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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와 기독교 신앙

조회 수 5042 추천 수 238 2008.05.15 03:3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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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와 기독교 신앙

다년간의 삶에서 부딪친 나의 수 많은 만남 가운데서 가장 순수한 기쁨을 안겨준 만남은 바로 간디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때는 간디가 막 남 아프리카에서 돌아와 인도에서 해야 할 일의 실마리를 찾고 있던 때였다. 그때만 해도 후에 간디와 선교사들 사이에 일어났던 개종에 대한 옳고 그름을 따지는 그런 대화가 생겨나기 전 일이어서 전혀 갈등의 폭이 없었다. 마하트마 간디를 처음 만났을 때 우리 관계는 전혀 논쟁의 구름에 말려들지 않았을 때였다. 그는 방어적이지 않았고 나(스탠리 존스 선교사) 또한 공격적이지 않았다. 그것은 단순하고 자연적이며 긴장이 전혀 없는 만남이었다.

나는 델리에 있는 세인트 스테판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는데 루드라 교장선생님이 지나가는 말로 “간디 선생(마하트마-위대한 영혼이라 불리기 전 일)이 윗 층에 있는데 만나보시겠습니까?” 이것은 훗날의 분위기와는 완전히 대조되는 것이었다. 훗날 그가 머물렀던 이곳은 인도뿐만 아니라 세계 각처로부터 그를 만나려고 몰려든 군중으로 인해서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여기 나는 ‘만나보시지 않겠습니까?’라는 요청을 받고 있었다! 그는 서류에 둘러싸인 침대에 앉아 있다가 나를 보자 만면에 활짝 웃음을 띠고 나를 맞았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하였다.

“어떻게 하면 우리 기독교가 외국 정부, 외국 사람이라는 냄새를 풍기지 않고 자연스럽게 인도로 녹아 들어가 인도를 발전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그런 종교로 인식이 될 수 있을까요? 힌두 지도자로서 기독교인인 나에게 가능한 길을 알려 주실 수 있을까요?”

간디는 대단히 명료하고 직접적으로 대답했다.

“첫째, 나는 기독교인들, 선교사들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 같은 삶을 살 것을 제안하고 싶소.

둘째, 당신네 종교를 과장하거나 과소평가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실천하시오.

셋째, 사랑을 강조하고 이것을 당신들의 사역의 동력으로 삼으시오. 왜냐하면 사랑은 기독교의 핵심이니까.

마지막 넷째로, 사람들과 좀더 교감하는 교제를 위해 그들가운데 있는 장점을 발견하도록 비기독교 종교들을 심정을 들여 이해하는 측면에서 공부하시오.”

며칠 후 나는 이 네 가지 의견을 영국 대법원장에게 말했더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정말 놀랍군요. 그 네 가지를 끄집어 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요.”  

정말 그랬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의 개인적, 공동체 생활에서 생겨나는 약점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꼬집어 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르기보다 경배하고 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아무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그리스도 같은 삶, 즉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으면서 그리스도를 섬긴다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마하트마는 다른 말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그 첫 항목으로 충분했다. “너의 종교를 꾸미려거나 축소하지말고 있는 그대로 따르라.” 우리는 우리의 기독교의 본질을 거부하지 않는다. 그러나 축소한다. 믿어질 만한 신조, 느낄 만한 감정, 우리가 소속된 기관, 예식, 지키는 규례 등 살아가는데 있어 필요하다면 본질의 의미를 축소한다.

“우리는 부드러운 형태의 기독교를 세상에 주입시켰고 결과적으로 이것은 진정한 기독교를 반대하는 증거물이 되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위대한 힌두 지도자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들의 신앙의 골격은 변화될 필요가 없어요. 전혀 가감이 필요치 않아요. 있는 그대로 믿으세요.”

실천에 관한 첫번째 제안이 우리로 회개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라면 두번째 부분은 우리가 지닌 신앙의 골격을 변화시킬 필요가 없고 다만 그 신앙의 골격대로 살아갈 필요성을 강조한다.  결코 마하트마는 그냥 지나치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가 깊은 재확신이 없이는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그는 주저없이 잘못되었거나 연약한 부분을 지적하는 성격이다.

여기서 그는 분명히 기독교 자체에 잘못이 있거나 연약한 점이 없고 잘못이 있다면 기독교인들의 행함에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든다면 그는 반대로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신들은 근본적으로 선하지 못한 악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가 이렇게 말했다면 이것은 치명적인 것이었을 것이다. “목자를 치라. 그러면 양들이 흩어질 것이다.” 합법적인 비평으로 예수님이 잘못되었다고 공격하면 양들인 우리는 절망하여 흩어질 것이 뻔하다. 그러나 그의 말의 핵심은 분명하다. 신앙의 대상인 예수님을 바꾸라는 요구는 없다. 그는 우리로 더욱 더 예수님답게 변화되도록 촉구하고 있다. 내가 인도에 도착해야 했을 때 인도인들에게 많은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가졌다. 부분적으로 기독화된 교회에 대하여, 또 기독교인으로 되어가가는 나 자신에 대하여 미안한 마음으로 깊은 회개의 심정을 지녔었다. 그러나 예수님에 대해서는 미안해 할 건수가 전혀 없다. 예수님이야말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완벽한 자신이다. 모든 것이 수정될 필요가 있으나 예수님은 전혀 그럴 필요 없다. 그에게는 오직 복종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간디는 세번째 필요성을 지적했다. “사랑을 강조하고 그것을 당신들의 일의 추진력으로 삼으세요. 사랑은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여기서 그는 감정으로서 사랑이 아니라 일을 추진해 나가는 원동력을 말한다. 간디가 자신의 비폭력 무저항 사상을 추진해 나가는 원동력으로 샤탸그라하를 삼았는데 이것은 진리라고 생각한 것은 갖은 고초를 겪더라도 결코 양보함이 없이 밀어 부치는 것이었다. 아마 간디는 기독교인의 사랑을 동일한 개념으로 바라보았다. 이것은 방해물에 직면했을 때 삶의 활로를 여는 것으로서의 사랑이다. 이 같은 세계에 기반을 둔 사랑으로서 일하는 기술이다. 간디가 기독교인들에게 사랑을 일을 추진하는 원동력으로 요구하였을 때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기독교인들의 모든 면 즉 종교, 정치, 경적인 면에서 십자가를 삶의 기반으로 삼으라는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가 세상에 생긴 이래 가장 거대한 도전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다름아닌 모든 전쟁 제도를 포기하고 대신 샤타그랴하를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괴벽스런 노인의 별난 주문이 아니었다. 간디 자신이 이것을 삶의 방식으로 삼아서 4억의 인도 민중을 이끌어 마침내 영국으로부터 자유를 쟁취할 때 쓰던 독립운동의 원동력이었다. 이것은 실지로 역사하되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고 마하트마는 기독교인들에게 이것을 받아들이도록 요청했다. 나중에 이것의 가능성에 대해 보게 될 것이다. 주의해서 볼 것은 간디가 우리에게 힘을 쓰는 대신 사랑을 쓰도록 요청하는 것이다. 사랑으로 말미암은 힘은 물리적 힘보다 더 강하기 때문이다. 간디 자신이 그것을 실천했다.

넷째로, 사람들과 좀더 교감하는 교제를 위해 그들가운데 있는 장점을 발견하도록 비 기독교 종교들을 심정을 들여 이해하는 측면에서 공부하시오.” 이것은 정곡을 찌른다. 의심할 나위 없이 우리 기독교인들은 타 종교를 바라보는 관점에 있어 장점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측면보다 항상 이들의 약점을 비판하는 자세로 일관해 왔기 때문이다. 그 자세의 측면에는 만약 이들의 장점을 발견한다면 복음을 전할 이유를 발견할 수 없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깔려있다. 그러나 이런 케케묵은 사고는 하나의 올바른 자각으로 대폭 교체된다. 예수님 자신이 이 땅의 것을 ‘멸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성취하러’ 오셨기 때문에 어느 곳에서 발견되던 진리던 그 진리는 참 진리이신 예수님을 드러내는 데 일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느곳에서든 진리를 발견하면 그로 인하여 기뻐해야 한다. 하나님이 이미 심어두신 것이 예수님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성취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수님이 어느곳에서 발견되는 아무 진리의 대적자가 아니라 사랑스런 마음으로 이것을 거두어 들여 이를 성취하시는 분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최종점은 진리를 얼기설키 얽어 놓은 것이 아니라 새로운 소산이 될 것이다. 이것은 절충주의도 혼합주의도 아닐 것이다. “절충주의는 집어서 선택하고 혼합주의는 결합시키지만 인생은 융화하는 것이다.” 복음은 생명이다. 이것은 식물과 같이 모든 문화의 토양에 뿌리를 내리고 유사성을 갖는 결과물을 도출해 내고 그것의 목적들속으로 결과물을 가져와 자신의 삶의 법칙들에 따라 그들에게서 나온 새로운 소산물을 만든다. 그 최종 결과는 절충주의도 혼합주의도 아닌 융화된 생명이다. 우리는 어느 곳에서 발견되는 진리든 공감할 수 있으며 우리 자신의 복음에 대해서도 진실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공감하는 태도를 지니지 않는다면 허위가 될 것이다. 또다시 간디는 우리가 지닌 복음에 대해 진실하도록 재요청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이 시점에서 우리가 기독교와 함께한 마하트마의 모든 관계성이 남을 수 있기를 바란다. 이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유익하고 신실하며 심히도 깊이 필요한 것이다. 나는 이 단순하고 거르지 않는 이 시기를 떠나야만 하고 이후 간디와 자연적 유사성을 가진 우리 선교사들이 여러해동안 종종 대치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에 애석함을 금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이 구름이 드리워진 것 같은 시기에도 그를 사랑했고 때론 그의 생각에 동조하지 않으면서도 그를 변호하였다. 나의 지성이 용납지 않는 때 조차도 무언가 나의 감성을 붙들었다. 돌이켜 보건대 수많은 비난이 선교사인 우리에게 떨어져야만 하는 것을 본다. 그리고 우리는 마음으로 그의 비판을 받아들이고 우리의 길과 태도를 수정할 수 있었다. 공평하게 말하자면 어쨌든 나는 그의 방법과 태도들의 많은 부분이 수정되었고 수 많은 이슈들이 사건들에 의해 사라졌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의 비판의 일부는 아직도 유효하다.

