌프 밑으로 헬렌 켈러를 데리고 가서 시원한 물을 손으로 느끼게 해주고 다시 손바닥에 water이라는 알파벳을 써주었다. 그때 헬렌 켈러는 모든 사물에 이름이 있다는 사실을 크게 깨우쳤고, 그 뒤로 모든 공부에 진도가 잘 나가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순간이 바로 어떤 세계로 들어가는, 또는 어떤 세계가 열리는 때이다.

만약 우리가 은혜의 세계를 실제로 깨닫고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 우리는 이 세상을 전혀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될 것이다. 더 이상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삶의 의미를 찾지 않게 된다. 그럴 수밖에 더 있는가. 왜냐하면 그는 이미 이 세상 전체를 하나님으로부터 값없이 선물로 받았으니까 말이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상태가 바로 은혜에 이른 삶이다. 이런 은혜를 안다면 우리는 교회를 성장시켜야 한다는 욕망을 품지 않게 될 것이다. 복음을 전하기는 하겠지만 그것을 자신의 종교적 업적으로 삼지 않는다.

그렇다면 은혜를 알면 천사처럼 살게 되냐, 이 세상의 모든 욕망이 사라진다면 그게 무슨 실제적인 삶이냐, 하는 반문이 가능하다. 모든 욕망이 사라지는 삶은 우리가 몸을 갖고 세상을 살아가는 한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우리는 여전히 투쟁하고 고민하고, 때로는 이기심에 사로잡히기도 할 것이며, 그런 시행착오는 어쩔 수 없이 감당하고 살아야 한다. 우리가 인간적인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하지만 은혜의 세계에 조금씩 깊이 들어간다면 그런 시행착오를 줄여나가면서 참된 생명의 세계로 집중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성화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이 은혜가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주어진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물론 평화도 그렇다. 그것은 선물이지 우리가 만들어내는 게 아니다. 내가 만들어내는 것은 어느 하나도 무상하지 않은 게 없다. 내가 만든 것에만 만족하는 삶은 곧 실증이 날 수밖에 없다. 그게 무엇인지 잘 생각해보라. 나도 하는 일이 많다. 교회를 꾸려가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책도 쓰고, 번역도 하고, 목사님들을 대상으로 특강도 하러 다닌다. 요즘은 ‘대구성서아카데미’ 운동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일들에 내 영혼을 걸어놓을 수가 없다. 아무리 가치 있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우리의 영혼이 만족하지 못한다. 이런 일은 잘 되면 기분이 좋고, 안 되면 기분이 좋지 않은 정도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이런 것은 결코 은혜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은혜*를 관념적이고 초월적인 차원에서만 생각하라는 말은 아니다. 우리의 일상과 전혀 상관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일들만 생각하는 게 아니다. 은혜는 우주론적인 사건이지만 동시에 일상적인 사건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에게서 주어졌다는 사실이다. 밥을 예로 설명해보자. 만약 자기가 맛있는 밥을 만들어서 먹었다는 사실에 매달린다면 그는 자기의 업적에 따라서 살아가는 것인 반면에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실제로 인식하고 먹는다면 그는 은혜 안에 들어간 사람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것을 은혜로 안다면 좋은 밥을 먹든지 거친 밥을 먹든지 그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은혜에는 크고 작은 것, 잘나고 못난 것이 없다. 목사가 큰 교회를 섬기든, 작은 교회를 섬기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런 영적인 세계 안으로 들어가는 게 곧 은혜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은혜는 모든 삶을 하나님과의 관계로 집중하는 삶의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은 엄마만 옆에 있으면 모든 게 만족스럽듯이 우리도 하나님과의 관계로 들어가기만 한다면 모든 삶이 만족스러울 수 있다. 아니 더 엄밀하게 말하면, 거기서만 우리는 진정한 만족을 경험할 수 있다.


*은혜를 오해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소위 ‘값싼 은혜’가 그것이다. 삶의 무게를 전혀 담지 못하고 단순히 종교적 위로만 얻으려는 은혜 개념이 바로 그것이다. 본회퍼는 기독교인의 삶을 구체적으로 ‘그리스도를 뒤따름’(Nachfolge Christi)이라고 지적했다. 그것이 바로 제자 도(道)라고 말이다. 또 다른 오해는 ‘무거운 은혜’이다. 이들은 한국교회의 실천 없는, 말뿐인 신앙을 비판하면서 삶의 책임을 강조한다. 이들을 둘로 구분할 수 있다. 한쪽은 개인적인 도덕적 변화를 강조하는 온건한 보수주의자들이고, 다른 한쪽은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진보주의자들이다. 삶의 변화와 책임을, 그것이 개인적인 차원이든 사회적인 책임이든 상관없이, 강조한다는 점에서 일단 바람직한 변화라고 할 수 있지만, 은혜를 또 하나의 행동주의로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그 한계가 보인다. 그들이 값싼 은혜와 값없는 은혜를 구분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은혜는 값싼 은혜는 아니지만, 너무 비싸기 때문에 값을 치를 수 없는 값없는 은혜이다. 이런 한계로 인해서 그들의 은혜는 값싼 은혜와 대립적인 또 하나의 극단으로 무거운 은혜로 변한 게 아닐는지 모르겠다.   


