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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k a New Spirituality
새로운 영성을 추구하세요.
You are beginning to realize that your body is given to you to affirm your self.
당신의 몸은 당신 자신을 확인하기 위해 주어진 것임을 인식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Many spiritual writers speak about the body as if it cannot be trusted.
많은 영적인 작가들은 몸을 믿을 수 없는 것처럼 말합니다.
This might be true if your body has not come home.
당신의 몸이 아직 집에 이르지 않았다면 그것은 사실일지도 모릅니다.
But once you have brought your body home,
once it is an integral part of your self, you can trust it
and listen to its language.
그러나 일단 당신의 몸을 집으로 데려왔다면,
당신의 몸은 당신 자신의 필수적인 부분입니다,
당신은 몸을 믿을 수 있으며 몸의 언어를 들을 수 있습니다.
When you find yourself curious about the lives of people you are with
or filled with desires to possess them in one way or another,
당신과 함께 있는 사람들의 삶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자신을 보거나
어떤 의미로든 그들을 소유하려는 욕구가 있다면,
your body has not yet fully come home.
당신의 몸은 아직 온전히 집에 이른 것이 아닙니다.
As soon as you have come to live in your body as a true expression of who you are,
있는 그대로인 스스로의 표현 그 자체인 몸으로 살게 되는 순간부터,
your curiosity will vanish, and you will be present to others free from needs to know, or own.
그러한 호기심은 사라질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알고 싶거나 소유하고 싶은 욕심 없이,
자연스러운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A new spirituality is being born in you.
새로운 영성은 당신 안에서 태어나지는 것입니다.
Not body denying or body indulging but truly incarnational.
몸을 거부하거나 몸에 탐닉하는 게 진정으로 몸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You have to trust that this spirituality can find shape within you,
and that it can find articulation through you.
이 영성이 당신 안에서 형체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당신을 통해 분명히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You will discover that many other spiritualities you have admired and tried to practice
no longer completely fit your unique call.
당신이 탄복하고 훈련하려고 애써왔던 많은 다른 이들의 영성이
더 이상 당신만의 유일한 소명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
You will begin sensing when other people's experiences and ideas no longer match your own.
다른 이들의 경험과 생각이 더 이상 당신 자신의 것과 맞지 않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할 것입니다..
You have to start trusting your unique vocation and allow it to grow deeper and
stronger in you so it can blossom in your community.
당신은 자신의 독특한 소명을 확신하기 시작해야하며
그 소명이 당신 안에서 더욱 깊고 튼튼하게 자라도록
그래서 당신의 공동체 안에서 꽃 피울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As you bring your body home,
you will be more able to discern with your whole being the value of other people's spritual experiences and
당신의 몸을 집으로 데려옴으로써,
당신은 당신의 전 존재와 다른이들의 영적인 경험의 가치를 더욱 분간할 수 있으며
appreciate them without desiring to imitate them.
그들을 흉내내려는 열망없이 그들에게 감사할 수 있습니다.
You will be more self- confident and
free to claim your unique place in life as God's gift to you.
당신은 자신감을 얻고,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당신의 삶의 자리를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There will be no need for comparisions.
거기에는 어떤 비교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You will walk your own way, not in isolation but with the awareness
that you do not have to worry whether others are pleased or not.
당신은 자신의 길을 갈 것입니다. 고립된 상태에서가 아니라
다른 이들이 좋아할지 아닐지 염려하지 않는 깨어있음으로서 말이죠,
Look at Rembrant and Van Gogh.
렘브란트와 반 고호를 보세요.
They trusted their vocations and did not allow anyone to lead them astray.
그들은 그들의 소명을 확신했고, 자신들의 길을 잃도록 인도하는 어떤 누구도 용납치 않았습니다.
With true Dutch stubbornness, they followed their vocations from the moment they recognized them.
진정한 네덜란드의 고집을 갖고, 자기들의 소명을 깨달은 순간부터 그들은 자신들의 소명을 따랐습니다.
They didn't bend over backward to please their friends or enemies.
그들은 친구들이나 싫어하는 사람들의 맘에 들기 위해 애쓰지 않았습니다.
Both ended their lives in poverty,
but both left humanity with gifts that could heal the minds and hearts of many generations of people.
둘 다 빈곤 속에서 삶을 마쳤습니다만,
그들 모두 많은 세대에 걸쳐 사람들의 마음과 가슴을 치유할 수 있는 천부적 재능으로 인간애를 남겼습니다.
Think of these two men and trust that
you too have a unique vocation that is worth claiming and living out faithfully.
이 두 사람을 생각하세요, 그리고 믿으세요.
당신 역시 붙잡고 신실하게 살아갈 가치가 있는 당신만의 독특한 소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사도신경도 '몸의 부활'을 말하고 있으니
나우엔의 영성에 몸이 중요할 수밖에 없지요.
몸을 집으로 데려온다는 말은
몸과 영의 일치를 의미하는 게 아닐까요?
그건 그렇고 다음의 문장이 좀 애매하네요.
Not body denying or body indulging but truly incarnational.
몸을 거부하거나 몸에 탐닉하는 게 진정으로 몸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몸의 거부, 몸 탐닉은 부정적인 거고,
몸을 입는다는 것은 긍정적인 건데,
같은 게 되어버렸군요.
영어 문장을 내가 정확하게 번역할 자신은 없는데
문맥적으로만 본다면 이렇게 번역될 수는 없을까요?
'몸을 거부하거나 탐닉하지 말고 진짜로 몸을 입으라. '
저는 예배당만 오래 다녔지
여기 다비아와서 성서의 언어세계안으로
치고 들러간다는 말을 비로소 이해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현묘한 하나님의 세계를 가슴에 품고 산다해고
언어로 표현되지 않으면 - 언어란 몸을 입지 않으면-
하나님을 모르는 것과 같은 것 아니겠습니까
詩에서 아무리 오묘한 세계를 품고 있다해도
시의 몸인 언어로 표현 되지 않으면
시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땅에서 몸이라는 씨앗이 살아있지 않으면(그리스도안의 영원한 생명으로)
씨앗은 부활이란 몸의 생명으로 (변화된 몸) 다시 살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것이 사도신경의 '몸이 다시 사는것'의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저는 그릭은 모릅니다만 - 오래 산 덕에- 들은 풍월로
몸이란 단어인 사르크스나 소오마가 없으면 프뉴마는 추상적인 개념일 뿐이라 생각합니다
사랑이란 단어도 그렇지요
에로스(남녀간 사랑만 아닌)나 필레아가 없이는 아가페는 실현될 수 없는
몸 없는 영혼과 같이 개념일 뿐이고 살아 꿈틀대는 언어가 아닌 숨쉬지 않는 추상의 단어일 뿐이지
않겠습니까
저 자신도 잘 모르지만 성령에 의한 자판을 휘갈기고 있습니다
몸을 집으로 데려온다..
몸을 믿게되고 몸의 언어를 듣는다...
이런 말들이 제게는 알 듯 모를 듯..
왜 새로운 영성을 얘길하면서 영혼이 아닌
몸을 거론하는지...몸과 새로운 영성...
계속 생각할 주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