기독교인이 되지 않기로 마하트마가 결단한 것은 남아프리카에 도착했을 때였다. 안팎으로부터 좋은 조건을 내세우며 합법적이든 자연적이든 또 다른 이유에든 간디로 기독교인을 만들고자 하는 압력이 있었다. 그는 압력에 거부하기로 결단했다. “나에게 있어 구원은 힌두이즘에 있다.”고 말했다. 남아의 극심한 인종차별의 분위기에서 기독교인이 되고자 결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가 이 지독한 인종 차별속에서 어떻게 참 기독교를 볼 수 있었을까? 그는 C.F. Andrews 선교사에게서 참 기독교의 모습을 보았다. 인도인들은 그를 C.F.A(Christ’s Faithful Apostle) 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앤드류스 선교사가 남아에 있는 교회에서 설교할 때 물론 간디는 피부가 희다는 이유로 교회로 들어올 수 없었다.  앤듀류스는 배를 타고 갑판 승객들에게 다가가 인도 아기들을 간질이며 이야기한다. 그가 남아 백인 승객들에게 돌아왔을 때 그들의 얼굴에는 그늘이 져 있었고 그들 중 한 사람이 말했다. “그러지 않아셔야 한다는 것을 당신이 아셨으면 좋겠소.” 남아 흑인 교수 한 사람이 씁스름하게 말했다. “내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소망이 있다면 백인국가들이 무장하고 자폭하여 자신들의 문명이 산산조각이 나면 그때서야 우리의 기회가 오지 않을까 하는 것이오.” 이것이 간디가 기독교인이 되도록 결단을 촉구하는 때의 분위기였다. 마음에 담아 둘 것은 모든 인종차별주의가 종종 깊이 종교적이고 종교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종족을 떠나 사람을 사람으로서 사랑했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예수님은 그랬다. 그러나 그의 추종자들이 예수님을 백인들의 통치와 백인 지배권을 후원자로 만들었다. 어떻게 간디가 그것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볼 것인가? 인종차별주의는 여러면에서 견디기 어려운 죄악인데 그중 가장 사악한 것은 여인의 몸에서 난 위대한 영혼중의 한 사람이 그의 결단의 시기에 그리스도를 불분명하게 한 것이다.

그리고 다시 마하트마 간디는 그를 매주일 입석 만찬에 초대하고 만찬 이후 감리교회에 출석하곤 하던 남아의 기독교 가정에 대해 말한다.
“그 예배는 나에게 호감을 주지 못했습니다. 설교는 영감을 주지 못했습니다. 회중들은 독특한 종교성을 가진 사람들로서 나에게 와닿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헌신된 영혼들의 회중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레크리에이션이나 전통을 따라 교회에 출석하는 세상사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때 나는 원치 않게 졸았습니다. 나는 부끄러웠습니다. 그런데 옆에 있던 나보다 별로 달라 보이지 않던 그 사람이 나의 졸았던 점을 지적하고 챙피를 주었습니다. 나는 이런 행동을 계속할 수 없었고 곧 예배를 참석하는 것을 그만 두었습니다.”

요한 웨슬레가 생각나누나! 한순간의 감리교회의 졸리고 멍한 상태에 세상의 가장 위대한 사람중의 하나가 신도의 좌석에 앉아 서서히 그의 결단을 굳히고 있었다.  교회를 판단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그러나 그 영향력이 미쳐진 것은 어떡하랴.

그는 성경속으로 직접 들어가려고 시도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창세기를 읽는다. 그러나 연이은 장들은 변함없이 나를 졸리게 만들었다. 민수기를 읽는 것은 싫었다. 그러나 신약은 다른 감명을 자아내었다. 특별히 산상수훈은 내마음에 와닿았다. 그 포기는 종교의 가장 높은 수준으로서 거대하게 나에게 호소했다. 톨스토이의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안에 있다’는 책은 나를 휘어잡았다. 그것은 나의 안에 늘 함께 하는 감명을 남겼다. 독자적인 사상, 심원한 도덕과 이 책의 진실함앞에 코아테스씨로부터 받은 모든 다른 책은 미미하게 비추어졌다.

비록 간디가 결코 기독교인이 되지 않았지만 기독교 사상과 태도의 경향은 그의 삶을 관통하고 있다.그는 이렇게 말한다.

“비록 내가 나의 기독교 친구들이 원치 않는 길을 택했지만 그들이 나를 일깨워준 종교적 탐구에 대해 깊이 빚진자의 심정을 갖고 있다. 나는 항상 그들과의 만남을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추억을 담은 해를 이은 교제들이 나의 마음에 달콤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는 이후 위대한 인도 기독교인 칼리 차란 바네르지와의 만남에 대해 말한다.
“나는 친구 바네르지씨와 나사이에 많은 공통점을 발견한다. 그의 단순성, 겸손, 용기, 진실성 등 모든 것들이 내가 평생 숭배해오던 것이다. 음. 난 당신에게 우리사이에 있었던 얼마의 대화를 글로써 표현하지는 않으련다. 그 토론은 너무나 멋지고 우아했다. 나는 애석함도 거부도 실망도 하지 않았지만 서글펐던 점은 바네르지씨마저 나를 확신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내앞에 놓여진 기독교를 깨닫고자 하는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지금 나의 생각은 이렇다. 비록 내가 기독교를 몹시 동경하지만 나는 나 자신을 정통 기독교인으로서 말할 수는 없다. 나의 삶은 외적 비극들로 점철되어져 왔는데 만약 그것들이 나에게 어떤 흔적이나 지워질 수 없는 영향을 남기지 않았다면 나는 이것을 ‘바그와드-기따’의 덕분이라고 말하고 싶다.”

기따는 금후 그의 충성과 헌신의 중심이 되었다. 그러나 위의 글중 다음 문장들은 호기심을 끄는 것이며 관심을 가져볼만한 것이다. “나는 미안함이나 거부나 실망함없이 헤어졌지만 심지어 바네르지씨마저 나를 확신시키지 못한 것이 서글펐다.” “미안함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슬펐다.” 이 명백한 모순은 담장의 작은 틈바구니 일것임에 틀림없는데 그의 삶에 가득찬 명백한 모순을 살펴보자.
그는 헌신으로서 힌두였고 기독교에는 동질감을 느꼈다. 그는 깊이 어느 누구보다도 더 기독교화된 힌두였다. 한 기독교 편집자는 그를 터툴리안의 ‘그 영혼은 자연적으로 기독교인’이란 말을 인용하여 ‘자연적 기독교인’이라고 기술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자신이 아마도 그렇게 말하기를 거부할 것이라면 그것을 주장하려고 애써서는 안된다. 그는 힌두였고 힌두이즘에 소속되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동서간, 종교와 종교간의 모든 반대점들을 벗겨버릴 때 그가 기독교친화적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종종 포도원으로 일하게 내보낸 두 아들의 비유를 나에게 상기시켰다. 첫째 아들은 “가겠습니다.”하고 가지 않았다. 둘째 아들은 “안 갈래요.”하고 갔다. 누가 아버지의 뜻을 행했는가? 대답은 후자이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예, 가겠습니다. 기독교인이 되겠습니다.”라고 말한 첫째 아들과 같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가지 않는다. 간디는 둘째 아들과 같다. 처음에는 “안 갈래요.” 말하고 후에 나머지 가지 않는 우리들과는 판이하게 기독교 정신을 견지하고 갔다.

힌두이즘이 그를 주장했다고 하는 것은 옳다. 진지하게는 아니지만 힌두이즘은 필히 간디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간디즘’이라고 재명명해야 한다는 제안이 있었다. 만약 힌두이즘이 간디를 주장한다면 이것은 값싼 주장이 아닐 것이다. 만약 간디가 힌두이즘에 머문다면 힌두이즘의 이름으로 행세하는 많은 일들이 사라져야만 한다. 그가 괄목할 만한 힌두이즘의 부흥의 시기에 그들속에 있어온 시기에도 그는 힌두 세계에 분열을 일으키는 세력으로 존재해왔다. 그는 그 제도를 붕괴시켜왔고 지금도 붕괴시키고 있다. 많은 정통 힌두들이 그를 마음깊이 두려워하고 심지어 입술로 그를 찬양하기까지 하였다. 간디에게 불만을 품게한 정통힌두들이 표면에 드러나 그의 죽음에 단과자를 나누는 것을 반대했다. 예를 들면 마하트마 간디보다 카스트를 무너뜨린 사람이 없다. 제도로서 카스트가 맥없이 무너지는데 있어 불가촉천민제도를 제거하고자 하는 그의 주장은 이 제도의 붕괴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불가촉 천민이 없어지면 카스트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한쪽을 제거되는 동안 한쪽을 붙든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그러나 한동안 마하트마는 시도했다.

그가 예라드바 감옥에 있을 때 그를 면회간적이 있었다. 그가 감옥 마당에 침대에 누워있을 때 그 옆에 암베드카르 박사가 앉아 있었다. 이때가 암베드카르 박사가 억압받는 계급을 이끌고 힌두이즘을 떠나려고 선언하려던 참이었다. 마하트마가 불가촉천민들의 대표와 갖는 모임은 중요한 것이었는데 마하트마는 그 모임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고 암메드카르 박사는 우리의 대화를 청취했다. 나는 사회를 보는 관점에는 수평적 관점(여기서 나는 손가락을 수평으로 놓았다.) 수직적 관점(여기서 나는 손가락을 수직으로 세웠다.) 두가지가 있다고 말했다. 수평적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하나님앞에서 모든 사람은 동등하고 사람앞에서도 동등하다. 수직적 측면에서 볼 때 사람위에 사람이 있는 계급에 놓고 보게 된다. 카스트가 바로 그것이다. 거기엔 제사장 계급인 브라만, 무사계급인 크샤트리야, 상인 계급인 사이샤와 섬기는 계급인 수드라가 있다. 그 밑에 7백만의 아무런 카스트에도 들지 않는 불가촉천민이 있다. 지금 당신은 불가촉천민 계급을 없애고 그들을 한 계급 상승시켜 그들로 카스트제도내에 혼합시키려고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그 카스트 제도는 여전히 고스란히 남아 있다. 사람들을 여전히 수직적 대상으로 생각한다. 암베드카르 박사는 박장대소하였다. 조금 다른 측면에서 카스트제도를 이야기 했지만 나의 이야기는 그 문제를 정확하게 지적하였기 때문이다.

마하트마는 대답했다. “나 또한 인간을 하나님앞에서 동등한 존재인 수평적 관점으로 생각해야만 한다고 말하고 싶소.”
“그렇다면 카스트는 불가촉천민과 사라지게 됩니다.” 내가 대답했다.
“맞소.” 그는 천천히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전생으로 부여된 이 하나안에 다른 기능을 맞게될 특정한 자질이 있습니다.” 그는 수정된 형태의 카스트를 옹호했고 이것이 “왜 나는 힌두인가?”하는 글의 내용이 의미하는 바이기도 했다. 그는 말했다. “마침내 바르나스라마(카스트 제도)는 끊임없는 진리의 탐색끝에 나온 놀라운 결과입니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 그의 해석은 전생으로부터 존재의 자질내에 차이점을 극복하는 것을 축소시키는 것으로 와 닿았다. 이것은 이전의 특정한 집에 출생에 기반을 둔 현존의 카스트제도와 구별될 수 없다. 하나는 상속받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공적인 것이다. 카스트제도에 대한 간디의 해석은 카스트제도를 있는 그대로 설명한 것이다. 이것은 그가 한 행동과 동일하다. 그의 방어는 공격용으로 드러났다. 마하트마 간디가 어떤 모습이었던 어떤 모습이든 그가 카스트제도를 붕괴하는 가장 큰 단일 세력이라는 것을 의심할 바 없다. 그의 면전에서는 카스트가 단순히 운용될 수 없었다. 만약 그가 입술로 그것을 방어하면 그의 심장은 바로 그순간 그것을 박살내버린다. 그러나 그는 카스트를 방어하지 않았다. 그는 완전히 다르게 어떤 것을 방어했다.