대속의 죽음

바울은 인사말에서 아주 중요한 기독론을 제시한다.(4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이렇게 예수의 죽음을 인류의 죄를 속죄하기 위한 희생으로 이해하는 기독론은 초기 기독교에서도 아주 오래 된 것이라고 한다. 그 뿌리는 유대교이다. 유대교 신학에서 예수의 죽음은 속죄로 해석될 수 있었다. 유대인들의 생각에 따르면 순교자의 죽음은 다른 사람들의 죄를 속할 수 있었다. 초기 기독교에서 가장 오래된 이 기독론은 바울이 등장하기 이전에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 바울은 그것을 옳다고 보고 자신의 편지에 인용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진지하게 질문해야한다. 도대체 대속적 죽음이라는 무슨 의미인가, 하고 말이다. 이런 질문은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다. 무엇보다도 ‘죄’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오늘 본문에서도 바울은 “아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하고 말하고 있듯이 ‘속죄’는 일단 죄를 전제하는 말이다. 만약 인간에 대한 이해를 죄로 규정할 수 없다면 이 속죄 개념을 아무런 설 자리가 없다. 설령 죄 문제를 전제한다고 하더라도 죄의 책임을 어떻게 다른 사람에 의해서 해결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다시 제기될 수 있다. 기독교는 바로 여기에서 자기 정체성을 확보한다. 인간은 스스로 죄를 해결할 수 없으며,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에 의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이것이 바로 칭의론이다. 인간 자신의 노력으로 죄를 없애는 게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을 받을 뿐이다. 이런 점에서 속죄 개념은 기독교의 중심 교리인 셈이다.

문제는 오늘 속죄 개념을 지나치게 기계적으로만 접근함으로써 결국 그것이 말하려고 하는 영적 깊이를 놓치는 것이다.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예수의 십자가가 주술적인 힘으로 받아들여지는 게 바로 그것이다. 십자가 사건을 인류 구원을 위한 프로그램이라고 여긴다면 자체적으로 모순에 빠진다. 왜 하필이면 십자가의 죽음으로 인류가 구원받아야 하는가? 사랑과 전능의 하나님이 시간을 질질 끌지 말고, 또한 굳이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하지 말고 직접 인류를 구원하면 되지 않는가? 십자가 사건이 빼도 박도 못하는 어쩔 수 없는 예수의 숙명이었다고 한다면 그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십자가 사건을 통한 인류 구원은 감상적 차원이 아니며, 또한 인간 예수가 감당해야만 했던 기계적인 운명도 아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극단적으로 희화화하는 교리가 배상만족설*이다.


*켄터베리의 안셀름이 <Cur Deus homo>에서 소위 ‘배상만족설’을 제기한 이후로 매우 오랫동안 정통 가르침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안셀름은 인간이 하나님의 명예를 훼손시켰기 때문에 그것을 배상해야만 한다는 논리에 근거해서 예수의 십자가 죽음이 곧 하나님에게 만족스러울 정도의 보상을 제공하는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만약 하나님이 만족하지 않은 채 죄를 용서한다면 그 죄는 처벌되지 않은 것이며, 따라서 무질서하게 된다. 이런 무질서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참된 인간이며 하나님인 예수가 그것을 배상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다. 이런 이론은 신학적으로 약간씩 수정되면서 현대까지 지속되고 있다. 바르트의 배타적 배상만족설은 “우리 없이 - 우리를 위해”에 관심을 가졌다면 도로테 죌레는 그와 반대로 포괄적 대리를 주장했다. 이 대리이론은 인간이 실존적 참여를 윤리적 귀결에 이르기까지 부각시키고 있지만 이로 인해서 신인협동설에 빠질 우려도 있다.(푈판, 277).


다시 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수의 십자가 사건이 인류 구원을 위한 길이 아니었다는 말이 아니며, 구약의 예언자들이 예언한 사건이 아니라는 말도 아니다. 이미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는 사건이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결정된 것이 아니라 열려진 것으로서 구원사건이 된 것이다. 예수라는 한 역사적 인물이 있었기 때문에 십자가 사건이 인류 구원의 길이 된 것이라는 말이다. 이렇듯 역사는 고정된 길을 가는 게 아니라 종말에 이르기까지 열린 길을 간다. 이런 점에서 우리 기독교인은 역사적 책임이 크다. 역사를 구원의 길이 되게 할 수도 있고, 멸망의 길이 되게 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영광

바울은 갈라디아서의 인사를 “하나님께 영광이 영원무궁 하도록 있기를 빕니다. 아멘.”으로 끝낸다. 우리가 너무 흔하게 들은 영광이라는 단어는 신구약성서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용어이다. 도대체 영광이라는 무엇인가? 그림 한편을 소개하겠다. 

18세기와 19세기에 걸쳐서 주로 풍경을 그린 영국의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1851)는 빛이라는 메타포를 그림에 많이 담고 있는 화가이다. 그의 작품 중에 <Snowstorm>(1842, Oil on Canvas, National Gallery , London)이 있다. 폭풍과 눈보라가 몰아치는 바다에 홀로 떠있는 배를 그린 그림인데, 그냥 보면 유치원생이 장난을 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의 그림을 이해하는 사람은 삶의 진실과 심연을 거기서 발견할 수 있다.

이사야는 다른 사람들이 못 보는 야훼의 영광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야훼의 영광이 너를 비춘다.”고 말했다. 그 영광은 바로 하나님이다. 그 영광은 모세가 호렙 산에서 경험한 바로 그 하나님의 임재이며, 홍해를 가르신 바로 그 하나님의 임재이다. 비록 현재 이스라엘이 초라한 모습이지만 바로 그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비추고 있다는 것이다. 그 영광으로부터 나오는 빛이야말로 참된 빛이다. 그 빛이야말로 사람을 살리는 능력이다. 이 세상의 영광은 아침 이슬처럼 곧 사라지지만 야훼의 영광만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자기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doxology) 삶이 바로 우리에게 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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