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8
파산사건을 접하다 보면, 빈곤의 문제에 관심이 가게 마련이다. 며칠전 서점에 들렀다가 <빈곤의 종말>이라는 책을 구입했다. 알고 보니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빈곤이란, 파산문제에서 접하게 되는 빈곤과는 조금 다른 의미를 지닌 것 같다.
저자인 제프리 삭스 교수에 대해 소개를 하자면, 하버드 대학의 국제개발연구소장으로 개도국 거시경제정책 및 경제개발이론에 대한 많은 연구를 수행한 바 있으며, IMF, 세계은행, UNDP, OECD 등 국제기구 자문위원을 역임했다. 현재 미국을 대표하는 거시경제학자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빈곤이 어떤 메카니즘을 통해 생성되는지, 또 그 퇴치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실증적 자료와 함께 간결하고도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의 호언장담에 따르면, 그의 비전대로 실천하기만 한다면 세계의 빈곤(여기서는 절대빈곤 absolute poverty를 의미한다)은 2025년이면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물론 그의 비전대로 따랐을 때의 얘기다.
제프리 삭스 교수의 빈곤 분석은 종속이론(dependency theory)자들에게는 시각전환의 기회가 될 법도 하다.
선진국의 경제독주와 함께 점점 세계 정치경제질서에서 소외되던 제3세계 경제학자들은 세계를 중심부와 주변부로 나누고, 중심부가 점점 부유해 지는 반면 주변부가 점점 가난해지는 것은 중심부가 주변부를 수탈한 결과라고 주장했다(이른바 종속이론). 오늘날 방글라데시나 베트남 같은 개발도상국 노동자들이 선진국 기업의 생산기지에 예속되어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수탈이론의 한 증거가 될 법도 하다. 종속이론은 기존의 시장 분석 중심의 경제학계에 충격파를 던지면서 경제학적 인식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러나 제프리 삭스 교수는 빈곤의 이유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고 진단한다. 빈곤은 빈곤 그 자체로 함정이 되어 발전을 붙들 수 있으며, 그밖에도 지리적, 문화적 요인과 출산률 등 매우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가 혹시 선진국의 비도덕성을 은폐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두어 볼 만 하지만, 그는 오히려 수탈의 역사를 선선히 인정하는 편이다. 다만,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이 역사의 긴 발전단계로 본다면 그리 절망적인 현상만은 아니라는 색다른 주장을 함께 제시한다.
개도국의 여성 노동자들을 인터뷰한 바에 따르면, 그들이 현재로서는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릴지언정 과거에 비해 훨씬 더 많은 기회를 갖게 된 것이 사실이라고 한다. 그들은 적은 급료나마 일부를 떼어 저축하고 있고, 결혼을 언제 할 것인지, 아이는 몇을 낳을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절대빈곤에 갇혀 있던 농업국가 시절에는 결코 꿈도 꿀 수 없었던 현실이라는 것이다.
제프리 삭스 교수는, 경제발전의 단계가 있다고 가정할 때 그 발전의 사다리에 한 발을 올려 놓은 이상 비록 느릴지언정 그들의 미래는 점점 향상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삭스 교수는 절대빈곤의 함정에 빠져 경제발전의 사다리에 발을 올려놓지조차 못하고 있는 빈국들에게 좀더 많은 지원이 쏟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루하루의 연명에 급급한 절대빈곤국들에게 있어 자력에 의한 빈곤탈출이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빈곤이 퇴치불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이 있을까봐 첨언하자면, 책에 제시된 통계적 실증자료에 따른다면 최근 200여년간 생산성의 급속한 증가와 함께 세계의 절대빈곤 역시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으며, 이러한 추세대로라면 2025년경에는 절대빈곤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삭스 교수의 이런 분석은 자못 흥미롭게 느껴진다. 정말로 빈곤이 퇴치가능한 것일까.