마하트마 간디를 제도, 철학 또는 종교속으로 고정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는 형태를 깨버렸다. 예를 들면 세가지 거대한 힌두이즘의 원칙은 까르마(행위), 윤회와 비인격체 브라마와의 일치이다. 그러나 그의 사후 이틀동안 연이은 그를 높이는 고인에 대한 찬미를 듣는 한 순간 나는 갑자기 그가 그 세가지 기본 개념에 하나도 일치되지 않는 삶을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죽음에서 그는 뿌린대로 거두는 까르마의 법이 마하트마의 경우에는 단한번도 적용되었음을 볼 수 없다. 한 정통 힌두가 나에게 말했다. “예수는 분명 전생에 끔찍한 죄수였음에 틀림없소. 왜냐하면 그는 이생에 끔찍한 고통을 당했기 때문이요.” 그 엄격한 까르마의 법에 따르면 이것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마하트마의 경우에는 전혀 얼토당토 않다. 그의 고통은 징벌이 아니라 대신하여 받는 것이었다. 그는 나라과 그들의 죄악을 위하여 죽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까르마의 결과라기보다 십자가에 더 일치되는 것이다.

한번도 마하트마가 다시 환생하여 어린이에서 자라나 다른 인격체로 되기를 원하는 것은 본적이 없었다. 그들은 그가 다시 윤회하여 돌아오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가 영혼으로 돌아와 그들을 인도해 주기를 바랬다. 누구도 재환생한 마하트마가 어린이로 태어난 것을 보아야만 한다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 아이디어는 결코 걸맞지 않다.

더하여 마하트마가 비인격체인 브라흐마와 합일 되었다는 암시를 들어본 적도 없다. 사실은 그들은 마하트마를 비인격체의 바다에서 잃어 버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마하트마가 마하트마 간디로서 인격체로 살아나기를 바랬다. 그들은 마하트마가 영혼으로 돌아와 그들을 인도해 주기를 바랬다. 이 울부짖음은 여류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이며 지금은 연합주의 주지사인 사로지니 나이두 여사가 국영 라디오 방송에서 애도시를 드리는데 잘 나타나 있다.

“그의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보다 더 위대한 사랑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위대한 일이 있다면 그가 누웠던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이 3일째 입니다. 그는 다시 일어나야만 합니다. 오 바뿌지(아버지의 힌디, 간디의 애칭), 죽음에서 일어나사 우리를 이끄소서. 우리는 당신이 휴식을 취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너무도 필요해요.”

이것은 상한 심정에서 나온 상한 울부짖음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도의 분위기를 정확히 표현했다. 마하트마가 비인격 실체요 잃어버린 존재인 마하트마 간디와는 전혀 일치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것은 결코 표현되지 않았다.

핵심적인 철학적 사상인 까르마, 윤회와 비인격체 브라하마와 합일되는 것은 마하트마와 전혀 걸맞지 않고 효과적이지도 않다. 모든 실행한 사상이 기독교와 걸맞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실천한 것들이 힌두보다는 기독교에 가깝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정당할 것임에 틀림없다. 정통 힌두는 힌두 정통 관습에 따라 그의 시신을 거두어 화장했다. 그러나 그가 나타낸 사상과 개념은 이상하게도 기독교인 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통 기독교도 아니다. 마하트마는 정통 기독교인이라기 보다 자연적 기독교인이었다. 그렇지만 내가 어떻게 그 구별을 옹호할 수 있을까? 나는 아니다. 나는 그것을 옹호하지 않는채로 남겨둔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하는 그 사실들의 가장 가까운 진술이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과 독자들에게 정직해야만 한다. 나는 그 모든 것을 그렇게 전해졌다는 식의 그런 상태로 내버려 둘 수 없다. 마하트마 간디의 기독교적 방식의 적용이 기독교인의 삶에서 가끔씩 또는 발견되지 않는 것과 같이 보통 신실하고 순전한 기독교인에서 말견되지 않는 불확실한 마하트마의 삶의 영역이 있다. 만약 마하트마가 기독교인에게 줄 수 있는 기독교 방식의 역동적인 적용의 어떤 것이 있다면 나는 기독교인도 마하트마에게 결핍된 하나님과의 경험을 방법을 줄 어떤 것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마하트마는 “나는 하나님을 본적도 없고 그를 알지도 못한다. 그러나 나 스스로 하나님안에 있는 세계의 믿음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분명했다. 마하트마는 기독교 원칙에 의해, 특히 산상수훈에 의해 영향을 받았고 빚어진 바 되었다. 그러나 그는 결코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영접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한때 나는 이 문제에 관한 나의 마음을 토로한 편지를 그에게 보낸 적이 있다.

“당신은 내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며 당신의 비폭력 운동을 서방에 알리고자 애써왔는가를 잘 알고 계실겁니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나는 한 가지에 대해 깊이 실망하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이 기독교의 핵심을 붙들었다고 생각했소. 그러나 송구스럽게도 나의 마음을 바꾸어야만 하오. 나는 당신이 기독교 신앙의 어떤 원칙을 붙들었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당신을 빚었고 당신을 위대하게 만드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했소. 그러나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 그 인격을 잃어버렸소. 캘커타에서 당신은 선교사들에게 산상수훈에서 위안을 얻은 것이 아니라 바그바드 기따에서 라고 말했소. 나또한 산상수훈에서 위안을 얻은 것이 아니라 산상수훈이 아로새겨진 산상수훈을 묘사한 그 인격체에서 위로를 받았소. 사실 그 인격체 자신이 산상수훈보다 훨씬 더 위대하시지요. 내가 생각하기론 이것이 당신이 잡은 것에서 가장 연약한 점이 아닐까 하오. 나에게 제안을 하라면 나는 당신이 그 원칙들을 통하여 그 인격체게 깊이 파고 들어 가본 후 우리에게 돌아와 당신이 발견한 바를 말해 주었으면 하오. 나는 이것을 단순한 기독교 선전가로서 말하고 싶지는 않소. 내가 이것을 말하는 바는 우리가 당신이 필요하고 만약 당신이 정말 그 핵심인 인격체를 붙든다면 당신이 우리에게 줄 설명이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요.”

그는 바로 답장을 썼다.
“나는 당신의 편지에 깔린 사랑과 나의 행복을 기원하는 친절함을 인하여 매우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어려움은 장기적인 것입니다. 다른 친구들도 이전에도 지금도 그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나는 지적으로 그 지위를 붙들 수 없소이다. 그 심정이 반드시 와 닿아야만 합니다. 사울이 바울이 된 것은 지적인 노력이 아니라 무언가 그의 마음에 무엇인가 와 닿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나의 마음은 절대적으로 열려져 있습니다. 나는 맷돌질할 축이 없습니다. 나는 진리를 발견하기를 원하고 하나님과 대면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거기에 멈춥니다. 시간이 있을 때 아쉬람으로 와 주세요.”

이것은 드러내는 편지다. 그는 자신이 깨달은 것보다 어떤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을 보았다. 그는 무엇인가 빠뜨린 것이 있는데 그것은 그의 지적인 노력으로 깨달아 질 수 없는 것이었고 다만 심적 계시로 가능한 것이었다. 그는 그 심적 계시를 빠뜨리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가 인격체 그리스도와 치명적 접촉으로 나아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단지 매개자인 원리들을 통하여 그 인격체에 접촉했었다. 이 시점이 바로 일반 신실한 그리스도 헌신자들이 마하트마를 넘어서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의 자발적인 항복과 믿음과 그리스도와의 살아있는 접촉은 확실성과 기쁨과 사람으로 하여금 감사로 넘치게 하고 모든이와 함께 그리스도를 나누기를 원하는 과거와 현재의 죄로부터 자유함을 가져다 준다. 이것이 마하트마가 결코 깨닫지 못한 것이고 기독교, 특별히 복음전파에 대한 오해의 근원지가 된다. 그는 왜 그들이 자신들의 믿음을 나누려고 하는지 결코 이해할 수 없었다.

