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사건을 접하다 보면, 빈곤의 문제에 관심이 가게 마련이다. 며칠전 서점에 들렀다가 <빈곤의 종말>이라는 책을 구입했다. 알고 보니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빈곤이란, 파산문제에서 접하게 되는 빈곤과는 조금 다른 의미를 지닌 것 같다.

저자인 제프리 삭스 교수에 대해 소개를 하자면, 하버드 대학의 국제개발연구소장으로 개도국 거시경제정책 및 경제개발이론에 대한 많은 연구를 수행한 바 있으며, IMF, 세계은행, UNDP, OECD 등 국제기구 자문위원을 역임했다. 현재 미국을 대표하는 거시경제학자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빈곤이 어떤 메카니즘을 통해 생성되는지, 또 그 퇴치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실증적 자료와 함께 간결하고도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의 호언장담에 따르면, 그의 비전대로 실천하기만 한다면 세계의 빈곤(여기서는 절대빈곤 absolute poverty를 의미한다)은 2025년이면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물론 그의 비전대로 따랐을 때의 얘기다.

제프리 삭스 교수의 빈곤 분석은 종속이론(dependency theory)자들에게는 시각전환의 기회가 될 법도 하다.

선진국의 경제독주와 함께 점점 세계 정치경제질서에서 소외되던 제3세계 경제학자들은 세계를 중심부와 주변부로 나누고, 중심부가 점점 부유해 지는 반면 주변부가 점점 가난해지는 것은 중심부가 주변부를 수탈한 결과라고 주장했다(이른바 종속이론). 오늘날 방글라데시나 베트남 같은 개발도상국 노동자들이 선진국 기업의 생산기지에 예속되어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수탈이론의 한 증거가 될 법도 하다. 종속이론은 기존의 시장 분석 중심의 경제학계에 충격파를 던지면서 경제학적 인식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러나 제프리 삭스 교수는 빈곤의 이유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고 진단한다. 빈곤은 빈곤 그 자체로 함정이 되어 발전을 붙들 수 있으며, 그밖에도 지리적, 문화적 요인과 출산률 등 매우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가 혹시 선진국의 비도덕성을 은폐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두어 볼 만 하지만, 그는 오히려 수탈의 역사를 선선히 인정하는 편이다. 다만,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이 역사의 긴 발전단계로 본다면 그리 절망적인 현상만은 아니라는 색다른 주장을 함께 제시한다.

  개도국의 여성 노동자들을 인터뷰한 바에 따르면, 그들이 현재로서는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릴지언정 과거에 비해 훨씬 더 많은 기회를 갖게 된 것이 사실이라고 한다. 그들은 적은 급료나마 일부를 떼어 저축하고 있고, 결혼을 언제 할 것인지, 아이는 몇을 낳을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절대빈곤에 갇혀 있던 농업국가 시절에는 결코 꿈도 꿀 수 없었던 현실이라는 것이다.

제프리 삭스 교수는, 경제발전의 단계가 있다고 가정할 때  그 발전의 사다리에 한 발을 올려 놓은 이상 비록 느릴지언정 그들의 미래는 점점 향상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삭스 교수는 절대빈곤의 함정에 빠져 경제발전의 사다리에 발을 올려놓지조차 못하고 있는 빈국들에게 좀더 많은 지원이 쏟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루하루의 연명에 급급한 절대빈곤국들에게 있어 자력에 의한 빈곤탈출이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빈곤이 퇴치불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이 있을까봐 첨언하자면, 책에 제시된 통계적 실증자료에 따른다면 최근 200여년간 생산성의 급속한 증가와 함께 세계의 절대빈곤 역시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으며, 이러한 추세대로라면 2025년경에는 절대빈곤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삭스 교수의 이런 분석은 자못 흥미롭게 느껴진다. 정말로 빈곤이 퇴치가능한 것일까.

얼마전 파산사건 하나를 신청인 사망으로 종결한 일이 있다. 상속인들이 제출한 사망진단서를 살펴 보니 '자살'이었다.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몸부림친다는 말을 들어보았을 지언정 그들이 자살하는 일은 드문 일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절대빈곤의 탈출이 반드시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삭스 교수의 생각은 어떠할까. <2006.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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