얼마전 파산사건 하나를 신청인 사망으로 종결한 일이 있다. 상속인들이 제출한 사망진단서를 살펴 보니 '자살'이었다.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몸부림친다는 말을 들어보았을 지언정 그들이 자살하는 일은 드문 일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절대빈곤의 탈출이 반드시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삭스 교수의 생각은 어떠할까. <2006.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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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제프리 삭스 교수에 대해 소개를 하자면, 하버드 대학의 국제개발연구소장으로 개도국 거시경제정책 및 경제개발이론에 대한 많은 연구를 수행한 바 있으며, IMF, 세계은행, UNDP, OECD 등 국제기구 자문위원을 역임했다. 현재 미국을 대표하는 거시경제학자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빈곤이 어떤 메카니즘을 통해 생성되는지, 또 그 퇴치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실증적 자료와 함께 간결하고도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의 호언장담에 따르면, 그의 비전대로 실천하기만 한다면 세계의 빈곤(여기서는 절대빈곤 absolute poverty를 의미한다)은 2025년이면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물론 그의 비전대로 따랐을 때의 얘기다.
제프리 삭스 교수의 빈곤 분석은 종속이론(dependency theory)자들에게는 시각전환의 기회가 될 법도 하다.
선진국의 경제독주와 함께 점점 세계 정치경제질서에서 소외되던 제3세계 경제학자들은 세계를 중심부와 주변부로 나누고, 중심부가 점점 부유해 지는 반면 주변부가 점점 가난해지는 것은 중심부가 주변부를 수탈한 결과라고 주장했다(이른바 종속이론). 오늘날 방글라데시나 베트남 같은 개발도상국 노동자들이 선진국 기업의 생산기지에 예속되어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수탈이론의 한 증거가 될 법도 하다. 종속이론은 기존의 시장 분석 중심의 경제학계에 충격파를 던지면서 경제학적 인식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러나 제프리 삭스 교수는 빈곤의 이유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고 진단한다. 빈곤은 빈곤 그 자체로 함정이 되어 발전을 붙들 수 있으며, 그밖에도 지리적, 문화적 요인과 출산률 등 매우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가 혹시 선진국의 비도덕성을 은폐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두어 볼 만 하지만, 그는 오히려 수탈의 역사를 선선히 인정하는 편이다. 다만,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이 역사의 긴 발전단계로 본다면 그리 절망적인 현상만은 아니라는 색다른 주장을 함께 제시한다.
개도국의 여성 노동자들을 인터뷰한 바에 따르면, 그들이 현재로서는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릴지언정 과거에 비해 훨씬 더 많은 기회를 갖게 된 것이 사실이라고 한다. 그들은 적은 급료나마 일부를 떼어 저축하고 있고, 결혼을 언제 할 것인지, 아이는 몇을 낳을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절대빈곤에 갇혀 있던 농업국가 시절에는 결코 꿈도 꿀 수 없었던 현실이라는 것이다.
제프리 삭스 교수는, 경제발전의 단계가 있다고 가정할 때 그 발전의 사다리에 한 발을 올려 놓은 이상 비록 느릴지언정 그들의 미래는 점점 향상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삭스 교수는 절대빈곤의 함정에 빠져 경제발전의 사다리에 발을 올려놓지조차 못하고 있는 빈국들에게 좀더 많은 지원이 쏟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루하루의 연명에 급급한 절대빈곤국들에게 있어 자력에 의한 빈곤탈출이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빈곤이 퇴치불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이 있을까봐 첨언하자면, 책에 제시된 통계적 실증자료에 따른다면 최근 200여년간 생산성의 급속한 증가와 함께 세계의 절대빈곤 역시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으며, 이러한 추세대로라면 2025년경에는 절대빈곤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삭스 교수의 이런 분석은 자못 흥미롭게 느껴진다. 정말로 빈곤이 퇴치가능한 것일까.
얼마전 파산사건 하나를 신청인 사망으로 종결한 일이 있다. 상속인들이 제출한 사망진단서를 살펴 보니 '자살'이었다.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몸부림친다는 말을 들어보았을 지언정 그들이 자살하는 일은 드문 일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절대빈곤의 탈출이 반드시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삭스 교수의 생각은 어떠할까. <2006. 10. 9.>

2008.01.17 08:34:32
그 동안 올려 주신 글들 잘 읽었습니다.. 글들이 생각을 하게하고 감동적이어서 댓글을 달을까 하는 생각이 여러번 들었지만, 딱히 하지는 않았는데요.