많은 위대한 이들이 인도로 와서 마하트마에게 어리석은 질문을 던졌다. 그중 가장 멍청한 질문이 다음이다. “스탠리 존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마하트마가 대답했다. “그는 정말 열심이 있는 사람이자 매우 성실한 사람이지요. 그러나 그는 특정 종교에 대해 너무 확신을 가지고 있으며 그러므로 겸양에 있어 좀 부족하지요.” 마하트마의 입장에서 볼 때 그 말은 맞다. 왜냐하면 그는 구원이란 훈련된 노력을 통하여 얻는 것이라고 바라보기 때문이다. 내가 사바르마띠에 있는 아쉬람에 있을 때 4오후 네시에 시작디는 기도모임의 끝무렵에 함께 걷곤 했다. 그리고 그는 경험상 자신에게 종교란 무엇인가를 이야기 했고 나는 그에게 내게 종교란 무엇인가를 이야기 했다. 열흘동안 우리는 상대방의 마음을 깊이 탐색했다. 어느날 그가 말했다. “만약 누군가 구원을 발견하려면 이는 마치 어떤 사람이 바닷가에 앉아 빨대로 바닷물을 한 방울씩 집어 옮기는 것과 같은 인내를 가져야만 한다.” 구원은 사람의 엄격하고 훈련된 노력, 집요한 극기를 통하여 온다. 만약 한 사람이 구원이 사람 자신의 훈련된 노력을 통하여 온다고 믿는다면 물론 그는 그것에 대하여 감히 말하지 않는다. 그것을 말한다는 것은 천박하고 겸손하지 못한 것이 되는데 이는 바로 그것이 자신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구원을 한 사람의 노력을 통하여 얻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통하여 주어지는 것이라고 관찰했다. 나는 나의 철저히 망가진 모습외에는 드릴 것이 없는 도덕적 영적 파산의 상태에서 그리스도에게 나아왔다. 나의 속죄를 위해 나를 붙드시고 나를 용서하시고 많은 나날을 내 행복한 영혼의 노래로 지나게 하셨다.  믿음을 통하여 내가 아닌 은혜로 나는 구원을 받았고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나는 그것을 말할 수 있었고 그렇게 함으로서 다른이의 발앞에 나의 사랑과 감사의 봉헌을 놓을 수가 있었다. 그것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천박하거나 겸양의 부족이 아닌 것이 결과적으로 나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하트마의 입장에서 그가 옳았고 내 입장에서 보면 내가 옳았다. 이것이 바로 마하트마와 기독교인들이 결코 함께 할 수 없는 입장인 것이다. 그들은 두가지 다른 언어를 말하고 있는 것이며 결코 다른 이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일을 함으로서 주어지는 달성의 언어를 이야기하고 기독교인들은 은혜로 얻어지는 언어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에겐 지금 양심의 힘과 구원자의 실재를 통하여 양심구원에 관하여 말하는 것은 억측이라고 비춰진다. 왜냐하면 노력을 통한 구원은 투쟁과 한숨이요 은혜에 인한 구원은 항복과 노래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결코 당신이 도달했다고 확신할 수 없으나 당신이 얻었다는 것은 확신한다. 은혜에 의한 구원이 너무나 값싸고 쉬워 보인다는 것은 안다. 그러나 결코 싼 것이 아니다. 왜냐면 당신이 그 선물을 가졌을 때 당신은 영원토록 그 수여자의 소유이다. 그 분은 당신의 심연, 그리고 영원을 가졌다. 그리고 당신이 선물을 받은 순간 당신은 세계를 얼싸안고 이것을 누구에게도 나누어 주고 싶어진다. 이것은 마하트마가 결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지속적으로 인도 기독교인들과 선교사들에게 말했다. “그것에 관하여 말하지 마시오. 장미는 결코 자신의 향기를 전파하지 않습니다. 단지 냄새를 풍기고 사람들이 관심을 갖습니다. 그것에 관하여 말하지 마시오. 그것대로 사시오. 그러면 사람들이 당신의 능력의 원천을 보러 올것입니다.” 마하트마의 비판에 있는 무엇은 반드시 들어야만 한다. 매우 매우 자주 우리 복음주의는 생명대신에 말이 되어져 왔다. 생명의 복음대신에 입술의 복음이 되어왔다. 전생애는 메시지로 말하여 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리는 특정한 구절을 말할 수 있고 우리는 복음을 전한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 깊이는 깊이있게 말하지 못했다. 말의 증거를 확증하는 생활의 증거와 함께한 자아검증이 결여되어 왔었다. 이것에 대한 참회로 우리는 우리 삶이 자신의 신앙고백에 일치될때까지 침묵을 매우 자주 강요받아 와야만 했다. 우리는 교정으로서 장미 향기 강조를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러나 단지 교정으로서만이다. 왜냐하면 다른 쪽으로 치우쳐 우리는 삶의 복음을 전하지 입술로는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편향된 것이고 부자연스런 것이다. 만약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예수님이 복음대로 사는 삶을 기준으로 택하시고 말씀을 증거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얼마나 세상이 더 비참해졌을까? 우리는 아름다운 삶을 기릴 수는 있더라도 전달할 수 있는 복음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들과 행위들에는 빈틈이 없다. 당신은 어디서 그의 말씀이 끝나고 행위가 시작되는지 말할 수 없다. 그의 행위가 말씀이며 말씀이 행위가 되셔서 본체이신 그분과 함께 하심으로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 이것이 편린의 전부다. 그에게 부자연스런 침묵을 강요하는 것은 그의 삶을 양분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말은 우리 삶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마음의 풍성함으로부터 말이 나온다.” 게다가 장미의 햐기는 장미가 가진 벌들을 과즙으로 부르는 단 하나의 목소리다.

그러나 복음에 대한 간디의 거부는 좀더 근본적이다. 그는 모든 종교는 동등하며 그러므로 한 종교로부터 다른 종교로 개종시키려고 시도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라는 자세를 견지하였다. 그는 예라브다 감옥에서 “관용 다시 말하면 종교들의 평등”이란 제하의 글을 썼다. 그의 관용은 종교의 평등의 개념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그는 이것을 “세계 고등종교의 평등”이라는 글에서 이를 수정하였다. 다른 곳에서 그는 “모든 위대한 종교는 평등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애니미즘이나 저급 종교를 포함시키는 난점을 극복하기 위해 “고등”과 “위대”를 넣었다. 그러나 그가 그런 것을 한 순간 그의 예에서 벗어났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차별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어떤 것은 평등하고 어떤 것은 그렇지 않다. 단지 ‘고등’과 ‘위대’한 종교만이 평등하다. 만약 이 구별이 한 수준에서 멈춘다면 왜 이것은 어떤 것은 나쁠 수 있고 어떤 것은 좋고 나쁠 수 있으며 어떤 것은 좋고 어떤 것은 좀 더나을 수 있으며 어떤 것은 최고의 것인 것을 통한 전반에서 그것을 붙들지 않을 수 있는가? 우리는 인생의 가장 깊은 선택의 시기가 왔을 때 정신적으로 포기하게 되는 것인가? 그 태도를 갖는다는 것은 모든 영역에 모든 진보를 멈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프로레마이와 코페르니쿠스가 갈등할 시기에 그 태도가 채택되었다고하자. 그러면 모든 위대한 과학 이론은 같다. 그것은 반대를 면할 수 있으나 진보를 죽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실에 더 근접한 이론만이 살아남기 때문이다. 종교에도 동일하다. 사실에 좀더 적합한 것이 살아남는다. 남은 것은 낡아 빠져서 서서히 사라진다.

그러나 내가 이것을 씀으로서 나는 깊은 망서림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한 사람을 신성치 않는 대적으로 판명되는 장소로 몰아넣는 것을 느끼는 것을 지극히 혐오한다. 나는 기독교를 종교로서 전혀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결코 그 단어를 쓰지 않으셨다. 그의 개념에는 전혀 낯선 것이다. 그는 하나를 거스리는 또 다른 하나의 종교를 건설하기 위해 오시지 않으셨다. 그는 사람에게 필요한, 그것이 유대인의 신앙이든, 이방 종교든 또는 예수님 자신의 추종자 가운데서든 인간의 필요에 반하는 복음을 주러 오셨다. “많은 종교가 있으나 복음은 하나다.” 왜냐하면 종교는 인간의 하나님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다. 하나는 사람에서 시작하여 하나님까지며 다른 하나는 하나님으로 시작하여 사람에게로까지 이다.

내가 아는 바로는 내가 그렇게 말할 때 그것은 억측처럼 들린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둘러싸고 이루어진 종교는 사람이 만든 것이고 오류 투성이였다. 진짜다. 그러나 복음은 다른 종교에서 이루어지는 것처럼 인조와 오류투성이 제도와 직면하게 된다. 우리는 예수님을 둘러싸고 세워진 이 제도를 전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들이 어느 인간적인 필요성을 전파하기 하는 것처럼 복음을 전한다. 우리의 메시지는 제도가 아니고 구주시다. 그분이 복음이시다. 복음은 그의 인격체에 놓여져 있다. 그 자신이 좋은 소식이다. 그는 좋은 소식를 가져오신 것은 아니다. 그 자신이 복음이다. 우리는 그러므로 그를 동서로 모시고 다니며 말한다. 이 이슈는 단순하다. 그리스도와 그의 왕국이 그 이슈이다. 그를 바로 붙잡아라. 당신은 자신을 형성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을 발견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해석을 갖게 해서는 안된다. 복음들에게 바로 가서 예수님을 새롭게 발견하고 만약 당신이 우리에게 좀 더 나은 해석을 보여 준다면 우리는 당신의 발 앞에 앉을 것이다. 서구에서 그리스도에 관하여 세워온 제도가 축적된 경험을 덧입는데 있어서 유익하고 쓸모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경험과 협력하여 나오는 표현을 당신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창조하라. 그리스도는 우주에 편재하시지만 그 편재성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지역의 형태를 이용하신다. 우리는 인도에 있는 당신에게 기대하는 것은 당신의 풍요로운 문화적 종교적 과거로부터 편재적 그리스도의 해석을 가져와 무언가 통합적 표현이 크게 풍요로와 지는 것이다. 특별히 지금 마하트마 간디는 살다가 죽었다. 우리는 당신이 우리 서구인이 결핍된 분야에서 그리스도를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아들들이 인자를 해석할 것이다.

나의 독자들의 일부의 마음가운데 이 프리젠테이션의 가장 근저에 가정이 있지 않는가 느끼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그 가정은 “많은 종교들이 있지만 오직 복음은 하나다.”라는 것이다. 그것은 가정이다. 그러나 거기에 우리가 서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다른 것을 할 수 없도록 도우시고 있다. 우리는 예수안에 있는 복음을 보아왔고 아직도 보고 있다. 그 복음은 세상 만민에게 필요한 것이고 특별히 우리에게 필요하다. 왜냐하면 복음주의자를 복음화 시키는 복음이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우리가 가장 확신있게 복음을 전할 때 조차도 우리로 항상 겸비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선포의 핵심에는 깊은 겸손이 있다. 그 확신은 성취의 확신위에 세워진 것이 아닌 주어진 것에 대한 확신위에 서있다. 그 확신은 커다란 겸손위에 뿌리를 내리지 결코 영적인 자만이 아니다. 이것이 마하트마가 결코 이해하지 못하고 기나긴 논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인과의 논쟁의 기반이 되는 또 다른 요소가 있었다. 억압받는 계급의 대중적 개종이었다. 마하트마가 대중적 개종에 반대하는 동안에도 때때로 사소한 일들에서 양보함으로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그가 특정한 예에서는 개종을 허용하고 있다고 믿게 하였다. 그는 전적으로 반대하는 것처럼 이야기 했으나 그의 마음 가운데는 예외가 있었다고 나는 믿는다. 그렇지 않다면 그가 어떻게 그 자신이 강력한 개종자라고 설 수 있었을까? 어느날 나는 웃으면서 그에게 대영제국을 그의 관점으로 개종시키리고 애써 온 사실을 기초를 두고 “우리 가운데 가장 위대한 개종자”라고 말했다.

그는 매우 명확하게 말한다.
“의식적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국가의 개종은 훨씬 다수의, 훨씬 역사가 오랜 다른 사람을 약탈했습니다. 문화화된 그 자체가 다름아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커다란 손실입니다. 나는 의도적으로 개종이란 말을 썼는데 나의 야망 자체가 다름아닌 바로 비폭력을 통하여 대영제국 사람들을 개종시키고 결과적으로 그들로 인도에 얼마나 나쁜짓을 하고 있는가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분명히 마하트마는 확실히 우리 가운데 가장 위대한 개종자였고 영국을 인도가 바라는 독립으로 개종시켰다. 성취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러나 마하트마 간디는 전적으로 모호하게 억압받는 계급이 전통적으로 갖고 있는 신앙에서 다른 믿음으로 개종하는 것을 반대했다.

이 위치는 이해할 만하다. 마하트마 간디는 대중 개종이 대중 의사표현이라는 명목으로 정치적으로 이용될 가능성과 실제성을 보았다. 이 대립이 진행되고 있을 때 각 종교집단 즉 힌두, 무슬림, 시크, 기독교의 수에 따라 대의원, 합법적인 예약석이 할당되었다. 숫자가 계산되고 정치권에서 힘이 대중 개종을 통하여 얻어질 수 있었다. 7천만 불가촉 천민의 집단 개종은 국가의 힘의 균형을 뒤흔들 수 있었다. 이슬람이나 기독교로의 대중 개종은 힌두권으로부터 나올 수 밖에 없다. 국가에 그들의 세력 권형이 그것으로 위협받게 된다. 힌두가 경각심을 가지고 무장할 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마하트마는 불가촉천민의 개종을 반대하는 주장자들의 대변인이 되었고 이들이 힌두권내에 잔류토록 전력을 기울였다. 그의 구제책은 불가촉천민의 계급을 없애고 힌두의 정상적인 한 계급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그는 나라를 휩쓴 거대한 운동을 이끌었고 그들의 권익신장을 위한 많은 노력에 대한 책임을 졌다. 누구나 다 불가촉천민들을 원했다. 억압받는 계급의 지도자였던 암베드카르는 나에게 말했다. “무슬림들이 우리가 자기네 종교로 개종만 한다면 우리에게 땅 뿐만 아니라 하늘도 주겠다고 했지요.” 시크는 불가촉천민을 받는 봄베이에 그들을 위한 대학을 지었다. 정말 큰 유혹이 될 만했다. 이것은 종교적 개종을 가장한 보이지 않는 권력 투쟁이었다.
기독교 교회와 선교사들은 자치 목적에 대한 대량 개종에 대해 동일한 회의를 품었다. 대부분이 불명확했다. 인도 교회와 선교사 둘다 우리는 자치 목적으로 개종 운동이 사용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것은 순전히 종교적이었다. 그러나 독립 투쟁기간동안 어디에 기독교인의 입지가 분명치 않았다. 어떤 인도 기독교인들은 비협력 운동에 가담하였으나 대다수 냉담하였다. 어떤 선교사들은 자신들의 심정을 토로하였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독립이 되면 기독교 운동에 악영향이 오지 않을까 두려워 하여 영국 통치가 계속되기를 은연중 바라고 있었다. 국가 지도자들이 이 사실을 알았다. 그들중 몇 몇은 독립이 되면 인도 자치정부하에서는 지금 진행되고 있는 선교가 전혀 용납되지 않을 것이라고 표현했다. 간디도 그런 내용을 언급했다. “대영제국의 일시적 권력의 비호하에 또는 그늘에 의탁하여 인도로 온 기독교 선교사들이 넘어설 수 없는 철책을 만들었다.” 기독교 선교사들이 보기에는 그들이 제국주의를 위한 동맹을 하는 것으로 비춰졌다. 많은 경우 이것은 진실이 아니었는데 왜냐하면 많은이들이 다가올 인도에서 중립을 보장하는 것은 곧 침묵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침묵은 그들이 있던 모습대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었다. 개종에 대한 그릇된 대립의 그림자하에서 수년이 흘렀다. ‘기독교 선교, 인도에서 그들의 위치’라는 제하의 3백여 페이지나 되는 글이 M.K. 간디에 의해 그가 주필하는 잡지인 ‘Young India’와 ‘Harija’에 실렸다. 이 글에서 마하트마는 ‘다른사람의 개종을 속으로라도 기도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어떻게 물질주의와 싸워야 할 것인가 하는 정치과 교수의 질문에 대답하며 그는 말했다. “음, 당신이 알아야 할 바는 진리의 기반의 수액을 말리는 가장 극악한 독약인 개종의 생각이 포기되지 않는한 이 세력들과 싸운다는 것은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오.” 그는 또한 병들고 고통하는 이들을 고쳐주는 의료사업이 개종의 미끼이며 교육 또한 같은 목적으로 실행되고 있다고 불평했다.

대립의 기간동안 와르다에 있는 마하트마와 개종에 관해 이야기를 하려고 두 친구인 낙푸르의 히즈롭 대학의 교장 다윗 모세와 S. 알디스 목사와 두차례 방문했다. 나는 무언가 이렇게 이야기 했다.
“만약 한 사람이 내적으로 그리스도야 말로 그가 충성을 다 드려야 할 분이라고 확신했다고 합시다. 그는 그의 옷이나 이름을 바꿀 필요가 없소. 그는 인도의 문화와 삶의 흐름에 서서 그리스도를 인도의 유산의 틀에 맞추어 해석할 수 있소. 만약 당신이 그런 사람을 속박하지 않고 공개적으로 용납한다면 기독교 교회의 세례받은 회원이 되도록 한다면 우리들 중 얼마의, 내 생각에는 인도 기독교를 이끌어 가는 대표자들인 이들은, 기독교 단체가 정치적 일선에서 물러나 오직 인도의 약진과 구원에만 전심전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마하트마는 신중하게 대답했다. “만약 내 아들이 당신이 제시한 조건하에 기독교인이 된다면 나는 어떤 징벌이나 제약을 가함이 없이 나의 집에 머물도록 하겠소.”
“그것은 개인적인 것이요. 당신은 이것을 인도에 추천할 수 없겠소?”
“만약 당신이 해야할 그것을 지금 한다면 나도 기꺼이 할 수 있소. 그러면 기독교에 대한 대부분의 거부가 인도의 마음에서 사라질 것이오.”
차로 돌아오면서 우리 셋은 우리가 제대로 했는가 인터뷰 전체를 새롭게 검토하였다. 왜냐하면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그가 특정한 조건하이지만 개종을 분명히 승인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사이에 벌어진 위의 상황에 대하여 동의하였다. 그 인터뷰는 출판되었고 6개월 후 간디의 비서가 그 인터뷰는 오해였고 그릇된 해석이라고 일간지에 출판하였다. 응신하는 진술서에 서명한 우리 세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만약 스탠리 존스가 오해했다면 우리 세사람이 동일하게 오해한 것이 되는데 그것은 우리 세사람 모두 이것이 양방간에 합의된 사실이라고 동의하였기 때문이다.” 어떻게 되었는가? 분명히 우리에게 있어 마하트마의 진술은 매우 중요하고 힌두 지도자들은 그같이 인정해야만 했다. 마하트마에 따르면 개종은 무방한 것이다. 그들은 비서에게 압력을 가했음에 틀림없고 간디가 이를 알았던 몰랐던 동의했던 안했던 간디는 개종을 허용하지 않았다는 철회문이 발표되었다.

그러나 내가 확신하는 바는 이것이 간디의 속내를 드러낸 것이라는 것이다. 그의 대답은 신실하였고 망서림없는 솔직한 것이었다. 그리고 개종에 대해 내 마음속에 드리워졌던 상태는 마하트마의 마음속에 거부를 깨끗이 없앴다. 그는 인도 문화를 잃어 버리고 비국유화 되며 또한 개종을 통해 힌두 정치력을 잃어 버릴까 두려워서 개종을 싫어했다. 여기서 나는 인도 기독교인들이 비국유화 할 필요가 없으며 분리된 정치적 독자성을 띤 기독교 공동체는 차츰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경우 거기엔 정치적 권력을 얻기위해 개종을 이용하는 것에 대한 정치적 두려움이 없다. 이것이 바로 그가 개종을 반대한 기본 이유였고 그것을 알았을 때 그는 망서림없이 개종을 승인하였던 것이다.
이 전반적 대립은 매우 뼈아픈 것이었고 매우 순수했다. 이것은 선교사들로서 우리 자신의 마음과 방법과 동기를 탐색하게 하였다. 만약 우리가 정직하다면 우리는 불평을 들을만한 자신들을 발견한다. 우리의 개종은 너무 자주 비국유화하였고 서방주의로서 기독교를 인식시켰다. 우리는 대량 개종을 받아들이면서 자질보다 양을 너무 많이 강조하였다. 그리고 종종 적절한 준비없이 행해졌다. 그리고 우리는 의료지원과 교육을 개종의 미끼로 사용하였다. 수를 헤아릴 수도 없이 결백하다하기에는 너무 자주 그래왔다. 마하트마의 비판은 몇해간에 걸쳐 계속되었는데 그중 얼마는 식초처럼 쓰라린 것이었으나 우리에게 유리한 것이었고 우리 운동을 좀더 기독교 운동으로 만들었다. 그것은 사랑안에서 주장된 것이었고 우리 또한 사랑으로 이를 받아 들였다. 왜냐하면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이 대립과 신랄한 비평의 몇 년동안 마하트마와 선교사들간의 반목이 부재했다. 그들은 서로 이해하지 못할 때 밀착되었다. 한 선교사가 마하트마를 ‘억압받는 무리들의 대적 제1호’라고 하고 다른 선교사는 내가 ‘간디의 친구’였기 때문에 카나다 정부에 이야기하여 나를 카나다로부터 추방시키고자 한 것은 사실이나 드문 예이다. 총체적으로 볼 때 자신들이 서로에게 소속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너무나 공통되는 점이 많았고 그들사이에 유사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선교사들과 인도 기독교인들이 거듭하여 간디에게 나아와 질문한 것을 볼 때 아직 무엇인가 드러나지 않은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제는 끝나지 않았고 그들은 서로에게 소속되어 있었다. 그들은 그랬다.

내가 한해전 인도로 돌아왔을 때 선교사들과 일부 인도 기독교인들이 독립 인도에서 그들의 지위에 대해 곤란을 겪고 있는 것을 보았다. 선교사들이 신생 인도에 허용될 것인가? 인도 기독교인들의 복음화 운동이 허용될 것인가? 한편으로는 마하트마 간디는 자유 인도에 개종은 허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마랬다. 내가 편집한 “우정’이란 글에서 나는 이렇게 썼다.

“우리는 당신이 복음은 아마도 허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라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런 경우 비록 명목상으로 마지못해 비폭력 시민 불복종의 방법을 사용하라고 우리에게 가르쳤습니다. 기독교인은 이 이슈로 감옥에 기꺼운 마음으로 갔습니다.”

단하나 내가 마하트마로부터 받은 신랄한 말은 이 글에 대한 답이다. 나는 후에 그에게 그의 답신을 아슈람에 있는 나의 동료들에게 보여주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그들이 이것을 보는 것을 원치 않았는데 이것이 마하트마의 진면목인가” 의아해 할까봐서 였다. 거기에 우리 둘다 웃으면서 그 사건은 없었던 것으로 차츰 잊혀져 갔다.

일반적인 불확실성이 기독교 운동과 국민운동의 사이에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것의 명료화를 위해 국민운동 지도자들을 찾아 갔다. 그들에게 나는 곧 있을 남인도 및 구릉지역 북인도 지역 큰 기독교 대성회에 보고할려고 하니 이 부분에 대하여 선명한 해답을 원한다고 말했다. 선교사들이 새로운 인도에서도 그 기능을 할 수 있을것인가? 그런다면 그들이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는데 동역자로 환역을 받거나 용납되어질 것인가?