이 글을 읽으면서는, 제프리 삭스 교수의 "경제발전의 단계가 있다는 가정"에 대해 의문이 들고, 따라서 그 가정에 따른 결론에 동의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몇 자 남깁니다...
제프리 삭스가 역사의 어느 때를 기점으로 하여 경제발전의 단계를 상정했는지 모르겠지만, 이것은 비역사적인(?) 가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역사적으로, 산업혁명 내지 과학기술 혁명 등을 통하여, 생산력의 발전이 있었다고 생각되지만, 생산력의 발전이 반드시 분배의 정의를 보장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분배구조의 왜곡으로 절대빈곤층이 더 많이 양산된 경우도 있지 않은가요? 특히 서구제국주의의 팽창과정에서 자본주의에 편입된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의 삶의 질이 이전보다 나아졌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니까요. 식민지 수탈과 식민지 종식 후 야기된 부족간 전쟁 등이 오늘 날 절대빈곤층 확산의 주요 요인이 아닌가요.
생산력의 부족하거나 또는 생산기술이 열악해서 절대빈곤층이 있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어느 때이고 분배구조의 왜곡이나 전쟁과 같은 특수 상황의 발생이 절대빈곤층 확대의 원인이 되어왔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 생각 역시 비현실적이고 비역사적인 가정일지도 모르겠지만요. 어떤 데이타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어서...
마르크스의 경제발전 단계론 역시 서구 중심적이며 비현실적, 비역사적 가정이라는 점으로 인해 비판을 받고 있지요. 하지만 제프리 삭스 교수의 절대빈곤 퇴치 전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가는군요...
감수성있고 사려 깊은 글들 잘 읽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는, 제프리 삭스 교수의 "경제발전의 단계가 있다는 가정"에 대해 의문이 들고, 따라서 그 가정에 따른 결론에 동의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몇 자 남깁니다...
제프리 삭스가 역사의 어느 때를 기점으로 하여 경제발전의 단계를 상정했는지 모르겠지만, 이것은 비역사적인(?) 가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역사적으로, 산업혁명 내지 과학기술 혁명 등을 통하여, 생산력의 발전이 있었다고 생각되지만, 생산력의 발전이 반드시 분배의 정의를 보장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분배구조의 왜곡으로 절대빈곤층이 더 많이 양산된 경우도 있지 않은가요? 특히 서구제국주의의 팽창과정에서 자본주의에 편입된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의 삶의 질이 이전보다 나아졌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니까요. 식민지 수탈과 식민지 종식 후 야기된 부족간 전쟁 등이 오늘 날 절대빈곤층 확산의 주요 요인이 아닌가요.
생산력의 부족하거나 또는 생산기술이 열악해서 절대빈곤층이 있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어느 때이고 분배구조의 왜곡이나 전쟁과 같은 특수 상황의 발생이 절대빈곤층 확대의 원인이 되어왔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 생각 역시 비현실적이고 비역사적인 가정일지도 모르겠지만요. 어떤 데이타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어서...
마르크스의 경제발전 단계론 역시 서구 중심적이며 비현실적, 비역사적 가정이라는 점으로 인해 비판을 받고 있지요. 하지만 제프리 삭스 교수의 절대빈곤 퇴치 전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가는군요...
감수성있고 사려 깊은 글들 잘 읽고 있습니다...^^
2008.01.17 13:32:49
이방인님, 제프리 삭스 교수는 매우 현실적인 분입니다. 기아빈곤의 현장을 발로 뛰면서 경제학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지요. 그분은 수탈의 역사를 선선히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고민하는 것은 절대빈곤의 함정(trap: 경제학적 용어지요)이지요. 그 나라, 그 국민들만의 노력만으로는 결코 헤어나올 수 없는 상태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각 나라가 그 함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각 나라마다 고유한 원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볼리비아의 대통령경제자문관을 지내면서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을 잡은 경험도 있는데요, 중미의 고질적 문제는 지리라는 것이지요. 바다를 끼고 있지 않은 고산지대는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정말 치명적 핸디캡이라고 진단합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그는 아프리카의 가장 큰 빈곤원인으로 말라리아 같은 질병을 지적합니다. 선진국들은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프리카 풍토병의 치료약을 개발하는 데 무관심하지요.