내무부 장관으로서 경찰 치안을 담당하며 한마디 말이 인도 전체의 가부를 결정하는 바라바이 파텔의 대답은 매무 중요하기 때문에 숨을 죽이고 그 대답을 기다렸다. 인도의 모든 기독교 운동의 장래가 그 한마디에 달렸다. 그가 대답했다.

“선교사들로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계속 진행하게 할 것이다. 병원과 조제소를 통하여 고통하는 이들을 돌보고 학교를 통하여 가난한 이들을 섬기는 일을 계속하게 할 것이다. 그들은 심지어 그들이 전파하고자 하는 바를 평화스런 방식으로 수행할 것이다. 그러나 대중 개종을 통하여 공동 권력을 이룩하는 종교적 운동은 사용해서는 안된다.”

내가 그에게 다른 모든 대부분 인도 기독교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대중시위를 반대하며 만약 나라가 대중 시위 같은 것에 기반을 두고 조직된다면 우리가 맨처음 그것과 관계를 단절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개종을 통한 공공 세력을 키울 아무런 야심이 없다고 말했다. 그것은 나라를 퇴보시키는 것이며 종교를 퇴보 시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교사들로 인도와 운명을 같이하게 하고 인도로 그들의 집을 만들도록 합시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단도직입적이고 매우 신실하며 매우 확실한 것이라 한 의사 선교사가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나의 마음에 커다란 짐을 덜었다.”

그리고 나서 나는 전 공업부 장관이자 현재 인도의 지사인 C. 라자고팔라차리에게 갔다. 그의 대답이다.
“당신은 개종할 법적 권리를 갖고 있다. 그러나 개종은 인도에서 불화를 일으키는 일이기 때문에 내가 제안하는 바는 이것의 강도를 약하게 하고 상황이 평상시가 될때까지 사람을 섬기는 전략을 구사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오. 그런 경우 단순히 환영받는 것이 아니라 환대를 받을 것이외다.”

다음 방문해야 할 중요한 사람은 바로 무슬림 교육부 장관인 압둘 칼람 아자드였다. 우리가 많은 교육 기관을 갖고 있기에 대단히 중요한 사람이었다. 그의 대답은 따스하고 친절했다.
“’묵인’이란 용어를 쓰지 마세요. 선교사에게 묵인이란 질문이 있을 수 없어요. 대량 개종이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되는 것 이외에는 선교사들을 탓할 만한 아무것도 없어요. 도덕적 영적 변화가 있을 때 외부에서 변화를 요구할 만한 아무런 권리가 없지요. 다만 도덕적 영적 변화가 포함되지 않는다면 동기를 따져볼 수 있겠지요.”

내가 여기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을 때 그는 말했다.
“우리는 선교사들이 인도와 다른 세계에서 한 일을 알고 있습니다. 특별히 동쪽 지방에 당신들이 학교를 지은 사실에 대해 우리 새로운 인도는 선교사들을 환영합니다.”
그리고 정부에 가장 중요한 인물 수상 자와할랄 네루가 있었다.
“나는 지금 새로운 인도를 건설해 나가는 “환영된 동반자”가 되는 것에 무엇이 관여되어 있는지 잘 알지는 못하지만 우리는 인도와 함께 하고자 자신을 투신하고 인도로 고국을 삼고자 하는 자는 어느 누구든 환영할 것이외다.”

이 진술은 더 선명해지고 좀더 재확신 할 수 없을 만큼 분명했다. 나는 그것들을 코다이카날과 란도우르에 있는 집회에 들고 갔다. 산악 지방에 위치한 그 집회에는 각각 5백명의 참석자가 있었다. 그들은 만장일치로 그들의 의견을 표출했는데 다음은 그들 중의 하나다.
“선교사의 그룹, 많은 교단과 여러 국적, 랜도우르, 무수리, 집회에서 결성된 5백명 가까운 수는 인도의 독립이 눈앞에 다가온 것에 대해 깊은 감사를 표현한다. 우리는 이 독립이 영국의 동의와 협조로 이루어진 것임을 인하여 감사한다.

우리는 이 우호적 분리가 의미하는 바는 두나라를 장차 더 가까이 결합하게 할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어려움이 앞에 놓여져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가능성을 더 자각하고 있다. 우리는 이 난관을 헤쳐나가는데 있어 그 가능성을 도출해내며 모든 합법적 길에 도우미가 될 것을 엄숙히 서약하는 바이다.

우리는 이 새로운 자유가 이땅의 잠재적 가능성을 개발하는 새로운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며 진보와 번영의 새 시대가 시작되는 것임을 의미한다고 믿는다.  더 나아가 우리는 자유 인도가 다가올 세계 자유와 평화의 커다란 자산이 될 것임을 믿는다. 왜냐하면 현재의 실망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는 인도의 성향을 안다. 우리는 이 성향이 자신을 재삼 재사 독촉하여 국가의 모아진 이 의지는 결과적으로 인도를 평화와 통일로 이끌것임을 믿는다.

우리는 기꺼이 인도와 그리스도의 종들이 되기를 원하며 우리 자신을 이 땅의 신민으로 자각한다. 그들의 슬픔이 우리의 슬픔이 되며 그들의 즐거움이 우리의 즐거움이 되고 그들의 성공이 우리의 성공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인도의 정치적 생명이 자치단체의 기반으로 조직된 것을 애석해 마지 않는다. 만약 기독교 공동체가 자치단체 대표제를 받아들이도록 강요 되어져 왔다면 그것의 유효성에는 내적 신앙이 없고 확신컨대 만약 다른 대안이 발견된다면 그것을 가장 먼저 거절할 것이다.
우리는 내적 개종에 따른 외부적 개종에 관한 개인과 단체의 고유의 권리가 있음을 믿는다. 그러나 현재고 과거고 종교적 개종을 통한 정치적 자치단체 세력을 형성하기 위한 욕구가 전혀 없다. 우리는 이 사실이 종교와 정치의 기반을 흔드는 것이고 도덕적 영적 운동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대중의 관심사를 섬기려고 세워질 합법적 정부를 지원할 모든 적법한 길에 지원을 아끼지 않기로 언약한다. 우리가 가진 최선을 줄것이다. 우리의 공동 소망이자 기도인 땅 인도를 만들기 위한 도움을 우리에게 요청하는데 있어 인도 정부가 전혀 거리낌없기를 바란다.”

이 선언은 국민회의 지도자들과 일간지에게 보내졌고 호의적 찬사과 커다란 관심을 끌었다. 무슨 일이 일어 났는가? 국가주의자 운동과 기독교 운동 특히 선교사의 측면에서 이 두 움직임은 단결했다. 불화의 기간은 끝났다. 그들은 새 인도를 만들기 위해 함께 일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이 세기에 선교사 세계에서 일어났던 가장 중요한 사건중의 하나였다. 그것은 인도와 인도의 필요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었다.

나는 기독교 운동이 아래와 같이 기술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우리의 일에 배후의 동기가 없다. 우리가 의료사업이나 교육 사업을 할 때 우리는 그것을 해야된다고 믿기 때문에 했다. 만약 병을 치료하거나 젊은이들을 교육하는 동안에 아무도 개종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우리는 기꺼이 여전히 둘다 할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일들은 자신들의 고유의 권리이지 또 다른 수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자기를 따르게 하기 위해 치료를 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사람들이 치료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치료하셨다. 만약 이러는 동안 그들이 예수님을 따르고자 선택한다면 그들을 환영했다. 교육과 의료활동 가운데 그들중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결단한다면 우리는 그들을 환영하겠지만 우리는 이 섬김을 미끼로 활용하지 않는다. 이것은 섬김과 우리와 섬김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타락시키는 것이다.

둘째, 우리는 개인과 단체가 그들의 외적 변화를 뒷받침하는 내적 도덕적 영적 변화가 분명할때만 교회로 받아들이고자 우리 자신과 국가에 서약한다. 대체로 이것이 우리의 정책과 실천이며 새롭게된 헌신을 드리고자 다시 다짐한다.

우리는 대량 개종을 통한 자치단체 세력의 형성문제로 일어났던 불화가 자치단체 자체의 제거를 통하여 제거된 것에 대해 감사해 마지 않는다. 향후 남자와 여자는 자치적 숫자에 따라 자치적으로 선출된 자치적 기반위에 있는 공립의 사무실을 위하여 선택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 지도자들이 처음부터 택한 것이다. 최소한 그들은 이것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자신들의 의지를 표명했다. 이러는 동안 그들은 높은 애국심을 보였고 그 당시 국가의 인정을 받았다. 이것이 이루어진 지금 개종에 대한 긴장은 수그러졌다.

사실 독립 인도를 위한 헌법 초안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공공 명령, 도덕과 건강에 대하여… 모든 민중은 동등한 양심의 자유와 자유롭게 신앙고백, 실천, 종교를 전파할 수 있다. “ 모든 것이 선명해졌다. 개종의 권리는 승인되었다. 만약 개종하는 것에 의해 영접함이 없다면 한 사람의 신앙을 전파할 요체가 없다. 옥에 티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중앙 정부가 어느 누구도 치안판사 앞에 나아가 자신의 신앙이 바뀌었음을 선언하지 않는한 신앙을 바꿀 수 없다는 조례를 만든 것이다. 경찰의 조사흐에 치안판사는 그가 개종했는지 결정했다. 이것은 분명히 헌법을 거스리는 것이다. 이것이 개종을 금하지 않음에도 이것은 개종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린다. 이 문제에 관한 헌법위원장 라젠드라 프라사드 박사의 해석은 이러했다. 이것은 일반적 개종이 아닌 강압적 개종에 대한 것인데 이것은 이슬람에게 강압적으로 개종된 것을 드러내기 위함이며 무엇보다 이것은 임시법이다. 대체로 이렇게 개종의 이슈는 명확해져왔고 이해의 새날이 시작되었다. 최근 나는 의장에게 비기독교 청중을 소개 받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스탠리 존스 같은 사람에게서 듣는 어느 위치의 개방은 지금까지 두가지 시점에서 우리를 저지해 왔다. 첫째는 우리는 대량 개종이 자치적 목적으로 이용될 까 두려워 했다. 둘째, 우리는 선교사가 제국주의의 대리인인지 아닌지 몰랐다. 이 두가지 이슈가 명확히 되었다. 자치대표제는 사라지고 개종은 자치적 목적으로 이용될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선교사들이 이 새로운 독립 인도와 동행하는 것을 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스탠리 존스가 말하는 것을 즐겨 듣는다.”

나는 이 마지막 해 마하트마와의 긴장의 시기는 끝났다는 것을 느꼈다. 이슈들은 명확화되었다. 우리가 아직도 많은 일에 의견이 일치되지 않고 있지만 우리는 새로운 인도를 만들고자 하는 동일한 목적을 갖고 일하고 있다.