아프리카가 가난한 이유에 대해 사람들의 생각을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까요. 사람들이 게으르다거나, 정권이 부패했기 때문이라는 대답을 준비했다면, 제프리 삭스 교수의 논증에 부끄러움을 당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삭스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경제부진에 대한 문화적 해석은 대개 편견에서 비롯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이를 테면, 게으름이란 자본재 투입의 부족에서 비롯된 일자리 부족에 기인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지요. 아프리카의 농부들은 하루 종일 허리가 휘도록 힘든 노동에 시달리고 있고, 자녀에게 열심히 공부하도록 권하는 것이 중요한가라는 질문에 80% 가량의 아프리카 사람들이 긍정했다고 합니다(미국인은 61%만이 '예'라고 했답니다.).
정권의 부패지수란, 경제적 성장에 반비례한다는 얘기도 합니다. 부패해서 가난한 것이 아니라 가난하기 때문에 부패하다는 것이지요. 게다가 보다 청렴한 정부를 가진 나라가 그렇지 않은 나라에 비해 결코 높은 성장률을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도 덧붙입니다. 우리나라의 70년대 정부가 과연 도덕적 정부였는가를 생각해 보면 감이 새로워지겠지요.
삭스 교수의 주장의 요체는, 이들이 경제성장으로 갈 수 있는 지렛대를 제공하는 것이 부유한 나라의 의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원조는 군비지출에 들어가는 돈의 지극히 작은 일부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며, 가난한 나라를 구제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안보를 구축할 수 있는 길이라는 얘기를 덧붙이지요.
삭스 교수가 결코 구조적 문제를 외면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선후의 문제를 얘기하는 것이지요. 산업혁명 당시처럼 산업의 발달이 많은 부를 창출해내지만, 소수의 자본계급에 부가 집중되고, 민중계급은 도탄에 빠져 있는 단계라면 분명히 구조의 문제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지요. 그러나 사회 전체가 빈곤의 함정에 빠져 있다면, 구조의 문제보다는 당장 부를 창출할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구조적 문제를 탓하며 그들을 도와야 한다는 현실을 외면한다면 그런 비판은 큰 가치를 얻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세계빈곤의 구조적 원인에 대한 도움을 얻으려면,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에 관한 간단한 서평을 곧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볼리비아의 대통령경제자문관을 지내면서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을 잡은 경험도 있는데요, 중미의 고질적 문제는 지리라는 것이지요. 바다를 끼고 있지 않은 고산지대는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정말 치명적 핸디캡이라고 진단합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그는 아프리카의 가장 큰 빈곤원인으로 말라리아 같은 질병을 지적합니다. 선진국들은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프리카 풍토병의 치료약을 개발하는 데 무관심하지요.
아프리카가 가난한 이유에 대해 사람들의 생각을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까요. 사람들이 게으르다거나, 정권이 부패했기 때문이라는 대답을 준비했다면, 제프리 삭스 교수의 논증에 부끄러움을 당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삭스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경제부진에 대한 문화적 해석은 대개 편견에서 비롯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이를 테면, 게으름이란 자본재 투입의 부족에서 비롯된 일자리 부족에 기인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지요. 아프리카의 농부들은 하루 종일 허리가 휘도록 힘든 노동에 시달리고 있고, 자녀에게 열심히 공부하도록 권하는 것이 중요한가라는 질문에 80% 가량의 아프리카 사람들이 긍정했다고 합니다(미국인은 61%만이 '예'라고 했답니다.).
정권의 부패지수란, 경제적 성장에 반비례한다는 얘기도 합니다. 부패해서 가난한 것이 아니라 가난하기 때문에 부패하다는 것이지요. 게다가 보다 청렴한 정부를 가진 나라가 그렇지 않은 나라에 비해 결코 높은 성장률을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도 덧붙입니다. 우리나라의 70년대 정부가 과연 도덕적 정부였는가를 생각해 보면 감이 새로워지겠지요.
삭스 교수의 주장의 요체는, 이들이 경제성장으로 갈 수 있는 지렛대를 제공하는 것이 부유한 나라의 의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원조는 군비지출에 들어가는 돈의 지극히 작은 일부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며, 가난한 나라를 구제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안보를 구축할 수 있는 길이라는 얘기를 덧붙이지요.
삭스 교수가 결코 구조적 문제를 외면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선후의 문제를 얘기하는 것이지요. 산업혁명 당시처럼 산업의 발달이 많은 부를 창출해내지만, 소수의 자본계급에 부가 집중되고, 민중계급은 도탄에 빠져 있는 단계라면 분명히 구조의 문제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지요. 그러나 사회 전체가 빈곤의 함정에 빠져 있다면, 구조의 문제보다는 당장 부를 창출할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구조적 문제를 탓하며 그들을 도와야 한다는 현실을 외면한다면 그런 비판은 큰 가치를 얻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세계빈곤의 구조적 원인에 대한 도움을 얻으려면,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에 관한 간단한 서평을 곧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2008.01.17 15:14:48
바우로님, 노동에 대한 소중한 대가를 받으셨군요. 그 감사의 마음이 무척 맑은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제가 지금 이 직업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되는 지점은, 여기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대개 감사를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남보다 적게 가진 것을 한탄하고, 더 가져오지 못하는 것을 불평하지요. 때로는 감사의 마음이 지극히 영적인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바라기는, 소중한 노동에 대한 대가가 더 넉넉히 치러졌으면 좋겠군요. 이 사회의 시스템 하에서 그것이 언제쯤이면 가능해질까요. 주의 은총을 기다릴 밖에요.
제가 지금 이 직업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되는 지점은, 여기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대개 감사를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남보다 적게 가진 것을 한탄하고, 더 가져오지 못하는 것을 불평하지요. 때로는 감사의 마음이 지극히 영적인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바라기는, 소중한 노동에 대한 대가가 더 넉넉히 치러졌으면 좋겠군요. 이 사회의 시스템 하에서 그것이 언제쯤이면 가능해질까요. 주의 은총을 기다릴 밖에요.
2008.01.19 15:22:48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장 지글러의 책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에 대한 간단한 서평도 올리신다니 함께 비교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무튼 기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급자족 경제와 함께 사회구조 문제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장 지글러의 글과 함께 빈곤 문제에 대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이군요.
그리고... 파산 사건에 대한 종결처리가 마음 아픕니다.
장 지글러의 책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에 대한 간단한 서평도 올리신다니 함께 비교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무튼 기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급자족 경제와 함께 사회구조 문제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장 지글러의 글과 함께 빈곤 문제에 대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이군요.
그리고... 파산 사건에 대한 종결처리가 마음 아픕니다.













이방인
김영진


저임금 노동자 이야기를 들으면서 얼마전 했던 때밀이 알바(보통 목욕업계에서는 스피아라고 하죠.)가 생각났습니다. 주말에 때밀이로 일했는데, 일당 11만원을 나눠서 받았습니다. 좀 자세히 말하면, 저를 고용한 용역 사장님이 현금이 없어서 5만원을 일단 현금으로 주고, 6만원은 월요일(2008년 1월 14일)에 통장에 넣어준 것입니다. 돈 많은 분들이 보면 겨우 11만원이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저로서는 11억원보다 더 귀한 돈입니다. 왜냐면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저임금노동도 비록 액수는 적지만 한달에 한번 수입이 생긴다는 점에서 그리고 노동의 가치를 가르쳐준다는 점에서 개발도상국 노동자들에게 필요하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