많은 일들이 해결되지 않는 채로 남아 있었다. 우리중 얼마는 어떻게 그렇게 도덕적이고 영적인 사람인 마하트마 간디가 신격화된 과거의 왕인 라마에 몰두하여 경배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지 의아해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마하트마는 지성적으로,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모든 면에서 라마보다 우월했기 때문이다. 그가 “신”이란 단어 대신 “라마”란 말을 썼다고 말한 것은 사실이다. 아마 그가 어렸을때에 유령들과 귀신들을 무서워해서 아기보는 여자였던 람바가 이것에 대한 치료책으로 라마의 이름인 ‘라마나마’를 암송하도록 한 것을 기억하면 이것에 대한 이해가 쉬워진다. 그래서 그는 “어린 나이에 유령과 귀신에 대한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하여 ‘라마나마’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비록 이것이 짧은 시기에 지나지 않았지만 어린 시절에 뿌려진 씨앗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나는 좋은 여인이었던 람바가 뿌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라마나마’는 나의 확실한 치료책이다.”고 말한다. 어린시절에 뿌려진 씨는 그의 잠재의식의 일부가 되었다. 그는 결코 이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이것으로부터 승리를 뽑아냈다. 이것은 후에 그의 실제적인 삶에서 찾아오는 두려움에 대한 ‘확실한 치료책’이 되었다. 그는 이 수단들을 초월했다. 그의 영혼은 너무 위대했기에 잘못된 생각을 택했지만 이것을 공헌하게 했다. 비실제나 위선이 없었다. 그는 이것이 효력을 발생하는 것을 보았고 그에게는 이것이 실제가 되었다. 그러나 그안에 있는 영혼이 그것을 하게 한 것이지 주문 자체가 아니었다. ‘라마나마’ 아무런 위력이 없었다. 그것을 말하는 사람에게 잠재력이 있었다. “우리가 옳다고 생각한 그때 보다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그가 더 정당하다.” ‘라마나마’의 잘못된 사상을 읊조리는 마하트마 간디는 종종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그릇된 우리보다 정당하다. 그의 영혼이 잘못된 사상으로부터 생명수를 뽑아내었다.

간디에 대해 또 다른 난문제가 있다. 마하트마는 비폭력을 믿고 실천하면서 폭력의 철학적 정당화를 기초한 책, 즉 바가와드 기따에 깊은 애착과 충성심을 가졌다. 마하트마는 판다바와 카우라바간의 전쟁을 단순한 씨족간의 전쟁으로 보지 않고 영적인 전쟁으로 보았다. 그는 말한다. “전쟁이 거기에 있었으나 그 전쟁은 내부에서 진행되는 것이었다. 판다바가와 카우라바가는 내부에 있는 선과 악의 세력이다. 그 전쟁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진행되는 지킬과 하이드, 하나님과 사탄과의 전쟁이다. ” 그 설명에 난점은 판다바가와 카우라바간에 도덕적 구분이 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마치 하나에서 여섯이나 한 다스의 반같이 도덕적으로 구분 불가능하다. 카가와 박사는 논평한다. “그러나 싸움을 망서리는 아르주나의 관점이 싸움을 독려하는 크리슈나보다 우월한 것으로 보인다.” 마하트마의 대답이다. “그렇다면 당신에 따르면 제자가 스승보다 위대한 것이요.” 그리고 그는 그 상태로 남겨둔다. “영성화는 회의하는 마음의 첫 피난처다.” 그러나 마하트마의 마음은 회의하는 마음이 아니었다. 비폭력에서 확실하게 믿는 것이 나타난다. 그의 확신은 폭력을 철학적으로 정당화하는 책에서 비폭력을 도출해 낼수 있었다. 또 다시 그가 틀렸을 때라도 그는 정당하다는 것이 드러난다. 그는 폭력적인 사람을 비폭력적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리 폭력적인 담화를 비폭력적으로 만들었다. 그의 놀라운 영혼의 힘이었다. 그리고 나는 단순이 말장난 하기를 원치 않는다. 한 위대한 영혼이 접하는 모든 것을 변화시켜 그와 같은 형상으로 만드는 이것은 과장이 아닌 사실이다. 기따는 간디의 것이 되었다. 그의 가슴을 가르키며 “여기에 폭력이 없소.”라고 말하면서 “어떻게 거기에 폭력이 있을 수 있는가?” 기따를 가르킨다. 그래서 당신은 논쟁하지 않는다. 대신 기따에서 조차 비폭력을 찾아내는 그 영혼을 사랑하고 존경한다. 심지어 우리도 분명한 근거가 있는 것보다 구약의 성격에서 사랑받고 존경을 받아오는 기독교인을 더 많이 갖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기독교 사상과 태도들을 구약에서 확인한다. 마하트마도 그 자신의 비폭력을 기따에서 확인하곤 하였다.
마하트마 간디가 뿌나 병원에서 영국인 의사에 의해 진행된 맹장수술후 건강을 회복하고 있을 때 잠시 감옥으로부터 풀려 났었다. 나는 봄페이에 있는 선약에 맞추기 위해 오전 6시에 면회를 요청했다. 그는 몹시 반가와 하면서 “좋고 말구요. 어서 오세요.” 라는 전보를 보내왔다. 그에게 뭐라고 말하여 할까 생각하며 동이 트는 역 플랫트 폼에 서 있을 때 그가 풀려나면 또 실타래 얽히고 설킨 것처럼 많은 일들을 직면해야 하므로 나는 예수님의 제자들과 그가 평행선상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주님, 이스라엘의 회복이 이때이니이까?” 그들은 마치 마하트마 간디가 인도 왕국을 회복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이스라엘의 회복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꿈꾸는 세상의 왕국보다 더 큰 왕국을 제시하였다. 나는 그 평행선을 보았다. 그래서 마하트마에게 말했다.
“나는 내일 서방으로 떠나오. 이 기독교도로서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관해 서방에 전할 메시지가 있으면 주시기 바라오.”

잠시 생각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 같은 메시지는 말로서 되는 것이 아니오. 삶에 의해서 전해질 수 있는 것이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란 그대로 사는 것, 이것이 내가 줄 메시지요.”
나는 그의 합리적인 태도에 깊이 감명을 받고 또 얼마나 그가 정확한 가를 보았다. 그래서 내가 첨언했다. “만약 나에게 줄 메시지가 없다면 내가 오늘 아침에 철로를 걸어 오면서 느낀 것 한 가지를 말할까 하오.” 나는 평행선상에다 초점을 맞추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당신은 왕국의 회복을 원합니다. 당연한 일이오. 인도왕국은 회복될 것이오. 회복될 수 밖에 없고 나는 이것이 될 것을 바라고 있소. 그러나 더 위대한 왕국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소. 우리 서구는 군국주의 방식에 염증을 느끼고 있소. 우리는 군국주의와 전쟁으로부터 인도해 내서 새로운 길을 제시할 지도자가 필요하오. 당신은 비폭력의 사도요. 당신은 그 지도자가 될 수 있소. 우리는 당신이 필요하오. 그런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 내 생각으로는 우리가 갖고 있는 신앙으로 우리에게 호소해야하는 것이 좋을 것이요. 우리는 그 운동을 위한 영적인 중심이 필요할 것이오. 내 생각에는 본질적으로 우리 서구는 최소한 명목상으로나 충성을 바치고 있는 예수님이 그 중심이 되실 것이오. 만약 당신이 선명하게 예수님의 증인으로 선다면 세계 만국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소. 예수님의 분명한 증인이라는 뜻이 기독교인이 되어 세례를 받으라는 것은 아니오. 나는 그것은 당신의 손에 맞기려고 하오. 내가 강조하는 ‘분명한’이 의미하는 바는 서구에서 예수님을 당신의 비폭력의 중심으로 하라는 것이오. 이 세계 만국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소. 가지지 않겠소?”

세계 1,2차 대전중간의 기간이라 나의 말은 진심이었다. 우리는 전쟁을 향하여 떠밀려 가고 있었다. 나는 마하트마가 우리를 이끌 수 있고 전쟁을 피할 수 있는 우리의 진정한 소망이라고 느꼈다. 그는 결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눈물을 글썽이며 앉아 있었다. 그의 눈물은 이렇게 말하는 듯 했다. “나도 그러고 싶소. 그러나 그것을 시도할만큼 시기가 성숙치 않소. 나는 그 비폭력의 능력을 인도에서 입증해야만 하오. 그러고 난 다음에야 세계가 그 차례가 되지 않겠소.” 그는 급히 말했다. “나는 그것을 여기서만 입증할 수 있소.” 그것이 전부였다. 전부라구? 여기서 또 다시 그는 전적으로 옳았다. 왜냐하면 만약 그가 내가 바라는 대로 유럽으로 가서 우리의 바람대로 전쟁으로부터 이끌어 내고자 애썼다면 아마 시기상조였을 것이다. 그는 샤타그라하의 효과를  입증하지 못했다. 독립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유럽도 군국주의로 인한 절망이 바닥을 치지 않았다. 유럽은 아직도 군사력이 일을 결정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완전한 환멸감이 아직 오지 않았다. 이제 다가오고 있었다. 유럽과 서구가 만약 군국주의가 다시 권력을 장악하고 원폭이 사용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에 대해 두려움과 절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것은 집단 자실로 가는 것이 될 것이었다.

마하트마와 나는 고개 숙여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손에 모든 것을 의탁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은 세계를 전쟁을 없애는 운동의 중심으로서 예수님의 증인을 통하여 전쟁으로부터 우리를 지도할 마하트마를 만들어 달라고 하는 나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셨다. 지금 그 마하트마는 신조의 순교자로 죽었고 그의 연약한 육신에 감싸져 있던 사상은 자유롭게 되어 인류의 소유가 되었다. 이것은 아마 그가 머지않아 세상 왕국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일 지 모른다. 그 가능성은 다음장에서 다루도록 하자.

어쨌든 다른 반쪽 가정은 매우 큰 규모로 진실로 다가왔다. 나는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 달라고 요청했고 그는 결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었다.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그가 그렇게 되리라고 꿈도 꾸어본 적이 없었다. 그는 수년간을 선교기관의 제도와 기독교도의 방식에 관하여 비판을 하는데 소비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그는 그리스도의 이상을 더욱 더 널리 알리게 되었다. 가장 비평적인 사람이 가장 핵심인 그리스도의 자리에서 건설적인 자로 판명되었다. 그 제도는 변화할 수 있으나 구주는 변화할 수 없다. 그는 반드시 변화되지 않는채로 있어야 한다. 그는 변화하지 않았다. 그리고 신선한 빛의 홍수가 마하트마의 죽음을 통하여 그에게 쏟아져 내렸다. 비 기독교인들로부터 성명서의 홍수가 그 삶과 죽음에 있어 마하트마를 그리스도에 삶에 견주는 인도의 영혼으로부터 쏟아져 나왔다. 우리는 항상 그 성명서와 동의하는 것은 아니나 그것은 국가의 영혼과 간디의 영혼을 드러낸다. 간디 사후 ‘힌두’신문은 그 사설에서 간디를 ‘제2의 그리스도’라고 썼다. 낙불의 신문은 그의 사후에 말했다. “그의 종말과 그 보편적인 논평은 얼마나 그리스도와 유사한가.” 이집트 인도 대사였던 M. 사이드 후세인은  말했다. “인도의 구세주가 십자가에 못박혔다. 그는 갔다. 이것은 인도가 영원히 그의 십자가의 그늘아래 걷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인도에 있던 버마 대사 U. Win 이 말했다. “세계는 오늘 회복될 수 없는 손실을 입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죄악된 세상을 구하기 위하여 고통하셨던 것처럼 마하트마 간디도 오늘날 고통을 당했다.” 아쌈의 고피낫트 바르돌로이 수상이 말했다. “후대는 마하트마 간디를 마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처럼 인류의 위대한 스승으로 여기게 될 것이다.” 마이소르의 수상 A. 라마스와미 무달리야 경은 이렇게 말했다. “마하트마지는 이 세계의 새로운 구주로 있어왔다.” 아쌈 국민회의 의원회장 마우라나 모하메드 타예불라가 말했다. “비폭력의 사도 마하트마지는 그리스도처럼 진리와 평회의 거룩한 신조를 위한 순교자로 죽었다.” 마드라스 국회 부타이야 세티야가 말했다. “그의 삶은 마치 그리스도가 땅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인도 연방법원 전 법관이었던 M. R. 자야칼박사가 말했다. “이 마하트마의 가증스런 암살은 그가 그렇게 소중히 여겼던 그의 사명과 그리스도의 사명사이의 동질성의 정점을 표현한다. 그들은 순교에 있어 형제다.” 크란반코르 퇴역 법원장 T. 크리수나스와미 아이예르는 말했다. “위대한 지도자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인도의 독립이 명백해졌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박혔다. 전 세계는 그리스도가 상징이었던 사상으로 충만해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마하트마 간디는 평화와 관용의 상징으로서 그의 죽음은 오래도록 살아남을 것이다.”

그리고 역사상 가장 그리스도 같았던 사람이 전혀 기독교인이라 불려지지 않는다. 그리고 소위 기독교 문명을 위하여 싸웠던 그사람은 실제적일을 진척시켰다. 많은 도구들을 활용하시는 하나님은 마하트마 간디를 이교도 기독교를 기독교화 하는데 돕도록 쓰셨다.(2002.11.24 11:53-스탠리존스 선교사의 '마하트마간디-해석 제5장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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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1]이방인

2008.05.15 05:26:35
*.118.129.226

처음에는 잘 읽다가 나중에는 너무 길어서 속독의 방식으로 읽어 내렸는데 나중에 다시 한 번 읽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사티아님께서 이 긴 글을 번역하시고 타입핑하시느라 얼마나 애를 쓰셨을지 참 헤아릴 길이 없군요..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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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3]모래알

2008.05.15 06:10:19
*.250.11.122

사티아 님. 참 감사합니다.
간디가 스탠리 존스 선교사를 만나서 말했던 네 가지!
정말 우리들 모두 되새겨 보아야 할 말이군요.
번역을 하셨다니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어쩐지 사티아 님의 멋진 시 가락들이 요즘 안 들리더라구요,
이 책을 한번 읽어보아야겠네요. 원제목이 마하트마 간디 인가요?

참, 인도와 뉴욕의 시간차이가 어떻게 되나요?
따님은 언제 뉴욕에 오는지 알려주시면
혹 맛있는 거 사줄 수 있을까 싶은데요.

[레벨:7]breeze

2008.05.15 09:14:29
*.114.81.245

휴~~. 좋은 글 읽고도 글 올린 분이 이렇게 야속하기는 처음이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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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4]사띠아

2008.05.15 09:27:49
*.162.166.184

이방인님 대충 번역 애써 읽으시느라고 수고하셨어요.
스탠리 존스선교사님의 간디에 대한 평가는 6장에 더 잘나와 있는 것 같아요.
나중에 올려드리겠습니다.

모래알님, 내일 딸이 뉴욕에 나옵니다. 맛있는 것 사주세요!!!!
여름방학 중국 교수님과 티벳 프로젝트 가려고 중국비자 받으러 나온답니다.
아빠 붕어빵입니다. 성격이.

브리즈님. 죄송. 제가 읽어도 아리송한데 얼마나 힘이 드셨습니까?
번역자 제1원칙, 독자을 생각하라 를 이렇게 무시한 번역도 없을 겁니다.
6년전 일입니다. 시간되면 원문 보내드릴께요.

[레벨:28]첫날처럼

2008.05.15 12:37:51
*.234.121.126

사티야 님! 좋은 글 너무 너무 감명깊게 잘 읽었습니다. 복음이 무엇인지, 기독교 신앙이 어떠해야 하는지 뚜렷이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스탠리 존스 선교사님의 이야기를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훌륭한 분이셨는지 이제야 알았습니다. 이 분을 보면서 복음의 영성이 합리성과 보편적 상식과 배치되지 않음을 느낍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 진정성을 인도 사람들이 알아준 것이구요.

마하트마 간디를 있는 그대로 이해는 모습도 너무 인상깊습니다. 보통 우리 나라 기독교 분위기는 다른 종교의 훌륭한 인사에 대한 고의적인 오해와 악의적인 비판에만 골몰하는 것과 비교가 됩니다.

또한 스탠리 존스 선교사님의 모범은 선교에 있어서 분파주의적 불화만을 조장하려는 우리 나라 기독교에게도 타산지석의 교훈이 될 것 같습니다.

복음은 바로 "예수" 그 자체라는 말에서도 많은 공감을 가집니다. "예수에 관한 종교" 들은 상대화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만 선교에 임하는 기독교 교파들은 겸손한 자세로 서로 협력과 이해가 가능할 것입니다.

또한 선교라는 것이 "예수" 라는 보편적이고 편재한 본질로부터 시작해서, 다른 종교 문화적 토양 속에도 또한 있을 수밖에 없는 그런 공통적 본질들을 찾아내 대화하고, 또한 그러한 노력을 통해서 우리의 "예수" 이해 또한 더 넓어질 수 있는것이어야 함을 느낍니다.

또한 간디가 말한대로 "값싼 은혜" 에 대한 비판은 깊이 성찰해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복음의 본질인 "예수"가 "예수"가 아닌(?) 황당한 한국 기독교의 현실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됩니다.

[레벨:7]breeze

2008.05.15 14:16:07
*.114.81.245

사티아 님이 야속했던 건 (사전 주의도 없이!) 글이 길어서였지 번역이나 본문 따라가기가
힘들어서가 아니었답니다.
3000여 개에 가까운 사랑채 글 중에서, 이번 꼭지글이 가장 길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 기록도 누군가에 의해 언젠가는 깨어지겠죠? ㅎㅎ
profile

[레벨:17]바우로

2008.05.15 17:51:10
*.62.25.27

제 블로그 (http://logosblf.egloos.com) 에 가져가겠습니다. 스탠리 존스 선교사의 글은 정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새겨들어야 할 잠언이라고 생각합니다.
profile

[레벨:94]정용섭

2008.05.15 18:07:59
*.181.51.93

사티아 님, 축하드립니다. 짝짝...
사랑채의 기록을 깨셨네요.
profile

[레벨:21]유목민

2008.05.15 18:23:23
*.247.83.42

띠웅-(눈 알빠지는 소리)
잘 읽었습니다.

[레벨:0]정교승

2008.06.05 00:40:16
*.150.79.181

목숨을 걸고
인터콥 이라는 선교단체의 훈련을 받은 저의 아내가 티벳이라는 곳으로 선교를 간답니다.
말려도 말려도 되지 않는 이 일에 저는 아무 선교 비전도 없이 아내를 보호 하러 가야 겠습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시고 많은 도움을 주신 글 너무 감사합니다.
이해하지 못 할 부분도 많은 것을 고백 합니다.
계속 되는 연재를 기다립니다.
선교라는 말 조차도 모르는 저에게 가르침을 주소서
삼가 다시 감사를 드립니다.
profile

[레벨:24]사띠아

2008.06.05 08:03:31
*.162.157.63

제 딸이 7월말 중국인 지도교수님과 함께 티벳으로 한 달간 프로젝트를 하러 간답니다.
고등학교 다닐때 티벳 망명정부가 있는 다람살라에 가서
그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측은지심이 발동하여
가방에 조그만 'I LOVE TIBET'이라는 뱃지를 달고 다닌답니다.
선교란 것이...
교회지어주고 사회사업하는 것도 되겠지만
현지인과 함께 살아가기를 배우는 것인 것 같습니다.
profile

[레벨:23]모래알

2008.06.05 08:31:19
*.250.11.122

사티아 님! 30 분 전쯤 따님과 통화했는데 아직도 at work 라 해서 오래 이야기 못했어요~~

지난 주 러시아에 선교사로 계시는 분 오셔서 하신 말씀.
나를 비우는 거 배우는 게 선교라 하시더군요.
profile

[레벨:24]사띠아

2008.06.05 09:32:19
*.162.157.63

모래알님, 현지에서 돌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길거리에서 맥없이 뉴욕시정부에 딱지를 떼고 있는 사람들
1년에 1만불 벌어서 1천불 딱지 떼이는 사람들,
통역/대변해 준다고 법원에 가 있을 것이라고 했으니 법원에 있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사회의 밑바닥에 서서 보니 분노밖에 치밀지 않는다고 합니다.
저러다 운동권 선두에 서지나 않을런지...
profile

[레벨:23]모래알

2008.06.05 09:51:09
*.250.11.122

사티아 님! 저 아직 밥도 한번 사주지 못했는데요.

뉴욕에서는 정말 벌금 받는 일이 너무나 많아요.
집 앞의 눈 안 치워도 벌금.
쓰레기 제대로 안 묶어서 내 보냈다고 벌금.
상점들은 좌대 조금만 앞으로 나와도 벌금이래고..
자동차 잠시 소화전 앞에 세웠다가 걸리면 150불입니다.
그 길거리의 페들러들도 시의 permit가 있어야 하는데
아마 그것 없이 아무데고 장 벌리면 벌금일 겁니다.
이 큰 나라.. 작은 목소리들 안 들려요..
한국처럼 대단위 집회 그런 거 하려면 당연히 허락 받아야 하구요.
운동권의 개념도 한참 다른 나라니까요.
잘 하고 있을 겁니다. 염려 마십시요. *^^*

[레벨:4]송현곤

2013.04.29 14:50:14
*.162.195.154

간디에 대해 백과사전을 읽다 참고문헌을 통해 이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스텐리 존스 선교사의 간디에 대한 글은 간디를 아는데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었습니다
번역이 이해하는데 무리는 없었습니다
모르는 분이지만 사티아님의 긴 글의 번역에 감사드립니다 많이요
간디가 어떤 생각을 가진분인지 살아서 오는 느낌을 전해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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